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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의 친구들
보다/알다
안녕하세요? 저는 천성산 화엄늪에서 환경감시원으로 일하고 있는 심규한이라고 합니다. 옛날 식으로 말하자면 산지기요, 산감인 셈이지만, 늪에서 일하니 늪지기이겠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양산에 작년부터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양산살이가 1년 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신참이고 외지인이지요. 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산과 맺은 관계 때문일 겁니다. 관계가 없다면 얘기할 이유도 거리도 없을 테니까요. 관계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지식이나 시간으로 보면 매우 짧지만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깨달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릴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산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
천성산 화엄벌 마루에 서면 양산시는 물론 우리들이 지금 만나고 있는 물금도 훤히 내려보입니다. 그러니 천성산이 그렇듯 양산시민들과 여러분도 천성산을 매일 보는 셈이지요. 하지만 본다고 해서 꼭 아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경험에도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제가 인식하고 있던 공간은 기껏 동네와 이웃동네, 그리고 뛰어놀던 야산 정도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도시를 몇 군데 알 정도였고, 산도 소풍 때 따라가는 정도이다가 고1이 되어 친구 혹은 동아리 선후배와 가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자랐지만, 여러분 지난 겨울에 한 『응답하라 1988』 보신 분도 계실 겁니다. 바로 그 드라마에 나오는 정의여고 후문의 한 골목에 저희 집이 있었거든요. 드라마의 덕선이와 친구들이 꼭 제 나이더라구요. 아무튼 저희 동네에서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이 가깝고 또 잘 보였지만 본다고 해서 가는 것도 또 아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왜냐하면 우리는 깊이 보지 않고, 설사 깊이 보더라도 보는 것엔 안 보이는 부분 즉 맹점(盲點)이라는 게 항상 있거든요. 그러니 본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본 게 많으면 그 만큼 못 본 것도 많다는 말도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아는 게 많지만 또 모르는 것도 많아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겸손하고 계속 배워야 하지요. 정말 그럴까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쎙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가지고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 읽어보셨나요? 혹 읽어보지는 않았더라도 애니메이션으로 보신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작년에도 『쿵푸 팬더』를 만든 마크 오스본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개봉하였지요. 보셨나요?
본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저는 『어린왕자』 책을 최소 3번은 봤습니다. 첫 번째는 중학생 때 좋은 책이라고 해서 봤습니다. 그 때는 이 책이 좋은 줄 몰랐습니다. 그냥 좀 지루하고 심심한 동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때 다시 보았을 땐 너무나 좋았습니다. 우리사회를 풍자한 다양한 별나라 이야기나, 여우를 사귀며 친구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된 이야기는 요즘 시대에 정말 절실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만나며 다시 읽었을 때는 이 책이 그 어떤 교과서나 경전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면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그 때 읽은 『어린왕자』를 저는 과연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중학생 수준에서 안다고는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저는 아직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같은 환상소설과 『셜록 홈즈』 시리즈 같은 탐정소설에 빠져 있었거든요. 『어린왕자』는 앞의 책들에 비하면 스릴이 통 없지요. 어린이들의 뇌가 자라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용기를 길러주는 스릴 있는 이야기들이 더 어울리지요. 아마 당시 제 영혼과 정신의 성장에는 『오즈의 마법사』나 『셜록 홈즈』 시리즈가 더 자양이 되었을 겁니다. 만약 제가 『어린왕자』를 중학생 때 봤으니 안다고 생각해서 이후 다시 읽지 않았다면 저는 끝내 『어린왕자』의 맹점을 회복하지 못한 채 안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을 겁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적합한 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평생 공부하는 맛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서서 천성산과 화엄늪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어릴 때 본 산이나 읽은 『어린왕자』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본다고 해서 반드시 본 것은 아니고, 안다고 해서 반드시 아는 것도 아니고, 봤다고 하지만 오히려 안 본 것이 더 클 수도 있고, 봐도 언제나 못 본 것이 남아 있으니, 이런 기회를 통해 본 것도 더 새롭고 깊게 보며 알자는 의도에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못 보는 사람은 될지언정 안 보는 사람은 되지 말았으면 합니다.
친구와 관계
서론이 지나치게 길어졌군요.
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계속 『어린왕자』 이야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저는 제가 여러분 앞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천성산과 제가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린왕자』는 왕자와 여우의 친구가 되는 과정을 참으로 멋지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여우와 어린왕자가 처음 만나던 장면?
그렇습니다. 어린왕자는 울고 있었습니다. 수천송이 장미담장을 보고 자신의 별에 남겨진 잘난 체 하는 장미가 고작 한 송이의 장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지요. 자신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우가 나타난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하지요.
며칠간 둘은 약속 시간을 정해 서로 만나며 거리를 좁혀 나갔습니다. 처음엔 서먹했지만 드디어 친구가 되었지요. 하지만 이별의 날이 다가오자. 여우는 헤어짐을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왕자에게 비밀을 알려주지요. 친구가 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고, 관계를 맺으면 세상이 달라지고, 관계에는 책임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보아야 하고, 우리는 결국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 즉 관계를 맺은 것밖에 알 수 없다고 하였지요.
그렇습니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장 바닥에서도 자식을 알아보는 엄마처럼 친구는 수백 명의 아이들 중 나만의 의미 있는 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친구가 있음으로써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그것을 지음(知音)이라고 하지요. 서로를 알아주는 관계말입니다. 그게 참되 앎입니다. ‘니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가 아니라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너’인 것이지요. 하지만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둘은 책임입니다. 어린왕자가 장미에게 물을 주고 꾸준히 돌본 것처럼, 여우와 함께 시간을 내어 친해진 것처럼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 즉 친구와의 의리도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합니다. 저와 산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저는 매일 산에 오르며 산을 만났고, 산을 알게 되면서 산에 대한 기쁨과 더불어 슬픔 등의 책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여러분을 만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알고 관계를 맺어 가면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온 세상이 나와 관계가 깊은 친구면 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책임도 갖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과 어떤 관계도 없다면 나는 아무 책임의식도 갖지 못하고 세상을 함부로 대할 것입니다. 돈밖에 모르고 자연은 물론 사람들과도 멀어질 겁니다. 저는 제가 산과 관계를 맺게 된 것처럼 여러분도 사람은 물론 자연과도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연 모두를 알 수는 없지만 하나 둘 아는 것만으로도 삶이 변하고 훨씬 더 행복해지니까요.
천성산의 친구들
이제 제 친구들을 소개할까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가르쳐준 대로. 그런데 마음으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엄마가 여러분을 볼 때처럼 해야 합니다. 생각을 멈추고 심장과 몸의 따뜻한 느낌을 가지고 상대방을 보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하는 마음이에요. 그러면서 상대방이 나에게 내가 상대방에서 점점 스며들기 시작한답니다. 둘이 하나가 된 느낌처럼 편안해야 해요. 천천히 기다려보세요. 그렇게 될 거에요.
물소리
천성산은 12계곡을 가지고 있지요. 물이 많은 산입니다. 계곡마다 수많은 폭로를 가지고 있지요. 한뼘 높이 이상의 폭포를 헤아리면 수만 개가 넘을 거에요. 그것들이 모두 다른 소리를 낸다고 생각해보세요. 거대한 폭포는 너무 웅장해서 오히려 단조롭지요. 하지만 여울처럼 낮고 작은 폭포들은 울림도 좋고, 물 흐르는 소리나 주변의 벌레소리, 새소리들도 살려줍니다. 맑고 시원한 물소리를 들어보세요. 눈을 감고 내가 듣는 소리는 어떤 곳에서 나는 소리일까 상상하며 들어보세요. 또 감정이입을 해서 자신도 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물소리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느끼면 됩니다. 그게 물명상이고 물과 친구하는 방법입니다.
구름
물은 정말 엄청나지요. 저는 산에 와서 용(龍)의 참 의미를 알게 되었어요. 용이 우리말로 미르인 것은 많은 분이 아실 겁니다. 물론 물과 미르는 같은 말입니다. 앞에서는 작은 여울폭포 소리를 들려드렸지만 천성산에는 크고 멋진 폭포도 많아요. 이곳저곳 용소도 많아요. 미르는 물이 가진 생명력과 기능을 신격화한 말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도 용연이고, 여러분 학교는 물금이지요. 다 물의 생명력이 담겨 있는 지명입니다. 아무튼 생명의 힘이 용솟음치는 폭포 하나라도 여러분이 좋아해서 자주 찾아가 여러분의 친구로 삼는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물이 하는 역할을 안다면 정말 물신 미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파가 닥쳤을 때 산에 와보세요. 한파 때는 단 몇 시간만에 콩나물처럼 한 뼘 가량 쑥 자란 서릿발을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계곡의 얼음에 낀 성에는 얼마나 아름답다고요. 차창에 낀 성에도 숲의 무늬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름 아침 소나기 뿌린 나뭇가지의 이슬은 어떤가요? 안개 낀 날 거미줄에 맺힌 이슬과, 비오는 날 천성산 정상 습지에 가득한 개구리 울음은요. 습지 초원에서 서릿발이 하는 일은 어떨까요? 너무나 아름답고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데 여러분께 보여주고 들려줄 시간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천성산에서 종종 구름이 한바탕 축제를 벌일 때가 있습니다. 1년 중 한 20일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구름이 변화무쌍하게 모양을 바꾸며 한바탕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구름이라고 하얀 빛깔만 있는 게 아닙니다. 회청빛도 있지만, 붉은 구름도 있고, 무지개빛 구름도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도 미르가 산다면 얼마나 힘차겠습니까? 낮게는 천성산 높이는 1킬로미터에서 높게는 10킬로미터도 더 높이. 겨울 구름이 다르고 여름구름이 다르지요. 아침과 한낮, 그리고 저녁 구름이 다 달라요. 비라도 지난 다음 새파란 하늘에 구름들이 몰려오고 몰려가며 하는 공연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관입니다.
노란턱멧새
3월 어느 날 숲에서 너무나 감미롭게 노래하는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노란턱멧새입니다. 3,4월이면 산새들은 둥지를 짓고 짝짓기에 분주합니다. 노란턱멧새의 노랫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기도 하지요. 노란턱멧새는 짝을 찾기 위해 가장 높은 나무의 우듬지 위에 앉아 노래를 합니다. 재미난 것은 노란텃멧새들이 저마다 자기의 노래 곡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새들이 한 마디의 노래를 부른다면 노란턱멧새들은 네 마디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각 소절은 다시 부르면서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이렇게 만든 노래를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멋진 새가 살고 있습니다.
봄에 산을 찾을 때 귀를 기울여 보세요. 산의 가수 노란턱멧새가 그 어떤 노래보다 멋진 노래를 들려줄 겁니다.
보라금풍뎅이
보라금풍뎅이는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로 작습니다. 저는 지금도 3월 어느 날 보라금풍뎅이를 처음 만나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가파른 계곡을 지나 막 언덕에 오르는데 눈 앞에 보라금풍뎅이가 무지개 보랏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흡사 그리스의 신전에서 막 날아온 것 같습니다. 보랏빛이 얼마나 고귀한 빛깔인지 보라금풍뎅이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찬란하게 예쁜 곤충이 먹고 자라는 곳은 똥구덩이입니다. 멧돼지나 오소리똥 속에 범벅이 되어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찌 이렇게 찬란한 것이 똥구덩이에서 나왔을까 생각하면 정말 신기할 뿐입니다. 진흙탕에 피는 연꽃과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한 벌레이기에 똥에 대한 편견도 버리게 됩니다.
삵
사진을 하나 보여드리지요. 이것은 삵일까요 고양이일까요? 삵입니다. 하지만 산고양이의 피가 섞였는지 삵의 특징이 좀 약합니다. 화엄벌을 중심으로 살던 삵이었는데 작년 여름에 죽었지요. 이 친구가 삶인 이유는 습성이 그렇습니다. 변을 잘 드러나는 곳에 누고 영역표시를 하고 발자국도 매화꽃같이 예쁘게 남깁니다. 겨우내 화엄벌 주변에서 지낸 걸로 보면 일반적으로 추워지면 산밑으로 내려가는 고양이들과 확실히 다릅니다. 그런데 삵과 고양이 교배가 가능한 건 알고 계신가요? 5월이 되면 산고양이들이 산 정상까지 올라옵니다. 삵의 서식지와 겹치지요. 고양이가 새와 쥐를 주로 사냥하는 것은 아시지요? 그래서 들고양이 산고양이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새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답니다. 천성산의 산새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작년 5월 올라온 검은 고양이와 화엄벌 삵이 결혼을 해 얼룩덜룩한 잡종 새끼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한 열흘 새끼 고양이들을 목격하곤 했지요. 하지만 삵이 초소 밑을 은신처로 정했다가 그곳에서 불행한 사고를 당해 죽게 되었습니다. 새끼들도 산 놈이 없겠지요. 그래 겨울을 나며 지켜보니 지금 화엄벌을 중심지로 서식하는 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정상 건너편 계곡에서 삵을 본 것 외엔 작년 이후 아직 화엄벌 근처에서는 삵의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천성산의 생태계가 위태로운 것은 정상을 비롯해 임도가 이곳저곳 관통하고 있다는 것도 한몫을 합니다. 그 길을 따라 개와 고양이들이 유입되고, 사람의 레저스포츠문화가 마구 밀려오기 때문이다. 생태섬같이 되어버린 천성산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멧돼지들
화엄늪 초소 앞 200~300미터 솔숲은 멧돼지 서식지입니다. 매년 겨울 6마리 이상의 멧돼지들이 겨울을 납니다. 물론 이곳저곳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지만 주로 그곳에서 변을 보고 쉽니다. 처음 산에 왔을 때는 멧돼지 사진을 가까이 찍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수목의 방해로 찍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방금 말씀드린 솔숲 시누대밭에 들어갔지요. 원래는 화전민 집터 흔적을 찾으러 갔던 것인데 문득 제 주변에서 멧돼지들이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시누대에 가려 화난 숨소리와 형체만 겨우 파악했지만 바닥이 온통 멧돼지 똥이었습니다. 문제는 우거진 시누대 때문에 이들의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곧장 시누대숲을 벗어나러 직진했지만 멧돼지 똥밭이 엄청 넓었습니다. 그 뒤로는 서식지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녀석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면 좁은 천성산에서 갈 곳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저는 멧돼지가 살만한 깊은 골로 들어갈 때는 가면서 규칙적으로 ‘어이’하며 신호를 보내곤 합니다. 멧돼지들이 사람을 느끼면 알아서 피하거든요. 그러다가 이놈들이 궁지에 몰리면 ‘꽥 꽥’ 받아칩니다. 그게 나는 물러나지 않을 테다 하는 소리입니다. 그럴 땐 제가 돌아갑니다. 멧돼지의 물러설 수 없는 영역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멧돼지 성을 돋워 좋을 일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멧돼지들로부터 산의 예절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늘 불안합니다. 정족산 방면 골짜기 두 곳과 내원사 안쪽 계곡을 제외하면 이들의 서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이 도토리 같은 것을 싹쓸이 해가고, 번식철이 되면 분가도 해야 하니 멧돼지들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습니다. 멧돼지들은 궁지에 몰리지 않는 한 사람을 일부러 공격하지 않습니다.
꿩
겨울이 되면 새들도 모여서 겨울을 납니다. 여러분은 마을 근처 까마귀나 까치가 군집을 이뤄 겨울 나는 장면을 보았을 겁니다. 박새, 곤줄박이, 쇠딱따구리들도 종은 다르지만 함께 모여 겨울을 납니다. 성격도 다른 이들이 협력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흐뭇합니다. 꿩들은 암수로 성을 나눠 군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년 여름 5월 이후 깨어난 꺼병이들이 꿩으로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참 즐겁습니다. 작은 병아리가 닭이 되는 것과 똑같습니다. 꺼병이들은 호시탐탐 노리는 산고양이들까지 피해가며 잘 자랐습니다. 그래 겨울이 되어 흩어졌던 꿩들이 다시 보였을 때 원효봉 부근에서 20~30마리의 꿩들이 일제히 비행하곤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숲에서 꿩이 갑자기 꿩! 하고 크게 울며 달아나는 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있었을 겁니다. 상대방을 놀라게 하고 그 틈에 달아나는 것도 꿩의 전략이지요. 아무튼 겨울 들판에 날아다니는 꿩무리를 보며 저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지난겨울은 유난히 말똥가리들이 천성산에 많았습니다. 꿩의 개체수가 늘어나니 말똥가리 개체수가 늘었습니다. 제가 대충 파악한 것만 해도 20여 마리의 말똥가리가 천성산에서 겨울을 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골짜기마다 두어 마리는 꼭 있는 셈이었지요. 말똥가리들이 많아지자 꿩이 통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먹이사슬이라는 것이지요. 다행히 숲으로 도망쳐 살아남은 놈들이 있긴 했습니다. 먹이사슬이 어떻게 변하는지 꿩을 통해 새삼 깨달았습니다.
먼 고구려인들은 모자에 꿩깃을 꽂고 다녔지만 신화같이 울며 날아가는 장끼의 비행을 보시면 여러분도 감탄하실 겁니다.
화엄늪
화엄늪은 산지습지입니다. 지금 원효봉 정상도 군부대가 오기 전에는 습지였다고 합니다. 천성산은 산 위에 물이 있는 특이한 곳이지요. 조사에 의하면 원효봉 일대는 안산암 위에 분출암인 각력안산암이 뒤덮고 있어요. 마치 초코렛같이 끈적끈적한 용암이 흘러나와 초코쿠키처럼 쌓인 것이지요. 그래서 북쪽의 정족산과 남쪽의 금정산의 화강암산과 암석이 달라요. 우리나라가 동쪽이 높은 산지가 발달한 이유는 땅이 솟아올라 그런 것이지요. 이곳의 화강암은 1억년도 전에 지하 5킬로 밑에서 마그마가 서서히 식으며 굳어진 암석인데, 그게 지상으로 솟아오르고 산으로 되는 과정을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양산은 양산천 따라 양산단층과 회야강 따라 웅상단층이 형성되어 다시 땅덩이가 비틀어집니다. 그러면서 2차로 마그마가 틈을 비집고 분출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천성산은 정족산과 금정산 사이 후대에 생긴 성질이 다른 산입니다. 그래서 토양이 밀가루같이 고와요. 옛날에는 맨발로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았다고 해요. 이런 미립토가 늪을 형성할 수 있는 지질적 요인이 됩니다. 거기에 바다와 인접해 습기를 머금은 구름이 능선을 넘으며 많은 수분을 공급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산불이지요. 우리나라 산은 청동기시대 이후 침략과 수탈을 피해 화전민들이 산 곳이 많아요. 조사에 의하면 400년 전 목탄조각이 화엄늪에서 나오는 것으로 봐서 그 이전부터 화전민이 살았던 것으로 봐야 해요. 영남알프스의 신불산이나 높은 곳의 초원은 대개 산불과 화전의 결과에요. 왜냐하면 일단 불이 나면 높은 산은 강한 바람과 낮은 기온으로 숲으로 바뀌는데 50~100년 아니 몇 백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즉 자연천이에 시간이 걸린다 이 말입니다. 아무튼 시간 관계상 화엄늪의 자연천이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산위에 늪이 있으면 어떤 점이 달라지는 가를 간단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습지가 뭐지요? 그렇습니다. 습한 땅입니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이지요. 하지만 고산의 초원에 발달한 습지는 주변이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산 속의 오아시스이자 생태섬과 같습니다. 초원습지는 햇볕에 노출되면서 늪에서 자라는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자주땅귀개 같은 식충식물이 자랍니다. 물론 창포나 동의나물, 물매화, 앵초, 은방울꽃, 창포, 왕미꾸리꽝이, 진퍼리사초 등 다양한 식물도 있지요. 산골조개도 살아요. 개구리나 도롱뇽은 말할 것도 없지요. 초원에는 쥐들이 특히 많지요. 토끼도 살고요. 그러다보니 그걸 먹으려고 담비, 족제비, 삵, 멧돼지들이 오고 맹금류인 참매, 개구리매, 황조롱이, 말똥가리들이 날아와요. 종다양성이 엄청 다양해지지요. 오늘 여러분께 동물들을 중심으로 얘기하고 다양한 식물들 얘기를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사실 저는 동물보다 식물을 더 많이 만나고 또 수없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났거든요.
화엄늪에서 하나하나 발견하고 알아가는 것 자체가 엄청 행복한 일입니다. 수없이 많은 천성산의 친구들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그런가하면 화엄늪이 오아시스이듯 천성산도 생태섬이 되어 위태위태한 모습을 몹니다. 임도를 따라 산악자동차와 산악오토바이, 산악자전거가 밀려오고, 산에서는 여전이 불을 피우고 담배피고 야영을 합니다. 쓰레기도 잘 버리고, 채취도 수시로 이루어집니다. 천성산에 서면 곳곳에 공단과 골프장과 공동묘지 고리원전에서 나온 고압송전탑들이 보입니다. 양산시는 지금 열 곳이 넘은 곳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전국 최고지요. 하지만 여러분과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산의 친구들을 여러분이 만나고 친구들에게 예의와 책임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강합니다.
보는 것을 닮는다
제 친구들이 어떤가요? 저는 천성산에 친구들이 엄청 많이 있지요. 그리고 이 친구들로 인해 고맙고 또 행복하답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책임감도 느낍니다. 하지만 여러분처럼 맑고 순수한 친구들을 보니, 여러분 역시 자연의 좋은 친구들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나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산에 자기 나무를 정해 정월 무렵에 찾아가 인사를 하고, 간혹 나무를 찾아가 주변을 가꾸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나무를 찾아가기도 했지요. 하지만 요즘은 산도 나무도 바위도 친구 삼을 줄 통 모르지요.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자기만의 산과 나무와 바위 등이 있다면 여러분의 삶도 분명 더 환해질 것입니다.
호오손의 『큰 바위 얼굴』이 요즘에도 교과서에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중학교 때는 국어책에 실린 소설입니다. 거기 주인공 어니스트는 사람 얼굴을 닮은 큰 바위산을 바라보면서 산의 예언이 실현되기를 기다렸지요. 그러나 그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았지요. 정치가도 사업가도 모두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땠나요? 산을 바라보며 산을 닮게 된 어니스트 자신이 바로 산의 예언이 실현된 인물이었지요. 천성산에서 천명의 성인이 났다 혹은 날 것이라는 예언이 전설로 내려옵니다. 여러분의 큰 바위 얼굴산을 마음으로 바라보며 친구 삼는 것은 어떨까요?
사람에게는 거울뉴런이라는 신경이 있습니다. 거울뉴런이 뭐냐면 보는 대로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높은 사회성과 학습능력이 있는 이유는 겨울뉴런의 발달로 잘 따라하고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 누군가 하품을 하면 여기저기서 하품이 나오고, 누군가 다리를 꼬아 앉으면 여기저기서 다리를 꼬아 앉게 됩니다. 웃는 얼굴에는 웃는 얼굴로 답할 수밖에 없는 것도 거울뉴런 때문입니다. 우는 사람을 보면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울게 되기도 하지요. 즉 보는 것을 닮는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너가 나이고, 나가 너입니다. 우리 모두가 관계적 존재로 상호 책임을 떠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천성산이 제 가슴에 들어와 있지만, 제가 전주에 4년을 살았는데 그곳에는 모악산이라는 천성산처럼 멋진 산이 있답니다. 그곳에서는 모악산이 훤히 보였는데 매일 산을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눈이 아니에요. 마음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자 산이 가슴으로 들어와 앉더군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내가 산의 느낌이 되어 사람을 보게 되더라는 겁니다. 아이들을 봐도 산의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제 작은 체험으로 봐도 ‘큰 바위 얼굴’과 같은 효과가 있더군요. 산을 친구로 삼으면 비빌 언덕 치고 엄청 큰 언덕이 생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천성산은 물론 천성산에 사는 무수한 산식구들을 생각해보세요. 옛날에는 돈이 많은 것을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지음인 친구가 많은 것을 부자라고 생각했지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하는 사람이 남 속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 그 사람은 가난해도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일 겁니다.
여러분은 1854년 백인 대통령이 땅을 팔라는 제안에 대해 땅은 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답한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알고 계시나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백인에게 땅을 팔 수 없다고 답변한 이유도, 또 백인보다 훨씬 고상하고 기품 있는 인격을 갖췄던 것도 백인의 돈이 아니라 바로 자연의 친구들을 많이 가진 탓이었지요.
학교 공부도 중요하겠지만 여러분의 시간을 내어 자연의 친구들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제게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내주어서 감사합니다. 부디 마음이 부자인 사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