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 : 5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지혜 -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는 그런 자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적절하게 진리의 지식과 믿음과 지혜가 있는 자들을 세워 주실 것이다.
1]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고린도 교회의 소송 문제에 대한 바울의 솔직한 심정이 표출된 본 절의 뜻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교인 중에 경히 여김을 받는 자를 세우라'고 말한 것은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희가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 (E.B. Allo).
그것은 본 서신의 전반부에서 자기의 지식을 자랑했던 고린도 교인들의 자만심에 비해 현재 그들의 초라한 상태를 지적하려는 것으로서 '정말 너희 중에 그 분쟁을 해결하거나 중재할 만한 지혜자 하나 없느냐'라는 풍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L. Morris).
바울이 4: 14에서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으나 본 절에서 그 의도를 바꾼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듯 한 심한 풍자를 사용해서라도 법관들에게 양도되어 판단 받는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다.
사도가 그들을 향한 지대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깨닫게 하고 반성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한 이 면박(面駁)은 결국 그들을 명예롭게 할 것이다. (J. Calvin).
2]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1) 판단할 만한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크리나이'(*)는 부정 과거부정사로서 재판에 대한 판결이나 결정이라는 의미보다는 두 사람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여 해결한다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Morris).
형제와 형제 사이에 발생한 분쟁은 재판의 판결이라는 것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의지와 조정자의 중재에 의하여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하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런 지혜자 한 사람 찾지 못했다.
(2) 바울은 말한다.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교회가 성도 간의 문제를 재판하기 위해 모였을 때, 교회는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워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 교회의 일들은 먼저 믿음이 있는 자, 하나님의 진리로 충만한 자를 세워 처리해야 한다. 믿음과 성경의 바른 지식이 있어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바른 판단을 하고 일을 바르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는 성도 간의 소송 문제를 판단할 만한 지혜가 있는 자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그가 교회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교회가 필요로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일꾼들과 봉사자들을 일으켜 주실 것이다.
고전 6 : 6 형제와 더불어 -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
성도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고소하고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다. 죄씻음 받은 자들이 죄인들에게 판단 받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더 낫다.
1]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바울은 접속사 '카이'(*, '그리고')를 사용하여 논리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의 잘못은
(1)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발생하여 이에 따라 있을 수 없는 분쟁이 발생했다.
(2) 그 분쟁을
교회 안에서 스스로 해결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송사하였다.
(3) 결정적인 잘못은
그 분쟁을 제소한 법정이 불신자의 법정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분쟁이라는 잘못된 행위로부터 출발하여 형제를 이방의 법정에까지 고소하고 이교도로 하여금 성도를 판단하게끔 하는 더 큰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마치 적은 누룩이 온 떡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그들 가운데 발생한 작은 악은 점진적(漸進的)으로 성장하여 개인과 이웃과 교회 공동체 전체를 멍들게 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지금이라도 악의 연결 고리를 끊는다는 의미에서 형제와 형제 사이의 분쟁을 서로 간에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다시 말해 분쟁 문제를 꼭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이런 일을 충분히 처리할 만한 지혜를 가진 교인을 찾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의 소송을 통하여 서로 다투고 판단 받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M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