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163)와 같은 맥락의 글이라서,
이 글과 함께 읽으면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하고 여기에 올립니다.)
수필 문장과 산문
이동민
전통적으로 수필의 문장을 이야기 할 때 수필의 장르적 속성이 시와 소설의 중간에 위치함으로 문장도 시와 소설의 중간 형태를 취한다고 보아왔다. 다시 말하자면 시 문장의 좋은 점과 소설 문장의 좋은 점을 변증법적으로 가져오자는 주장이었다. 일견 아주 좋은 주장인 듯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모순이 많다. 버나드 쇼가 결혼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했다는 말, 당신의 나쁜 점과 나의 나쁜 점을 가지는 아이라는 말로 거절했다 한다. 수필 문장도 잘못하연 그와 같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수필전문지(수필과 비평. 198호.)에 실린 글을 옮겨보자. ‘바로 이런 문장미학 속에 수필언어의 본성과 미덕이 숨어 있다. 그러한 특성은 곧 운문언어의 시적요소와 산문언어의 서사적 요소를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킨 중간 장르적 속성을 나타낸다. 수필언어의 중간 장르적 속성은 운문언어에서 취한 간결성과 함축성, 감성, 음악성(리듬) 등과 산문언어에서 취한 설명하기와 보여주기의 서술방식을 융합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한 문장 특성은 시적 감성과 서사적 사실성을 혼용한 수필만의 독특한 문장미학으로 자리잡는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수필문장을 미문화하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뿐만아니고 운문언어의 함축성과 산문의 서사성은 서로 대립적인 요소인데 어떻게 함께 담아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문학의 장르를 나눌 때 운문과 산문으로 나눈 것은 두 문장의 차이와 속성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을 필요한 부분을 취합하여 하나로 통합하자는 것은 멋진 말이기는 하나 논리적으로는 모순에 빠진다. 즉 물과 기름을 하나로 취합하자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운문과 산문의 양립하는 장점을 변증법적으로 통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학의 장르를 나누는 일차적인 기준은 운문과 산문이다. 여기서 보면 산문은 장르의 개념이 아니고 장르를 나눌 수 있는 언어 표현의 속성에 해당한다. 그러나 산문을 운문에 대비되는 장르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운문은 언어의 배열에 운율에 맞추어 일정한 규율이 있는 글이다. 시가 대표적이다. 산문은 운율에 구애받지 않고 형식도 없이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쓴 글을 말한다. 운문과는 상대적이다. 산문은 단어들을 가장 적절한 질서로 배열하여 일정한 의미와 지시를 명료하게 나타낸다. 단어 배치에 언어 규칙, 즉 문법을 죵요시한다. 운문으로 쓰여지는 시 문장에서는 문법을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다. 산문으로 쓰여진 문학 장르에는 소설, 희곡, 평론, 수필이 있다. 산문은 역사적으로 운문에 비하여 늦게 나타났다. 오늘에는 산문이 문학의 주류가 되었다. 이것은 18세기 이후에 소설이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영향을 받아서 이다. 산문은 시와 같은 외형적인 규범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문장이기 때문에 의미가 명료해야 하고, 언어와 사물과 관계가 정확하게 대응한다. 이것이 수필문장의 특성인 동시에 수필의 특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산문은 수필의 장르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수필문장론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헤밍웨이는 산문을 실내 장식이 아니라 건축이다, 라고 했다.
우리는 산문이 형성되는 과정을 역사적, 문화사적으로 살펴보자. 언어의 발달 과정을 보면 음성언어 -> 문자언어 -> 활자언어 -> 디지털언어의 순서로 전개되었다. 음성언어는 아직 문자가 발명되지 않아서 구술이 언어의 중심이었을 때의 언어이다. 음성언어는 정보를 대뇌의 저장 장치에다 기억으로 갈무리 했다. 인간 뇌에 기억으로 저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억 용량이 많지 않을뿐더러 기억의 기능도 우수하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서 응용해야 했다. 운율을 강렬하게 맞추어 균형이 잡힌 양식이거나, 반복하거나, 대구나 만들거나, 정형구적으로 표현하거나(춘삼월 호시절에, 만화방창 지절에 등등), 표준화된 배경을 나타내거나(결투나, 영웅을 도우는 사람이 나타나는 등, 이야기의 흐름에 하나의 양식적인 내용이 담긴다.), 기억하기 쉽도록 양식화된 격언 등이 운율의 구성에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기억하기 좋은 여러 형식이 나타난다. 이런 양식은 기억하기 좋도록 만들어진 언어형식이다. 운문 즉 시는 이와 같은 구술언어에서 나타났다.
이후에 문자가 만들어지고, 문자문화 시대가 되어서도 구술문화의 잔재 즉 음성언어의 요소가 문자문화 속에 남아있다. 언어를 전달하는 새로운 매체가 나타나서 전달 방식이 바뀌었더라도 지난 시대의 매체(음성)의 양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변신을 하기 때문이다.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새로운 인쇄술이 나타나자 문자문화의 시대가 열렸다. 문자로 기록함으로 책이 나타났다. 책은 경험과 지식을 무한대로 저장할 수 있다. 음성언어 시대에 갖고 있던 기억 또는 저장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다. 음성언어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리지만 문자언어는 책에 저장되어서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다. 이때부터 말하기에서 글쓰기로 변화가 나타났다. 말하기 양식에서 글쓰기 양식으로 변화가 나타났다. 음성언어가 받았던 시간과 공간의 제한에서 벗어나자 음성언어 시대의 언어 양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문장도 아름답게 꾸몄고, 전체 글의 구성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 인간의 내면 의식까지 표현하면서 문장은 길어지고 내용은 복잡해졌다. 이 시점에서 산문이 출발했다. 산문이 시작할 무렵에 몽테뉴와 베이컨의 에세이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문자언어 시대에는 기록의 잠재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문장 작법이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이로서 산문은 글쓰기를 계획하게 되었고, 문장과 언어를 조직적으로 배열하기 시작했다. 문자 언어에는 인간의 사유를 기록하여 저장하였다. 리듬과 리듬으로 질서를 만드는 사유에서 담론과 예증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산문은 선적인 요소를 가지고 앞으로 진행하는 양상을 보인다. 산문은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산문의 속성에는 이야기가 있고, 담론이 있고, 사색이 있고, 역사가 있다.
운문이 언어 자체로서 놀이를 하는, 언어가 놀이의 기구가 되었다면, 산문의 핵심은 사유다. 지금까지의 산문에 대한 설명을 요약해보자. ‘어떤 대상을 사유 체계에 따라서 문자 언어로 조직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산문이다.’ 위의 요약을 성립하게 하는 기본 요소는 논리성이다. 문장이 논리성을 가지도록 단어를 운용하고, 배치하는 것이 산문 쓰기의 기본이다. 이 말은 수필쓰기의 기본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산문으로 쓰는 수필에서 언어 자체가 놀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필에 운문을 과도하게 도입하면 미문으로 흘러서 사유가 훼손당할 수 있다.
수필을 산문이라고 할 때는 압축이나 서정을 통해서 시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수필쓰기는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적 언어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존재의 보편성을 탐구하기 위한 논리적 언어 수행이다. 산문의 논리성은 문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단락과 단락을 이어주는 것도 논리성에 의한다. 근대에 와서 뛰어쓰기와 단락 만들기는 글을 읽기 쉽게 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논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산문쓰기는 잘 짜여진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서 각 요소를 논리적으로 적절하게 배치하고, 결합하는 언어 작업이다.
수필은 하나의 통일된 서사물이다.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의미를 담아낸다. 사건의 논리성이란 어떤 대상을 독자가 현실 세계에 비추어서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으로 느낄 때를 말한다. 수필 문장은 수필 전체의 내용과 서로 같은 구조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건에 합당하도록 문장 구성도 논리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수필 문장은 산문의 속성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다시 더 설명하자면 수필은 현실 세계를 이야기로 만들어서 옮긴 것이다. 현실 세계와 수필의 내용이 상동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만약에 상동 관계가 없고, 추상적으로 상응하는 관계가 없다면 독자는 수필을 이해할 수가 없다. 독자에게 현실 세계와 수필 간의 이해를 주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산문 문장의 특성이다. 따라서 산문 문장으로 기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산문의 역사성이나 속성상으로 보아서 수필에 적합한 문장 형식은 산문이다.
그러나 고대의 서사시나, 오늘의 산문시와 수필을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문장 형식이 운문이더라도 수필의 구조를 갖추었다면 수필로 취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수필은 작가가 현실에서 유추해내는 우주적 세계와 현실 세계 자체를 이해가 가능하도록 관계를 맺어주는 역할도 문장이 한다. 작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우주적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현실 세계를 작품 안에 배열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작가가 배움을 통해서 얻은 지식에 의존한다. 현실과 작가의 상상력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가 글(수필)의 본질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현실)과 의미(수필)하는 것의 관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얼마나 매끄럽게 맺어주느냐는 수필 문장을 어떻게 구사하는가에 따른다.
수필에서 작가의 세계와 독자의 세계를 관계 맺어 주는 것도 수필 문장이 한다. 작가와 독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만나기 때문이다. 수필의 산문 문장을 통해서 만난다. 산문은 간결하게 압축하는 문장이 아니고 풀어서 설명하는 문장이다.
첫댓글 산문은 간결하게 압축하는 문장이 아니고 풀어서 설명하는 문장이다.-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새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