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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6
도피성 / 박광성 목사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3.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4.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5.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찌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찌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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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생존 경쟁이 치열한 세상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 모든 무거운 짐들을 다 떨쳐 버리고 조용한 곳에 가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을까? 그러나 먹어야 사는 존재이고, 딸린 식구가 있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기에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입장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우리 현실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피할 곳이 없을까요?
안전하게 지내고 평화를 만끽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이 없을까요?
오히려 그것을 바라고 그것에 대해 집착을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상실해 버리고 현실과 괴리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낙오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나오게 하시고 이제 모세를 이어받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역 분할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하시길 "너는 도피성을 만들어라." 이 도피성이라고 하는 것은 피할 수 있는 성이란 말입니다.
Place of refuge! 좀더 정확히 말하면 City of refuge! 하나의 성을 만들되 그 성은 모든 사람이 들어가서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성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 땅에서 실수를 했다든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도피성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그 사람을 잡으러 따라 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여기는 신성 불가침 구역입니다. 그리고 거기는 제사장이 지키는 것입니다.
도피성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주고 있고 또 우리에게는 독특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좀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민수기를 보겠습니다.
민수기 35장 10절-11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에게 정당한 재판을 받는 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 도피성을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 16절부터는 오살자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제는 고살자입니다. 철 연장을 들고 사람을 죽였다 할 정도면 고의적으로 죽인 것입니다. 죽이겠다는 의도와 계획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고살자와 오살자의 차이를 잘 아실 겁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선을 그어놓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서 22절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다 하자, 이는 원한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 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 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그러니까 이 사람은 도피성으로 도망하도록 할 것이며 거기에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나오면 피의 보수자가 이 사람을 죽여도 이 피의 보수자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28절을 보면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이는 너희 대대로 거하는 곳에서 판단하는 율례라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고살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한 사람 말만 듣고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죽일 것인데 이 사람에게는 절대로 보석금도 받지 말고 생명의 대가를 물질로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도피성에 피한자를 대제사장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지 말고...' 역시 보석금입니다. '그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것이니라' 간단하게 다시 정리합시다.
본문을 조금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는 세 사람을 등장시켜 이야기 합니다. 하나는 고살자입니다. 또 하나는 오살자입니다. 그리고 보수자라는 것이 나옵니다. 보수자라고 하는 것은 고살자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인간으로서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면 고살자가 내 가까운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을 살려 두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나의 가까운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자기도 죽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고살인지, 오살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두 말할 필요 없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했다면 변명할 수 없습니다. 고의로 죽였든 실수로 죽였든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을 때, 그 마음속에 올라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하자면 인간이 인간의 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은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마귀는 그 감정을 기막히게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성경에는 '그 고의로 죽인 사람을 죽이라'고 말하십니다. 이 고살자를 죽이는 제도가 고엘제도 입니다. 고엘이라는 말은 보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고엘제도를 가지고는 절대로 해결이 안 됩니다. 우리가 먼저 시인해야 될 것은 인간의 감정은 인간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감정적으로 상했던 사람이 만나 화해를 한다고 합시다. 그 화해가 진정 100% 이루어지고 그 마음속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온 경험을 가져본 사람 몇이나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참 평화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피난처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실지로 우리 가운데 나는 오살자도 아니요 고살자도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네 마음에 형제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한 자다 고 말씀하십니다. 한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형제를 두고 미워한다면 그 사람은 고살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아주 독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죄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고엘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고엘제도와 도피성 제도를 함께 두신 것이 아니라 고엘제도 위에 도피성 제도를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엘제도를 주신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도피성을 주신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하였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어떤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씨름하지 말고, 고민할수록 실수만 많아지니 피난처 되신 하나님, 그 도피성에 자기 자신을 집어 넣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나에게 진정한 도피성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시편기자는 진정한 도피성이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치 않게 하시며 나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라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 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고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기도할 것이요, 참 피난처이신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맡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감당치 못할 어려운 일들과 비록 어리석고 미련해서 행한 일들이 있다면, 참 피난처 되신 하나님의 품으로 뛰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 도피성은 진정 누구를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모든 죄를 내어 놓으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건져 주시는 분입니다. 참 피난처!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도피성을 몇 군데를 만들어 주셨나요?
요단강을 놓고 동편에 3개, 서편에 3개입니다.
그런데 서편에는 게데스, 세겜, 헤브론 그리고 동편에는 골란, 길르앗라못, 그리고 베셀이라는 곳입니다.
그 지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한 번 들어 볼 만합니다.
게데스는 '성소'라는 뜻입니다.
세겜은 '어깨' 라는 뜻입니다.
헤브론은 '친교와 동맹'이라는 뜻입니다.
베셀은 '요새'입니다.
길르앗라못은 '높은 고지' 그리고 골란은 '기쁨'입니다.
이것들이 전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과 관련된 단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의 도피성입니다. 우리의 죄악의 도피성입니다. 그 속에서 참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동편과 서편에 세 개씩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어디서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의지하면, 그 안에서 참 안식과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도피성을 주셨음을 감사합시다. 어려운 문제가 있고 내가 실상 잘못해서 어려움을 당했다 할지라도 예수 앞에 나와 그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평강을 얻을 수 있는 도피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연히 범죄를 저지르면 도피성으로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서 수많은 사람이 뒤따라왔다 할지라도 그 입구 안으로는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 아십니까? 우리가 언뜻 보면 하나님은 '고살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만 끝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공의(고엘) 위에 긍휼과 사랑(도피성)이 있으신 하나님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도피 성으로 들어오면 보호하시고 그 곳에 머무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죄를 고백했습니다. 아직도 죄악을 고하지 아니하고, 나의 상황을 고하지 아니하고 그 도피성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들어오셔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셔야 합니다. 나중에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때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보호하는 자가 죽는다는 것은 이 자를 대신해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는 표현을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셔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죄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 속에 살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안식처일 뿐 아니라, 오늘 현실의 문제들을 안아주시고 그 안에서 우리가 안식을 얻고, 새 힘을 얻게 하시는 우리의 도피성임을 믿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 :28)
예수 그리스도! 그 도피 성으로 들어오십시오.
예수와 더불어 산다면 이제 우리는 어느 한 곳에 주둔한 도피성이 아니라, 움직이시는 도피성!
어디서든지 역사하시는 도피성안에서 평화를 누리면서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모든 일들을 감당케 하시는 능력을 체험케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도피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