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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따라 사는 게 세상살이다 (인연법 생각)
부처님 말씀 가운데 인연법(연기법) 만큼 사람들(중생)에게 스며든 게 없다
불법을 공부 안 했어도 생활 속에서 인연법은 살아 숨 쉰다
지은 대로 받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
원인과 결과는 맞물려 돌고 돈다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열매가 생기고, 악한 짓을 하면 악한 열매를 맺는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
세상살이가 다 인연이다
괴로움도 고요함도 인연 따라 생겼다 사라진다
인연 아닌 게 없는 게 세상살이다
인연법이 이렇게 사람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연법(연기법)은 불법만이 아니라 자연과 세상,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어느 비구와 석가모니 붓다가 나눈 이야기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은 세존께서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깨달은 이가 만든 것입니까?"
석가모니 붓다가 대답하였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또한 다른 깨달은 이가 만든 것도 아니다.
연기법은 *여래들이 세상에 출현하거나 세상에 출현하지 않거나 늘 법계(法界_ 이 세상)에 있다."
*여래_바르고 온전하게 진리를 깨달은 이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 되는 이
'여(如)로부터 온다', '여(如) 에로 간다'라는 뜻으로서 여(如)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진여(眞如), 진리 그 자체'를 뜻한다. 따라서 석가모니 싯달타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체험 위에서 깨달음으로 향하는 지혜를 주로 한다면 '진리에로 간다'가 되며, 반대로 진리를 깨달은 결과 나타난 힘, 즉 자비의 이타행(利他行)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진리에서 우리들 쪽으로 오는 것', 즉 '여래(如來)'가 되는 것이다.
진리에 따라 이 세상에 와서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란 뜻으로 '여래'가 쓰이고 있다.
불(佛)_깨달은 이, 진리의 눈을 뜬 이
세존(世尊)_많은 덕을 갖추어서 세간에서 존경을 받는 이
석가모니 싯달타를 이르는 부처, 불, 여래, 세존은 비슷한 뜻이나
여래는 누구나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미래불로, 부처 이전에 깨친 이도 부처로 다시 날 수 있다는 뜻으로
깨우친 이 고유명사 석가모니 싯달타를 이르는 부처, 불, 세존에 견주어 더 넓게 쓰이는 보통명사에 가깝다
석가모니 여래는
여래 가운데 하나인 석가모니라는 뜻이다
연기법이 석가모니 붓다 스스로가 만든 게 아니고, 자연과 세상, 우주의 법칙 이라는 솔직한 말씀이다
이 자연과 세상, 우주의 법칙인 연기법을 알아야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다는 말씀이다
석가모니 붓다는 자연과 세상, 법계(法界)의 돌고 도는 인과 법칙을 깨우치는 방편으로 12 연기법을 말씀했다
연(緣)기(起)의
연(緣)이란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此無故彼無
기(起)란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고. 此生故彼生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此滅故彼滅
을 말한다
부처님은 연기법(인연법)을 모르면 괴로움(苦)에 삐져 산다고 말씀한다
이 세상은 괴로움(苦) 가운데 있다.
모든 사람은 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생로병사)
이 괴로움(苦)으로 부터 벗어날 길(고집멸도)은 무엇인가?
괴로움(苦)에 대한 인식(苦諦)은 다시 그 괴로움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생긴 것인가 하는 원인추구(集諦)로 나아간다.
괴로움(苦)을 벗어나는 길(滅諦), 깨우침의 길, 해탈 열반의 길(道諦)은 연기법(인연법)을 깨우쳐 아는 일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12 연기법을 살펴본다
1 노병사[老病死] 괴로움은
2 생[生]이 있기 때문이다. 생[生]은 어떤
3 유[有]가 있어서다. 유[有]는 집착이 모인 덩어리
4 취[取] 때문이다. 취[取]는
5 애[愛] 때문에 생긴다. 애[愛]는
6 수[受] 때문에 일어난다. 수는[受]은
7 촉[觸]에 의한 것이다. 촉[觸]은
8 육입[六入]에 때문이다. 육입[六入]은
9 명색[名色]이 있기 때문이다. 명색[名色]은
10 식[識]에 때문에 생긴다. 식[識]은
11 행[行]에 의해 일어난다. 행[行]은
12 무명[無明] 때문에 생긴다
석가모니 붓다는 12 연기법으로 자연과 사회, 세상이 돌아가는 연기법을 깨우쳤다.
12 연기법을 깨우쳐 알게 되어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하고 평생을 길에서 깨우침을 말씀하다가 열반하였다
12 연기를 깨우치는 길을 살펴본다
12 연기를 깨친다는 것은 12 연기를 벗어난다(소멸 시키는ㆍ꺼지게 하는)는 일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도는
원인과 결과로 맞물려 돌아가는
12 연기를 벗어나고(소멸시키고) 괴로운 세상 살이를(일체개고)를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길(고집멸도)을 말한다
괴로움(苦)은 무명[無明] 때문에 생긴다
1무명[無明]이 소멸하면
2 행[行]이 소멸하고, 행[行]이 소멸하면
3 식[識]이 소멸하고, 식[識]이 소멸하면
4 명색[名色]이 소멸하고. 명색[名色]이 소멸하면
5 육입[六入_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소멸하고, 육입[六入]이 소멸하면
6 촉[觸]이 소멸하고, 촉[觸]이 소멸하면
7 수[受]가 소멸하고, 수[受]가 소멸하면
8 애[愛]이 소멸하고, 애[愛]가 소멸하면
9 취[取]가 소멸하고, 취[取]가 소멸하면
10 유(有)가 소멸하고, 유(有)가 소멸하면
11 생 (生)이 소멸하고, 생이 (生)이 소멸하면
12 노병사(老病死)가 소멸하고, 노병사(老病死)가 소멸하면
괴로움(愁悲苦惱)이 사라진다
이 12 연기 각각이 생기고 소멸하는 것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사라지니 이것도 사라지는
일어남과 사라짐(生滅)의 연기는
무상(諸行無常)과 무아(諸法無我)를 깨우치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음은 화엄경(華嚴經)에 있는 연기(緣起)와 공(空)에 대한 설명 중 한 구절이다.
<모든 법칙이 하나이고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원리가 무아(無我)입니다.
모든 원리가 무상(無相)입니다.
모든 원리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있음을 압니다.
모든 법이 영영 있음을 압니다.
어느 곳에 있는 모든 법이 가거나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知一切法不二非不二。知一切法無我。知一切法無比。知一切法不生。知一切法不滅。知一切法無所從來去無所至)>
12 연기는 무상과 무아를 깨우치는 12 가지의 마디로 이어진 길이라 볼 수 있다
이 쪽(차안)에서 저 쪽(피안)으로 가는데 너머야 할
언덕이라 볼 수 있다
12 연기의
1무명[無明], 2 행[行], 3 식[識], 4 명색[名色]
5 육입[六入_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생각], 6 촉[觸],
7 수[受], 8 애[愛], 9 취[取], 10 유[有],11 생(生),12 노병사[老病死]의 각 연기가 한자여서 뜻을 잘 알기 쉽지 않다
한자로 된 12 연기를 생활에서 흔히 쓰는 우리말로 알음알이를 다시 해본다
1 무명[無明]은 어리석음이다
무지라고도 하나 어리석음이 딱 맞는 말이다
어두운 마음, 지혜도 밝음도 없는 상태가 어리석음이다.
무상(諸行無常)과 무아(諸法無我)를 전혀 모르는 상태다
무명[無明]은 모든 괴로움(일체개고)의 원인이고, 모든 번뇌의 뿌리이고, 모든 악업의 원인이다.
12 연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2 행[行]은 우리말 풀이가 쉽지 않다
(행)함이나 행위, 변함의 뜻으로 새기는 게 맞다 싶은데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함은 사람의 함이고, 변함은 이 세상의 변함이다
실천이나 행위, 해왔던 것들을 말하기도 한다
어리석음은 잘못된 함, 헛된 행함으로 괴로움을 낳는다
3 식[識]이 알기가 무척 어렵다
12 연기의 정신머리라 할 수 있다
12 연기의 인석론이라 할 수 있다
식[識]은 알 識 자 다
아는 일, 인식, 의식, 생각, 마음을 말한다
식별하고 구별하고 판단하는 의식 활동이다
딱히 인식, 의식, 생각, 마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없다. 처해있는 연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12 연기로 볼 때 '마음의 흐름'이 적당한 말 같다
의식의 흐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마음의 흐름은 12 연기법에서 여섯 가지로 나타난다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 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6근(根))이
물질[色]·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 진리[法]의 여섯 가지 밖의 것(6경(境)) 을 대할 때 생겨나는 여섯 가지 마음의 흐름이다
눈이 물질을 보는 안[眼]식
귀가 소리를 듣는 이[耳]식
코가 냄새를 맡는 비[鼻]식
혀가 맛을 느끼는 설[舌]식
몸이 감촉을 느끼는 신[身]식
뜻이 진리(法)를 아는 의[意]식이 있다
이 여섯 가지 식(識)에
말나식(末那識)을 더한 7식이 있고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한 8식이 있다
말나식(末那識)은
아치(我癡_어리석은 나)ㆍ
아견(我見_나가 진짜로 있다고 잘못 아는 번뇌)·
아만(我慢_나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번뇌(煩惱))
아애(我愛_나를 애착(愛着)하는 번뇌(煩惱)의
네 가지 번뇌가 강하게 흐르는 자의식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여래를 감추고 있는 식이라는 뜻으로, 비록 중생이 삶과 죽음 사이에 살지만 이 감춰져 있는 여래만은 결코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이 올바로 발현될 때 곧 여래(如來)가 된다고 보고 있다
아뢰야식은
참된 마음자리로 보는 관점
헛된 망상의 마음자리로 보는 관점
참됨과 헛됨이 함께 있는 마음자리로 보는 관점으로 갈린다
이 같이 관점이 갈리다 보니
아뢰야식보다 더 차원이 높은 또 하나의 마음자리를 세우니, 그게 9 식인 아마라식(阿摩羅識)이다
아마라식(阿摩羅識)은 영원하고 한결같고 그릇됨이 없는 참된(眞如) 경지다
신라의 원효 스님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아뢰야식과 어리석음(無明)의 관계에서 생기는 다섯 가지 식(마음의 흐름}에 대하여 풀었다
1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업식(業識),
2 주관이 형성되는 전식(轉識)
3 객관세계를 나타내는 현식(現識)
4 나타난 대상세계를 적극으로 나의 것으로 삼는 지식(智識),
5 나의 것으로 삼은 대상세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일으키는 상속식(相續識) 이다.
원효 스님이 밝힌 다섯 가지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흘러가서 괴로움에 묶임을 당하게 되는가를 이주 구체로 밝혔다
원효 스님은 사람의 마음의 흐름에 대해,
“삼계(三界)는 허위요 마음이 지은 바일 뿐이며,
마음을 떠나서는 허망한 세계도 없다.
마음이 일어나면 가지가지 경계가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가지가지 경계도 사라지게 된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
3 식(識)은 어리석음(無明)에서 앎ㆍ깨우침(해탈ㆍ열반)으로 가는 여러 가지 계단과 길을 일러 준다
무명(無明)과 식(識)은 12 연기에서 뼈대가 되고 피가 된다고 할 수 있다
4 명색[名色]은 정신과 물질, 마음과 몸, 이름(명칭)과 실체를 뜻한다
12 연기에서「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을 명[名]이라 하고 정신을 뜻하고 마음(의식)을 나타낸다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으로 만들어진 것을 색(色)이라 하고 물질을 뜻하고 몸(육신)을 나타낸다
정신과 물질 또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본디 정신과 육체는 분리할 수가 없다
이 세상은 모두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분별심이 만들어낸 헛것일 뿐이다
명색은 ‘정신(마음ㆍ心}과 물질(몸ㆍ身)은 한 덩어리다
그래서 내용이나 실속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명색이~ 주제에~' 라고 비꼰다
명분과 실속이 어긋나게 행동하는 지위 있는 사람을 이른다
몸만 있고 정신이 없으면 주검이라고 한다
정신만 있고 몸이 없으면 귀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몸과 정신이 모두 다 있으면 살아있다고 하듯이 명과 색은 떨어질 수 없는 한 덩어리다.
석가모니 붓다는 명과 색을 연기관계로 봤다.
명과 색은 한 가지 현상 가운데서 인식하는 [名]과 인식되어지는 것[色]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거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名]과 몸[色]은 어느 것이 먼저 있거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말미암아' '비롯하여' 있는(존재하는) 것이다
이 '말미암다, 비롯하다'가 연기법(인연법)을 상징하는 순우리말이다
5 육입[六入]은
느끼거나 생각하는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의 여섯 가지 감각 작용이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코로 냄새 맡거나 혀로 맛보거나 몸으로 느끼거나 뜻을 떠올리거나
서로가 서로를 '말미암아' '비롯하여' 있는(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이 서로 어긋나고 서로 매이면(속박) 괴로움의 바다(苦海)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죽는 것이다
이것이 육입[六入]의 연기법이다
6 촉[觸]은 닿다, 느끼다, 부딪히다의 뜻이다
이 세상은 서로서로 이어져 있기에
서로서로 닿고 느끼고 부딪히는 괴로움의 연기가 생긴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닿고 느끼고 부딪히는 괴로움
보고 싶은 사람과 닿고 느끼고 부딪히지 못하는 괴로움
보고 싶지 않은 것(물건이나 사물}과 닿고 느끼고 부딪히는 괴로움
보고 싶은 것(물건이나 사물)과 닿고 느끼고 부딪히지 못하는 괴로움이 촉의 연기법이다
7 수[受]는 즐거움이나 즐겁지 않음. 좋음과 싫음 들을 느끼고 받는 감수 작용이다
세상의 온갖 것에서 받는 느낌 들이다
받고 싶으나 받지 못하는 괴로움
받기 싫으나 받아야 하는 괴로움
수[受]의 연기법이다
8 애[愛]의 한자 愛는 쓰임이 다양하다
주로 사랑으로 쓰이지만 , 옛날에는 아끼다의 뜻으로 많이 쓰였다
불교에서는 愛와 비슷한 뜻인 사랑 慈 자를 많이 쓰고, 애는 탐낼 貪자를 의미로 붙여 '좋아해서 탐하는 마음'을 이른다
또 목마를 渴 자를 붙어 갈애渴愛로도 쓴다
慈 자는 자비로 좋은 말로 쓰이는 데 견주어
愛자는 부정적인 연기 말로 쓰이는 까닭을 알듯말듯하다
본디 愛 자는 아끼다', '아까워하다', '동정하다'에 가까운 의미이다
맹자에 나오는 애민(愛民)이라는 표현 역시 백성을 사랑한다기보다는 백성을 아낀다는 표현이다
연기법에서 愛는 지나친 사랑, 분수에 넘친 사랑은 탐욕과 애욕을 낳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듯싶다
이래서 한자는 문맥에 따라 뜻이 다양해지기에 우리말 옮김이 잘 되어야 부처님의 말씀을 잘 알 수 있다
아무튼 애愛는 여덟 번째 연기법으로 괴로움을 낳는 원인이 된다
애[愛]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못 사는 괴로움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괴로움
좋아하는 것(지금은 주로 돈과 상품)을 못 갇는 괴로움
싫어하는 것(지금은 공해, 쓰레기, 오염된 것들)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괴로움
따위가 주로 발현되는 연기법이다
9 취[取]의 取자는 ‘얻다’나 ‘가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얻고 가지려는 매달림(집착)이 괴로움을 낳는다는 연기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얻고 가지려는 욕망을 부추긴다
얻고 가지지 못해 끊임없이 괴로움에 시달린다
10 유[有]의 유는 있을 有 자다
有는 여럿의 뜻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뜻은 있다로 존재를 드러낸다
부처님은 이 세상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空으로 봤다
무상과 무아다
이 무상의 세상과 무아의 나를 있다(有)고 여기는 괴로움이 유[有]의 연기다
그리하여 앞의 취[取]의 연기가 사라치면 유[有]의 연기도 사라진다
유[有]의 연기는 일상생활에서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나타난다
연기설의 유[有]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있다' 보다
소유하다의 有로 쓰이는 듯싶다
소유하다의 有, 나가(내 것) 있다는 有
내 것이다, 가지고 싶다가 괴로움을 낳는다
11생(生)은 태어남을 말한다
이 태어남이 참 이해가 안 된다
사실 태어남을 부정하면 부처님이고 깨달음이고 연기고 뭐고 없는 것 아닌가
12 연기법에서 생(生)은 생로병사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듯한다
태어남은 생로병사의 시작이다 괴로움의 시작이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생로병사)이 가장 본바탕 연기고 인연이다
생(生)이 있기에 노병사도 있다
누구나, 목숨 있는 것은 반드시 겪어야 할, 윤회의 시작이고 괴로움의 시작이다
그리고 태어남은 무명으로 태어난다
무명은 괴롭다
연기에서 생(生)은 윤회설이 강하게 개입된 듯하다
태어남은 윤회의 시작, 괴로움의 시작이다
윤회의 관점에서 보면 태어남은 전생의 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전생을 모른다
모르기에 업을 씻지 못하고, 끊어내지 못하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명리학은 이 태어남(생년월일시}으로 삶의 운명을 점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윤회의 시작은 태어남이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는 누구이고 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
물음부터 시작한다
12 노병사[老病死]는 앞의 生과 한 묶음으로 봐야 한다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괴로움(苦)을 거친다
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 연기를 거친다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결과고 생로병사(生老病死)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원인이다
12 연기 각각은 서로 원인과 결과로,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게 되는
이것이 일어나 저것이 일어나는
연기(緣_맺을 연 起_일어날 기)법이 된다
12 연기 각각은 앞 뒤가 기본으로 원인과 결과가 되나(꼬리에 꼬리를 무나)
서로 얽히고설켜, 서로 물고 물어 생로병사에 개입하고
서로 이리저리 꼬이고 묶여 고집멸도에 작용한다
괴로움苦_연기의 결과물임
모여 얽매임集_연기의 원인임
꺼짐滅_괴로움苦의 원인이 소멸된 상태로서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일
길道_해탈과 열반의 길을 가는 일, 부천님의 말씀을 징검다리로 진리와 진실에 귀의하여 닦고 깨우치는 길을 가는 삶
12 연기법 하나히나를 살펴봤다
12 연기법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내(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서로 상호연관 되어 있다
말 그대로
연緣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此無故彼無
기起는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나고 此生故彼生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此滅故彼滅
연기법은 인과법, 인연법, 관계법이다
이 세상을 따로따로 있지 않고 서로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
하나는 전체를 머금고 전체는 하나를 머금고 있다는
관계론이다
모든 것은 관계로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
관계 아닌 것이 없다
연기론은 넓게 봐서 시간과 공간의 관계론으로 봐야 한다
불교의 12 연기론은 이 세상이 돌고 돌아가는 인과
법칙의 한 가지 길이다
12 연기법은 종교로서 불교의 교리이기도 하고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붓다의 철학이기도 하다
종교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믿음은 묻고 따지고 새겨보지 않고 교리를 암송하며
무조건 따르고 받드는 태도다
신앙이다
신앙으로서 종교는 마약 같은 속성이 있다
종교가 사람을 깨어나게 하는 게 아니라
취하게 하여 무지몽매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석가모니 싯달타가 2,500년 전 외쳤던 천상천하유아독존, 삶의 주인으로 깨우치게 하는 게 아니라
12 연기의 시작인 무명에 빠트리는 경향이 있다
철학이 없는 믿음은
믿는 자를 무명의 괴로움에 빠지게 해 종교의 노예로 만든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깨달으면 누구나 삶의 주인으로,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살 수 있다
연기법, 인연법, 인과법, 관계법 다 비슷한 뜻이다
자연과 세상, 우주의 보편 법칙인 연기법이 종교의 믿음과 신앙으로 된 게 윤회설이다
윤회설은 인과응보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인과응보는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것을 말한다
윤회설은 본디 인도 힌두교의 교리였다
힌두교의 윤회설은 카스트제도라는 불평등 한 인간관계를 낳았다
높은 카스트는 전생에 선업을 쌓은 결과고
불기촉천민 같은 낮은 카스트는 전생에 악업을 쌓은 결과라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은 힌두교와 다르다
12 연기를 바탕으로 권선징악을 넘어 해탈의 차원에서 윤회설이 강조되었다.
윤회한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이므로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을 길을 찾는 수행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이 한 생에서 다음 생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데 대한 관심보다, 현실의 삶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깊이 다스려서 늘 고요한 해탈의 경지에서 사는 일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의 마음이 번뇌로 가득 차 있는 것이 곧 지옥이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귀이며,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축생이라고 보는
이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끊임없이 윤회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내세 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선업을 쌓고,
선업을 쌓는 과정이 괴로움을 끊어내는 수행이고 해탈이라고 보았다
앞에서 보았지만 12 연기법은 철학의 인식론, 존재론이 깊이 있게 들어 있다
불교가 석가모니 붓다의 철학적 세계관을 등한시하고 믿음만 강조하는 기복신앙으로 기울어지면서,
연기론은 전생과 내세를 앞세우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강조하는 윤회설로 변질 돼가고 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모두 자기(自己) 자신(自身)업으로부터 나온다며
나에게서 나온 것이 나에게로 되돌아온 것이라며 내 탓으로 돌린다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불평등 구조는 심화되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의 인과의 법칙이고 연기의 법칙이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 생물 대멸종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게 인간의 가장 큰 괴로움이고 업보다
씨 뿌린 대로 거두리라
먼저 자연의 운동법칙으로서 연기법을 깨우쳐서
자본주의가 낳은 탐욕과 번뇌를 끊어내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망가져 가는 지구 환경을 살리는 길이
어리석음(無明)을 벗어나는 길이다
여기저기 눈 동냥, 귀 동냥 해서
연기설(인연설)을 나름대로 살펴봤다
내가 뭘 알아서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공부 삼아 한 번 새겨보고 풀어보자는 것이다
특히 한자로 전해 진 불교를 우리말로 풀고 새기면서 공부해 보자는 데 있다
이 세상 인연 아닌 게 없으니 다 소중하고
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었다
인연 아닌 게 없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나무아비타불관세음보살
인연에 엎드려 절합니다
인연을 거스른 게 있다면 참회합니다
인연 따라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