오동나무 다탁(茶卓)
조인혜(2020.10. 신인상. 부산)
지난 추석, 친정집에서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비가 내리는 마당 텃밭의 울타리로 쳐진 큰 널빤지였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기름칠하며 소중히 다루던 오동나무 널빤지였지만, 식구 누구도 그것의 용도나 사연을 알아보지 못했다. 두 짝만 남아 있었다. 빗기를 머금어 윤기라고는 없고 헤져서, 주름진 채 늙어가던 할머니 얼굴인 듯했다. 서둘러 집안으로 옮겨 놓았다.
할머니의 친정은 지금의 부산 강서구 조만포라는 곳이었다. 할머니는 자식을 낳지 못했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3년 뒤, 병약한 할아버지가 후사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와 남들처럼 사랑 한 번 나누지 못하고 과부가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형님 아들이며, 양자로 들여와졌다.
오랫동안 병석에 계신 외증조할머니를 뵈러 갈 때면 나를 꼭 데리고 갔다. 어린 마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손녀라도 앞세우고 싶으셨나 보다. 할머니의 심정이 지금에서야 헤아려진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친정을 외갓집보다 더 자주 드나들었다.
예부터 시골에서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는 목질이 가볍고 연하여 뒤틀리지도 않으며 가공하기 쉽다. 무늿결은 아름다워 가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수분이 많은 땅에 심어 놓으면 성장 속도가 빠르다. 딸아이가 시집갈 때쯤 베어서 장롱을 만들기에 적당했다.
외증조할아버지도 할머니를 낳고 우물가 양지바른 곳에 오동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꿈을 머금은 나무는 쑥쑥 잘 자랐지만, 외증조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시집가는 것도 못 보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동나무는 할머니의 혼수 재료가 되지 못하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린 과부가 된 할머니를 묵묵히 지켜봐 왔다. 아름드리 큰 나무가 되었을 즈음 할머니 연세도 쉰이 넘어 있었다.
내가 열 살쯤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할머니 친정집이 부산스러웠다. 멀리서 새벽같이 달려온 큰집 꼴머슴 승복이가 보였다. 마당에는 향긋하면서도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널빤지가 새끼줄에 묶인 채 리어카에 실려 있었다. 어느새 나무를 베어 제재소에서 판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연필을 깎으면 드러나는 속처럼 뽀얀 판자들이 햇살이 눈에 부신지 숨을 곳을 찾는 듯했다. 할머니는 나무를 베어 장롱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더욱 소중하게 쓰실 작정을 하셨던 게다.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조심히 운반해서 뒤 안에다 가마니로 잘 덮어두어라.”
할머니는 꼴머슴 손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쥐여 주면서도 안심이 안 되는 눈치였다. 나더러 널빤지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뒤에서 밀며 따라가라 했다. 연신 널빤지만 두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데 정신이 팔려, 삼십 리 길을 걸어가야 하는 어린 손녀 따위는 안중에 없어 보였다. 초가을이라지만 여름 늦더위가 비포장 신작로를 뜨겁게 데웠다. 리어카를 끌기에는 먼 길이었다. 바닥이 닳은 고무신이 자꾸 벗겨지고,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는 것처럼 무거웠다. 연신 구부린 허리도 끊어질 듯 아팠지만, 향긋한 나무 냄새가 나를 위로 했다. 한나절 넘게 길을 걸으며 나에게 힘을 준 오동나무 향기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할머니 냄새로 남아 있다.
할머니는 널빤지를 자주 동백기름으로 닦으셨다. 조롱박 속처럼 하얀 널빤지가 가을볕에 잘 익은 알밤처럼 윤기를 냈다. 오촌 아재가 아지매 손목시계를 사 온 날에도 할머니는 널빤지에 기름칠하느라 바빴다. 친하게 지내던 무당인 평양댁의 아들이 취직 된 날도 할머니는 널빤지에 기름칠을 했다. 긴 한숨으로 덧칠까지 하셨다.
“영감, 내가 장롱 안 해 왔다고 혼자 두고 갔소. 아버지는 장롱도 안 만들어 주고 일찍 저 세상 가뿌고. 이제 내 손으로 나무 옷 만들어 입고 영감한테 갈라요.”
어느 날 판자를 만지며 하는 넋두리를 듣고서야 그 널빤지의 용도를 알았다. 두 분이 함께 살았다면, 오동나무 장롱 속에는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가 들어갔을 것이다. 복을 비는 오방주머니도 있었을 게다. 장롱 바닥에는 일부종사 백년해로를 염원하는 혼서지를 깊숙이 넣어 두었겠지. 하지만 할머니는 비단옷이 아닌 자신의 육신을 오동나무 널에 담아서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고 작정 하셨다.
할머니의 한숨 소리가 깊어지고 흰머리가 늘어날수록 판자는 더욱 광이 나고 반질거렸다. 열아홉 청상과부의 한이 거문고 선율처럼 나뭇결마다 스며들었다. 아들딸 낳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 지아비로부터 사랑받고 싶었던 아내의 마음을 마지막 옷인 관에 새긴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수년간 닦고 기름칠 했던 오동나무 널에 잠들지 못했다. 주변 가족들이 더 비싸고 근사한, 매끈거리고 빛나는 대리석 관을 입혀 보냈다. 오동나무 널빤지는 그만 주인을 잃고 말았다.
널빤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헛간 구석에 멍석으로 덮어져 있었다.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면, 으스스한 널빤지 주위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무섭다고 했지만 난 그곳에 숨는 것이 편안했다. 익숙한 나무 향과 함께 할머니의 품 속 같은 따스함이 느껴져서였다. 어떤 날은 그곳에서 잠이 들어 나를 찾느라 집안이 발칵 뒤집힌 날도 있었다. 까마득히 잊힌 그 물건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널빤지는 한 겹 대패질하면 속살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서리를 잘라내면 작은 탁자 하나쯤은 만들 수 있겠다 싶어 목공소에 가지고 갔다. 오동나무 널빤지는 지금 내 앞에 탁자로 놓여 있다. 완성된 다탁의 아름다운 무늿결마다 할머니의 삶이 켜켜이 새겨졌다. 종종 할머니가 생각나면, 그윽한 탁자에 앉아 애달픈 추억을 찻잔에 담아 마신다. 오동나무 꽃 피는 오월이 되면 할머니가 더 그리워진다.
첫댓글 조인혜 선생님. 2020년 10월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과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오동나무 꽃 피는 오월이 되면 할머니가 더 그리워지는 다탁을 마주하고 애달픈 추억을 마신다는 글귀에 가슴이 저립니다. 할머니의 인생과 손녀의 마음을 읽으며 선생님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앞으로 좋은 글로 자주 만나뵙기를 소망합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어렴풋이나마 할머니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게 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10월 신인상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