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7,10-14; 루카 1,26-38
+ 찬미 예수님
많이 추우시죠? 날도 춥고 길도 미끄러운데 미사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예고했는데요, 오늘 복음은 바로 이어지는 대목이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십니다.
어제 복음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일인데, 오늘 복음은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제의 복음은 사제가 직무를 수행하며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하던 중에 일어난 것이고, 오늘 복음은 시골 처녀가 집에 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바뀌어야 맞지 않나’,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성전이라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장엄한 전례 중에 일어나야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예고에 대해 즈카르야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직역하면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이고요, 이는 증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천사는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구약의 말라키 예언자 이후 오랫동안 침묵해 왔던 이스라엘 예언자 전통을 의미합니다.
이에 비해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으십니다. 즈카르야가 ‘증거’를 요구했다면, 성모님은 ‘설명’을 청하십니다.
천사는 성모님께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덮을 것이다.’(에피스키아세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에 다시 등장하는데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에페스키아젠; 루카 9,34 등)는 말씀에서 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또한 탈출기에는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었다’(탈출 40,34: וַיְכַ֥ס)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를 희랍어로 번역하면 같은 단어가 됩니다.(칠십인역: 에페스키아젠 ἐπεσκίαζεν)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기 전, 하느님께서는 만남의 천막에서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는 바로 성모님의 태중에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으로 가득한 살아 있는 성전이 되십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는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하러 성전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살아 계신 성전 앞에서 그 소식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의 이 말씀으로 구세주는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탄생 때까지 침묵을 지켜야 했던 즈카르야와는 달리, 성모님께서는 엘리사벳을 만나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심으로써 새로운 성전이 되시는 성모님처럼, 우리 또한 성체를 모시고 말씀을 우리 안에 모심으로써 새로운 성전이 됩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의 마음으로, 우리도 성탄까지 남은 5일을 거룩한 기쁨과 희망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평화의 말을 전하며, 다른 사람이 나를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도록 살아가려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