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23 08:00 | 기사원문
[서민식당 발굴기]
경남 의령 <자굴산돼지국밥>
이번 여름의 마지막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주말, 경남 의령에 다녀왔다. 부산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일이 있어 의령으로 간 것이다. 의령하면 역시 임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가 떠오른다. 왜놈들이 분연히 봉기한 의병장이 곽재우였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의병을 일으키는데 소진했다. 수많은 전투에서 탁월한 승리를 거두며 국난을 극복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렇지만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선조의 미움을 사서 오지로 유배를 가야만 했다. 남명 조식 문하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곽재우 역시 실천적이고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한적한 의령의 늦여름 청명한 하늘이 홍의장군 곽재우의 고결한 삶을 닮아 있었다.
이날 40대 예비창업자와 의령에 다녀왔는데 우리는 ‘자굴산돼지국밥’이라는 상호가 붙은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이 식당의 새주소 명칭이 ‘의병로’다. 문밖에 내건 현수막의 서민적식도락(庶民的食道樂)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이 식당의 콘셉트를 한눈에 예단케 해주는 장치였다.
우리는 의령의 색다른 음식을 맛보고 싶어서 낙지보쌈 소자(3만원)로 주문했다. 전에 이 식당 주인과 이야기를 했을 때 낙지보쌈이 대표 메뉴라는 말이 얼핏 기억나기도 했다. 보쌈에다 낙지볶음을 곁들인 음식인데 과연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의령의 늦여름은 유달리 더웠다. 식당 안에는 낮술을 마시는 손님, 그리고 국밥으로 식사를 하는 손님도 드문드문 보였다. 주인장 부인의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 응대는 손님들로 하여금 이웃 사랑방에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해준다.
잠시 후 주문한 낙지보쌈이 나왔다. 커다란 접시에 보쌈과 낙지볶음 그리고 콩나물을 얹었다. 일단 보쌈은 좋은 원육의 삼겹살 부위를 사용해서인지 육질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잘 삶아서 쫀득하니 식감이 좋았다.
여름에는 국내산 삼겹살 가격이 금값이라 식당 입장에서 원가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자연스레 직업적 분석을 해보게 된다. 더욱이 삼겹살이 암퇘지라 조금 더 원가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래도 이 식당 주인장은 원가에 민감한 성격이 아닌 것 같다. 식재료를 좋은 것을 사용하려는 고집 같은 것이 엿보였다.
보쌈을 새우젓이 아닌 갈치속젓에 찍어서 먹으니 이것 또한 별미다. 갈치속젓은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에서 주로 먹는 젓갈이다. 이 식당 주인장이 서울의 고깃집에서 벤치마킹한 것을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중화풍 불맛이 들어간 낙지볶음, 별미
이 메뉴의 요체는 낙지볶음이다. 매콤한 낙지볶음이 생각 이상으로 맛깔스럽다. 감칠맛과 적당한 매운 맛의 앙상블이다. 순한 맛의 보쌈에 곁들이니 별미였다. 그 이유를 분석해보면 이런 답이 나온다.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한다는 점, 전에 중국집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주인장이 낙지를 볶을 때 중화윅을 사용해 불맛을 낸다는 점이다.
자고로 음식은 불맛이 중요하다. 얼마 전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허름한 중국만두집에서 만두 외에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볶음밥 맛이 괜찮았다. 웍으로 제대로 볶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중국집은 볶음밥을 즉석에서 볶지 않고 미리 볶아둬 볶음밥 특유의 맛이 사라졌다. 식당마다 인건비와 시간 효율성을 우선하다 보니, 우리 소비자들은 제대로 된 볶음밥을 먹는 즐거움마저 빼앗겼다.
이 식당 낙지볶음은 주인장이 숙련된 솜씨로 불맛을 내기 때문에 낙지볶음 맛에 중식 맛이 가미되었다. 한 마디로 중화풍 낙지볶음이다. 어찌 보면 퓨전 음식이지만 음식은 정통성보다 성의가 더 중요한 법이다.
소주도 반주로 한 병 주문했다. 한적한 식당에서 낙지볶음과 보쌈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니 나름 운치가 있었다. 반찬도 신선한 채소 중심이라 마음에 들었다. 채소의 대부분을 식당 바로 옆 텃밭에서 재배해 신선도가 높다.
대단한 맛집은 아니지만 반찬 하나하나에 소박함과 시골 인심이 깃들어 있다. 후식으로 된장찌개(2000원)를 주문했는데 직접 담근 2년 묵은 시골된장이다. 식당에서 이런 된장 먹기가 이제는 하늘에 별 따기인 세상이 됐다.
식사를 다 마쳤더니 안 주인장이 술떡을 서비스로 제공했다. 아마 멀리서 왔다고 일부러 챙겨주는 것 같다. 다음 일정이 있어 조금만 먹었는데 역시 시골의 순박한 맛이 났다. 복숭아도 서비스로 먹었다. 마트에서 사먹었던 복숭아와 격이 달랐다.
계산을 하고 식당 문을 나서는데 고추 딴 것을 담아놓은 소쿠리가 보였다. 빨간 고추 빛이 강렬했다. 무공해 고추이자 이 식당 낙지볶음 맛의 원천이다. 의령의 다른 식당에 들러서 한 번 더 밥을 먹고 의령의 명물인 망개떡을 포장으로 구매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망개떡을 몇 개 먹었는데 퍽 맛깔스러웠다.
지출(2인 기준) 낙지보쌈/소 3만원+된장찌개 2000원+소주 3000원 = 3만5000원
<자굴산돼지국밥> 경남 의병군 의병읍 의병로 96 055-573-1119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