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목적으로 경북 영천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미지는 아마도 별일 것이다. 해마다 봄이면 열리던 '영천 보현산 별빛축제'가 올해는 가을로 미뤄져 오는 10월 3~5일 '제11회 영천 보현산 별빛체험행사'란 이름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올해의 '별빛나이트투어'도 지난 주말 첫 투어를 시작한 데 이어 오는 27일, 10월 18·25일 총 4차례에 걸쳐 운영된다. 여기에 영천을 즐기는 방법 또 하나를 더하고자 한다. 전국 지자체로는 드물게 영천시는 산림휴양과 승마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을 운영 중이다. 말도 타고, 숲도 즐기고, 별 헤는 밤의 정취도 누릴 수 있는 영천의 가을 하루를 만나고 왔다.
■휴양과 승마가 함께해요얼핏, '승마자연휴양림'이라는 제목에선, 휴양림 산책로를 따라 말을 타고 걷거나 달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신나게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외승로(1.2㎞)와 산악 승마 코스(3.5㎞), 실외 승마장도 갖추고 있지만 그곳은 고도로 숙련된 승마 기술을 연마한 경우가 아니라면 함부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건, 휴양림 본래의 목적대로 조용한 휴식도 취할 수 있으면서 실내이긴 하지만 승마 체험이라는 이색 즐길거리를 조합한 국내 최초의 승마휴양림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연간 2만여 명 승마장 이용
초등생 이상 가능…월요일 운영하지 않아
드넓은 운주산 승마휴양림 속 산장 호젓
야영덱·산책로·다목적 인조잔디 구장도 있어
포은 위패 봉안한 '임고서원'도 볼거리
보현산천문대 길목 영천댐 일주도로 장관
■계곡은 없지만 '조용한' 휴양림언제부턴가 휴양림의 주말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영천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여름 성수기를 지나 가을로 접어들면서 주중 예약은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 지영철 담당이 설명했다.
전체 면적 77만㎡의 휴양림엔 숲속의 집(운주산장 15동 25실), 야영덱(10동),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산장마다 주차 공간도 별도로 확보돼 편리했다.
시간당 1만 원이라는 사용료가 들지만 오전 9시~오후 9시 야간경기도 가능한 인조잔디의 '다목적구장'도 꽤 인기였다. 직장 야유회나 가족 및 동창 모임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최근엔 30~40대 여성들끼리 1박 2일을 머물다 가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고 했다.
휴양림 숙박을 않더라도 일일 무료 입장도 가능했다. 방문자안내소를 출발해 다목적구장을 거쳐 솔바람길(1.6㎞), 숲체험길(1.2㎞)을 돌아 나오는 산책 코스를 걸어 보았다. 능선을 따라 조성된 소나무 숲길은 기복도 심하지 않아서 걷기에 좋았다. 30분~1시간이면 충분할 듯싶었다. 다만, 휴양림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 리기다소나무로 이루어진 단순림이어서 생태체험은 불가능했다. 여느 휴양림과 달리 계곡이 없다는 것도 특이했다. 그래서 이 휴양림에선 여름 시즌 한시적으로 야외 물놀이장을 가동했다.
"단점도 있지만 이 넓은 면적에 산장이 15개 동밖에 안 돼 조용한 편입니다. 가족과 친구가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가벼운 운동을 즐기거나 산책하면서 조용하게 지내다 가기엔 이만한 휴양림도 드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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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의 '운주산장'. |
■비교적 저렴한 요금으로 승마승마장으로 향했다. 평일인 탓에 이용자는 뜸했다. 영천시 말산업육성단 이종근 승마장 운영 담당은 "연간 2만 2천 명, 하루 평균 70~80명의 이용자가 찾고 있으며 주말에 특히 많이 몰린다"고 말했다.
2개 동의 마사엔 43마리의 말이 있었다. 개인 말도 있지만 대부분 시마(市馬)였다. 그러다 보니 이용 요금이 비교적 저렴했다. 만 19세 이상 성인은 2만 원, 청소년·어린이 1만 5천 원. 20명 이상 단체면 1만 원으로 승마 인구 저변 확대에 중점을 둔 시책이었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로, 매주 월요일과 점심 시간(낮 12시~오후 1시)만 피하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단, 초등학생(키 140㎝ 이상)부터 가능했다. 낙마 등 안전사고 우려 때문이다. 1일 기승 시간은 일반인은 20분 이내, 회원은 40분 이내. 회원 종류도 자마를 보유한 회원 외에 월 회원, 쿠폰 회원(10장 기준 성인 18만 원, 청소년 13만 원) 등으로 다양했다.
실내승마장 초보 트랙에서 간단한 승마 장구를 갖추고 실제 말을 타 보았다. 노경헌 교관이 2003년 출생한 '더러브렛'종 승용마 '해오름'을 마사에서 데려왔다. 말 타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등에 오르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노 교관의 지시에 따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균형을 잡고 트랙을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시선은 멀리 보시고, 턱은 가볍게 당기시고, 허리와 어깨는 펴시고…." 아주 단순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자세 교정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승마였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속보와 구보를 즐기는 단계까지 가면 뱃살과 허벅지 살 빼기는 물론이고 전신운동 효과도 남다를 듯 싶었다. 말과의 호흡은 정말 중요했다. 이날만 해도 한순간 방심하는 사이, 말이 놀라서 날뛰는 광경을 두 번이나 목격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임고서원~보현산천문대승마자연휴양림 덕분에 영천을 찾긴 했지만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도 많다. 휴양림에서 승용차 5분 거리의 '임고서원'이 그렇고, 국립천문시설인 보현산천문대와 보현산 정상의 시시각각 달라지는 전망이 그렇다.
임고서원은 고려 말 충신이자 유학자인 포은 정몽주(1337~139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포은 선생의 고향이 영천이란 사실은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포은 선생의 영정과 임고서원에 보관된 책들, 즉 '임고서원소장전적'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임고서원 앞마당에 우뚝 선 수령 500년 넘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 때쯤이면 가히 장관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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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의 위패를 모신 '임고서원'. |
보현산천문대로 향하는 길목의 영천댐 일주도로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9천640만t에 이르는 방대한 저수량도 그렇거니와 꼬불꼬불 10㎞ 넘게 이어지는 일주도로를 달리면서 보는 호수와 산의 모습이 가히 절경이다. 자양면을 비롯한 6개 동이 묻힌 아픔의 흔적은 영천댐 망향공원과 수몰지역 문화재를 모아놓은 곳에서만 확인할 뿐이다.
꼭 '별빛 투어'가 아니더라도 영천까지 갔다면 청송과 영천의 경계를 이루는 보현산 정상(1,124m)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경사로를 따라서 산 정상까지 승용차가 올라간다. 그곳은 소백산천문대와 함께 국내 두 곳밖에 없는 광학천문대이다. 1만 원권 지폐 뒷부분에 나와 있는, 국내 최대이자 유일한 '1.8m 광학망원경'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 100여 개의 산 중에서도 광공해 및 개발 가능성이 적고, 청정일수(기상조건)가 많은 곳을 고려해 선택한 최적의 천체 관측지인 만큼 전망도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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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에 싸인 '보현산천문대' 정상 풍경. |
한데, 보현산천문대는 국가연구시설이기 때문에 일반 개방이 안 된다. 따라서 단순히 천체 관람 체험을 하려면 영천시가 공들여 만든 산 아래 '정각 별빛마을'의 '보현산천문과학관'에 들르는 게 맞다. 다만, 그곳까지 올라온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방문객 센터(전시관)는 운영 중이다. 또 연중 4~10월(7·8월 제외) 네 번째 토요일 주간에 사전 예약자에 한해 일반 공개 행사를 갖는다.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TIP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예약하는 법
'승마장'은 단체가 아닌 개인의 경우, 별도 예약 없이 곧바로 찾아가면 되지만 '휴양림'은 산림청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사전 예약이 필수다. 하지만 예약 방법은 산림청과 다르다. 특히 오는 11월 예약분부터는 사용하고자 하는 달의 전달 오후 1시부터 예약을 받는 것으로 변경했다. 예를 들어 11월에 휴양림 사용을 희망할 경우, 10월 1일 오후 1시부터 신청을 받는다. 인터넷 사전 예약은 www.unjusan.co.kr, 054-330-6287.
■찾아가는 법
자가운전(영천시 임고면 승마휴양림길 105)을 할 경우, 북영천IC~오미교차로~28번국도(포항 방면)~임고교차로~임고서원~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승마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승마장(054-330-6784)과 휴양림으로 방향이 갈린다. 1시간 40분 소요. 대중교통은 부산동부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영천버스터미널(1666-0016)·영천공설시장으로 가서 수성 방향 시내버스(421번) 승차~황강리 정류장 하차~황강못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 정도 이동하면 된다. 보현산천문과학관(054-330-6447)은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별빛마을로 찾아가면 되고, 보현산천문대(054-330-1000)는 별빛마을 지나서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먹을 곳
휴양림에서도 멀지 않고, 임고서원 맞은편에 위치한 일미식육식당(054-335-7019)이 유명하다. 한우가 들어간 '소찌개'(1만 원)가 점심으로 인기다. '돼지(고기)찌개'는 들어 봤어도 '소찌개'는 처음 접했는데 버섯이 듬뿍 들어간 약간 얼큰한 쇠고기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영천평천농협 조금 못 미쳐서 콩요리·채식전문점 북촌(054-331-8093)도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북촌에서는 모든 식재료를 순식물성으로만 사용하고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비빔밥 6천 원, 특식(콩탕수육+녹차비빔밥) 1만 원.
김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