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마을의 불빛들
강봉덕
1
이건 불이 아니라 신이다 꺼지지 않는 불, 덩실덩실 물이랑 해변 너머 처용마을로 쳐들어온다 뜨겁지 않다니! 물을 쏟고 밟아보지만 점령군 같은 황홀한 불, 어둠을 빼앗겼다 잠을 도둑맞았다 송두리째 사라진 꿈 춤추던 처용도 도망가는 첫째 날이다
2
잠을 자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들만 남았다고 가정하자 베어링을 돌리고 볼트를 끼우는 사람들이 밤을 지새운다고 가정하자 화장 짖은 여인들이 조금 일찍 들어와 잠을 잔다고 가정하자 수 억 년 달려온 사내가 처용의 탈 빌려 쓰고 춤을 춘다고 상상해보자 방과 방 사이에 왼발을 넣어보자 하청의 하청 사람들이 불빛에게 습격당하는 둘째 날이라 가정하자
3
네모난 집이 있다고 하자 다만, 집 한 채의 밝음이 한 개의 크기라면 수 천 수 만 넓이가 사라질 것이라 하자 집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자 이 깊은 황홀 같은 공간에 공장이 들어온다고 하자 파장 일던 표면마다 일시에 달려오는 마을의 흔적 위에 공장을 세운다고 하자 저 느린 발걸음으로 도시가 지워지고 공장이 자라는 저녁을 셋째 날이라 하자
4
빠르게 돌아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공단이 돌아갑니다 소리 없이 돌아갑니다 속도가 빨라집니다 노랫가락에 맞추어 돌고 돌다 뛰어 갑니다 등을 맞대고 앉은 양철지붕 지나 기와집 아파트 지나 전원주택 빌딩 지나 공업단지까지 돌아갑니다 내게 강 같은 평화를 지나 비바람이부는 바다를 지나 팔분의 육 박자 건너뛰고 싸이지나 방탄소년단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첫 번째 공장에 이어 둘째 셋째...일곱번째 공장까지 돌아갑니다 아파트값취업입시주식부동산비트코인이돌아갑니다 사람이 사라지고 달리기만 남았습니다 공장보다 빨리 돌립니다 멈출 수 없는 공장이 돌고 도는 넷째 날입니다
5
네온사인 아래로 여인이 들어가지 화려한 불빛 아래 부패되지 않는 그녀 두 눈 다소곳이 감고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 두꺼운 화장으로 잠자다 일어난 그녀 탬버린 흔들며 춤을 추는 다섯째 날
6
춤은 춤을 복제하지 컨테이너 밸트 위 같은 자세 쌓이듯 춤은 춤을 쌓아가지 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많아 발가락에 탈을 씌우면 춤이 태어나지 주렁주렁 열리는 탈춤 한 박자 씩 묶어 허공에 날리면 탈은 춤을 모른다네 얼굴을 버리고 머리만 주워온다지 머리에 얹힌 탈들은 오래된 습관을 기억하는 여섯째 날이지
7
길들이 사라지고 길들이 생겼다지 집들이 사라지고 집들이 생겼다지 춤들이 사라지고 춤들이 생겼다지 사람들이 사라지고 사람이 생겼다지 여자들이 사라지고 그녀들이 생겼다지 쉼표가 사라지고 쉼표하나 생긴 곳에 손바닥에 구멍 난 사내가 졸고 있는 일곱째 날이라네
강봉덕|2006년《머니투데이》경제신춘문예 당선. 2012년《동리목월》신인상 수상. 2013년《전북도민일보》신춘문예 당선. 문학동인 Volume 회원. 시집으로『화분 사이의 식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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