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남쪽으로 물러가고 태풍이 몰고 왔다는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푹푹 찌는 더위도 가천 시창작반의 열기를 이길 수는 없다. 전에 써둔 시 두 편을 프린트하여 가방에 넣고, 농장에서 기른 토마토와 당근을 담아서 출발하였다.
개인 일정으로 혹은 건강상 오기 어렵다는 카톡 문자를 받고 오늘은 참가자가 좀 적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여 10분전에 도착했다. 부지런한 이봄샘과 지영호샘이 와 계셨다. 지난주에 30분 전에 열어놓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가서 열어달라고 했단다. 커피와 녹차 내릴 준비를 하고, 물을 떠오는 사이에 김영주샘, 김옥희샘, 류숙자샘도 오셨다. 임선영샘은 감기에 걸려서 좀 늦게 오신다고 하니 오늘 오실 분은 거의 다 오신 모양이다. 한층 위에서 9시부터 강의를 하시는 심양섭샘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잠깐 내려오셨다. 끝날 때쯤 수필을 가지고 오시겠다며 다시 강의실로 가셨다
교수님은 10시 15분쯤 오신다고 해서 커피와 녹차를 내려서 여러 샘들께 드리고, 19금 수다로 양념을 쳐가며 떠들고 있는 사이에 교수님께서 오셨다. 자리를 한 바퀴 도시면서 오랜만에 보는 듯 악수와 포옹으로 반가움을 표현하셨다. 오늘은 모자에 대한 시 2편을 준비해 오셨다. 한 편은 전에 한 것이지만 한 편은 새로운 것이다. 마침 내가 모자를 쓰고 갔더니 모자에 대한 시를 공부하게 돼서 더 실감나게 할 수 있었다.
<벌거벗은 모자>
신철규(1980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모자는 언제나 나의 머리 꼭대기보다 높은 곳에 있습니다
나는 모자의 하수인입니다
모자에서 팔다리가 나오고 몸이 불쑥 솟아납니다
얼굴은 가장 나중에 나옵니다
당신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까르르 웃습니다
모자 속에는 많은 것을 숨길 수 있습니다
늘씬한 미녀
카이저수염을 기른 독재자
둥근 민머리
가끔 얌전하게 숨어 있던 비둘기가 날아가기도 합니다
모자를 쓰면 왠지 편안해집니다
모자를 쓴 사람에게는 함부로 말을 걸지 않습니다
모자를 벗으면 사람들은 겸손해집니다
벗은 모자를 가슴에 안고 굽실거립니다
걸인들은 자신의 머리맡에 모자를 놓고 엎드립니다
어젯밤 꿈속에서 당신은 모자를 쓰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당신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모자만 떠 있었습니다
당신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모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갔군요
당신이 써놓은 메모를 찢어서 모자에 넣습니다
다시 손을 넣어 꺼내 보면 나의 심장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공중에 뜬 모자가 걸어갑니다
―『시와 사상』(2014. 봄)
우선 이 시는 ‘벌거벗은 모자’라는 제목에서 매혹적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연상시키는 동화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모자라는 것은 아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모자는 신분, 권위, 위장 등을 상징하기도 하고, 장식이나 생활필수품이 될 수도 있다. 그냥 벗는 것이 아니고 벌거벗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야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진실함을 나타내기도 하고, 권위를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연에서 머리는 지성, 영혼, 사고, 비판, 판단 등의 정신적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의 모자는 교수, 시인, 의사라는 내 타이틀을 나타낸다.
2연에서 팔다리가 나오고 몸이 불쑥 솟아난다는 것은 신분에 따라 나타나는 행동을 말한다.
3연은 모자의 장점을 나타낸다.
5연과 6연 사이는 꿈과 현실의 간극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6연과 7연에서는 돌아오지 않았을 때의 아픈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 조금 다른 느낌의 모자 시를 감상했다.
<시인의 모자>
임영조
나의 새해 소망은
진짜 ‘시인’이 되는 것이다
해마다 별러도 쓰기 어려운
모자 하나 선물 받는 일이다
'시인'이란 대저,
한평생 제 영혼을 헹구는 사람
그 노래 멀리서 누군가 읽고
너무 반가워 가슴 벅찬 올실로
손수 짜서 씌워 주는 모자 같은 것
돈 주고도 못 사고 공짜도 없는
그 무슨 백을 써서 구할 수 없는
얼핏 보면 값싼 듯 화사한 모자
쓰고 나면 왠지 궁상맞고 멋쩍은
그러면서 따뜻한 모자 같은 것
어디서나 팔지 않는 귀한 수제품
아무나 주지 않는 꽃다발 같은
'시인'이란 작위를 받아보고 싶다
어쩌면 사후에도 쓸똥말똥한
시인의 모자 하나 써보고 싶다
나의 새해 소망은
임영조 시인은 『시인의 모자』를 내밀면서 우리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장 좋은 시, 가장 훌륭한 시를 쓴 시인으로 남기보다 진짜 좋은 시 한 편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인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고.
임영조 시인 : 1945년 충남 보령 출생, 2003년 지병으로 타계, 신동엽 시인을 만나 문학공부 시작,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0년 『월간문학』제6회 신인상에 시「出航」당선,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木手의 노래」당선, 제1회 서라벌문학상, 제38회 현대문학상, 제9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그림자를 지우며』『갈대는 배후가 없다』 『귀로 웃는 집』『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시인의 모자』등
내친 김에 모자에 관한 시 1편 더 읽고 갑니다.
<근엄한 모자>
이기홍
오늘 예식장에 그를 데려가기로 합니다
그는 내 가슴속에 살면서도
맨 위에 올라가 군림하기를 좋아합니다
어쩌면 그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 내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는 그가
차갑고 근엄한 얼굴을 치켜들면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립니다
예식장에 초대받아 온 사람들도
나보다는 그에게
더 깊은 관심을 표하기도 해 속이 몹시 상합니다
이제 그가 없으면 나는
사람들의 괄호 밖으로 밀려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난 왜 그의 보디가드가 됐습니다
그의 뾰족한 코가 땅바닥에 곤두박질치진 않을까
낯선 바람에라도 끌려가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조금도 맘 놓지 못하고 그를 지켜봐야 합니다
슬그머니 내 위까지 올라와 상전이 된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나 나는 이렇게
나와 다르게 살아야 하나요
그를 몰아내고 청바지 입기를 좋아하는
나를 데려올 수는 없나요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공부를 했으니 먹을 자격이 생긴 것. 방학이 되어도 간식 행진은 계속된다.
심양섭표 멸치땅콩 안주, 이봄표 바람떡(송편이라고 했다고 혼났어요.), 김옥희표 수박과 참외, 류숙자표 빵, 채기병표 유기농 방울토마토와 당근으로 배를 채우며 마음도 채워갔다.
이어 바로 시합평회에 들어갔다. 그 때 임선영샘이 오셔서 임선영샘부터 돌아가면서 시를 낭송하고 감상평을 하였다. 임선영샘의 ‘달개비 꽃’, 운지류숙자샘의 ‘담양4’, 수정이봄샘의 ‘세 친구’, ‘세발 자전거’, 채기병의 ‘비둘기낭 폭포’, ‘고석정’, 김영주샘의 ‘폭포수’, ‘음악분수’
김영주샘은 방송통신대 문학기행에서 기행 지역과 관련된 ‘곡성,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의 첫글자로 쓴 4행시에서 대상을 받으셨단다. 축하합니다. 짝짝짝!!!
곡) 곡식이 무르익어가는 섬진강 끝자락
식)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는 가난한 농부
송) 송아지 한 마리가 희망이었네
면) 면밀하게 짜여진 베적삼에 땀이 젖는 그 아낙네
김영주 샘의 합평회 때 심양섭샘이 오셔서 동참했다. 심샘이 지영호샘을 보고 “나보다 더 좋아 보인다.”고 하시자 바빠서 가시겠다고 가방을 챙기시던 지샘이 바로 “짜장면 살 테니 다 같이 먹자”라고 하시는 바람에 합평회를 얼렁뚱땅 끝내고 바로 따라갔다. 이럴 때 보면 공부보다 먹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심샘 덕분에 공짜 점심을 먹으니 짜장면 면발이 쫄깃쫄깃 한 것이 더 맛이 좋았다.
임선영샘이 수업 시간에 늦게 오는 바람에 문교수님을 뵙지 못했는데, 문교수님께서 부채를 전달해야 한다면서 식당에 일부러 오셔서 부채 전달식을 하고, 내일 초우아카데미에 꼭 참가해 달라는 당부 말씀을 하셨다. 교수님이 가시고 나서 후식으로 심양섭샘의 ‘여유인가 여걸인가’라는 명성황후에 대한 수필을 읽으면서 마무리를 하였다.
이렇게 오늘도 우리들은 ‘시인의 모자’를 하나 더 쓰고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첫댓글 벌거벗은 모자
모자를 쓰면 함부로 말을 걸지 못 한다
잘 새기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열심한 선생님의 모습에 감탄합니다.
@道如 채기병 제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종소리
하나를 정신 차리게 가르쳐 주면
열도 쉽게 알아듣고
가르쳐 준 그 소리가
단걸음에 천 리를 간다.
이천십육 년 칠월 열이틀
초보산쟁이~마초.
당신은 물속으로 가라 앉고
모자만 떠 있었습니다
당신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이 구절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아
모자주인의 슬픈 사연이 궁금해져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근엄한 모자> 벗어 버리고
청바지 입기 좋아하는 그를 데리러 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영주샘의 답글이 더 감동입니다.
임영조 작가 설명까지 정리를 잘해주신 채기병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유명하신 분이더라고요.
다시 읽은 모자
보너스로 한 작품 얹어 읽고
생각이 깊어짐니다.
....수고하신 덕분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복습하는 재미가 있지요.
늘 반가운 소식 전해주시는 채기병 회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응원덕분입니다.
이열치열 맹렬 문우들입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
이런 모임 어디서 찾기 힘들지요.
월요일 밤 들렸더니 무소식 바쁘다 바빠 이제 후유 내 고향에 안착
울 회장님 모자에대해서 공부 잘했습니다 짝짝짝 박수 늘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정말 바쁘게 사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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