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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
참 가족 교회
신명기 10장 12- 20절, 마가 3장 31- 35절
한 문 덕 목사
[어버이 주일과 부모 공경]
오월은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5월 5일 어린이날과 5월 8일 어버이날을 비롯하여, 둘이 하나가 된다는 5월 21일, 부부의 날도 있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었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십계명의 제 5계명은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입니다. 부모공경인 제5계명은 바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계명이 됩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자세히 살펴보며 1-5계명까지는 어김없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제5계명은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첫 계명이면서도 하나님과도 여전히 관련 있는 계명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님과는 생명의 뿌리가 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여라”라고 말할 때 “공경”(카베드)이라는 단어도 원래 하나님에게만 쓰던 것을 부모에게도 씁니다. “공경하다”의 원어인 “카베드”의 뜻은 “무겁게 여기다”, “중히 여기다. 소중히 생각하다”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부모님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들의 부모가 우리들을 위해서 자신을 한없이 헌신하고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잘 표현하는 내용이 있어서 소개하겠습니다.
“어머니가 잉태한 지 열 달 동안에는 앉고 섬에 편안치 않음이 마치 무거운 짐을 진 것 같고,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함은 마치 중병을 앓는 이 같다. 달이 차서 아기를 낳을 때는 온갖 고통을 받는데, 잠깐잠깐 증세에 따라 죽음을 당할까 걱정하기도 하고, 마치 돼지나 염소를 잡은 듯 피가 흘러 땅을 뒤덮기도 한다.
이러한 고통 끝에 이 몸을 낳은 뒤에는 쓴 것은 자신이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먹이며, 품에 껴안아 고이 기르고 똥․오줌 빨래하여도 수고롭다 여기지 않고, 추위와 더위를 견디되 고달프다 생각지 않으며 마른자리에는 아기를 누이고 젖은 자리에는 자신이 눕는다.
3년 동안 어머니의 젖을 먹여 아기가 자라 동자되고, 다시 성인이 되면 서둘러 예절을 가르치고, 시집․장가보내기와 보다 큰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갖가지로 돈벌이 사업을 하며, 이고 지고 고생스럽게 품을 팔아 고통이 극치에 이르나 사랑을 멈출 생각은 전혀 없다. 아들․딸이 병이 나면 부모도 병이 나고 아기의 병이 나으면 어머니도 쾌차한다.”
이 글은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부모은중경』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주동 선생이 작사한 “어머니 마음”이라는 노래 가사는 이 책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이렇게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자식은 누구나 자신의 부모를 생각할 때 가슴이 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어떠한가요? 시 한편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함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이번에는 동영상 하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 같은 든든함”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신가요? 또 여러분은 부모로서 자녀에게 어떤 사랑을 베풀고 있나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부모님의 사랑과, 또 나 또한 한 명의 부모로써 어떤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잠깐 살펴 보았습니다만 오늘 저는 좀 더 폭넓게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의 가정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사랑으로 시작된 가정에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의 삶과 가치관은 그의 부모에 의해 거의 결정됩니다. 가정의 경험은 사회의 모든 관계를 맺는 초석이 됩니다.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은 사회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또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모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부모, 형제는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고 지금 나의 가정과 가족관계는 어떠한지 살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현실의 가정 문제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 뉴스를 보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듣기 싫은 소식들이 바로 가정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노인학대나 아동학대와 같은 것인데, 심한 경우는 존속살인으로 이어집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경기남부경찰청이 ‘노인학대 집중 신고․단속 기간’을 운영한 결과 노인에 대한 신체적 학대가 74%나 차지했고, 절반이 넘는 사례가 전부 자녀들이 가해자였습니다.
한국사회의 빠른 변화속도는 전통적인 가족의 유대관계를 해체시켜왔고,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가족이 붕괴되는 현상은 급격히 늘었습니다. 오늘날 삼대(三代)가 함께 사는 가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서울만 해도 5명당 1명이 홀로 사는 노인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결혼한 3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하고 있고,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행해오던 자녀의 양육과 교육도 보육시설과 학원 등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실제 우리나라의 부모가 자녀 상담 ․ 교육 등 자녀 보살피기에 소요하는 시간은 1일 평균 남성은 9분, 여성은 49분에 불과합니다. 가정폭력 사건 또한 줄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에 따르면 가출청소년의 10명중 7명 가량이 가정에서 신체적 학대와 언어폭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아동학대예방센터는 가족학대의 유형을 신체학대 41.8%, 방임 37.5%, 정서학대 9.0%, 성 학대 5.5%, 유기 6.2%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아동학대의 가해자 절대다수가 부모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오늘의 가정의 현실입니다. 우리 교인은 아니지만 제게 상담을 요청해 오는 몇몇의 청년들이 있는데, 그들과 상담을 해보면 거의 대부분 가정으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들 모두를 개인 당사자의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이며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이 사회를 사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 다 같이 고민해 볼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연일 TV뉴스에서 회자되고 있는 어버이연합과 같은 모임에 참가하는 어르신들의 문제도 큰 틀에서는 가족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의 대다수인 72.8%가 월평균 수입이 30만원 미만이며, 10만원 미만도 29.4%에 달합니다. 어버이연합 회원 중 가족을 북에 두고 온 탈북자라면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생존을 위해 더욱 더 알바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이고, 그들이 하루 시위하고 받는 䃲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어버이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전경련의 돈이 흘러 들어가고, 어버이연합의 비상식적인 시위는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시킨 것이라는 의혹이 가득합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국가가 국민을 수단으로 삼아 온갖 정치적 시위에 동원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국격의 타락을 보여 줍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못할 때 가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우리들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고, 또 어떤 자녀가 되어야 하며, 형제자매로 어떻게 더 좋은 가족이 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마저 두 발 두 손 다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가복음을 보니, 예수님과 그의 가족 사이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에 보면 예수의 친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다녔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는데, 예수님의 반응이 영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을 집 바깥에 세워 둔 채로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라고 말합니다. 바깥에 서 있던 가족들이 들었다면 매우 상처받을 말이지요. 그리고 덧붙이면서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예수님이 마치 불효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 만들기]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하는 사실 중에 하나는, 어느 가족의 결정과 방향이, 심지어 그것이 부모 형제가 내린 결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나 진리와는 어긋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들에게는 젊은 청년의 과도한 열정으로 비쳐졌는지도 모릅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예수를 붙잡으러 나서는 예수 가족의 모습은 인간의 잘못된 판단이 하나님의 사역을 막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꼭 하나님의 뜻까지 나아가지 않고 세상적인 일을 결정할 때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이전 세대의 결정이나 태도가 시대에 뒤쳐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어른의 결정을 존중하는 유교적 분위기가 온 사회에 가득한 한국에서 어른들은 잘못된 권위주의를 내세워 자녀들에게 자신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혈연에 기초한 가족 중심주의는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는 가족 이기주의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 습관에 이미 혈연과 지연, 또는 학연에 근거한 가족주의가 존재합니다. 한국인들은 ‘나’라는 대명사를 잘 사용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씁니다. 영어로는 My Car라고 말하면서 한국말로는 “자가용(自家用)”이라고 합니다. 이런 대표적인 예에서 보이듯이, 아직도 한국은 개인과 가족인 “우리”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아들’, ‘내 아내’, ‘내 남편’보다 ‘우리 아들’,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는 말을 더 잘 쓰죠. “내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고 하지요. 제사, 추석과 설, 한식날의 성묘, 매장문화, 족보편찬 등은 가족주의를 더욱 확고히 하는 장치들이기도 합니다. 결혼도 결혼당사자의 결합이기보다 가문의 결합인 경우가 대다수이고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윤리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것이 장성한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을 양산하기도 하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가 패가망신하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가족주의에서 성장한 사람이 지역이나 학벌과 같은 연고주의나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면 공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대신 남의 말에 휩쓸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됩니다. 윗사람이 명령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 준다거나, 지연이나 학연으로 얽힌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등 부정부패가 심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상식에 근거한 사람들의 협동과 건강한 연대가 아니라 이익과 연고에 따른 패거리 문화에 쉽게 젖어들게 됩니다.
두 번째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족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부간의 사랑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뛰어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참 가족 교회’라고 붙였습니다. 우리말에도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듯이, 멀리 있는 자녀들보다도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자식 같을 수 있고 가족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 공동체는 새로운 가족이며 참된 가족이 됩니다.
이 새로운 가족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욕심이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물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성서에 보면, 세상에 신도 많고 주도 많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신인 까닭은 고아와 과부의 인권을 세워주시고, 나그네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돈에 현혹되어 가진 자들의 편에 서지 않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모세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들은 어느 한쪽을 편드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기울어진 저울추를 바로 잡는 말들입니다.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고통당하는 대다수의 민중, 특히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것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어느 집단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개인이나 가족, 지역, 연고, 학벌 등등의 온갖 배타성을 띤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적 윤리를 고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찰한다면 외부의 부조리, 불의, 부정부패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기존의 상식이라고 하는 것이 소수자와 약자를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된다면 그 상식보다 더 큰 포용적인 기준들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수 주변에 함께 모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스스로 답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셨을 때, 자매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지만, 답에서는 자매들이 등장하고, 질문에도 대답에도 ‘아버지’는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1세기 유대 땅에 살던 사람들 중 여자 형제, 즉 자매들은 별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여성들은 가장인 아버지의 소유물처럼, 또는 결혼했을 경우 남편의 소유물처럼 여겨졌습니다(출애 20:17). 또 1세기의 아버지는 매우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해야 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새로운 가족에는 이 아버지가 빠집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매들이 들어갑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새로운 가족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평등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 사이에서 힘의 논리가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민주사회가 된 오늘날도 여전히 가정 폭력이 난무하고 매 맞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이지만, 아버지의 난폭한 폭력이 마치 권위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그 시대에 예수님은 벌써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런 과격한 말씀이 오늘날 참으로 좋은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참된 가족은 어때야 하는가?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인 교회 공동체는 어때야 하는가? 가족 이기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남의 가족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우리 가족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해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또는 가족구성원이 서로 사랑하고 평등하게 지내지 못하고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1956년 어머니날을 만들었다가 1973년 어버이날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많은 나라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을 따로 지키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여러 나라가 어머니의 날을 만들게 된 데에는 미국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지 3년 뒤인 1868년, 앤 자비스라는 여성이 ‘어머니들의 우정의 날’을 만들었습니다. 남과 북이 나뉘어 싸운 남북전쟁의 상처는 매우 깊었고, 그 전쟁에서 자식을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나 보내야 했던 어머니들, 그리고 다리나 팔을 잃어 장애인이 된 자식을 보아야 하는 어머니들끼리 위로하고 응원고자 했기 때문이었고, 이런 모임이 이어졌습니다. 어머니날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계기는 ‘어머니들의 우정의 날’을 만든 앤 자비스 여성의 사망이었습니다. 자비스의 딸 애나는 1905년 5월 9일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으려 노력했던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교회에서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임’을 만들었고, 이런 모임이 각지로 퍼져 나가자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전사한 아들을 둔 어머니들의 노고를 기리는 날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어머니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하여 84개국은 매년 5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했는데 올해는 우리의 어버이날도 오늘이라 오늘 85개국의 나라가 같은 날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어버이 날에는 흔히 어버이 은혜를 기억하며 붉은 카네이션을 선물로 드리는데 바로 이 카네이션은 앤 자비스 여성이 좋아하던 꽃이었고, 본래는 흰 카네이션이 어머니날을 대표하는 꽃이었으나, 흰 카네이션의 별로 없어 품귀 현상이 일어나자,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분홍색 카네이션을 쓰고 돌아가신 경우에만 흰 카네이션을 쓰는 것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날은 단순히 부모님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내 가족, 내 부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고자 어머니의 날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안목을 제공합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5월 가정의 달, 여러분이 가정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온 생명체의 진정한 어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생명사랑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의 새로운 가정이 됩시다. 우리 공동체는 어느 공동체보다도 사랑이 넘치고, 평등한 공동체가 됩시다. 어른이든 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늙은이든 젊은이든, 직분자이든, 직분자가 아니든 서로 사랑하며 아껴주는 가족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가 되고,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에게 가족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은 사랑으로 탄생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 가득한 가정과 가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키워 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대를 이어 하나님의 뜻을 이어나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보며 기뻐하고, 우애 넘치고 웃음 넘치는 가정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 생명사랑공동체가 예수님의 참다운 가족이 되게 하셔서, 이곳에 머무르는 모든 이들에게 쉼과 평안과 행복을 허락하소서.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것을 행하여 참된 가족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증거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참된 가족이 되고자 하는 우리 생명사랑가족들 위에, 모든 자녀들을 위해 몸을 내 준 이 땅의 부모님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