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태리가 눈을 크게 뜨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면서 외쳤다.
‘할머니. 놀이동산 또 가고 싶어요. 이렇게 부탁드려요. 도와주세요.’ 하면서 전매특허인 이쁜짓 포즈를 취한다. 이 정도면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저절로 순식간에 무장해제를 당하고 만다.
‘좋아. 또 갈 수 있지. 윤 태리가 또 슬그머니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성장통 때문 이었다니까요? 오늘은 말짱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넘의 성장통이라는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말썽을 부리니까 그렇지? 할아버지가 그넘의 성장통 때문에 또 동네방네 맨발로 뛰어다녀야만 하겠니?’
‘오늘은 정말로 그런 일 없다니까요?’
‘그렇다면 좋아. 준비해서 나가자. 바람이 없으니 오늘은 케이블 카를 탈 수 있을것 같다.’
이렇게 해서 여행의 말미에서까지 연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늘 걱정이었는데, 오늘 하루 여행 스케줄은 고민할 것도 없이 (빈 원더스 놀이동산)을 다시 찾아가는 것으로 합의 결정을 보았다.
말은 안했었지만 사실은 그제의 첫 번째 놀이동산에서 아주 커다란 사태를 겪었던 적이 있었다. 지나고 나니 해프닝이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가슴 졸이고 놀라도 크게 놀랐던 정말로 충격적인 사태였다.
키즈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물망 형태의 미로구조물이 빈 원더스에서는 4층으로 구분된 실제로 건물 3층 높이로 아주 크고 거대하게 설치되어 있다. 놀이시설이란 것이 학교 광당만하게 건물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으니 그 규모는 가히 짐작이 될 것이다. 거기다가 일단 시원하게 에어컨이 들어오고 원형 건물의 외벽쪽으로 크게 삥 둘러서 가족이나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면서 쉴 수가 있어서 매우 인기가 있는 놀이시설이다. 항상 어린이와 부모들로 북적인다. 우리 아이들도 거의 혼을 빼놓듯이 뛰어다니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였는데, 꽤나 시간이 지나서 병아리들을 찾아보니 어쩐 일인지 태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세리를 불러서 언니를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뿐이다. 화장실까지 살폈는데..... 이 건물 어디에도 큰손녀 태리의 모습은 없다. 신발과 작은 배낭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쳐가는 어떤 불길한 느낌......... 할아버지는 그냥 맨발로 밖으로 뛰쳐나갔고 건물의 주위를 뛰어 돌면서 손녀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대답이나 모습이 나타나지를 않았다. 순간 눈물속에 절규하는 겡구(며느리)와 짱구(아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아무래도 이거 사단이 나도 그야말로 크게 나고 만 것같다. 이를 대체 어쩌면 좋단말인가?
서둘러 출입구 옆에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쉬던 장소로 되돌아 뛰어갔다.
핸디폰과 신발을 챙겨들면서 할머니에게 당부한다.
‘내가 돌아오거나 전화할 때까지 이곳에서 꼼짝하면 안 돼. 어쩌면 이리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세리 데리고 지금 이 자리 잘 지키고 있으면서 내 전화 기다려. 가까이에서는 태리가 안보여. 내가 나가서 꼭 찾아올게. 자리만 잘 지키고 있어.’
곧장 광장을 가로질러 처음 놀이 시설을 들어올 때 표 검사를 하던 곳으로 달려갔다. 이곳을 들어오던 나가려면 공식적으로는 반듯이 이곳을 지나가야만 하고, 이곳은 검표 직원들이 늘 상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혹시, 좀 전에 여자 아이가 울면서 혼자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잡아끌면서 나간 적이 있습니까?’
‘우는 여자 아이는 없었습니다. 끌려 나가는 아이도 없었구요.’
그렇다면 일단 이곳은 아니던가, 아니면 적어도 아직은 이 구역 안에 있어야만 했다.
우리 태리라면 절대로 아무 말도 안하고 어디를 갔을 리가 일단 없고, 부득이한 일이 생겼다면 결단코 그냥 순순히 호락호락 누군가에게 끌려갈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기 때문이다. 놀이시설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최종적으로 내린 생각은........ 무슨 일인지 생기기는 했겠지만 외부에 흔적이나 소란이 없는 것을 보면........ 차분하게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처음 자리로 돌아가니 세리는 연실 언니를 찾고 있고, 할머니는 거의 초죽음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다. 무조건 태리를 찾아다가 할머니 눈앞에 대령해야만 풀릴것이니까 말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진퇴양난이 아닌가?
‘밖에서는 어떤 낌새나 소식도 없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차분하게 앉아서 기다려 줘. 내가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찾아볼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출입문엔 사정을 이야기 해 두었어.’
신발을 벗고 다시 화장실부터 쫓아갔다. 남자 화장실도 살피고, 관리자에게 부탁해 여자 화장실과 옆의 탕비실까지 확인을 했다. 건물을 한 바퀴 돌면서 구석구석 샅샅히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태리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긴 터널형 파이프라인에는 연실 아이들이 미끄러져 내려오니 중간에 끼었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이 건물 안에는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러다 문득........ 시선을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보려는데 구조물의 맨 윗층인 4층이 느닷없이 궁금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까 처음에 태리와 세리가 함께 4층엘 올라갔었는데....... 그 후에 태리는 다시 올라갔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다른 아이들은 별로 4층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혹시........
‘세리야. 부탁이 있는데...... 아까 언니하고 올라갔던 저기 4층 있잖아? 혹시 언니가 저기 있나 하고 한 번 올라가봐 주겠니?’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세리가 총알같이 위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3층에서 4층은 그물로 만들어진 사다리라 올라가기가 쉽지가 않았을 텐데도 끼뚱끼뚱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기어코 올라선다. 그리고 잠시 뒤 모습을 드러내더니 손가락을 안쪽을 가리키면서 언니가 그곳에 있다는 싸인을 보내온다.
휴!!!!!!!!!!!!!!!!!!!!!!!!!(안도의 눈물이 나도 모르게......)
조물주님. 땡큐여유!!!!!
‘언니 지금 뭐해?’
‘가만히 누워 있어요.’
‘어디 다쳤어?’
‘아니요? 그냥 누워있어요,’
‘언니 좀 불러줄래?’
잠시 뒤에 우리의 소중한 큰 병아리가 언제 무슨일이 있었느냐는 표정으로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할아버지 왜요?’
헐!!!!!!!
‘이 기집애야. 그걸 몰라서 물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지금 애간장이 녹아서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났다 했는지 알기나 알어? 시방 할아버지가 맨발로 동네방네 뛰어다닌 걸 넌 알기나 하니? 이러다 할아버지가 네 엄마 아빠한테 눈 밖으로 쫓겨나기라도 하면..... 너가 책임질껴? 너 할아버지 죽는 꼴 보려고 이러니?’라고 북받치는 것들이 입가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한 마디도 내뱉지는 못하고 겨우........ 겨우 한다는 말이......
‘어디 다쳤거나 아픈 것은 아니지? 천천히 내려와.’
옆에서 지켜보며 그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거의 죽다가 되살아난 할머니가 ‘사춘기가 틀림없어. 갑자기 쎈티해 져서 제 딴엔 잠시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이 한참이 지나버린 것이지........ 지금 우리 태리한테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거야. 그냥 우리가 괜히 호들갑을 떨었던 것일 뿐이야.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내가 저녁에 조용히 따로 이야기 해 볼게. 알았지? 꼭 그렇게 해주어야 만해.’
태리가 내려왔다.
그냥 녀석을 꼭 안아줬다.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우리의 소중한 보물덩어리가 무탈하게 우리 품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태리가 굿나잇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할아버지. 놀이동산에서 저 많이 찾았어요? 죄송해요. 그냥 잠시만 누워있다가 내려간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잖아. 할머니가 성장통이 원래 그런 거라고 이야기 해 주었어.’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태리가 다소 멋쩍은 듯 어설프게 웃는다.
‘할아버지가 성장통 때문에 얼마나 더 죽었다 살았다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괜찮아. 할아버진 잘 이겨낼 수 있어. 너도 무사히 성장통을 잘 극복해 낼 거야. 우리 소중한 손녀니까.’
‘안녕히 주무세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나도 많이많이 사랑해. 잘 자렴. 그리고 오늘 일은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이다?’
‘당연하지요. 비밀!’
잠들기 전에 모처럼....... 어쩌다, 아주 가끔씩 하게되는 기도를 다 드려본다.
'지극히 높은 곳에 앉아계신 분이시여!!! 감사 합니다. 오늘 일은 정말로 감사합니다. 혹여....... 제가 부족하고 저에게 노여움이 거두어지지 않으시더라도..... 제 가족들만은 잘 지켜보아 주시고 감싸안아 주십시요. 저의 업보는 훗날 모두 제가 책임 질 것입니다. 크게 감사했습니다. 땡큐여유!'
빈원더스 (VinWonders Nha Trang)에 우리가 붙여 준 다른 이름은 ‘베트남의 애버랜드(everland)’다.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40년 이상 꾸준히 놀이공원 문화와 꽃을 중심으로 하는 정원문화와 축제를 선도해 온 (용인 애버랜드)의 베트남 버전이 바로 여기 (나짱 빈원더스)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튤립과 장미 축제로 대표되던 용인 애버랜드 테마파크는 5개의 테마존과 40여개 이상의 최신 어트랙션으로 짜릿한 스릴까지 선사해 주고 있으며, 그중에서 특히 우든코스터와 티 익스프레스는 우리 윤태리를 매혹시켜서 끝내 롤러코스터 마니아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공원 어디에서나 수시로 펼쳐지는 다양한 무대공연과 불꽃쇼는 물론 동물원인 ‘주토피아’에서의 사파리월드와 로스트밸리 등의 생태 전시와 물놀이 동산의 ‘카라비안 베이’는 결국 아들 가족으로 하여금 ‘1년 가족 자유이용권’을 끊어가면서 수시로 찾아가는 휴식처가 되고 말았다.
그런 태리에게 빈원더스는 약간은 쉬운 놀이터라고 해도 무방했으리라. 왜냐하면..... 녀석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로 평가를 해보자면....... 애버랜드야 말로 일본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버금갈 정도로 최신식인데, 나짱은 그 보담은 스릴이나 다양성에서 좀 못한 ‘쉬운 놀이동산’이라고 하니까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일단 분위기가 해외인데다가, 여기에서는 길게 줄을 서지 않고 바로바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애버랜드와는 좀 다른 나름 아주 매력적인 놀이공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표정이다. 그럼에도 어린 세리에게는 역시나 신장 미달(베트남의 시설 이용제한은 110cm 혹은 140cm 이상 등으로 제한됨)로 인해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았지만, 그래도 나름 놀이 시설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틀 만에 날씨 때문에 다시 찾게 된 빈원더스 (VinWonders Nha Trang) 방문을 오늘은 그나마 바람이 적은 탓에 쾌속선이 아니라 상쾌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섬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이미 한 번 경험을 했던 터라 틀림없이 오늘은 더 다양하게 마음껏 즐길 수 있으리라.
‘할아버지. 오늘도 알파인 코스터나 짚라인에 사람이 많아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면 저희는 그냥 지나쳐도 상관이 없어요. 애버랜드에서 실컷 타보았으니까요. 그냥 할아버지 가고 싶으신 대로 가시면 돼요. 어디든 상관 없어요. 나중에 워터파크만 데려가 주세요.’
그렇다면 오늘 여행은 더이상 별로 신경 쓸 것이 없다.
한산하다시피 한 빈원더스에서 유일하게 한국인 여행자들로 붐비는 곳이 알파인 코스터와 짚라인 놀이기구인데 그곳을 그냥 지나가도 된다니....... 그만큼 이미 애버랜드에 잘 적응된 결과이리라.
그렇다고 빈원더스에서의 하루가 그리 쉽다거나 만만한 것만은 결코 아니다. 비 오고 세찬 바람이 부는 날씨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간간히 해가 나타나고....... 여기는 베트남 나짱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쉬운 놀이동산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걷고 힘을 쓰고 운동을 해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냥 호락호락 동네 산책을 한다고 생각하면 크게 오산인 것이다.
세찬 바람 때문에 두께가 좀 있는 바람막이나 겉옷을 입었다면 제대로 홍역을 치르게 될 것이다, 썬 크림과 선글라스나 챙이 넓은 모자는 거의 필수라고 해야겠다. 일단 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가볍고 편안한 옷차림에 신발을 신으며(곧 수영복이나 아쿠아 슈즈로 바꿀 준비), 빈원더스에서의 즐거운 하루를 즐기기 위해선 휴대용 핸드폰 충전기(장시간 체류하게 될테니)도 준비를 하고, 입장시 짐검사를 통해 음식물과 음료 반입에 제재를 받기도 하지만, 입장후 구입을 통해서라도 충분한 물을 반듯이 휴대하고 놀이시설을 즐기길 바란다. 점심식사야 빈원더스에 입점해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아가 사먹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빈원더스에 입장했다는 것은 ‘통합입장권’을 이미 구입했다는 말이다. 이곳의 모든 놀이시설과 테마파크를 무제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권한을 소유한 것이다.
안내지도를 통해 나름 자신의 여행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계획을 세워두기를 바라고, 절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 괜한 서두름으로 체력을 방전시키는 헛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한국사람에게 유독 인기가 많아 항상 길게 줄을 선다는 ‘알파인 코스터’와 ‘짚라인’을 제외하면 어디가나 어떤 시설이나 한산하다 못해 오히려 적막하게 느껴질 정도라는 점을 유념해 두자. 알파인 코스터는 용인 애버랜드 가서 타면 되고, 짚라인은 단양을 비롯해 대한민국 곳곳에 차고 넘친다. 사랑하는 가족과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그런 정도는 그냥 패스해 버려도 무방하지 싶다.
어차피 빈원더스는 하루에 모두 충분히 즐기기엔 너무 넓고 다양한 시설이 많이 있으므로 사전에 나름 자신에게 맞는 계획을 확실하게 미리 세워둘 필요가 꼭 있다.
공부하는 여행자가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듯이, 계획에 철저한 여행자가 진정으로 빈원더스를 충분하게 즐길 수가 있다.
이제부터 모든 것은 당신의 노력과 선택에 달려있다.
오늘 우리 가족이 빈원더스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다. 빈원더스의 전체 전경은 물론 저만치 바다건너 나짱 시내의 전체 풍경을 고스란히 모두 바라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나짱의 앞바다에는 수많은 섬들이 놓여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섬이 바로 이곳 혼쩨섬(Hon Tre)이며, 그 섬의 서쪽해안으로 나짱을 건너다보면서 빈원더스가 건설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섬의 가장 높은 언덕에 거대한 스카이 휠(Sky Wheel)이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한강에도 곧 설치될 것이라는 이 거대한 자전거 바퀴 모양의 구조물의 대표적 상징이라면 아무래도 영국의 런던 아이가 아닐까 싶다. 세상의 수많은 여행지나 놀이동산마다 스카이 휠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졌다.
숫자가 그만큼 많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만큼 매력적인 관광여행 상품이란 말이 된다. 하지만 그 첫인상은 무엇인가 아주 거대한 자전거바퀴가 아주 천천히 돌고 있다는 것이며 연인들 끼리 입맞춤하기에 명소라고 들려오는 막연한 이야기뿐이다. 그러나 경험자들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최고의 움직이는 전망대이며 롤러코스터 못지않게 공포와 스릴을 고스란히 느껴주는 아주 멋진 장소라는 후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건 한 번 스카이 휠을 타본 사람은 어느 여행지를 방문하던 스카이 휠만 눈에 띄면 모조리 다 타보기를 강력하게 원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무엇이 그렇게 특별할까? 겨우 천천히 움직이는 둥근 타원형 구조물이 뭐가 무섭다는 말일까?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시 방문한 빈원더스 놀이동산에서 첫 번째 놀이로 스카이휠을 선택했고 그 언덕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올려다보는 높이가 120m나 되는 스카이 휠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것은 분명하고 전 세계를 통 털어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니 말이다. 빈펄 스카이 휠(Vinpearl Sky Wheel)이라 명명된 이 구조물에는 한 번에 최대 6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데, 480개의 부채살로 이루어진 높이 120m의 거대한 자전거 바퀴가 360도로 회전하면서 최고 높이에 이르게 되면...... 나짱 앞바다의 다도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겠지만, 그러자면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두려움이이 섞인 여행자들의 절대적 용기를 시험받게 될 것이라는 사전 당부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런 두려움쯤이야 우리는 씩씩하게 극복하고 말리라.’하는 다짐을 하면서 씩씩하게 언덕을 가로질러 스카이 윌 입구까지 다가갔는데.......
아뿔싸!!!!!!
운행 정지란다. '아니 여기까지 죽어라 언덕길을 올라왔는데 왜 하필?'
바람 때문에 운행을 할 수 없단다.
'아니, 이 섬에 건너 올 때 오늘은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 왔다고? 바람에 별반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케이블카가 운행한 것 아니야? 출렁거리는 케이블에 매달린 채로도 무사히 건너왔는데 이 거대한 쇳덩어리 구조물이 그깟 이정도 바람 때문에 운행을 안 한다니...... 시방 우리에게 장난하는 거야?'
그런데 아니란다.
관계자의 설명이........ 120m 올라가면 정방향으로 제대로 운행하는 움직임에도 공포를 느끼게 되는데, 맞바람으로 옆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흔들리게 되면 토하고 비명을 지르고 그야말로 아비규환 나장판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안전성의 한계를 따지기 이전에 이미 인간적인 공포의 한계를 순식간에 넘나들게 된다는 것이다. 설마 그 정도일까?
상세하게 설명을 듣고 난 뒤에 슬그머니 스카이 휠을 올려다보니......... 은.근.하.게.무.섭.다.
스카이휠 체험을 포기하고 돌아 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킹스 가든(King's Garden)이다. 30여 종의 아름다운 새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빈원더스의 상징과도 같은 홍학(플라맹코) 연못이라 하겠다. 세계 도처에 다양한 플라맹고(flamenco)들이 서식하지만, 이곳에는 미국에서 서식하던 플라맹고들이 살고 있다.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뷰포인트로 각광받고 있는 명소이긴 하지만........ 사육당하는 플라맹고의 슬픈 사연을 알고 나면 그리 썩 유쾌하지 않아 이내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알 길이 없는 태리 세리를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르 눌러댄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나트론 호수에 사는 플라맹고의 우아하고 예쁜 자태가 전 세계인들을 매혹시켰는데, 플라맹고의 붉은색은 주로 먹이로 삼는 플랑크톤이나 납조류와 게. 새우 등에서 나오는 아르테미아라는 성분으로 인해서 붉은 색을 띄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원에 갇혀 살면서 아르테미아 성분의 섭취가 줄어들게 되면 붉은 색상이 점점 줄어들거나 연한 분홍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게를 삶으면 드러나는 붉은 색깔이 바로 아르테미아 성분이다.
플라맹고는 철새다. 그렇다보니 아주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 아주 튼튼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물원의 플라맹고를 보면 전혀 날 생각이 없거나 아예 날지 못하는 새처럼 보인다. 이는 비싸고 귀한 플라맹고가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새끼 때부터 긴 깃털을 모조리 뽑아 버리거나 날개 끝을 아예 잘라버린 결과다.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아예 날개 깃을 잘라 내버린 결과물인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서다. 인간이 플라멩고에게 앵벌이를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킹스 가든을 돌아서 나오려는데 느닷없이 불청객 하나가 나타났다.
꽃사슴 한 마리가 여행객들 사이로 등장한 것이다. 처음엔 이것 또한 빈원더스 특유의 이벤트인 것으로 생각했다. 관람객들이 주변으로 꽃사슴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 어린 세리가 불쑥 나서서 꽃사슴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다들 구경만 하려고 몰려들 뿐이었는데, 세리는 꽃사슴을 쓰다듬고 안아줄 요량으로 일체의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면서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꽃사슴이 다소 놀란 듯 고개를 돌려 옆으로 비켜나면 또 바짝 다가가 손을 내민다.
그러던 중에 정복을 입은 동물원 관계자가 나타났다. 이어서 또 다른 직원들이 나타났다. 가만히 상황을 살펴보니 이 꽃사슴이 이곳에 방사된 것이 아니라 어딘가 우리에서 탈출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꽃사슴은 달아나기 시작했고 우리 세리는 꽃사슴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사태를 직시한 할머니는 놀라서 세리를 붙잡으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여간 우리 애들은 못 말려!!!!!’
꽃사슴이 스카이 휠 방향으로 언덕을 뛰어올라갔고, 정복차림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뛰어 올라갔다.
우리는 병아리들을 데리고 가까운 길목에 있는 롯데리아로 향했다.
너무 더운 날씨에 꽃사슴 난리까지 치르느라 땀까지 흘리고 있는 병아리들에게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다짜고짜 사슴을 끌어안을 생각부터 하고 덤벼드니?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런 거니? 할머니 기절할 뻔 했잖아?’
헐!!!!! 암튼 못 말려!!!!!
‘가자. 이젠 동물원 식물원이고 뭐고 내려가자. 내려가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이번엔 놀이동산에서 실컷 놀아보는 거야.’
‘할아버지. 저기 산꼭대기에 새겨있는 하얀 글씨는 뭐예요? 호텔 창문으로도 여기를 보면 글씨가 보였어요.’
‘빈펄(Vinpearl)이라는 글씨인데 여기 이 섬의 모든 시설을 가지고 관리하는 재벌회사의 이름이야. 글씨 광고판이라 생각하렴.’
‘여기가 빈원더스(VinWonders) 아니 예요? 그럼 빈원더스라고 써 놓아야지 광고가 될 텐데 왜 빈원더스에 빈펄이라고 써놓았나요?’
‘회사라는 게...... 새롭게 규모를 확장할 때도 있고, 다른 비슷한 회사와 합치거나 나눌 때도 있거든, 그럴 때 그런 변화의 기준을 삼으려고 이름을 바꾸기도 한단다. 너희가 자주 놀러 다니는 애버랜드(Everland)도 처음에는 용인 자연농원이라 불렀어. 나중에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규모를 확장하면서 지금의 애버랜드로 이름을 바꾼 것이지. 자연농원이 어딘지 모르게 시골의 과수원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애버랜드 라는 이름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현대적인 최신식 테마파크 공원 느낌이 저절로 풍겨 나오잖아. 그런 이유에서 빈펄 랜드(Vinpearl Land nha trang)라는 이름을 빈원더스(VinWonders Nha Trang)로 바꾼 것 일거야.’
‘그럼 빈펄(Vinpearl)이 무슨 뜻이에요?’
물놀이를 즐기다가 잠시 쉬는 간식시간에 큰손녀 태리의 질문이 무차별 폭격처럼 쏟아진다. 한참 영어교육 초기에 접어들고 있는 시기여서 나름 알파벳 스펠링 발음을 이래저래 흉내까지 내보이면서 말이다. 오가면서 평소에도 낯선 영어 단어에 무척 호기심이 많다.
‘빈(vin)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재벌회사의 이름이고 펄(pearl)은 본래 진주라는 보석을 가리키는 말인데, 본래 이 부근의 바다에서 진주가 많이 나왔기에 가져다 붙이기도 했겠지만, 사실은 빈이라는 회사를 세운 회장님이 (베트남의 진주)처럼 귀한 보석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지은 이름이라고 해.’
‘그럼 빈원더스(VinWonders)는요?’
‘원더스라는 단어가 본래 (경이로운) (놀라운)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마도 (빈 그룹이 베트남 사람들과 세계에서 찾아오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나눠주고픈 놀라운 선물 같은 테마파크)라는 의미를 담아서 만든 이름이 아닐까 싶어. 이제 이해가 되었니?’
‘빈원더스 보다는 빈펄 랜드라는 이름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좀 더 재미있게 풀어보자면........ 회사 이름인 빈(vin)은 사실 유럽에서는 와인(wine)이라는 단어의 사투리처럼 실제로 쓰여 지고 있거든. 프랑스 요리중에 맛이 기가막힌 코코뱅(Coq au vin) 이라는 음식이 있어. 우리 백숙처럼 닭을 와인에 담구어 졸이는 유명한 음식이야. 그러니까 어쩌면 회장님이 아예 와인에 폭 빠져서 사는 분이라서 그렇게.......’
‘고주망태요?’
‘헐!!! 설마...... 아주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겠지. 그렇게 보자면 빈펄은...... (와인잔에 담진 진주)? 빈원더스는....... (아주 환장할 정도로 맛있는 와인)? 그러니까 여기서 열심히 놀다보면 술에 취한 것처럼 헤롱헤롱.......... 너도 조심해!’
‘그럼 여기 빈그룹 회장님이 베트남 최고 부자예요?’
‘한 때는 숫자상으로 분명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로 부자 순위도 좀 변했나봐. 그렇다고 해도 할아버지 생각엔 빈그룹 이거나 썬그룹이 가장 부자이지 않을까 싶어.’
‘썬그룹이면 여름에 엄마 아빠랑 다녀 온 다낭여행에서 바나힐이 베트남 최고부자 썬그룹 것이라고 했었는데 그 썬그룹이예요? 왜 베트남은 테마파크 놀이동산을 가진 사람이 최고 부자예요?’
하이고야.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태리의 지적호기심은 나름 이해를 하겠는데....... 이렇게 무차별 폭격을 가해오면........ 자칫 할아버지 지적 수준의 한계가 드러나게 된단 말이야. 사전 질문지를 주던지....... 기억을 더듬어 볼 시간이라도 주던지.......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빤히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어서 대답을 하라고 재촉을 하지는 말아야지? 이거야 원....... 저승사자를 앞에 두고 마주서 있어도 이렇게 고역이지는 않겠다.
‘응.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나봐.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대한민국 최고부자 하면 (현대) 아니면 (삼성)이라고 했었단다. 베트남에서도 지금 당장으로는 (빈그룹) 아니면 (썬그룹)이 최고 부자를 다투고 있는 것 같아. 회사마다 운영자의 생각에 따라 느낌이나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데....... 할아버지 생각에 (빈그룹)은 우리나라 (현대)랑 닮았고, (썬그룹)은 (상성)이랑 닮은 것 같아. 그 다른 차이는 집에 가서 아빠에게 물어봐. 아빠의 주 거래처가 삼성이니까 잘 설명해 줄 거야.’
‘그럼..... 왜 빈(vin)이라고 붙였어요? 사투리라면서요. 차라리 그냥 와인(wine)이라고 했으면 누구나가 더 쉽게 알아들었을 것이 아니겠어요?’
‘와인원더스(wineWonders). 와인펄 랜드(winepearl Land) 이렇게 말이니? 그러면 당장 (기가막힌 술공장) 아니면 (포도 농장)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거기까진 할아버지가 잘 모르지요....... 그런것은 그룹 회장님한테 가서 직접 물어 볼 이야기지요?’
‘그럼 하나만 더요. 할아버지. 베트남에선 테마파크 놀이동산을 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는 건가요? 아니면 재벌이 되면 심심해서 테마파크 놀이동산을 하나씩 만드는 것인가요?’
헐!!!!!!!!!!
또 헐!!!!!!!!!
‘너 물놀이 계속 안 할 거니? 할아버진 너무 더워서(속이 타서) 물에 들어갈래.’
‘대답은 해주고 가셔야죠?’
후다닥 풍덩.
허부적 또 풍덩.(누가 할아버지 좀 살려줘요.)
태리 세리와 함께 한 이번 (나짱 가족여행기)가 끝날 즈음에 (베트남 역사속의 참족이야기)란 제목의 글을 서 보겠다고 앞전에 약속을 한 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베트남 역사속의 참족이야기)에는 최대한 간략하게 서술하는 형식을 통해 베트남의 선사시대에서 시작해 참족의 도래와 부흥기를 지나 도태되는 과정은 물론, 비엣족에 의해 지금의 베트남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베트남 통일왕국을 비롯한 근대사까지를 집어보게 될 것 같다. 그 이후의 일이야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이 되는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과 지배, 거기에 대항하는 독립운동, 제 2차 세계대전의 기간 동안 벌어진 일본의 침략과 수탈, 종전 후 식민지 재탈환을 노리는 프랑스에 대항한 독립전쟁과 호지명의 등장, 남북의 분단에 이어지는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한 미국의 침략과 베트남 독립과 통일전쟁에서의 승리 등을 거치면서 현대사로 넘어오게 된다.
베트남 현대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사건은 당연히 미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호지명이 그토록 원하던 방식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되었다는 사실이다.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중국방식의 사회주의 노선을 택하고 실행하고 있는 국가이다. 다만 특이한 것은 정치는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지만, 경제는 대한민국을 롤 모델로 삼는 자유 시장 경제관에 입각한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 모순투성이로 이도저도 아닌 다분히 시험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고 하겠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일당 지도체제의 국가에서는 정치권력과 시장경제 모두가 오로지 공산당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 지난 (푸꾸옥 여행기)에서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거론한 적이 있다.
동서냉전의 종말을 고한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구 소련의 몰락)은 이들 사회주의 국가들도 정치는 공산당이 독점해야만 하지만, 경제체제는 서서히 자유 시장경제 흐름에 내맡겨야만 공산당도 인민도 함께 생존해 나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자유 시장경제의 발달은 곧 개인의 자유와 능력과 기회와 반대급부가 자유롭게 보장되는 사회를 추구한다. 이는 곧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이며 민주주의를 뜻한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자유 시장경제는 눈감아 주되, 공산당 일당 독재의 정치권력이 차지하는 사회주의 노선을 결코 버릴 수 없는 소수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지배하는 국가가 바로 베트남이며 중국인 것이다.
선택된 공산당의 영도 하에 모든 인민이 똑같이 함께 일하고 함께 수익을 배분받으며 더불어 사는 이상적 미래를 목표로 하는 공산당 주도의 사회주의 안에서....... 과연 재벌은 탄생할 수 있는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이 타당한 일이란 말인가?
그것은 곧 반역이며 공공의 적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빈그룹과 썬그룹은 어떻게 베트남 경제를 쥐락펴락할 수 있단 말인가?
베트남 부자들의 모든 재산을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해서 몰수해서 금전화해서 모든 인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면........ 베트남이야 말로 이상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인민의 사회주의 낙원이 되지 않겠는가?
베트남 공산당은 그런 과업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옛날에 어느 현자(?)께서 이런 명언을 남기셨다.
‘우파는 분열로 망하고...... 좌파는 부패로 망한다.’ 라고 말이다.
공산당이 앞세우는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거는 명분은 지극히 이상적이고 아름다운데 그것을 실천할 작자들이 하나같이 높은 지위일수록 더 크게 사리사욕을 챙기기에 혈안이 된 부패덩어리 왕국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모든 인민이 먹고 살자니 자본주의 방식의 자유 시장경제로 체제 전환이 필수인데........ 그렇게 되면 공산당의 절대 권력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깔렸으니..... 끝까지 무작정 가보자. ‘죽으면 죽었지 절대 공산당 권력은 포기할 수 없다’라는 소수의 권력 핵심 자들에 의해서 망가지고 또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빼앗던 사기를 치던 훔치던 마음대로 해. 슬쩍 눈 감아 줄 테니까 수단방법을 가지지 말고 돈을 벌고 싶은 만큼 벌어. 대신 번 돈의 일부는 공산당에게 받쳐. 그걸 상부상조라고 하는 거야. 공산당 일당독재 사회주의의 21세기형 새로운 버전인 것이지.’
돈은 자본주의에 물든 부정부패자들이 쓸어모으는 것이고, 공산당은 여기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물의를 최소화하고 눈감아 주면서 슬며시 그 떡고물을 거져 빼앗아 먹는 것이다. 손 안대고 코를 푸는 것이며 불철주야 인민의 공평한 행복을 위해서 이 성스러운 과업(부패)를 당연한것처럼 여기며 저들끼리만의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좌파들의 이상향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베트남의 현대사를 이야기하면서 이 단어를 빼놓고는 절대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것은 베트남의 정치와 경제는 물론 대중들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가장 지대하게 영향을 끼친 일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부라 할 수 있는 호치민(胡志明) 이라는 이름 다음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불러지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도이모이(Doi moi).
여기에서의 도이(doi)는 ‘변경하다’의 의미가 담겼고 모이(moi)는 ‘새롭게’라는 뜻이 담겼으니, 도이모이(Doi moi)는 우리식으로 이해하자면 ‘쇄신(innovation)’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식으로 해석해 본다면 바로 우리나라 70년대에 활발히 벌어졌던 ‘새마을 운동’이라고 이해한다고 해서 큰 무리는 없을 듯싶다. 베트남 판 ‘새마을 운동’이 바로 ‘도이모이’인 것이다.
현대사속에서 강대국의 침략과 약탈에 저항하고 겨우 독립을 쟁취하고 호치민(胡志明)의 가르침대로 사회주의 공화국 노선을 택했지만, 대다수 인민들의 가난과 굶주림은 하나도 해결되지 못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대책마련도 미흡한 상황에서 온갖 외세의 간섭만 점점 더해져 갔다. 가난한 인민들의 굶주림조차도 해결해 내지 못하는 공산당의 사회주의 이상향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응우옌 쑤언오아인(Nguyễn Xuân Oánh) 이다. 그는 미국에 유학하여 하바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베트남의 신세대 정치인이자 경제학자였다. 또한 호치민의 유지를 받들어 평생 동안 인민에 헌신하고 청빈한 삶을 살다가 2003년에 떠난 최고의 엘리트였다. 베트남 통일정부에서 응우엔 반린 총서기의 경제 고문을 맡은 쑤언오아인은 통일 정부에게 청천벽력 같은 직언을 토해냈다.
‘이제 공산주의는 죽었다. 모든 인민의 공동생산. 공동분배. 모든 인민의 행복추구라는 공산주의의 이상향은 모두 허구다. 지금 베트남에 살고 있는 모든 인민은 공산당으로부터 어떤 처우나 어떤 개선의 여지도 없이 그냥 버려지고 방치된 채 가난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다. 저들을 살려낼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공산주의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공산주의의 이념이나 구호가 아닌 진정한 혁명....... 지금의 가난을 고스란히 모두가 나누어지고 가난과 굶주림 해결을 위해서 하나로 단결할 수 있는 새로운 베트남....... 그것이 공사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되었던 또 다른 체제가 되었던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먼저 해결할 수 있는 정부와 국가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굶주림과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면 공산당의 당령이나 정책도 바뀔 수 있고, 언제든 국가의 개혁과 개방이 전제가 되어야만 한다. 공산당이 전부인 국가가 아니라 인민이 우선되는 새로운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국부인 호치민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주시려한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 성취다.’
흡사 중화인민 공화국의 총서기 등소평의 흑묘백묘론(黑貓白貓論)을 연상 시키는 대목이다.
천지가 개벽할 이 놀라운 발언으로 이제 베트남은 남달리 뛰어난 경제학자인 응우옌 쑤언오아인(Nguyễn Xuân Oánh)을 잃게 될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측과는전혀 다르게 응우엔 반린 정부는 그의 직언을 받아들였다.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와 공산주의 이념은 계속 계승’을 하되, 개혁 개방을 통해 경제적 자급자족을 통한 자립과 대외적으로 당당한 새로운 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해 적어도 2050년 안에 모범적인 문명 공사주의 국가를 수립하겠다고 1886년 공산당 대회에서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산업시설을 국유화하여 공산당이 움켜쥐고 있던 시점에서 가능하면 최대한 민간에게 위임하고, 토지를 비롯한 모든 재산에 있어서 100% 국가 소유라는 제한에서 순차적으로 탈피할 것이며, 국가가 전략적으로 관리해야하는 극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민간에 매각하거나 민간을 참여시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국가 기업을 유능한 개인이나 법인에 맡겨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농민은 현재 사용 중인 토지를 무조건 50년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확대하여 30헥타르까지 국가로부터 임대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 기간 내에서 타인에거 사용권을 양도할 수 있으며, 사용중인 토지를 담보로 융자를 받을 수도 있다. 토지의 소유는 국가가 분명하지만 일정 기간의 사용권은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비록 최대 50년 이라는 시간적 한계는 있지만, 이는 누가 보아도 실질적으로 토지를 사유화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정책이 합법화된 나라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정치 명목은 엄연히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독재 사회주의 국가라 볼 수 있겠지만, 이거야말로 민주주의 방식의 자유경쟁 시장경제가 살아 숨쉬는 자본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바로 지금의 베트남이고...... 그 실질적 시작이 모두 1986년 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86년 아시안 게임이 벌어지던 바로 그 해에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쑤언오아인의 정책을 가급적 받아들인 응우엔 반린 정부가 대외적 개혁과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벌인 미래지향적 사업이 있었으니 바로 교육사업 이었다.
베트남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젊고 똑똑한 인재들이 반듯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우수한 인재의 해외 유학을 후원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고 동서 냉전의 결과로 다각적으로 베트남에게 온갖 제재와 통상교섭 등을 가로막았던 시절이라 유학길이 극도로 험난했다. 중국은 같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근자에 벌어진 베트남과 캄보디아 전쟁의 결과로 중국이 베트남을 무차별 침략했던 사건이 아직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당장은 분명한 원수 국가였던지라 유학길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망하고 물러나면서부터 무턱대로 찾아와 눌러 앉은 나라가 바로 소련(구)이었다.
미국이 베트남과 오랜 전쟁을 치루면서 혐오를 넘어 철천지 원수처럼 적대시 하게 되었다면, 미국의 오랜 라이벌이자 정적인 소련이 베트남의 우방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에도 없지 않았겠는가. 오랜 역사동안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을 애타게 갈망하던 소련 해군의 태평양 함대가 불쑥 나짱 앞바다에 나타난 것이다. 소련 해군은 베트남 정부에게 나짱에 상륙하여 고장난 함선을 수리하고 생필품을 보충하면서 다치거나 병이난 병사들을 치료하고 싶다고 정중하게 허가를 요청했다. 국제 협약에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구난요청을 해 온 것이다.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제재를 받기 시작한 베트남으로서는 또 하나의 제국인 소련의 요청을 수락했다. 점차 나아가 이는 소련의 거주로 미국이나 서방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게 만드는 방어권으로의 전환이 되고만 것이다. 베트남과 소련은 나짱에 소련 해군의 정박 기지를 정식으로 협약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소련의 해군이 태평양의 중심권에 버젓이 둥지를 틀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중국은 찬밥 신세가 되었고, 미국과 서방은 여우를 잡으려다가 호랑이를 끌어들인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소련은 베트남을 애지중지 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양측의 사정이 기묘하게 맞아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베트남의 뛰어난 젊은이들이 모스코바로 앞다투어 유학을 떠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새로운 시대 흐름인 소련 유학의 붐이 가히 절정을 맞이하게된 1987년, 한 무리의 아주 뛰어난 베트남 영재들이 선발되어 함께 모스코바로 향했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공부도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장차 벌어질 베트남의 미래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을 벌이며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 이들 무리속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베트남의 현재 시장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두 사람을 우리는 만나보게 된다.
그들중 한 명인 팜 낫 부옹(Pham Nhat Vuong)은 1968년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하노이 광업 및 지질학 대학에 진학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되자, 국가로부터 유학 장학금을 받아 러시아 국립 지질 탐사 대학(MGRI-RSGPU) 유학을 떠났다.
다른 한 명인 레 비엣 람(Le Viet Lam)은 1969년 베트남 북부지역인 호앙꽝에서 태어났다. 하노이 과학기술대학교에서 섬유에너지공학 공부를 마치고 역시나 국가의 추천으로 모스코바로 유학을 떠나 석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들 베트남의 뛰어난 영재중에서 아주 특별하게 1987년에 함께 모스코바 유학길에 오른 이들은 함께 모여서 열심히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조달하기 위하여 모스코바의 유명한 재래시장인 DOM5에 공동 기금을 마련하여 베트남 식당을 열어 장사를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처럼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권에서 품질좋고 값싼 식자재를 수입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시장 원리를 일찍 경험하게 된 것이자 돈 벌이에 매료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1987년 모스코바 유학생 동아리의 일원이었던 팜 낫 부옹(Pham Nhat Vuong)이 나짱에서 사업을 벌여 베트남 최고 기업으로 성장한 빈그룹(vin)의 회장이다. 그런가하면 그와 함께 동업을 시작했던 레 비엣 람(Le Viet Lam)이 바로 빈그룹의 최대 라이벌인 썬그룹(sun)의 회장이다.
그럼 이들의 지금 사이는 어떠냐고?
그것은 당연히 자본주의 자유 시장경제의 생리에 따를 수 밖에 없지않았겠느냐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수 있지 않을까?
젊은 시절 운명처럼 만나서 함께 공부하고 체험하고 사업을 벌이면서 돈의 생리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특성을 깨우쳐 각자가 나름의 방법과 노력으로 엄청난 부를 이루어 냈지만 그들의 가치관과 기업철학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한사람은 모든분야에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늘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타입인 반면에, 다른 한사람은 일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면서 은둔생활자 처럼 지내는 독특한 타입을 고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대)와 (삼성)이 늘 경쟁하면서도 모든것에서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과 기업이념을 토대로 했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진 공통점은 둘다 하나같이 (부동산 부자)라는 데 있다.
오늘날 중국 경제가 너무 부동산에 치우친 나머지 심각하게 파산을 걱정하는 것처럼, 기업의 대부분을 부동산 투자에 걸고있는 빈그룹과 썬그룹의 운명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매우 심각한 사태를 이미 뼈저리게 경험한 바가 있다. 하여 그들은 지금 아주 심각하게 기업 환경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가 각각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누가 보다 바른 꾸준한 성장의 길을 가게 될 것인가?
빈그룹과 썬그룹중에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가?
어쩌면 둘 다 계속 성장 발전할 수도 있겠고, 어쩌면 둘 다 퇴보의 나락으로 함께 떨어지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는가?
어찌되었건....... 그것은 곧바로 베트남 경제의 성패와 사회주의 공화국 베트남의 미래와도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베트남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방송국을 비롯해 모든 신문사가 앞 다투며 특집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베트남 국민의 모든 시선이 수도 하노이에 쏠리기 시작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중심부에 모 최고 기업이 초대형 신사옥을 건축 중이었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고발이 모 언론사에 제보되면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최고 기업으로 성장한 모 그룹이 수도의 중심부 노른자위 땅에 기업의 위상을 자랑하고 홍보효과 까지 겸한 최첨단 초현대적 사옥을 짓는 것에 있어서 자기가 번 돈으로 제 손으로 자기 집을 짓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마는, 아무도 살지 않는 한적한 시골이나 바닷가에 사옥을 짓는 것이 아니라 수도의 한복판 노른자위 당에 짓는다는 것에는 상당히 많은 준비와 절차와 필수 충족 조건들이 따라 붙게 되는 것이다. 최초 제보자의 고발은 자신의 땅을 빼앗기다시피 내 줄 수 없었다는데서 시작되었다. 몇 개의 블록을(거의 한 동네) 건축부지로 매입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는 내용이었으며, 같은 피해자가 하나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제보를 알게 된 한 신문사 기자가 심층 취재에 들어가면서 온갖 자행된 불법행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 것은 바로 인허가 문제였다. 신사옥이 수도 하노이의 중심에 우뚝 솟아올랐을 정도로 완공을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었을 즈음이었음에도 당국에는 토지조성과 토목공사를 위한 사용요청서 정도만 접수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건물을 하나 지으려고 토목공사를 할까 하는데 한동안 주변 도로를 공사를 위해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신청서 한 장만 제출한 상태에서 초고층 건물의 외부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최고 일류 기업이 한창 자신들의 사옥을 완성시키고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그 건물 자체가 무허가 건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모든 절차와 과정과 인허가를 무시한 채 이제껏 진행되어 온 것이다.
베트남 전체가 경악에 떨게 되었다.
혼란에 빠진 베트남을 구하기 위해 결국 총리가 나섰다. 응우옌 쑤언 푹(Nguyen Xuan Phuc)이 총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이 사건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전 정권의 부패에 관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누가 감히 수도의 중심에 허가도 받지 않고 고층 건물을 지으려 계획했는가? 법률에 의하여 엄하게 처벌 조치해야만 할 것이다.’라고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나섰다. 순식간에 모든 방송 뉴스와 신문 논평이 톱뉴스로 퍼져 나갔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장차 이 사태는 어떻게 수습이 되었을까? 베트남은 다시 합리적이고 적법한 세상으로 되돌아 갔을까?
불법 건축물은 허물어 졌을까? 아니면 처벌과 벌금형을 받고 나서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었을까?
이 사태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 같다.
헐!!!!!
역시나 베트남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공산당 일당독재가 벌어지고 있는 사회주의 정권에서만 가능한 일이 기어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총리의 기자회견이 벌어지고 대략 한 30분이 지났을까 부터....... TV 방송의 모든 뉴스에서 불법건축 사건에 대한 일체의 기사가 모두 빠진 채 진행되기 시작했다. 모든 신문사의 기사에서 불법건축에 관한 모든 기사가 삽시간에 모두 삭제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사건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썰물처럼 삽시간에 모두 빠져 나가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총리실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사태를 최초로 보도했던 언론인 쯔엉 두이 누트(Truong Duy Nhat)은 이대로 모든 것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는 온갖 압박과 협박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더 심층 취재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의 어떤 언론에서도 추가 보도를 실어주지 않았다. 철저한 감시와 제재를 받는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쯔엉 기자의 참 언론관을 적극 지지하던 새로운 언론인 쯔엉 두이 누트(Truong Duy Nhat)가 결국 해외언론 기자들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이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불법건축을 시행한 거대 재벌은 정부와 모의를 한 끝에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서둘러 필요한 서류를 갖추고 인허가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땜질 처방을 조치한 것이다. 이제까지의 모든 불법 절차와 과정을 모두 생략해 버리고, 준공 중이던 공사는 계속하고, 완공식에 앞서서 모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와 거대 기업이 모든 과정이 적법하였다고 하는 발표에 대해 쯔엉 기자는 열띤 취재를 온 해외기자들에게 한 장씩의 전단지를 나누어주었다. 그 종이에 모든 해답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문제의 재벌 기업이 건설하여 근자에 판매(분양)한 최고급 초호화 빌라의 소유주들 명단이 적혀 있었다. 엄청난 화제 속에 분양된 최고급 빌라의 당시 분양가는 100만 달러를 호가했었다. 그런데 그 명단에 베트남 정부의 고위 요직에 있는 사람들 이름이 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쯔엉 민 투안(Truong Minh Tuan) 정보통신부 장관, 쩐 빈 민(Tran Binh Minh) 국영텔레비전 국장, 응우옌 호아 빈(Nguyen Hoa Binh) 최고인민법원 판사를 비롯해 베트남 현 정권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여러 부처와 기관의 고급 공무원들의 이름이 가득 적혀 있었다. 기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명단에 오른 사람들의 어느 누구도 조상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결혼한 아내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와서 부자가 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공무원 생활로 나라에서 봉록을 받아 생활하면서 100만 달러 빌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빌라 취득 과정 대부분이 누군가로부터 선물의 명목으로 제공되었고 기부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최고급 빌라를 뇌물로 받아들인 공무원들 대부분이 이 빌라에 살면서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재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게 공산당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 공화국 안에서만 가능한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지극히 작은 하나의 실질적인 예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그 돈에 기생하는 허가 감독권을 손에 쥔 거룩한 공산당.
공산당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완성의 최대 공적은 자본주의의 타락이 아니라 공산당의 부패인 것이 역사는 여실히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우파는 분열로 망하고, 죄파는 부패로 망한다!
베트남 경제의 서열 1위와 2위를 빈그룹(vin) 과 썬그룹(sun)이 다투고 있다.
위의 사건은 바로 이 두 그룹 중에 한 그룹이 실제로 저지른,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실제 사건이다.
그럼...... 다른 그룹은 깨끗하고 정당하냐?
어쩌면 그 둘 다 처음 시작부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다음 이야기에서 살짝 하기로.......
여행이 끝 나감을 알아차려서일까?
그제보다도 더 열심히 아주 혼을 빼어놓고 미친 듯 물놀이에 열광하는 우리 병아리들. 오늘도 녀석들 쫓아다니며 매순간을 똑같이 함께 해주느라 초죽음 상태가 되어가는 숭고한 할머니 정신, 할아버지는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캔맥주를 연실 들이킨다.
실컷 놀았는지 나가자고하기에 시내 나가서 저녁 먹을 궁리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물놀이 장에서 나가자는 말이지 놀이동산을 나가자는 말이 아니었다고 적극 해명까지 하고 나선다.
그래서 결국 다음으로 지난 번 방문에서 패스했던 아쿠아 룸을 기어코 찾아갔다. 내가 기대했던 정도는 되지 못했지만 병아리들은 무척이나 신기해 했고 즐거워 했다.
'우리 언제 호텔로 돌아갈까?'
--- 너무 길어져 지면 관계로 부득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