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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자유케 하는 멍에(2)/마 11: 28-30
지난 주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고단함과 피곤함 즉 모든 수고와 무거움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믿음의 여부를 떠나 세상은 언제나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무조건 세상 환경이 갑자기 편안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수고스러움과 무거움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나 없는 자에게 별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세상은 똑 같은데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것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이 전혀 달라집니다. 믿음이 있을 때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었던 다윗이 골리앗을 아무런 문제로 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골리앗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믿음이 있었던 다윗에게 골리앗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힘든 세상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얻으려면 세상과 씨름하지 말고 하나님과 씨름을 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씨름을 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고단함과 피곤함의 문제를 경제와 과학으로 풀려고 합니다.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풀려고 합니다. 그것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크리스천들도 경제와 과학의 전문가가 되어 좀 더 편안한 세상 환경과 여건을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삶의 무게는 그와 같은 경제와 과학으로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위하여 늘 노력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피리를 부시면 춤을 추고, 하나님이 애곡을 하시면 마음이 아파 가슴을 칠만큼 하나님에 대하여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나중에는 아무런 말씀을 소리내어 하지 않으셔도 그냥 마음으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서도, 지저귀는 새의 소리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일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면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삶에 넘치게 됩니다. 항상 기뻐할 수만은 없는 세상 속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늘 감사할 수만은 없는 세상에서도 늘 감사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하면 부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얼마든지 자족하면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게 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세상에 관계없이 언제나, 그 어디서나 천국을 사는 기막힌 복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이 주께 있습니다. 능력이 주께 있습니다. 소망이 주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언제나 생명과 능력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법에 순종하는 삶은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쉽지 않고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려는 원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죄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멍에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거운 부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과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치명적인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멍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담스러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 평안과 안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여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 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불순종 할 때 옵니다. 말씀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자유 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부자유스럽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의 멍에를 메고 우리의 자유를 포기하면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자유스럽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중요한 것 둘을 주셨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유입니다. 영과 자유가 우리 생명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상실한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우리는 자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서 소중한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죄에 빼앗긴 우리의 자유를 찾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엄청난 대가를 치루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유를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 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가까이 할수록 우리에게는 자유함이 넘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까이하면 할수록 자유를 잃어버리고 구속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면 소중한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께 매이면 매일수록 우리의 삶에는 참 자유 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멍에처럼 느껴집니다. 멍에는 수고와 무거움 그리고 부자유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멍에입니다. 그 멍에는 생각처럼 무겁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그 멍에는 쉽고 가벼우며, 그 멍에는 우리의 삶을 가볍게 하고 자유케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를 구속하는 멍에가 아니라 우리를 자유케 하는 멍에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우리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당신에게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의 멍에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겁고 힘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멍에를 메어야 우리 삶의 수고스러움과 무거운 부담을 없이 할 수 있다 말씀하십니다. 그 멍에를 메어야 편히 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 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 : 3) 아멘.
지난주는 참으로 신나고 즐거운 한 주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이 저 멀리 삼척군 미로면 상정리와 하정리에 수재민 봉사를 다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 수재를 당하였을 때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여러분들이 매달 내 주시는 이삭줍기 헌금 중에서 2천 만 원을 수재의연금으로 내었습니다. 그것은 보통 교회들이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우리 교회의 규모를 생각할 때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우리는 그만하면 잘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제 팔을 붙잡으며 '우리 교회가 2 천 만 원 헌금한 것은 좀 적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이 저와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돈처럼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처럼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말씀에 순종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최소한 이번에 우리가 전 교인 수련회를 하면서 쓴 비용인 6 천 만원에서 앞의 집사님이 말씀하신 1 억 원 사이에서 수재헌금을 하면 좋겠다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말에 여러분들은 모두 기뻐해 주셨습니다. 마음으로 동의해 주셨습니다. 그와 같은 광고를 할 때 제가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힘든 내색을 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1부 예배 광고 시간에 다음 주 수재헌금 할 것을 광고 한 후 교인 한 분이 헌금만 하는 것 보다 다만 몇 사람이라도 현지에 가서 저들을 도와 설거지라도 해 드리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여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2 천 만 원도 적은 돈이 아닌데 그것을 작다하시고 더 하라 하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려 하였더니 이번에는 돈만 내지 말고 수재 현장에까지 찾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즉시 순종하기로 작정하고 2부 예배와 3부 예배 때 수요일날 수재가 난 강원도 지역으로 봉사를 갈 터이니 가실 수 있는 분 신청하라 광고하였습니다. 결국 80명 가까이 신청을 하였고 지난 수요일 73명이 결국 앞에서 말씀을 드린 삼척군 미로면 상정리와 하정리에 봉사를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봉사 가기 이틀 전에 겨우 도로가 개통된 곳으로 우리가 처음으로 찾아간 산골이었습니다.
임시 회의를 통하여 수요일 봉사 때 쓸 예산을 4 천 만 원으로 정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헌금을 그 보다 더 많이 해 주시면 그것도 남김 없이 다 사용하려고 합니다만 우선 그 예산 안에서 수재민들에게 드릴 물품을 구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겨울옷과 속내의 그리고 양말 그리고 농협에서 20 키로 짜리 쌀 150 포대를 샀습니다. 이왕에 드리는 것 좋은 쌀 드린다고 비싼 쌀을 샀습니다. 상인들도 우리 교회가 좋은 일을 한다며 아주 싼 값에 물건들을 내 주었고 어떤 분은 자기도 동참하겠다고 옷 수 백 벌을 내 놓기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물건을 다 실으니 가장 큰 이삿짐 센터의 박스 차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말 쌀 한 포대도 더 실을 수 없으리만큼 꽉 차게 되었습니다. 모든 물품을 다 구입하고 남은 돈이 1,550만원이었습니다. 그것은 현찰로 가지고 갔습니다.
모든 준비는 참으로 정확하고 완벽했습니다. 우리가 섬기게 된 상정리와 하정리 마을이 125 세대였기 때문에 쌀도 한 포대씩 드리고 조금 남았습니다. 준비해 간 옷과 내의도 다 드리고 조금 남아 다른 지역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품도 중요하지만 당장 쓸 현금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 적지만 한 가정에 10만원씩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장난 앰프와 마이크를 사시라고 100만원, 수해를 입은 침례교회에 100만원, 산골에 들어와 들꽃 학교라는 아름다운 문화사역을 하시는 분에게 100만원을 드렸더니 준비해간 1,550만원이 정확하게 지출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준비해 간 물품은 모두가 다 비닐 커버가 씌워져 있는 새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이 너무 좋아하시고 기뻐하셨답니다. 우리 교회의 준비가 너무 완벽하고 정성스러운 것이어서 작았지만 위로를 받으셨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교인들의 봉사도 참으로 훌륭했답니다.
우리 교인들이 쓰는 비용은 교회가 따로 작정하여 사용했습니다. 봉사자들의 식사를 준비해 온 교인, 닭은 50 마리나 준비해 온 교인, 뿐만 아니라 교인들이 타고 가신 버스 두 대나 내어 주신 교인 ,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온 교인, 가게 문을 닫고 온 교인, 학교에 현장학습체험 신청을 내고 참석한 중학생과 초등학생등이 있어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밤 11시에 도착한 참으로 피곤하고 무리한 여행은 천국 잔치와 여행 같았습니다.
돈 도 수 천 만원이나 더 써야 하고 그 먼 곳까지 찾아가 힘든 일도 해야 하는 일은 부담스러운 일이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라 하시는 멍에를 졌더니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힘이 났습니다. 저는 이번 수요일 교인들의 봉사를 지켜보면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 새 힘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활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아주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 어제 저희 교회 통장에는 잔액이 50만원이었습니다. 갑자기 돈 쓸 이 생길까봐 조금은 조마조마 했지만 수 억 원의 돈이 통장에 있는 것 보다 더 즐겁고 기뻤습니다. 정말 부자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예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부담스러워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 마치 멍에를 메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씀에 순종은 언제나 우리를 가볍게 하고 즐겁게 하고 복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스럽다고 회피하고 모른 척하고 불순종하면 부담스러운 헌금 안 해도 되고 그 먼 곳까지 가서 힘들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주를 위하여 쓰면 쓸수록 부해지고, 주를 위하여 수고하면 수고할수록 삶은 편해지고 가벼워집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수고롭고 무거운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거운 멍에, 우리를 부자유케 하는 멍에로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꺼이 말씀의 멍에를 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멍에는 무거운 멍에가 아니라 가벼운 멍에입니다. 우리를 구속하는 멍에가 아니라 자유케 하는 멍에입니다. 자유케 하는 멍에는 지며 가벼워지고 벗으면 무거워 집니다.
여러분 수수께끼 하나 풀어 보시겠습니까? <지면 질수록 가벼워지고 벗으면 벗을수록 무거워 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 그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예수님이 오늘 약속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참 안식과 평안 그리고 기쁨을 누림으로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