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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이사야(70)/앙망
제목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라
성경 : 사 40:18~31
찬송 : 354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0614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40: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사 40: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사 40: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사 40: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사 40: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사 40: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사 40: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사 40: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사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 40: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사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사 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사 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느냐?”라는 질문은 18절~26절의 시작과 끝부분에 등장하면서 본문의 내용을 집약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절대자요 초월자이십니다. 여호와의 주권과 능력은 이미 창조 때부터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바벨론의 신들이 비록 강대해 보일지라도 사람이 만든 우상에 불과합니다. 열방의 권세자들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하나님의 입김에 사라질 마른 풀에 불과합니다. 하늘의 만상이 아무리 신비롭게 보여도 여호와께서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주권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약 백성 야곱/이스라엘은 자신의 처지만 바라보고 불평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이미 들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초월자, 창조주 하나님은 결코 소진하지 않는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소년과 장정이라도 누구도 영원한 능력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면 결코 지치지 않으시는 여호와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단숨에 지상에서 창공으로 날개 쳐 오르듯이,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의 구원을 인내로 기다리는 이스라엘은 영광스런 구원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앙망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유일한 창조주
√사 40: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본 단락은 접속사 ‘바브’(개역개정 ‘그런즉’)로 시작하면서 12~17절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귀결 짓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비교 불가하신 분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만약 여호와께서 그런 능력과 지혜를 가진 분이라면 과연 하나님을 누구와 비교하겠습니까? 여기에서 가나안 신들 중 가장 높은 신의 명칭인 ‘엘’(하나님)을 사용한 점은 여호와의 절대적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 40: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사 40: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18절의 두 질문에 대해 바벨론의 포로들은 바벨론의 신들과 그들의 형상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목적어 ‘우상’을 문장의 맨 앞에 배치하여 이러한 생각이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상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우상이 뭡니까? 우상은 장인이 청동이나 쇠를 부어 만든 어떤 형상입니다. 쇳덩어리나 나무덩어리에는 아무 생명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단지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눈도 그리고 귀도 만들고 금으로 입힌 것뿐입니다. 그런데 상상력이 뛰어난 인간들이 거기에 달린 귀와 눈과 입이 진짜 듣고, 보고, 계시를 내릴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이 아닙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이 중에서 ‘궁핍한 자’는 썩지 않는 단단한 나무를 구해 거기에 사람의 모습을 새기고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매어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상의 정체는 돌이요 나무요 쇳덩어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러한 것들이 복을 줄 것이라고 믿을까요? 그렇게 상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믿고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스스로의 상상력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보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하나님의 간섭은 받고 싶지 않으니, 제 멋대로 신을 상상해서 만들어 섬기며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고자 합니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존귀한 자들이므로 하나님 외에는 다른 우상에게 절대로 절을 하면 안 되고 섬겨서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권력과 돈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생명 없는 우상에게 절을 하여 스스로를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온전한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복되며,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들의 욕심이 투영된 것입니다. 복을 기원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맞는 우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참된 복을 주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어느 것과도 영광을 나눠 갖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의지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이 아닌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땅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경배와 찬양과 신뢰와 의존은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만을 향해야 합니다.
√절대 통치자
√사 40: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라는 말은 너희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지식입니다. 즉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은 이러이러한 분이며, 그분은 이러이러한 것에 대하여 진노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지식이 없으면 인간의 모든 수수께끼를 절대로 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지식은 ‘태초부터’있던 지식이요,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있던 지식입니다. 인간이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무시하고서는 이 세상에서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돈이나 무기를 주시지 않고 가장 중요한 지식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긴장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힘을 주시지 않으시고 대신 하나님의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백성은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빨리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돈을 많이 모으고 군사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지식을 빨리 깨닫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세상의 다른 나라들에도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멸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길입니다.
이사야가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조주가 누구인지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우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각성시켜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한편 이사야의 이러한 질문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이 과연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감히 우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사 40: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사 40: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사 40: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먼저 하나님은 땅위에 궁창처럼 펴있는 하늘을 (욥22:14) 보좌로 삼으셨기 때문에 땅 위에 있는 인간이 마치 메뚜기만큼 작아 보일 정도로 높이 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푸른창공을 얇은 포목처럼 펴시고 그것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천막과 같이 펼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귀족들과 통치자들을 낮추어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겨우 이식되어 방금 뿌리를 내린 묘목과 같으므로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시면 곧 시들어 지푸라기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어떤 인간이나 우상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자이십니다.
시 86: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시 89:6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시 89:8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어떻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까?
√사 40: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사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의 창조 과정(창 1:14~18)에 대해 알아보도록 요청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그분의 위대하심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을 창조하셨고 뿐만 아니라(창 1:16) 마치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그 별들의 수효를 다 헤아리시고 각각 이름을 지어 주셔서 온 우주를 질서 있게 다스리십니다.
시 147: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홀로 유일한 지존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권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통치하시는 절대자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 섭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항상 높이 계신 하나님을 앙망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전지 전능자
사 40: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사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사 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사 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이 너무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실 때 마치 자신의 눈동자처럼 그렇게 관심을 두고 사랑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무관심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는 전지자이십니다. 아무리 가까운 부모나 형제, 친구나 직장동료들이라도 우리의 깊은 내면을 다 헤아리고 우리 형편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으며 도움을 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를 완벽하게 헤아리시고 이해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27절).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의 약점과 한계를 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의 고통과 억울함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 헤아리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조성하셨으니 어떤 장애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를 아시고, 우리에게 최선의 길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완벽하게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을 찾습니다. 간혹 그런 사람을 만나는 행복을 누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전폭적인 공감과 지지를 받더라도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광풍은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깃든 깊은 어둠은 거두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갖고 있는 한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헤아려 공감해 주시는 전지자일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고통당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고 회복시키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라도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자유하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전능자이십니다. 청년이나 장정이라도 육체적 한계에 다다르면 지치고 넘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시고 곤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힘의 근원이시며 모든 연약한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앙망하다’카와(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기다리다, 기대하다 wait, look for, 바라다, 소망하다 hope'를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전적으로 신뢰해 구원의 약속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이 소유하신 지치지 않는 새 힘을 주십니다. 새 힘을 주신다는 것은 소진된 기력을 더 나은 힘과 교체한다는 의미입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지상에서 창공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누릴 변화를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야곱/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앙망하기만 하면 그들이 달리고 걸어가는 ‘길’에서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유일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절대 통치자이십니다. 전지 전능자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참된 형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헛된 우상들을 만들어 복을 구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를 참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더욱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시다. 창조주요 절대 통치자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