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사랑서사시 제6장
-화랑 편
화랑도 또는 낭가, 풍류도, 국선도, 풍월도라고 불린 신라의 청소년들로 이루어지고 심신수련을 하던 무사 조직이다. 왕과 귀족의 자제로 이루어 졌다. 조직의 지도자는 화랑, 화주, 풍월주, 국선으로 불리었다. 화랑도의 이념은 개인의 수양과 단련을 통해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었으며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준수했다. 겸손하고 검소하고 방자하지 않는 삼이三異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대표적인 화랑으로는 천관녀와의 사랑을 단절하며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던 김유신과 무열왕, 관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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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사랑서사시 Ⅵ
-화랑을 만나다/ 이 령
1
단석산斷石山을 오른다. 꿈이었을까 꿈같은 얼굴, 그 사내 잊지 못해 취기마저 더하는.
나, 가질 수 없는 한 사내를 사랑했네.
너, 영원한 사랑을 위해 순간을 잊고자 했네.
나, 몸과 마음을 다해 면역 없는 그리움에 취하네.
너, 몸과 마음이 하나일 수 있다면 그 사랑 영원이라 맹세했네.
그 사내의 斷石은 영원한 단장斷腸이었네.
2
그는 썩은 서까래에서 태대각간 솟을 문까지 그림자였다. 여동생을 바치고 질녀를 안으면서도 그 차별 아프지 않았다. 태화에서 영휘까지 태평가를 그리며, 칼을 갈고 또 갈았으리.
천년이 지났건만 차별은 유전이다. 비단 입는 사람과 비단 짜는 사람, 금 수저는 금 수저, 흙 수저는 흙 수저끼리, 사랑미움시기질투먹고마시고죽고죽이는 여기는 난장판이라 오 서러워라! 난세엔 난 새, 그를 닮은 영웅의 비상을 어디에서 구할까.
아! 새라면 좋겠다
나, 하늘에 머리를 두고 땅에서 날개를 접네.
유일한 기꺼운 구속, 그것이 사랑이라면
나, 외롭지 않네.
그 얼굴, 밤보다 깊은 새벽을 날아와
젖은 내 깃에 스미네.
3
겹창을 열자 화단에 모인 시간들이 울고 있다
꽃의 표정은 늘 문 앞에 있었는데 닫기만 했다는 생각
계절을 미처 받아 적지 못했다는 생각
그래서 누군가와 꽃같이 아득하게 단 한번 살아본 적 없다는 생각
아물지 못한 계절, 꽃 지고 있다
비의 투하에 터진 비명들, 아프기 때문이다
어떤 울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작 사랑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었음.
어떤 울음도 웃음보다 아플 수 없음, 피었다. 진다. 진종일
사랑융단폭격에 베어본 사람일지라도
이생에서 타전하지 못할 한 영혼을 품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이 음률탁란에 거듭 개화開花될 울음 우는 사람일지라도
차원을 넘어서는 이야기도 기껏해야 몇 생을 견디는 일이었는데
곡조를 이기지 못한 어떤 슬픔도 간신히 한 생의 일이었는데
장마 전선을 통과하는 슬픔들, 계면조로 옴팡지게 왔다. 갔다
4
복수초, 고마리, 산벚나무 오종종 물길을 여는 봄이다.
크낙새, 곤줄박이, 호랑쥐빠귀 그 꽃 향 물어 나르는 부산한 봄이다
황산벌에서 한강을 지나 고령에서 마운령까지 꽃차례로 화랑의 넋들이 너울거리는 봄이다
사군이충事君以忠,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그 빛 가림 말씀, 오롯이 받아 적는 고매한 봄이다
그림자가 그림을 완성하듯, 올 것이라는 오고야 말 것이라는 그 믿음으로 봄은 온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열매를 맺듯
개미가 몸을 던져 불길을 잡듯
어미가 자신의 피로 죽어가던 자식의 목마름을 달래듯
삶이 위대한 것은 잎 진자리에 새순이 돋는다는 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5
붉새에 잠긴, 광중길 공원가에, 투섬플레이스 입간판 옆에, 소사나무 숲 건너편에, 인조 당단풍 한그루 외따로 서있다. 애초 물기 없던 몸이라 저녁놀도 성가신지 빛조차 없다. 계절을 베낄 일 없으니, 사철 빳빳한 인조 잎사귀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저 나무, 단 한번 살지도 선뜻 죽지도 못하는 저 나무, 건너편 소사나무들의 생로병사가 마냥 부러운 저 나무, 오래 볼 요량으로 숨을 거두어들인 박제 같은, 나무야나무야 당단풍나무야 진짜 이름 불러주고 싶은 저 나무, 죽어도 귀는 열려있다지, 칭칭 감은 알전구에 불을 켰다. 100촉짜리 꽃을 주렁주렁 피워낸, 어둠에 들어서야 제 존재를 알리는 저 나무, 오히려 나무 같다.
가을의 손톱인가, 요즘 내 마음이 그렇다. 할퀴고 뾰족해진 마음자리 내려놓고 오색 알전구로 단풍들듯 물들고 싶다. 속 비워내 불 밝히는 저 나무, 저기 저 생생불식 서있는 인조 당단풍 나무, 어둠에 만개한 죽은 듯 살아낸 불사조다. 밤의 사위가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