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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체로키가 내외부의 매무새를 고치고 파워트레인을 개선했다. 지프의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에 고급스런 감성품질을 더해 아메리칸 프리미엄 SUV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한 분위기다.
그랜드 체로키가 내외부 디자인을 다듬고 파워트레인을 개선해 상품성을 높였다
그랜드 체로키는 오프로드 차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지프 브랜드 모델 중에서도 랭글러와 함께 중심을 잡고 있는 모델이다. 오프로드에서 쌓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가장 비싸고 덩치 큰 맏형이기에 짊어질 수밖에 없는 품위를 더해 아메리칸 프리미엄 SUV라는 길을 걸어왔다.
1992년 1세대(ZJ)가 생산된 이후 2009년 뉴욕모터쇼를 통해 4세대 모델이 나왔고 이번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또 한번의 변신을 이뤄냈다. 마초 스타일의 랭글러와 달리 유행을 무시할 수 없는 숙명인지라 세대를 거듭할수록 외모를 둥글게 다듬었다.
특히 2년 전 국내에 들어온 4세대 그랜드 체로키를 대면했을 때 이런 변화가 크게 와 닿았다. 사실 그랜드 체로키는 지프 혈통답게 기본기가 출중하지만 3세대까지는 프리미엄이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만듦새가 좋지 못했다.
도어와 보디, 범퍼의 연결부위는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틈새가 컸고 실내의 플라스틱 질감은 투박했다. 오리지널 지프를 좇는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정교한 독일 프리미엄 SUV나 매끈하게 빠진 일제 SUV에 익숙한 고객들을 끌어오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4세대부터 점차 제자리를 찾는 분위기다. 이번에 만난 4세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올 초 북미국제오토쇼를 통해 데뷔했다. 디자인 변화의 중심엔 새로운 제논 HID 헤드램프와 테일램프가 자리하는데, 크라이슬러 300C와 비슷한 형태로 꾸민 LED 주간주행등을 더하고 조금 더 슬림하게 다듬었다.
이러한 흐름은 오랫동안 지프를 상징해온 폭포수 그릴에도 이어져 구형보다 살짝 길이를 줄였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세련된 얼굴이다. 나아가 앞 범퍼의 아랫부분을 위로 살짝 걷어 올리고 안개등을 날렵하게 꾸미는 등 단순히 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도 신경을 썼다.
높은 지상고를 그대로 드러낸 옆모습은 이전과 다를 바 없다. 사다리꼴 형태의 휠 아치는 지프의 오랜 디자인 아이덴티티. 동그라미 일색인 요즘의 SUV에 비하면 힘이 느껴지는데 도어 아래위로 그은 2개의 수평 캐릭터 라인과 높은 숄더 라인이 이러한 특징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루프 끝에 매달린 대형 스포일러를 시작으로 테일 게이트와 테일램프의 디자인도 바뀌었다. 헤드램프와 비슷한 형태로 LED 가이드램프를 배치하고 사이즈를 살짝 키웠다. ‘JEEP’ 로고가 테일램프 사이에 자리하고 왼쪽 아래에 ‘4×4’, 오른쪽에 ‘OVERLAND’ 배지를 붙였다. 그리고 범퍼의 양 끝에 단 듀얼 배기 파이프로 당당한 인상을 만들었다.
대시보드의 기본은 변함없지만 스티어링 휠, 계기판, 센터페시아, 센터터널 등이 이전과 꽤 다르다
나파 가죽과 우드트림으로 완성한 실내의 변화도 상당하다. 가죽으로 덮은 대시보드 디자인의 기본 틀은 그대로이지만 센터페시아, 센터터널,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 등이 이전과 꽤 다른 모습이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8.4인치 모니터를 겸한 300C와 비슷한 구성의 유커넥트(Uconnect)가 자리하고 그 아래쪽의 기어레버 형태도 300C처럼 바뀌었다.
단순히 디자인만 바뀐 게 아니라 변속 케이블 대신 전자식(E-시프터)으로 교체해 작동감이 더 부드럽다. 열선 기능을 갖춘 3스포크 형태의 스티어링 휠 아래쪽에 ‘1941’을 새겨 자부심을 살리면서 수동변속을 위한 패들시프터를 달았다.
계기판 가운데 7인치 모니터를 두어 다양한 정보를 한글로 보여준다.
8.4인치 모니터로 구성된 유커넥트 시스템을 마련했다.
8단 변속기를 적용하면서 기어레버도 전자식으로 바꿨다. 그 아래쪽에 있는 셀렉-터레인 시스템을 이용하면 오프로드가 두렵지 않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은 계기판. 왼쪽에 타코미터, 오른쪽에 연료와 수온 게이지를 두고 그 가운데에 7인치 TFT 멀티뷰 모니터를 세팅했다. 이전보다 한결 세련된 디자인으로 거듭난 스티어링 휠의 왼쪽 스위치를 누르면 이 모니터를 통해 속도, 오일 온도, 배터리 전압, 타이어 공기압, 구동계 작동상황 등 다양한 정보를 깔끔하게 보여준다. 가끔 좀 어색한 한글 폰트가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만족스럽다.
엉덩이 부분이 살짝 높은 느낌이 드는 뒷좌석의 구성은 평범한데 등받이 기울기가 12도까지 조절되는 타입이라 장거리여행에도 무리가 없다. 미국차 중에서는 고급스러움이 돋보이고, 다리와 머리 공간도 넉넉한 편이다. 저마다 다양한 IT 기기들을 지니고 다니는 요즘 추세에 맞춰 앞쪽과 별도로 센터콘솔 뒤편에 2개의 USB 포트를 마련해 쓰임새가 좋다.
시원스럽게 투명창을 내어주는 파노라마 루프는 아이들이 가장 반기는 아이템이다.
트렁크 바닥에 세로로 레일을 깔아 무거운 물건을 쉽게 안쪽으로 밀어 넣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오버헤드 콘솔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자동으로 테일게이트를 여닫을 수 있고 트렁크 용량은 782L에서 최대 1,554L까지 활용할 수 있어 4인 가족의 오토캠핑용으로 충분하다. 또 트렁크 바닥에 세로로 레일을 깔아 무거운 짐을 쉽게 안쪽으로 밀어 넣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트렁크 오른쪽의 서브우퍼를 비롯해 9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알파인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 만드는 넉넉한 중저음으로 힙합 등의 음악을 즐기기에 좋을 듯하다.
묵직한 토크로 큰 덩치를 힘 있게 밀어 붙이는 엔진
국내에 들어오는 신형 그랜드 체로키의 엔진은 V6 3.0L 디젤과 V6 3.6L 가솔린 2종류. 그중 V8 가솔린 엔진과 비슷한 토크를 내면서도 동급의 가솔린 엔진보다 30% 정도 뛰어난 연비를 보이기 때문에 디젤 모델이 주력이다. 이런 이유로 오버랜드 트림만 있는 가솔린과 달리 디젤 모델은 리미티드, 오버랜드, 서밋의 3가지 트림을 품었다.
신형 V6 3.0L 디젤 엔진은 미국 기준(아직 국내 제원은 발표되지 않았다)으로 최고출력 243마력에 최대토크 58.1kgㆍm의 인상적인 파워를 자랑한다. 기본적으로는 이전 엔진과 같지만 출력과 효율을 살짝 끌어올렸다. 사실 이 엔진은 애초 GM과 이태리 VM모토리가 유럽형 CTS에 얹을 작정으로 개발한 것으로 GM의 내부 사정상 결국 CTS에 사용되지 못하고 2011년 피아트가 VM모토리 지분을 사들이면서 크라이슬러의 주력 엔진으로 떠올랐다.
동급의 V6 디젤 엔진과 마찬가지로 최신 커먼레일 직분사 시스템을 쓰고 있지만 뱅크각이 60도로 메르세데스 벤츠 OM642(72도)나 폭스바겐 TDI(90도)와 차이가 있다. 구조상 약간 키가 큰 대신 폭이 좁다. 가변 지오메트리 형식의 터보로 저회전부터 묵직한 토크를 뿜고 세라믹 글로우플러그를 적용해 냉간 시동성도 좋다.
그랜드 체로키의 가속력은 투아렉 3.0 TDI와 엇비슷하다.
스타트 버튼으로 깨운 엔진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매끄럽다. 마치 V8 트럭 엔진처럼 규칙적으로 내던 ‘웅~웅’ 소리가 줄었다. 소리뿐만 아니라 아이들링 상태에서의 진동 억제력도 만족스럽다. 내외부의 감성 품질 향상과 함께 신형 모델에서 두드러진 변화다. 이와 짝을 이루는 변속기도 메르세데스 벤츠 5G 트로닉 기반의 5단 자동에서 8단 자동(8HP70)으로 바뀌었다.
ZF에서 만든 것으로 기본적인 구조는 BMW 7시리즈와 크라이슬러 300C에 쓰이는 것과 같지만 지프만의 특징을 고려해 세부적인 손질을 거쳤다. 변속 로직이 40가지 이상이어서 급가감속을 비롯해 다양한 상황에 매끄럽게 대응하는 것이 특징. D 모드에서 아래로 레버를 내리면 S(스포츠 모드)로 전환되고 변속 타이밍이 줄어 좀 더 스포티한 주행이 가능하다.
급가속을 하니 이전처럼 늑장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어를 넘긴다. 타코미터의 바늘은 4,000rpm 부근을 넘지 않는다. 폭스바겐 투아렉 V6 3.0 디젤과 비슷한 가속력이다. 오프로드에 강점을 보여온 그랜드 체로키가 이젠 온로드 성능에서도 독일의 대표적인 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증거다. 에어 스프링이 선사하는 부드러운 승차감도 매력을 더한다. 반면 롤과 스티어링 반응, 제동에선 좀 더 개선할 여지가 남아 있다.
신형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을 통해 그랜드 체로키가 얻은 것은 부드러운 주행성뿐만이 아니다. 아직 국내 인증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미국 자료를 기준으로 아우디 Q7 3.0 TDI와 비교해보면 최고출력은 비슷하지만 58.1kgㆍm 대 56.1kgㆍm로 토크가 더 세면서 시내 연비도 20MPG(약 8.5km/L) 대 19MPG(약 8.1km/L)로 좀 더 낫다.
게다가 견인능력은 7,400파운드(약 3,357kg)로 6,600파운드(약 2,994kg)의 Q7을 압도한다. 기존에 가졌던 장점은 더 살리고 단점은 극복한 셈이다. 시승 중 고속도로에선 7.2L/100km를, 급가속을 반복한 와인딩과 오프로드에선 11.6L/100km의 실주행 연비를 보였다. 이를 L당 주행거리로 환산하면 약 13.9km/L와 8.9km/L로 2,327kg에 이르는 몸무게를 고려하면 꽤 만족스런 결과다.
온로드 타이어를 끼운 상태에서도 모래밭을 낚아채는 능력이 남다르다. 그랜드 체로키의 오너라면 자연스레 주말이 기다려질 게 분명하다.
오프로드를 빼놓고 지프를 논하기 어렵듯 그랜드 체로키도 오프로드를 위한 특별한 장비들을 꼼꼼히 챙겼다. 콰트라-드라이브Ⅱ, 셀렉-터레인 시스템과 차고를 조절할 수 있는 콰드라-리프트 시스템이 그 주인공이다. 셀렉-터레인 시스템(Selec-Terrain)은 다이얼 스위치를 통해 스로틀 컨트롤, 변속 타이밍, 트랜스퍼 케이스, 트랙션 컨트롤, 전자 주행 안정 시스템(ESS) 등 12가지의 항목을 미리 짜놓은 조건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
진흙길과 모래밭 탈출에 유리한 샌드/머드 모드, 온로드 성능을 강조한 스포츠 모드, 자동설정의 오토 모드, 에어 서스펜션을 높여 지상고를 271mm까지 높이고 트랜스퍼 케이스•디퍼렌셜•스로틀을 저속에 맞춰 세팅하는 록 모드 등 5가지 주행 모드를 제공한다. 타이어가 온로드용임에도 이들 비밀병기를 활용하니 모래와 자갈, 진흙과 물이 어우러진 강원도 춘천의 소남이섬 오프로드 코스를 손쉽게 헤쳐나갈 수 있었다.
전후방 주차 보조 시스템과 액티브 브레이킹이 포함된 전방 충돌 경보 시스템 플러스와 정차까지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 후측방 사각 경고 시스템, 사이드 웰컴 라이트, 언덕 밀림 방지 및 내리막 주행 제어 장치 등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도 충실하다.
아웃도어란 이름으로 산과 들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급속히 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요즘 SUV의 인기가 뜨겁다. 신형 그랜드 체로키는 한층 세련된 얼굴로 감성품질을 높이고 최신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투입해 성능과 연비를 챙겼다.
아직 국내 판매가격이 결정되진 않았지만 이전의 상황을 볼 때, 동급 유럽산 SUV에 비해 가격 경쟁력도 뛰어날 것으로 보인다. 탁월한 오프로드 성능은 지프라는 브랜드가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자산이니만큼 가족과 함께하는 파트너 명단의 맨 위에 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신형 그랜드 체로키는 오프로드와 온로드 성능을 두루 갖추가 가격 경쟁력도 높아 아웃도어 파트너로 추천할 만하다.
오늘날 네바퀴굴림 자동차의 대명사가 된 지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 육군은 다목적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구매계획을 세운다. 1940년 구체화된 규격은 3명 이상이 탈 수 있고 30구경 브라우닝 기관총을 얹을 수 있는 차체강성을 지녀야 했다. 또 험로주행을 위한 네바퀴굴림 구동계도 필수였다. 입찰 결과 아메리칸 밴텀의 프로토타입(Bantam Reconnaissance Car)이 선택됐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작아 군의 주문량을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입찰에 참가했던 윌리스 오버랜드가 밴텀의 설계를 바탕으로 MB(Military B)를 이듬해부터 생산, 납품하게 된다.
미국 최대 메이커 포드 역시 정부의 강력한 요청으로 군용차 생산에 뛰어드는데 밴텀의 안을 기초로 GP를 선보였다. 정부(Government)용 P형 모델(P, 당시 휠베이스 80인치를 뜻하는 포드차의 이니셜)은 다시 윌리스와 부품 표준화가 된 GPW(GP, Willys)로 개선된다. MB와 GPW는 1945년 종전 때까지 모두 64만 대가 생산됐다.
당시 군인들은 새로운 네바퀴굴림 자동차를 지프(JEEP)라고 불렀다. 다목적을 뜻하는 GP(General Purpose)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대히트를 치고 있던 만화 ‘뽀빠이’에 등장하는 가공의 동물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또 병사들이 3/4톤 지휘차를 지프라고 불렀고 1/4톤인 MB와 GPW는 구별하기 위해 피프(PEEP)라고 칭하다가 합쳐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쟁이 끝난 뒤 윌리스는 군용 지프를 개조해 일반형 CJ(Civilian Jeep)로 판매하기 시작했고 1950년에는 지프 상표를 정식 등록한다. 오늘날 네바퀴굴림 자동차의 대명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후 지프는 카이저, AMC 등을 거쳐 1987년부터 크라이슬러 산하 디비전이 됐다.
1992년 처음 데뷔한 그랜드 체로키는 미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SUV다. 코드명 ZJ 개발된 원조 모델은 원래 체로키(XJ, 1984~1996)의 후속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경제형 SUV의 수요를 고려해 기존 체로키를 계속 생산하게 되면서 새차는 윗급 그랜드 체로키로 등장했다.
이미 지프는 럭셔리 SUV에 일가견이 있었다. 체로키의 전신인 왜고니어가 데뷔할 때부터 고급형 모델(그랜드 왜고니어)을 판매해왔기 때문이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보다 4년이나 앞선 1966년 판매를 시작한 그랜드 왜고니어는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럭셔리 SUV이기도 하다.
1세대 그랜드 체로키는 직렬 6기통 4.0L과 V8 5.2L 엔진을 얹었다. 유럽 수출용 모델에는 2.5L 디젤 엔진을 마련했다. 여기에 두 가지 변속기(수동 5단, 자동 4단)를 조합하고 옵션에 따라 파트타임 방식 네바퀴굴림 구동계인 커맨드-트랙, 셀렉-트랙은 물론 풀타임 네바퀴굴림 방식 콰드라-트랙 시스템을 갖춰 뛰어난 험로주파력을 자랑했다.
4개의 암과 코일스프링을 결합한 콰드라-링크 서스펜션은 유연한 움직임으로 바퀴를 지면에 밀착시켰다. 또한 에어백, ABS 등 안전장비도 풍부하게 갖췄다. 단종 때까지 약 170만 대가 생산됐다.
다임러 그룹이 지프가 속한 크라이슬러를 인수하자마자 내놓은 2세대 모델은 전통적인 수직형 그릴을 이어받는 등 구형의 이미지가 여전했지만 보디를 키우고 유선형으로 다듬었다. 럭셔리 SUV 시장에 메르세데스 벤츠 M클래스, BMW X5 등이 속속 등장한 데다가 본거지 미국에서는 포드 익스플로러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개발진은 수만 가지 부품 가운데 단지 127개만 구형에서 가져왔을 정도로 완전한 새차를 만들었다.
높이가 5.5cm, 길이가 11cm 늘어난 차체지만 휠베이스는 구형과 같은 2,690mm로 좁은 길에서 회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최저지상고는 그대로 두고 시트 높이를 3cm 낮춰 타고 내리기 수월했다. 또한 실내 헤드룸(앞+2.5cm, 뒤+1.25cm)이 여유로워졌고 뒷자리 레그룸도 7cm 넓어졌다.
엔진은 직렬 6기통 4.0L와 V8 4.7L 유닛을 얹었다. 또한 수출용 모델에는 VM모토리제 직렬 5기통 3.1L 디젤 엔진을 얹기도 했는데 2002년형부터 메르세데스 벤츠의 직렬 5기통 2.7L 디젤 엔진으로 변경됐다. 풀타임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콰드라-트랙2로 진화했다. TCS가 추가되어 구동력을 앞 0~48%, 뒤 52~100%로 자유롭게 조절하고, 최상의 오프로드 주행성을 자랑하는 파트타임식 셀렉-트랙 시스템은 V8 모델에서만 선택할 수 있었다.
다임러 그룹 산하에 편입된 뒤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된 3세대 그랜드 체로키는 메르세데스 벤츠 기술진의 도움으로 NVH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따라서 오프로드 못지않게 온로드에서도 매력적인 차로 변신했다. 차체도 구형보다 길이 15cm, 너비 1cm, 높이 7cm가 커졌다. 1세대부터 이어진 사각형 헤드램프 대신 2개의 원을 이어 붙인 헤드램프는 볼륨감을 강조하려는 의도와 달리 어색하다는 평을 들었다. 대신 고유의 7슬롯 그릴은 한결 당당해졌다.
V6 3.7L, V8 4.7L 파워텍 엔진을 기본으로 크라이슬러가 자랑하는 V8 5.7L 헤미 엔진이 라인업에 추가됐고 V8 6.1L 헤미 엔진을 얹은 고성능 SRT-8 버전도 처음으로 선보였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제공해온 디젤 엔진은 V6 3.0L로 업그레이드됐다. 모두 5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구형보다 온로드 성향을 강조한 3세대 모델이지만 그랜드 체로키 고유의 오프로드주행 실력은 여전했다. 이 무렵 미군 군용차를 평가하는 네바다 오토모티브 테스트 센터(NATC)의 시험을 통과했음을 알리는 트레일 레이티드(Trail Rated 4×4) 배지가 부착되기 시작했다. 더블 위시본 방식 앞쪽 서스펜션, 전자제어식 디퍼렌셜,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 능동형 주행안정장치도 새롭게 적용되었다.
다임러는 인수 8년 만인 2007년 지프가 속한 크라이슬러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기술과 부품을 계속 크라이슬러에 지원하는 조건이었다. 따라서 다임러가 떠난 뒤에도 한창 개발 중이던 4세대 그랜드 체로키는 차질 없이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새차의 주요 메커니즘은 메르세데스 벤츠 3세대 M클래스(W166)에 적용될 예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불어닥친 금융위기에 크라이슬러가 파산을 선언하고 이태리 피아트가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했다. 피아트 입장에서 벤츠의 최신 기술이 그득 담긴 4세대 그랜드 체로키는 굴러들어온 복덩이였던 셈이다.
4세대 모델은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는 UAV(Urban Adventure Vehicle)를 지향한다. 초기 그랜드 체로키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차체는 경쟁모델보다 실내공간이 여유롭고, 보디도 구형보다 뒤틀림 강성이 146%나 높을 정도로 탄탄해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의 안전도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세계 10대 엔진인 V6 3.6L 펜타스타 엔진을 기본으로 V8 5.7L와 6.4L 헤미 엔진을 얹었으며, V6 3.0L 디젤 엔진은 피아트 고유의 멀티젯 기술이 활용된 VM모토리 제품이다. 기존 네바퀴굴림 방식 콰드라-트랙2, 콰드라-드라이브 시스템 외에 차체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에어 스프링 장치가 옵션으로 마련되고 노면 상태에 맞춰 5가지 주행 모드를 선택하면 언덕 밀림 방지장치, 내리막길 속도 유지장치, 구동력 제어장치, 능동형 주행안정장치 등을 통합 조율하는 셀렉-터레인 시스템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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