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구간은 김포평야를 지난다. 석탄리 철새조망지를 지나다 보면 수백 수천마리의 이국에서 날아온 철새들을 만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그들의 떼지어 날으는 비행을 볼 수 있다. 넓은 빈 겨울철의 논밭들, 그 곳에 대신 자리를 잡은 각종 철새들 그리고 그 사잇 길을 걸어가는 도반들의 발걸음... 그 자체가 평화다. 그래서 평화누리길이라 한 것 아닌가 싶은 마음도 생긴다.
일반 도보 여행길은 산길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내가 자주 가보지 못한 다른 마을, 지역별로 다른 특색을 본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조금은 더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느낌 등. 오늘 가는 길은 많이 편한 길이다. 애기봉을 끼고 돌다가 어느정도 진행하면 한강을 왼쪽으로 보면서 다시 보안 철조망을 따라 넒은 김포평야를 지나게 된다.
하루종일 하늘이 회색빛이다. 그래도 바람은 불지 않아 오히려 지난번 길에 비해 체감 온도는 더 높은 편이다.
김포평야가 있고 바로 옆에 한강 포구가 있으면서도, 철조망으로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철새들에게는 최상의 겨울나기 장소가 되었다. 여기저기 철새들이 무리지어 논밭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고, 가끔은 철조망 위로 날개짓을 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띈다.
마을 어귀의 언덕이 무척 고와 보였다. 어느 것 하나 꾸미지 않은 길. 하지만 이번 길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였던, 탄성을 나오게 했다.
수령이 금년 기준으로 하면 약 440년(?). 아직도 정정하다.
이정표는 계속 전류리 포구를 가리킨다. 애기봉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왔다.
애기봉(愛妓峰)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와 하성면 가금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기생의 이름인 애기에서 유래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애기와 평양감사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은 김포 해병대 2사단이 주둔하는 군사시설보호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출입시 신고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1954년부터 애기봉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연말연시에 트리에 불을 켰다. 처음에는 소나무로 장식 트리를 만들어 썼으나, 1971년에 철탑으로 대체되었다. 애기봉에서 한강 하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역인 북쪽 하안(河岸)까지 거리는 3 km 밖에 되지 않으며, 밤에 등탑에 불을 켜면 전력 사정이 나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서는 그 불빛이 약 25 km 떨어진 개성 시내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간 갈등을 야기해 왔다. 2004년부터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의 합의에 따라 점등을 하지 않다가, 2010년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12월 21일부터 다시 점등하였다. 2011년에는 12월 23일부터 점등할 예정이었으나, 12월 19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포시에서 국방부에 점등 중단을 요청해 취소되었다.
이 향나무는 수령이 500년이라 되어 있다. 려말선초의 정승을 지냈다는 박신이 심은 나무라 한다. 바로 옆에 박신묘역이 있다.
본관은 운봉(雲峰). 자는 경부(敬夫), 호는 설봉(雪峰).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옮겨 사헌규정(司憲糾正)이 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제군부(諸君府)를 둘 때 중낭장으로서 군부도사를 겸임했으며, 예조·형조의 정랑에 승진되었다.1392년(태조 즉위년)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고 봉상시소경(奉常寺少卿)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사헌시사(司憲侍史)·교주강릉도안렴사(交州江陵道按廉使)·감문위대장군 겸 사헌중승(監門衛大將軍兼司憲中丞) 등을 역임하였다.
1418년(세종 즉위년) 봉숭도감(封崇都監)의 제조가 되었으며, 이어서 선공감제조가 되었으나 선공감 관리의 부정으로 통진현에 유배되었다가 12년만에 소환되어 죽었다. 시호는 혜숙(惠肅)이다.
저 집에도 언제였던 오손도손 한 가족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 시골의 빈집들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쓸쓸했다.
기억에 남을만한 장소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조금 걷다 보니 한강 하류 보안철조망을 만나게 되었다.
이 길을 따라 직선으로 한참을 걸으면 전류리 포구에 도착하게 된다. 중간에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는 20여명의 모 4050산악회
일행들과 비켜가게 되었다. 출발에 늦은 것으로 보이는 한사람이 택시를 타고 오면서 문을 열고 중간에 팀을 묻더니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봄이 되면 이 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머무를 것 같다는 생각이다. 추수가 끝나고 빈 논을 차지한 철새들을 또한 자주 만난다.
아무도 없는, 심지어 철새들의 흔적도 전혀 없는 넓은 논의 겨울 모습이 옅은 회색빛 하늘의 구름들과 어울려 무척이나 서정적으로 내 눈길속으로 들어 왔다. '내 마음이 평온하고 자연스러웠다.'
배경이 넓고 하늘과 땅이 마주 닿아 있는 곳에 있는 길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물론 그 주변에도 그 이상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을 듣고 생각하는 시간들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깨우치게 한다. 길을 걷다 보면 그 이야기들 속으로 어느새 내 이야기도 스며들게 되어 있다. "그게 길이다. 사람의 길..."
가끔은 이렇게 혼자 있는 새들을 만나게 되는데 왜 혼자 있는지 궁금할때가 있다. 물어보면 대답을 할까?
이 그림은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 놓고 싶다.
다친 새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곳이라 한다. 안에 독수리 종류로 보이는 새를 포함하여 몇마리가 들어 있었다.
빙하가 끊임 없이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유속이 생각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철조망 안으로 보이는 겨울 강의 풍경에서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느낀다. 뭔가에 갇혀서 정처없이 그냥 밀려오는 흐르는 강물에 쓸려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실려가는 그네들.
길은 긴 철조망을 따라 하염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을때 나는 가끔 고독함보다는 편안함을 느낀다. 경쟁도 욕심도 쫒김도 없다.
지뢰 표지가 유독 시선을 끌어 당겼다. 아직도 남아 있는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상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전류리 포구에 도착했다. 그냥 편한 길, 하염없이 걸었다. 그래서 좋았다.
길은 이렇게 들뜨지 않고 조용하게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걷는 내내 새로운, 전에는 몰랐던 것들, 마을들을 만나고 내 안에 자리했던 내 마음과 생각과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도보 여행의 한 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