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Spero, Spera"는 “나는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는 뜻이란다. 도회의 아파트단지에도 어느새 눈길 가는 곳마다 겨울 떼를 벗는 봄빛이 속삭인다. 때 맞추어 비가 내리고 햇살 따사롭다. 고맙다. 광안리해수욕장을 바라다보며 서남향으로 앉은 서재의 창에는 황령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진종일 든다. 난방을 하지 않고서도 아침 실내온도가 23도를 유지한다. 한낮에 환기를 시키며 들이키는 대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와 닿는다. 꿈과 저항의 정서를 간직한 보세난 꽃대가 힘차게 올라온다. 어김없이 두 대의 튼실한 꽃대를 올렸다. 봄은 내 방으로부터 뒤늦게 시작하나 보다. 베란다에는 지난 가을 통영 풍화리에서 얻어온 늙은 마삭줄 화분이 긴 겨울을 보내고 새움을 틔우려는 듯 온몸을 뒤척인다. 방금 지인으로부터 들어온 카톡에서 양희은의 “햇살이 참 좋다.”를 편안하게 들려준다.
기다렸다는 듯 아내가 햇살 좋은데 산책을 나가잖다. 아직은 2월이 한창이지만 꽃밭에는 벌써 새봄의 약동이 느껴지고 매화 꽃망울이 몰라보게 자랐다. 이제 머지 않아 산수유도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벚나무와 이팝나무의 가지에도 흰 꽃이 달릴 때다. 겨우내 높은 곳에서 겨울바람을 맞은 나목의 가지 끝에도 봄기운을 품었다. 나무 위에 앉은 참새와 박새, 딱새와 까치를 비롯한 겨울텃새 가족들이 새봄을 노래하자 아웃사이더 까마귀도 베이스로 길게 추임새를 넣는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남국으로부터 다가오는 봄빛이 하늘 가득 흐르고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마다 겨울의 기억을 털어내는 몸부림이 한창이다. 싱그러운 해풍에 나뭇가지들 부드럽게 몸을 푼다. 어느 듯 애타게 기다리든 새로운 계절 봄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섰나 보다.
주말에는 봄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빗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양철지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이제 겨우내 듣던 서재의 CD도 쇼팽의 녹턴과 그레고리안 챤트를 하이폐츠와 오이스트라흐의 스프링과 크로이처로 바꾸고 밝은 성악곡도 선곡해야겠다. 봄이면 즐겨 듣는 오이스트라흐의 스트링과 오브린의 건반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듯 속삭이는 하모니에 흠뻑 젖어들고 싶다. 새봄에는 CD채인저를 새로 사서 한결 여유롭고 편해지고 싶다. 모카보트에서 커피향 짙은 케냐원두로 에스프레스를 뽑는 아침식탁을 맞으리니. 새봄과 더불어 구차하게 이어가는 연명치료를 털고 일어나 다시 젊은 날의 나를 찾고 싶다. 지난 늦가을 순천에서 가져온 해바라기씨를 털어 주위 화단 빈터에 뿌릴 자리를 봐둬야겠다. 이제 서서히 물 맑은 풍화리와 바닷길 따라 동해남부선이 어께동무하고 달리는 아름다운 해안길, 31번국도로 봄나들이를 나갈 때다.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는 사순(四旬)시기다. 사순시기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이랴. 우리가 회개와 속죄로 다시 돌아갈 시기를 죄인으로 만들어 돌아가지 못하게 할 박해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순시기에는 수난과 파스카의 신비를 새기며 우리 모두가 기쁜 부활을 맞이할 때다. 사순은 스스로 고통을 이기고 돌아와 느끼는만큼 회개하고 희망을 키우는 용서와 기쁨의 순간이다. '우주의 꽃인 인간'이 가식과 위선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활짝 꽃피워야 할 때다. 그 꽃은 솔직함이다. 실명(失明)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실락원’을 저술한 영국의 존 밀턴이 “실명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실명을 이겨낼 수 없는 나약함이 비참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난 2005년 4월 2일 선종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고 전한 마지막 말을 새봄이 오는 사순시기에 되새겨본다. 새봄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만큼 희망을 꿈꾸게 하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계절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존 던(John Donne)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울린다.
첫댓글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하느님과 사이에 걸림돌이 무엇인지 묵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은총의 사순시기 되시길 기도합니다. 새봄소식도 감사드려요~~~^^
은총의 사순 시기를 희망으로 시작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사순은 고통을 이기고 돌아와 희망을 키우는 기쁨의 시기다.'
희망과 자비의 봄을 기쁘게 보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서재에는 벌써 봄이 시작되었네요...^^*
그리움님의 글을 읽으면서 움츠려 있던 내 마음에 새봄을 맞이해야겠다는 희망과 용기가 솟아납니다
이번 사순시기를 은총의 시기가 될 수 있게, 진정한 참회를 하도록 깊이 성찰하고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움님~~ 봄맞이 잘 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은총의 사순시기 잘보내시고 다가오는 봄의 새기운으로 더욱 건강하세요~
해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면 남다른 감회가 다가옵니다.
13년전 재의 수요일에 엄마가 하늘나라여행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