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7-21
역사 바로 세우기 / 김중석 목사
요한복음2:13-17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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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토요일 까지 일주일 동안 읽을 성경은 열왕기하10-12장인데 이 비슷한 내용이 역대하22장-24장에 있기 때문에 두곳을 다 읽으시기 바란다. 왜 성경은 비슷한 기록을 두곳에다 기록해 놓았나? 열왕기는 이름 그대로 ‘열왕’들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라면 역대기는 선지자와 제사장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 두곳 성경을 읽으면서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의 비극적 상황을 접하게 되는데 특히 유다나라에 왕통이 일시적으로 끊어지는 상황이 나타난다.
‘아달랴’라는 여인이 등장한 것인데 이 여인은 북쪽 이스라엘의 악한 왕 오므리의 손녀로서 남쪽 여호람의 왕의 아내가 되었었는데 아들인 유다왕 아하시야가 북왕국 이스라엘왕 요람을 보러 갔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자 일어나 왕의 씨를 지멸하고 자기가 섭정을 펴기를 6년간이나 하였다. 이 암울한 상황을 걷고 다시 왕자 요시아를 세워서 왕통을 바로세운 인물이 바로 제사장 여호야다였다. 여호야다의 나라 바로세우기를 읽다가 문득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 말은 아마 김영삼대통령 초기에 나타났던 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세상사 무상하다.
성경이 가르치는 [역사바로세우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1. 義의 싹을 키워야 한다.
아달랴가 왕의 씨를 진멸할 때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하였다. 이 여호세바의 남편이 바로 여호야다였기에 요아스 왕자는 성전에서 숨겨져 길리웠다. 6년동안을 숨겨 키웠다.
서슬이 시퍼런 아달랴에 비하면 요아스는 그야말로 풍전등화 같은 미약한 존재였으나 “정통성”을 가졌기에 여호야다 부부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요아스를 키운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상해임시정부가 전문에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정통성 문제 때문이다. 역사바로세우기 때문인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정통성을 주장했는데 그것이 약하니까 재작년에 ‘단군능’을 아주 커다랗게 평양외곽에다 세워놓았다. 일본에게 더럽혀진 한민족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안타깝게도 남북에서 따로 따로 전개되었다. 해방이 되었을 때 한민족의 정통성을 이어줄 의의 뿌리가 하나이지를 못했다. 상해임시정부가 있었으나 오랜세월 미약해져서 여러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의의 싹을 잘 키우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다 여호야다 같은 역할이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미국과 쏘련이라는 두 세력은 각각 계산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러갈래난 의의 뿌리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세우지를 못하고 각자 한 개씩 두 개를 세우니 두 개의 나라 분단이 시작되게 되었다.
역사가 바로서지를 못하고 기우뚱거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의는 무엇일까?
우리가 키워야 하고 우리를 하나로 묶어서 우리민족의 역사를 바로세워 줄 의는 무엇인가?
북한의 주체가 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공인된 사실이다.
그러면 남한에서 찾아야 하겠는데 남한의 무엇에서 의를 찾을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들수 있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의는 {하나님의 }이다.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좌우로는 사람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래로는 아름다운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바로 의다.
베트남을 요즘 한국 사람들이 다닌다.
그들이 말한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한다기 보다는 민족주의일 것이고 민족주의 보다는 잘사기 운동을 하고 있다. 잘살기 위해서는 민족자존이 필요해서 프랑스하고도 싸웠고 미국하고도 싸웠다.
이제는 잘살기 위해서 경제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이모이정책 경제우선정책을 펴는 것이다.
공산주의건 민족주의건 다 잘살기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독립을 이루고 경제가 발전하면 잘사는 것인가?
그런 나라들이 다 망하지 않았던가?
로마도 망했고 영국도 시들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 나라나 민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서 오르기도 하고 내려앉기도 했다는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남한에 있는 ‘하나님 경외’를 잘 키워야 한다.
남한에는 교회가 4만개소가 넘는다. 신자가 1200만명이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노폐물들도 섞여있다.
노폐물 같은 것을 제거하고 순수한 하나님 경외를 키워나가는 것이 역사바로세우기의 첫째다.
교회가 썩었다고 언성을 높이는 이도 있자만 엘이야 시대에 캄캄한 것 같아도 때묻지 않은 7천인을 남겨두셨다고 한 것처럼 이 남한에는 귀한 믿음의 열정을 간직한 의의 뿌리들이 많이 도처애 있다고 믿는다.
이를 찾아 키워야 한다.
또 북한에도 지하에 의의 뿌리가 있다.
이를 키워야 한다.
식량을 보내도 엉뚱한 곳으로 가기에 이제부터는 우리도 지혜롭게 해야한다. 직접지원의 길이 열리고 있다. 이를 통해 직접 물건을 전달하고 믿음도 전달한다. 이는 참 구제다. 또 복음전파는 어떤 경우에도 중단할 수 없다. 북한당국이 아무리 싫어해도.
2. 악을 제거해야 한다.
아달랴가 이미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모든 방백들이 거기에 복종하고 있다. 경찰력도 거기에 있다. 이에 대항하여 악을 제거하는 것은 혁명 그 차제였으며 어려운 일이었다. 결단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때 여호야다는 고령이었다. 그가 130세에 죽었는데 요시아가 47세에 죽었으니 혁명할 때 90세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달랴를 제거하는데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사람들도 동원되었다. 주도면밀하게 계획되고 일치하게 실천되었다.
엊그제 러시아 두마의 외교위원장 루킨과 미국 해리티지 연구원 플렁크의 애기를 들었다.
다들 자기나라 입장을 생각하면서 북한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나?에 대하여 의견을 피력하였는데, 그들의 애기를 들으면서 역사는 토론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인민을 저렇게 괴롭히는 악을 제거하는데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과 지금 필요한 일을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인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준비도 않고 돕지도 않고 복음을 전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될 것이다 저렇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우리 주변의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저항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당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든지, 페차부속품을 다시 순정품처럼 탈아먹는다든지, 오염된 시화호의 고기를 잡아서 양어장의 사료로 쓴다고 해놓고는 시장에 내다 판다든지, 경선을 해놓고서는 거기에 승복지 않는다든지, 권력구조를 대통령되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뜯어고치려 든다든지,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분명히 하고 손을 보는 것이다.
잘못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당장 내 피부에 와닺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경우, 이는 방조죄로 보실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시민경찰이 되야 할 것이다.
역사 바로세우기는 작은 데서부터 큰데까지 악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시작은 했으나 지금 좌초했다. 다시하자
3. 여호와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17절에 [왕과 백성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했드시 이 나라의 지도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도 하나님을 경외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시144:15 “여호와를 자가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미국이 현재 세계의 초강대국인데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서 미국의 앞날이 결정될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통일대장정을 생각한다. 이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기독교인들이 모래알 같다. 교회 문을 나서면 도도한 세상의 물결이 흘러간다. 그 속에 들어가면 같이 떠내려 가지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엘리야도 “나만 남았사오니 나를 여기서 죽여주시오”했다.
그러나 너만 있는거 아니다. 7천인이 있다고 하셨다.
기독교인들이 힘을 합해야 한다. 그래서 이 한국을 되는 방향으로 몰아가야 한다.
모래알 같으면 아무 힘이 부족할 것이나 삼겹줄은 끊어지지 아니하며, 의인 열명은 도성을 건질 수 있다고 했다.
의인 천명이면?
지금 남한에는 의인이 얼마나 될까?
엘리야 시대에 7천이면 남한에는 7만도 되지 않을까?
문제는 힘을 합하는 것이다.
규합하는 것이다.
이를 통일대장정이라 한다.
통일이라는 시대적 사명 아래 우선 우리 기독인들이 힘을 모으고 이어서 뜻을 같이하는 백성을 모아서 함께 나아가게 한다.
그리되면 이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불평하고 비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청년들이 술먹고 담배피우는 것을 보통으로 알고 때로는 멋으로도 느낀다고 한다. 그건 겨우 어른 흉내내는 것이다. 자기가 어른임을 확인라도 해보겠다는 모양이나 그렇게 해서 어른되는 것인가?
"새벽 이슬같은 주의청년“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데 이는 깨끗하고 주의 도구로서 잘 준비되는 청년들을 말할 것이다.
청년이 썩으면 그 백성은 소망이 없다.
어른과 청년이 합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회 속에서 힘을 합해서 이 백성을 살게끔 인도해 내는 일에 책음을 져야만 한다.
복음으로 통일하는 통일대장정을 위해 기도하기 바란다.
어제 기독교TV에 새로된 총회장들이 나와서 대담을 하는데 북한교회재건이 술술 나온다.
감사했다.
한국교회 소망있다.
이 민족에게도 소망이 한 조각 구름처럼 떠오르고 있음을 본다.
온 이 땅의 크리스챤들이어 일어나라! 힘을 합해서 이 백성을 살리고 저 북도 살리고 통일도 하나님에게서 받자.
요2:13에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데 거룩한 분노가 그를 삼켰다고 했다. 예수님은 교회를 바로세우기 원하셔고, 하나님의 집을 바로 세우시려고 이땅에 오셨다. 그리고 세우셨다. 먼저 우리 마음에, 교회에 그리고, 우리가 밤낮 기도하는 주기도문에서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이다” 하듯이 이 땅에 주의 나라를 바로 세우시려고 오셨다. 죽으셨다. 그리고 마침내는 다시오실 때 새하늘과 새땅에서 완벽하게 나타내실 것이다.
바로 세우자. 말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나와 주님과의 관계를 바로세우고, 사회에서 행할 때에 성경에 가르친대로 바로세우고, 기독교인들이 힘을 합하여 이 백성을 나라를 민족을 책임지자.이제부터 역사를 바로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