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생나무 가지가 허옇게 부러진다
버즘나무 널따란 잎사귀들이 마구 떨어져 날린다
개태사 앞 향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
마당에 기왓장이 나뒹군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키 큰 소나무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나무들조차
내게로 몰려오고 있다
이때 폭풍은 나무의 편이다
나무들은 폭풍의 힘을 빌려 내게로
침입하려 하고 있다
속이 울렁인다 저 나무들의 혼이 들어오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머리칼에 바람이 갈가리 찢긴다
바람은
내 머리카락 사이에서 나와
약한 나무들의 혼을 찾아 멀리 달려가고 있다
숲이 심장처럼 펄떡이고 있다
- 조용미
이제야 모처럼 해가 반짝반짝하는 날을 맞았네요.
일식이 있는 날이라 해서 시간이 되니 부르는 소리가 있어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하나 둘씩 문을 열고 나와서는 아이들처럼 신기해하며 하늘에 필름을 가져다댑니다.
구름에 살짝 가려진 태양이 반달처럼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한 꺼풀 구름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바로 보기에 눈이 부신 태양이었습니다.
구름 걷힌 태양을 바라보니 붉고 붉은 반달이 되어있었습니다.
언젠가 일식을 본 것 같은데, 환한 낮이 어두워진 때가 있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만,
어딘가 들여다보니 개기일식이 61년 만에 보는 거라 하네요.
이번에도 개기일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분일식으로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자연의 현상이지만 신기하고 경이로운 현상입니다.
모두를 고개를 꺾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어찌나 천진난만들 하시던지요.
지금도 이런데 하물며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강력한 힘이었을까요.
오래전에는 책력을 먼저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있었을 테지요.
일기를 읽어내서 사람들의 마음을 꽉 움켜쥐고, 자연의 움직임을 하늘의 계시로 여기며
연약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고 살았던 권력자가 살아있는 것은 지금도 그러하지 않은지요.
사실을 은폐하고 여린 백성의 아픔과 고통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안위와 힘을 쌓아가기에만 눈이 뒤집히는 세상이 아닌가요.
일식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었겠지요.
과학의 발달로 밝혀진 현상임에도 일식 때 금기시 하는 것이 아직도 있나봅니다.
두려운 흉조로 알던 일식 같은 일이야 눈 벌겋게 뜨고도 수없이 일어나는 세상이니……
모처럼 연 이틀 점심시간에 회사 뒷산을 올랐습니다.
비도 그치고 햇살도 제법 짱짱하게 나는 모양이니 사뭇사뭇 걷기라도 하자는 마음에요.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세상을 뒤 엎을 것만 같이 헤집어 놓더니 어찌나 말짱한 얼굴인지요.
뒷산의 조붓한 오솔길은 비에 꺾기고 쓸린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너무 오래 만에 걸어서 인지 길지도 않은 산길이 너무나 낯설고 멀었습니다.
장마로 숲 가득 가둔 습기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푸른 생명을 밀어 올릴지 내심 기대됩니다.
어린것들의 고사리 손같이 부드러워진 땅을 쑥쑥 밀고 올라올 것을 생각하면 미리 즐겁습니다.
가지 끝마다 꽃처럼 여린 순을 밀어 올리고 널따랗게 자란 잎을 펼쳐서 초록을 쟁이는 여름은 언제나 신선합니다.
바람 불고 비가 휘몰아치던 여러 날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지요.
다만 바라보기만 했으니 설레고 좋아하는 양 지낼 수 있었겠지요.
여기지 허물어지고 살림이 무너지고 사람이 다치는 피해가 적지 않은 장마였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장마가 부디 물러가고 이제는 햇살과 바람으로 축축한 마음을 말려야 하겠습니다.
햇살에 젖은 빨래를 바싹 말려서 고슬고슬한 꿈을 꾸며 아침에 일어날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