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아 목사
도입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삶에 만족하십니까?
이대로 생을 마쳐도 괜찮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많은 행복에 대한 조건들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마다 제각기 행복에 대한 가치가 다릅니다.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플라톤은 다섯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절반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플라톤이 제시한 행복의 조건 다섯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부족함'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 행복의 조건에서 얼마나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느끼십니까?
우리의 옛 선 조들은 행복한 삶의 조건을 五福으로 표현했는데, 五福이란 오래 사는 壽, 부귀영화의 富, 건강하고 평안한 마음의 康寧.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攸好德, 그리고 타고난 수명대로 살고 편하게 죽은 考終命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인간은 저마다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인간 모두는 행복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 건강해야 됩니다. 건강은 행복의 가장 큰 요소입니다.
독일의 격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재물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 건강을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의 기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는 잘 모릅니다. 건강을 잃고서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압니다. 우리는 건강을 잃었을 때 건강을 되찾으면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도 건강을 잃어버리고 행복하게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할 일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때로는 일 때문에 시달림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할 일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마음에 허무를 느끼고 공허해지기 시작합니다. 일찍 퇴직한다든지 은퇴하게 될 때 인생은 굉장히 비참하게 됩니다. 일할 수 있는 특권이 있을 때 행복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는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고대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어떤 사람이 가장 불행할까?"라는 토론을 벌였습니다.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부모가 없는 고아 등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오는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보람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보람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기 하는 일에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즐겁게 사는 것만 사는 것입니다. 불평하며 원망하며 살았던 시간은 그야말로 공친 것입니다. 허송 세월한 것입니다. 구멍가게를 해도 보람으로 여기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초가 삼간 단칸집에서 살아도 낙으로 여기면 행복한 것입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면서 힘은 들어도 속은 썩어도 그 자식이 부모에게 즐거움을 줄 때 효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성도가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입니다.
부부가 산다고 행복한 것 아닙니다. 살아도 서로 즐거움을 주어야 됩니다. 만나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싸우는 사람은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이 사람과 결혼하기를 잘했지' 이런 마음이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과 결혼한 것은 결정적인 실수다.' 이런 마음이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또 태어난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만 날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행복이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보람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행복한 것 같은 데 행복해질 수 없는 경우를 설명하고 인간의 눈으로는 행복의 조건이 아닌데도 행복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솔로몬의 행복론에 대한 특강을 듣도록 합니다.
오늘 당신은 행복을 창조하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의 행복론입니다. 그는 모든 행복의 조건을 다 경험하고 행복의 전도사로 우리 앞에 말씀하십니다.
1.물질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 자
1)돈으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 물질의 가치를 행복의 조건으로 제시한 사람은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풍족하면 행복할 것 같아도 넘치게 풍족해도 만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10절)
2)재산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면 행복할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으면 딸린 식구도 많아지고 소비도 많아지는 법입니다.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 하느냐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포도 원도 별장도 많은 소 떼도 양떼도 많은 부동산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진정한 행복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11절)
3)오히려 해가 되며 걱정이 더 많아집니다.
소유가 많으면 그 소유를 지켜야 하는 염려와 근심이 있습니다. 밤잠을 자지 못하고 궁리하여 경영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오히려 노동자는 잠을 달게 자는데 부자는 밤잠을 자지 못하고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되어 정신도 몸도 망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12-13절)
4)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한번 재난을 당하면 몽땅 빚더미에 놓이게 됩니다. 대우가 그렇고 현대가 지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결국은 그것도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빚좋은 개살구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빈 털털이로 아무것도 유산으로 남길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재물이 재난을 인하여 패하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14절)
5)돈을 사랑하는 자의 결국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15-17절)
어두움/번뇌/병/분노로 삶을 살며 종국에는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세 사람이 불려갔습니다. 염라대왕이 생명 록을 보니까 아직 죽을 사람들이 아닌데 저승사자가 잘못 데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염라대왕이 세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자네들은 되돌아가서 몇 년 더 살다 와야겠네. 우리가 실수해서 잘못 데려온 대가로 자네들에게 소원 한가지씩을 들어주겠네. 각자 소원을 말해보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저는 세상에서 너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돈 많이 가져보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돈을 듬뿍 주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돈이란 권세와 함께 오는 것입니다. 권세를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권세를 주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돈도 권세도 필요 없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즐겁게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염라대왕이 "예끼놈 그런 자리가 있으면 내가 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는 물질로도 재산으로도 만족함이 없고 행복의 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증가된 부가 근심을 더하게 하며 경계를 더하여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어 결국은 수고와 슬픔뿐 누리지 못하고 소유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인생의 황혼녘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2.행복의 가치를 하나님께 두는 자
1)수고하여 먹고 마시는 분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 복이로다(18절)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전2:2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음식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공기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온 우주, 지구, 자연 전체가, 인간이 누리는 것이 다 결국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얻게 하시며 수고하여 낙을 누리게 하신 다는 말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천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이 말씀을 믿는 자는 매일 매일의 삶이 즐겁고 감사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고 미련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 문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우리 삶을 만족하게 하시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출애굽기 23장 25절에 모세가 말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양식과 물에 복을 주시고", 즉 이 모든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깨달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기쁨으로 살아야 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수고를 통하여 재물과 부요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 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19절)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일을 통해서 축복도, 행복도 만족도 주신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일하십니다. 우리 주님도 일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일하여야 합니다.
일은 행복의 절대 조건입니다.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 노동은 대가를 지불해 줍니다. 물질적인 대가 정신적인 대가도 건강에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 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일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도 감독자가 없습니다. 또 주권자도 없습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일을 해야 합니다.
봉사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감독자라고 믿고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주어진 직분에 열심을 다 해야 행복도, 성공도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났다 세상을 떠나는, 죽음으로 맺는 인생, 그런 우리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다 놓고 가야 합니다. 주고 가야하고, 남의 손에 다 넘어갑니다.
애지중지하던 금가락지, 다이아몬드 반지도 죽을 때는 놓고 가야 합니다.
땅 덩어리도, 집도 놓고 가야 합니다. 남편도 놓고, 아내도 놓고, 부모도 자식도 놓고 가게 됩니다. 세상에 무엇하나 우리에게 끝까지 보장된 것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소유하고 있더라도 "이것도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거룩한 노동입니다.
주의 일이란?
1)현재 내가 맡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직장,가정,학교)
2)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8-29)
3)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존 위너메이커는 백화점 왕이었습니다. 그는 "내 본업은 백화점 주인이 아니라 주일하교 교사다"라고 고백합니다.
내 육신도 내 생명도 내 가정도 내 직장도 내 재물도, 주를 위하여 쓰이게 될 때 나의 모든 것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이 땅엔 좀슬고 도적 맞고 손해봅니다. 그러나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사람은 부유한 자입니다. 그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에게 인정받아 30배 60배 100배로 축복을 주십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건강의 축복을 주십니다.
3)자족의 은혜로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라”(20절)
복된 신앙의 사람은 생명의 날을 걱정, 근심하지 않습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삽니다. 주신 것을 분 복으로 알아 누리고 삽니다.
인생의 문제로 걱정, 근심, 불안에 떨지 않습니다.
지난 고통이나 눈물의 날을 기억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신 은혜를 헤아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약속을 바라보고 소망가운데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삽니까?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면서, 탄식하면서 눈물을 흘립니까?
헛되게 살았다고 비관합니까?
그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요, 더 나아가서 역경과 곤란을 극복하고 승리를 이끌어 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서 다윗 왕은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 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은 부요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원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만족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자기 인생의 미래를 위해서 걱정, 근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내일은 내일 걱정하고 그 날 아주 충실하게, 정직하게 사는 사람,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행복과 승리가 주어집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 말씀에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함이라."
예수께서 우리 마음속에 기쁨을 주시되 충만하게 주십니다.
어느 부인은 항상 기쁘게 삽니다.
집에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 때도 기쁩니다.
"내가 맛있게 만들어서 우리 집안 식구들을 기쁘게 해야지." 정성껏 요리를 합니다.
또 집에서 빨래하고 소제할 때도 기뻐합니다.
"깨끗하게 옷을 빨고 다려서 입히면 참 예쁘고 멋있겠지."
그렇게 꿈에 부풀어서 빨래도 하고, 소제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부인은 기쁨이 없습니다. 모든 게 귀찮습니다.
"내가 뭣 때문에 여자로 태어나 집에 틀어 박혀서 빨래만 하나?"
이 기쁨이 없는 여자는 밥을 하는 것도 귀찮아서 "나가서 사먹지 꼭 집에서 밥을 해야 해?" 합니다.
밥하기 싫어서 밥에다 물을 팍팍 부어서 죽을 만들고, 반찬 만들다 손가락이나 탁 베서 반창고나 붙이고, 그릇 옮기다가 그릇이나 깨먹습니다.
이런 여자는 얼굴에 주근깨가 다닥다닥하고 기쁨도 없고 만족도 없고 늘 짜증만 있습니다.
사람의 사람됨은 그의 희로애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슬퍼하느냐? 남들이 웃을 때 함께 웃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입니다. 함께 울어주는 사람은 인격자입니다. 남이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울어주는 사람은 인격자입니다. 기쁨을 얻고 기쁨을 나누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바야의 성녀 테레사는 수녀원에서 수련 수녀들을 선발할 때에 선발 기준이 있었습니다.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을 선발하였습니다. 잘 웃는 사람은 정신이 건강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봉사 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수녀원은 잘 웃는 사람을 선발했기 때문에 얼굴만 봐도 수도가 되었습니다.
잘 웃는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웃는 동안에는 서로 미워할 수 없게 됩니다. 교회에서 잘 웃는 성도가 교회를 행복하게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잘 웃습니다.
불교에서 '안시'(顔施)라는 것이 있습니다.
얼굴로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불도 중에 한 사람이 손과 발이 없어 부처에게 드릴 것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처에게 묻습니다. "부처님, 저는 손과 발이 장애가 있어서 자선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네 얼굴로 해라" "어떻게 얼굴로 자선을 할 수 있습니까?" "네 얼굴로 웃어라"
손과 발이 마비된 사람이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계속 웃어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러 올 때 인상쓰고 오는데 장애자가 웃고 있으니 얼마나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 얼굴이 놀라운 부처의 적선이 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못 주지만 얼굴로 웃어주면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다. 남편에게 웃어주는 아내보다 더 좋은 아내는 없습니다. 교회에서 웃는 장로님은 훌륭한 장로님입니다. 어떤 분은 웃지 않고 있는 것을 큰 경건으로 아는 분도 있습니다. 웃지 않는 것은 그 마음에 주님을 모시지 못한 증거요, 평안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내 속에 있는 마음을 비워야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어서 내 속의 독을 다 빼낼 때 웃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즐거움을 내가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은혜는 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서로 위해주려는 마음 속에서 가능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기쁨을 빼앗아 가는 오적이 있습니다.
☛첫째, 내 마음에 있는 탐욕이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좋은 집을 보았을 때 '참 아름답다'라고 느끼면 기쁩니다. 그런데 '저 집이 언제 내 집이 되나' 하면 기쁨이 없어집니다.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는 야욕입니다.
지나친 성취 욕은 기쁨이 없습니다.
☛셋째는 질투하는 마음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질투하는 사람은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넷째는 분노심입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끊임없이 혈기가 나고 안될 말하고 후회하고 남의 마음에 상처 내서 제 마음 아프면 편할 날이 없습니다.
☛다섯째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죄지은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마음이 성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즐거움과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다스려야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 내 정과 욕심을 비워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주님의 뜻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미국에서 잘 웃지 않는 초등학생 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왜 웃지 않을까를 조사했는데 체내의 부신발육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웃지 않는 것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기쁨이 없고 정신적으로 평안이 없고 육체적으로 온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명랑하고 잘 웃는 사람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우울증이나 정신병, 불면증, 신경성 위장병, 고혈압, 심근 경색증 같은 현대 성인병들이 명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현저하게 적다는 사실입니다.
갱년기가 오면 여성들이 화를 잘 내고, 말다툼을 하고, 소외감을 느끼고,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자녀들에게 불만을 품는 것은 호르몬의 부조화 때문이라고 합니다. 갱년기에 가장 좋은 약은 웃는 것입니다. 웃는 것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우리가 태어날 때 갖고 있는 성격이 어떠하든지 성령은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과 기쁜 영혼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기쁨이 없을 때 성령 충만을 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웃음을 마음에 담아야겠습니다. 이 웃음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웃을 수 있습니다. 내 감정, 내 욕심이 그대로 있는 한 웃지 못합니다. 나를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듯이 우리가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웃음이 솟아오릅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별세시켜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4:11b-12
결론
행복을 찾기 위해 물질을 추구하여 재산을 모아도 결국은 빈손으로 가는 인생 하나님보다 은을 더 사랑하는 것 헛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풍요 그것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가난한 노동자는 잠을 달게 자지만 하나님 함께 하시지 않는 부자는 그 배부름이 짐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 재물을 지키지만 재난으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하나님 없는 돈 ,재산, 명예 결국은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만이 있을 뿐이라 솔로몬은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일을 위한 수고 속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준 일에는 가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참기쁨,참만족,참행복인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아내인 룻과 함께 카리비안 섬에서 의 일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한 사람이 자신의 화려한 집으로 우리를 점심식사에 초대했습니다.그는 75세였는데, 식사 시간 내내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저는 이 세상 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밖에는 요트가 있습니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개인용 비행기도 있고 헬리콥터도 있습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비참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빌리 그래함 부부는 그 지역 목사님의 방문을 받았는데 그 목사님도 75세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충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는 제 이름 앞으로 2파운드도 갖고 있지 않지만 이 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은 아내 룻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보 두 사람 중 누가 더 부자라고 생각해요? 누가 더 행복한거요?"
지금 이 질문에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은을 추구하였으나
은으로 만족이 없고
풍부를 원하였으나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으니
채울 수 없는 터진 욕망의 웅덩이라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늘어나고
소유의 넉넉함으로
눈요기나 할거나
보아도 족함이없는 안목의 정욕이라
일하는 일꾼은
먹는 것이 많던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재물을 지키느라 근심에 싸이도다
곡간을 헐고
산처럼 쌓던 재물에
재난의 바람이 할퀴고 간 후엔
어두움 가운데
번뇌와 질병과 분노로 충만하도다
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아래 수고하는 중
얻은 것을 자족하며
재물과 부요를 누리며 기뻐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당신의 선물 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