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유해부(幽海賦)」 병서(幷序), 섬에 갇힌 유배객의 고독>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도 유배문학 「유해부(幽海賦)」는 조선후기 문신이자, 거제유배객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이다. 바닷가 거제섬(유배지)에 갇힌 유배객의 처절한 심경과 절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조정)을 잊지 않겠다는 충정을 담은 운문 형식의 글이다. 또 이 작품은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수산(囚山)》을 모티브로 삼아, '산에 갇힌 유배객'보다 더 처절한 '바다에 갇힌 유배객'의 심정을 극적으로 묘사한 수사학의 정수다. 저자 김진규가 기거하던 배소는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반곡서원 부근에 있었고 거제유배기간은 1689년~1694년이다.
이 글을 요약건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유배 섬에 극한의 고립감과 자연의 위협(파도, 풍랑)을 묘사하였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유종원의 애절함을 공감했다. 정위가 바다를 메우듯(啣木, 捧土) 부질없는 노력일지라도 절개를 꺾지 않을 것이며, 또한 마지막 구절(朝宗)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임금을 향한 충심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마무리했다.
*서문(序)에서는, 유종원의 《수산(囚山)》 인용하고 자신의 《유해(幽海)》를 정의하며 집필 동기와 문학적 태도를 언급했다. 먼저 당나라 유종원이 유배지 산의 험준함을 감옥에 비유했던 것을 언급한다. 당시 비평가 조무구(晁無咎, 1053~1089)는 "자연을 감옥으로 여기는 것은 군자의 여유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저자는 유종원의 글이 가진 절박한 '초사(楚辭)'적 비장미를 옹호한다. 이어 저자는 자신이 처한 섬 유배지가 유종원의 산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라고 말하며, 이 상황을 '그윽하고 어두운 바다(幽海)'에 갇힌 상태로 규정한다. 내용에서 ‘안처순(安處順)과 불망군(不忘君)’은 괴로움을 토로하되, 끝내 순리에 순응하며 임금을 잊지 않겠다는 유교적 충절을 보여줌으로써 앞선 비판(조무구의 비난)을 피하려고 한다. 즉, 세상의 변화와 자신의 처지에는 순응하여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되,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근본적인 도리(임금에 대한 충성 등)는 결코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고립무원의 유배지 풍경과 내면의 고통, 유배객의 숙명에 대해 서술해 놓았다. 자신이 있는 곳이 세상의 끝이자, 땅의 기운이 다한 막다른 곳임을 강조한다. '상군(裳郡)'은 경남 거제도의 옛 별칭으로, 육지에서 가장 먼 섬이라는 공간적 고립감을 극대화한다. 이어 바다는 감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거대한 괴물처럼 묘사된다. 뭍에서의 수레와 말을 대신해 배를 타야만 하는 위태로운 처지를 '몰닉(沒溺)'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거듭된 파도가 감옥(圜土)이 되었다. 옛날 유종원이 산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 했다면, 김진규는 파도 그 자체를 감옥의 담장으로 봤다. 옥졸의 호통소리보다 거센 파도 소리가 더 위협적이며, 자신은 그물에 걸린 새(孤禽)와 같다고 비유한다. 결국 천지개벽과 유배객의 숙명이라고 체념한다. 이곳이 험한 이유는 하늘이 죄인을 가두기 위해 일부러 만든 '거대한 함정'이기 때문이라는 숙명론적 인식을 보여준다. 아무리 소리쳐도(呼號) 응답이 없는 절망적인 단절감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초월과 충성에 대해 말한다. 정위(精衛)라는 새가 돌을 물어다 바다를 메우려 했던 고사(啣木, 捧土)를 인용하며, 바다를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마음만은 바닷물이 결국 큰 바다로 모이듯(朝宗) 임금이 계신 조정을 향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결국 이 글은 '바다의 공포'와 '유배객의 고독'을 결합시킨 수작이다. 아름다운 바다를 '거대한 구덩이'이자 '움직이는 감옥'으로 재해석했다. 게다가 단순히 슬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는 비록 버려졌으나 내 마음의 방향은 여전히 임금이다"라는 전통적인 연군지정(戀君之情)으로 승화시켰다.
◉ [한문 문체 ‘부(賦)’] 본래 부(賦)는 운문(韻文)과 산문(散文)의 요소(要素)를 결합(結合)한 한문(漢文) 문체(文體)의 하나다. 또한 본래 <시경(詩經)>의 표현 방법의 하나이며, 작자의 생각이나 눈앞의 경치 같은 것을 비유를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한대(漢代) 부(賦)를 한부(漢賦)라 한다. 한부(漢賦)는 초사(楚辭)에서 유래한 반문 반시(半文半詩)의 새로운 문학양식이다. 한대(漢代)에 부(賦)는 원래가 시경(詩經) 육의(六義)의 하나였다. 직접적인 서술의 수법을 말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서술 수법을 사용하는 문학 장르를 부(賦)라 함으로서 문학의 한 장르 체재(體裁)가 되었다. 가장 오래된 부(賦)는 순자(荀子) 부(賦)편이다. 예(禮), 지(智), 운(雲), 잠(蠶), 잠(箴) 5가지에 대해서 암시(暗示)와 상징(象徵) 등의 수법을 이용하여 서술한 부(賦)다. 한대(漢代)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굴원(屈原)이다. 굴원(屈原)은 초혼(招魂)에서 장황하고 과장된 묘사와 대화 형식을 후세의 부가(賦家)들이 모방을 했다.
이 글은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죽천집(竹泉集) 권1(卷之一) 부(賦)편에 실려있다.
**「유해부(幽海賦)」** 병서(幷序) 서문과 나란히 짓다.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서문(序文)]
옛날 유자후(柳宗元)가 초(楚)·월(越)의 첩첩산중으로 좌천되었을 때, 울분을 느껴 〈수산부(囚山賦)〉를 지었습니다. 이에 대해 북송의 문인 조무구(晁無咎, 1053~1089)는 유종원이 산림을 창살로 여기고, 그윽하고 고독한 곳을 감옥으로 여겼다며 조롱했습니다. 자후가 곤궁한 처지에 놓였을 때 진실로 마음을 편히 두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글귀는 참으로 처연하고 그윽하며 묘하여 초사(楚辭)의 풍모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해도(거제도)의 막막함은 초·월의 산속보다 심합니다. 이에 자후의 글을 따라 부(賦)를 짓고 이름을 '유해(幽海, 갇힌 바다)'라 하였습니다. 갇혀 있는 고통스러운 형상을 지극히 말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처지에 안주하며 순응하고 임금을 잊지 않는 도리로 맺었습니다. 뒷날 이 글을 보는 자들은 아마 조무구와 같은 조롱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本文)]
삼한(조선)은 바다를 끼고 나라를 이루었는데, 상군(裳郡, 現 거제)은 또 바다 가운데 있구나. 앞은 에워싸이고 뒤는 둘러싸여 물줄기가 돌며 적시니, 땅의 벼리가 끊어져 여기서 끝이 났도다. 아침엔 조수 밀려오고 저녁엔 파도 격동하며 넘실거리고 부딪치니, 작은 섬 흔들림이 외로운 돛배 같구나. 잠시 모래톱이 가로막아 땅이 있는가 싶다가도, 어느덧 포구가 터지며 큰 파도가 몰려오네.
축축한 습기가 쌓여 연무와 안개가 되고, 깊은 물은 음침하여 답답하고 어둑하도다. 하늘에 닿을 듯 소용돌이치며 끓어오르고, 태풍은 뒤집어엎을 듯 바람을 부채질하네.
나그네는 배를 수레와 말 대신 타건만, 어지러이 빠져 죽을 위험이 몸에 닥치네. 가련하다, 나는 부평초처럼 떠돌고 박처럼 매여 있으니, 사방을 둘러봐도 아득한 바다뿐 길은 막혔구나.
층층이 쌓인 파도는 감옥의 담장이 되었으니, 옥을 지키는 짐승 짖는 소리가 교룡(바다 괴물)과 무엇이 다르랴. 이 한 몸 시린 물 위에 우뚝 서 있으니, 그물 속에 갇혀 있는 외로운 새와 같도다.
태초에 혼돈이 처음 나뉠 때, 어찌 흙이 부족하여 남동쪽이 이토록 이지러졌는가. 죄지은 자가 머무는 곳으로 삼고자, 그리하여 이 거대하고 흉흉한 구덩이를 만드셨도다. 이미 갇히고 막혀 이곳에 잠겨 나갈 수 없으니, 비록 크게 부르짖은들 어찌 통하리오. 정위(精衞)가 나무를 물어다 메우려 함은 진실로 헛된 수고요, (우공이) 흙을 움켜 산을 옮기려 한들 공이 없음을 알겠도다.
이 내 인생 갇힌 바다에서 나려 하니, 바다와 더불어 끝이 없구나. 끊긴 항구에서 늘 마음을 부치노니,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임금을 향한 내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도다.
[昔柳子厚遷楚越衆山之間 感憤而作囚山 晁無咎譏其以山林爲樊籠 幽獨爲狴牢 夫子厚之處厄窮 誠不能自安 然其辭實悽惋幽竗 有楚聲之遺矣 今余所居海島之阻絶 盖不翅劇於楚粤之山 玆步趍子厚作賦而命之曰幽海 極道拘幽之狀 終以安處順不忘君之義 後之覽者 庶可無無咎之譏歟.
三韓濱海以爲邦兮 而裳郡又在乎海中 面遶背圍匝匯而週浸兮 地維絶而此終 朝漲夕激氾濫泌瀄兮 小島搖盪如孤篷 乍洲蔽若有地兮 忽又浦缺以波鴻 積濕氛爲霾霧兮 馮沉滛而欝蒙 汩粘天以沸涌兮 颶掀飜而扇風 徒旅以舟楫代車馬兮 紛沒溺之阽躬 閔余萍漂而匏繫兮 四瞻茫洋其途窮 曾濤環以當圜土兮 狴犴之狺何似蛟龍 一身凜其介積水兮 類孤禽跱以在罿 混沌之肇判兮 豈少土而虧於南東 爲僇民之所止兮 故設鉅坎之洶洶 旣拘阻沉此而莫可出兮 雖呼號其詎通 啣木固徒勞兮 捧土諒無功 分此生幽海兮 與海無極 長寄心於斷港兮朝宗]
[주1] 유자후(柳宗元) : 당송팔대가, 당나라의 문관이자, 시인, 수필가이자 사상가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자(字). 마지막으로 얻은 벼슬이 유주(柳州)의 책사였기 때문에 유유주(柳柳州)라고도 불렸다.
[주2] 유해(幽海) : 그윽한 바다, 구석진 바다, 여기서는 수산(囚山)에 대비되는 유배자의 갇힌 바다(幽海)로 쓰임.
[주3] 수산(囚山) : ‘수산(囚山)’은 산이 새장처럼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는 뜻인데,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영주(永州)에 귀양 가서 〈수산부(囚山賦)〉를 지은 뒤로 ‘고달픈 유배 생활’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4] 초사(楚辭) : 중국 초나라 때의 굴원과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그의 제자나 후인의 글을 모은 책. 초나라 지방의 문학양식과 방언음운을 사용했고, 또 그 지방의 풍물을 많이 묘사하여 짙은 지방색채를 띠고 있어 〈초사〉라고 이름지었다.
[주5] 상군(裳郡) : 신라 문무왕 때 거제도의 행정 명칭이다. 이후 거제현으로 변경.
[주6] 정위(精衞) :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에 빠져 죽어 변(變)한 것으로, 늘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입으로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주7] 안처순 불망군(安處順不忘君) : 수양과 충심의 자세를 결합한 문구다. 안처순은 '안시처순(安時處順)'에서 유래했는데 때에 편안히 거하고 순리에 따른다는 뜻이다. 불망군은 변치 않는 충성심을 의미하는데 임금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