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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우상숭배
말씀 : 마 23:6-9. 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오전11시
오늘날의 물질문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치명적인 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질문명을 도외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물질문명의 도구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선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이 되고 악하게 사용하면 악한 것이 됩니다. 물질문명의 도구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을 유익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들에게 속거나 이용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제 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품에 안은 반려견과 hand phone이라고 하는 손 전화가 현대인들의 최고의 우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애완견은 단순히 좋아해서 기르는 수준을 넘어 인생의 반려자라는 뜻으로 반려견이라고 해야 한답니다.
명칭이 애완견이든 반려견이든 그것은 끝까지 섬겨야합니다. 오늘날의 유행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고 경계를 넘어 사람들의 먹이로 주신 동물을 섬기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떠하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창 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내가 그것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노라. 3)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될 것이요, 푸른 채소와 같이 내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었노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 올은 일이요, 하나님의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인데(엡6:1-3) 부모형제를 돌아보는 것보다 더 반려 견을 섬기는 것은 취미생활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철저한 우상숭배라 할 수 있습니다.
반려견에게 먹이주고 똥오줌 치원주고 목욕시켜주고 털 깎아주고 놀아주고 밖에서 들어오면 발 닦아주고 주기적으로 구충제 먹이고 병원 데려가고 품에 안고 자고 모시고 다닙니다. 이보다 더 섬기는 우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경제적인 면에서도 어린아이 하나 키우는 것보다, 부모를 위해 쓰는 것보다 더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손 전화(cell phone, mobil, smart phone)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거기에는 차고 넘치는 정보와 지식과 문제 해결방법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현대인들은 한 끼 밥은 굶어도 살지만 손전화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큰 일이 날 것 같고 모든 것이 마비되는 세상입니다. 갑자기 그것을 잃어버리거나 못쓰게 되면 금단형상까지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우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cell phone을 너무 들여다보아서 목 디스크를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 cell phone안에는 유익한 것들도 많지만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악한 것들은 물론이고 음란한 내용들도 많습니다. 그것들을 스스로 분별하고 절제하고 유익한 것들만 찾아 사용할 능력이 없다면 손 전화를 보지 말거나 갖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어서 못 보는 것보다 그것을 가지고서도 보지 않는 것은 대단한 자기절제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집이나 TV한 두 대는 다 있습니다. TV는 세상 정보나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이 해롭다고 외면한다면 아마도 깜깜한 방에 홀로 있는 것 같을 것입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려면 그런 것들을 외면하고 살기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혹시 깊은 산속에서 자연인으로 혼자 살면 가능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간혹 신실한 그리스도인 가정엔 아이들에게 영적으로 해롭다며 손 전화나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두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잘하는 일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문명의 문맹자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그들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왕상 8:46)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사오니) ........』 하셨으며 특히 로마서 3장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3:4) 『.........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 10)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셨습니다. 이처럼 물질문명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저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크리스천 가정의 어른들이 손 전화를 갖지 않은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어른들은 손 전화를 사용해도 괜찮고 아이들은 안 된다는 논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물질문명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현대의 물질문명이 없었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좋은 환경의 에덴동산에서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 43:27) 『네 처음 조상이 죄를 지었고 네 선생들이 내게 범법하였나니』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벗어난 때부터 죄를 짓게 됩니다. 구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따르는 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 제사장들과 대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그 말씀들을 기록하게 하셨으며 기록된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두지파가 있었고 그중 레위지파 안에서만 제사장을 세우도록 하시고 그 제사장을 통해서 희생물을 받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대언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열두 지파가 제각각 살아가다 보니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대로 순종하기보다는 종교만 남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살다가 하나님의 종 모세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광야를 지나고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으나 세월이 흐른 뒤에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삿 2:11-13)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이집트 땅에서 자기 조상들을 데리고 나오신 {주}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 곧 자기들 사방에 있던 백성의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에게 절하여 {주}의 분노를 일으켰더라. 13) 그들이 {주}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니라.』
자식이 부모를 버리듯이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곧 죄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통하여 들은 기억은 있으나 온전히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종교를 만들자니 형식을 갖추기는 해야겠는데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자들을 제사장으로 삼고 형식상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행위를 하며 자기들이 세운 제사장에게 열한지파가 낸 십일조를 주는 것처럼 자기가 고용한 제사장에게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그들을 지도할 대언자나 제사장도 없이 각자가 흩어져 살아가는 이스라엘 가운데 에부라임 산에 미가라는 사람이 우상숭배를 시작하는 이야기가 사사기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은 이백 세겔로 새긴 형상과 부어 만든 형상을 만들어 자기 집에 있는 신당에 두고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자기 아들들 중에서 하나를 구분하여 자기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당시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습니다.(삿17:6)
그들은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들은풍월은 있지만 기록된 말씀을 따르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점점 식어가지 않는가? 돌아보고 날마다 말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형식은 있는데 말씀에 따른 믿음이 없다면 미가와 같이 우상을 섬기는 종교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처음 왕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사울이 더 이상 왕이 되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죽은 역사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삼상 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주}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말씀에 따라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 뒤로 버린 자들에게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신을 섬기는 음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겔 23:35)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나를 잊고 또 나를 네 등 뒤로 버렸은즉 너 또한 네 음탕함과 네 행음을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자기 등 뒤로 버린 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속에 있는 신을 섬기게 됩니다.
이처럼 미가는 자기가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자기 집의 신당에서 섬기고 자기 아들 가운데에서 하나를 자기마음대로 제사장을 삼아 종교의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다가 떠돌아다니는 한 레위 청년을 만나게 되고 자기 아들 제사장 대신 그에게 자기의 제사장이 되어 줄 것을 청했습니다.
(삿 17: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거하며 나에게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십 세겔과 의복 한 벌과 양식을 주리라, 하므로 이에 그 레위 사람이 거기로 들어갔더라.』 미가는 결국 떠돌이 레위 청년을 자기의 아버지와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머물 곳이 없이 떠돌아다니던 레위 청년은 제사장 대우를 받으며 안식할 곳을 얻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리고 미가는 자기 아들 보다는 레위 청년으로 제사장을 두게 되었으니 완벽한 종교 형식을 갖추게 되었으므로 이제 미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온전히 자기 생각과 자기 뜻에 따른 것이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거나 하나님의 규례를 따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믿음의 2세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이와 같습니다. 종교적인 형식은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믿음이나 순종은 없으며 자기들이 세운 종교 행위로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철저히 금하셨습니다.
(합 2:18) 『새긴 형상이 무슨 유익을 주기에 그것을 만드는 자가 그것을 새겼느냐? 부어 만든 형상 곧 거짓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무슨 유익을 주기에 자기 작품을 만드는 자가 그것을 신뢰하여 말 못하는 우상들을 만들려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그곳에서 지켜야 할 특별한 법 열 가지를 두 돌 판에 새겨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십계명이라고 합니다. 그 첫째 명령으로 주신 것이 바로 우상숭배를 금한 것입니다.
(출 20:3-5)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4)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기독교를 모방한 종교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찾으면서도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은 따르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단이 로마가톨릭입니다. 그 세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라면 개신교보다는 구교, 즉 가톨릭을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그들이 교회라 부르는 성당엘 가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거기야 말로 각종 형상들로 가득 찬 우상숭배의 성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모마리아 상을 비롯해서 예수의 형상이라든가 그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첫 교황이라 불리는 베드로를 비롯하여 열두 사도들의 흉상이나 성인이라 불리는 자들의 형상으로 가득 찬 곳이 그들이 교회라 부르는 성당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천주교에 대해서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나 어린 아이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양의 탈을 쓴 이리들에 대해서 다시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의 사제들은 그들의 교리를 따라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수녀들도 결혼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전적으로 위배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하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창 1:27-28)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처음 창조한 남자와 여자에게 이르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산하고 번성하라”는 것입니다. 다산하고 번성하려면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성직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거나 따르거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결혼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따르는 교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자기들이 경험하지 아니한 부부관계나 자녀교육이나 가족에 관한 상담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성경기록도 읽어보지 않는 모양입니다.
(마 19:4-5)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5)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그들 젊은 성직자들 모두 하늘의 왕국을 위한 고자는 아닐 것입니다. 고자로 태어난 자들도 아닐 것입니다. 스스로 고자가 된 자들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성욕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마 19:12) 『자기 어머니 태에서부터 그렇게 태어난 고자들도 더러 있고 사람들이 고자로 만든 고자들도 더러 있으며 하늘의 왕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자들도 있나니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받을지어다, 하시니라.』 젊은이들이 가톨릭 성직자가 되기 위하여 독신을 서원하겠지만 한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없어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성직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있는 곳에는 성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가족 안에서도 근친상간이 있습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있습니다. 남자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성문제입니다. 그것 때문에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탈영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위안부를 둡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자기 군인들의 성문제를 해결하기위하여 우리나라 처녀들을 강제로 끌어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 풀어야할 역사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의외로 창녀라는 단어를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창녀라는 단어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나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남녀 사이에 성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고전 7:9) 『그러나 그들이 억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게 하라. 불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가톨릭의 젊은 사제들이나 수녀들에게 성문제는 아주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기독교의 탈을 쓴 가톨릭을 다시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그들의 실체를 알지 못하면 양의 탈을 쓴 이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우상숭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들의 겉모습을 보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겉모습에 속아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신 10:17) 『{주} 너희 [하나님]은 신들의 신이시요, 주들의 [주]시며 위대하시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니라. 그분은 사람들의 외모를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대가를 받지 아니하시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학벌이나 직장이나 권력이나 인물이나 옷차림의 겉모습, 즉 외모를 보고 평가하면 안 됩니다. (눅 20:21) 『그들이 그분께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알기에 선생님은 바르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아무도 외모로 받아들이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나이다.』 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때에는 종교 통합이라는 미명아래 가톨릭이 종교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 23:6-9) 『잔치의 맨 윗자리와 회당의 으뜸가는 자리와 7)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과 사람들로부터, 랍비여, 랍비여, 하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로마 가톨릭 교황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높은 자리에 앉아 하나님보다 더 큰 경배를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황이 어느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그 나라는 이를 큰 영광이라고 여기고 그를 왕으로 영접하고 그 앞에 나가 무릎을 꿇고 그의 발에 입을 맞춥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엔 철저히 반대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선생들이 넘쳐납니다. 학자나 법조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각 분야에서 연륜이 있고 명성이 있으면 그를 높이기 위하여 스승이라든지 선생님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잔치의 맨 윗자리나 랍비, 즉 선생이라 불리기를 좋아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방송가에서는 트롯이 대 유행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사회자들이 선배 가수를 치켜 올리려고 레전드(legend)라는 말을 씁니다. 이는 전설적인 존재라는 뜻인데 가요계의 선배라든가 유명세가 조금 있으면 모두 전설 같은 존재라는 뜻으로 레전드(legend)라고 부릅니다. 그것도 특별한 한 두 사람에게 쓰지 않고 선배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아무에게나 너무 남용하므로 오히려 가치 없이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선생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십니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 너희는 다 형제니라.』 여기서 랍비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성경자체가 번역해 줍니다. (요 1:38) 『그때에 예수님께서 돌이키사 그들이 따르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 하시매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랍비여, 어디에 거하시나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 13:13-14) 『너희가 나를 선생과 [주]라 부르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니라. 14)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니라.』주님은 자신을 선생이라 하시면서 선생이란 높임을 받는 자가 아니라 낮아지고 겸손하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섬기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가톨릭의 교황은 주의 종이 아니라 스스로 주의 대리자라며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모든 영광을 받고 있는 왕 중의 왕입니다.
특히 목회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성도들을 가르칠 때 성도들의 스승이라든가 박사라는 명칭으로 그들을 자신의 제자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선생님이요, 그분만이 제자를 둘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르시기를,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더 큰 정죄를 받을 줄 너희가 아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번역하므로 아주 잘못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마 28:19개역)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모든 미족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명령하신 것을 모든 민족들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20)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다음으로 가톨릭의 가장 심각한 반역은 사제들을 신부(神父)라 불리는 것입니다. 신부(神父)라면 신의 아버지가 되는데 god father라는 말은 성령 모독죄요 성령 훼방 죄에 해당합니다. 주님은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한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가톨릭은 기독교를 가장한 심각한 이단입니다. 우상 종교집단입니다. 그들이 섬긴다고 생각하는 신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은 땅에 있는 자들을 신부(神父) 즉 신의 아버지라 부르는 집단입니다. 그들은 마귀의 말을 듣고 신이 되고자 했던 이브가 추구한 그 신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창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가톨릭 사제들이나 수녀들은 교리적으로 결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남자와 여자사이에 연애를 금하거나 사랑을 금할 수는 없습니다. 연애감정은 교리나 법으로 금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들이 있는 곳에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 사제들이 있는 곳에 수녀들이 있습니다. 깨끗하고 단정한 사제복 안에는 남자가 있고 끓는 욕정이 있습니다. 깨끗하고 단정한 수녀 복 안에는 여자가 있고 정욕이 꿈틀댑니다.
요즈음 유행가의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란 말처럼 결혼하지 않은 젊은 남자 사제와 젊은 여자 수녀 사이에는 비밀 연애가 있고 거기에는 원하지 않는 아이가 생기게 됩니다. 고대에는 피임약이나 피임 도구가 없었으므로 연애를 하다가 아이가 생기면 비밀리에 출산하여 땅에 생매장 하거나 숨겨놓고 키워야했습니다. 이렇게 원하지 않는 아이들이 태어나게 되자 공공연한 비밀을 감추기 위하여 만든 것이 바로 로마 가톨릭의 고아원입니다.
고아원의 시작은 부모 없는 아이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핀다는 선한 뜻이 있지만 자신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들을 합법적으로 키울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 없는 아이들이지만 대다수는 어느 신부의 아이들이요, 어느 수녀의 아이들입니다. 당시 고아원은 선을 가장한 악을 덮는 수단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다시 사제가 되고 수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사실이 들어난 것이 아니라 온 천하가 다 아는 고아원의 근원이요, 역사입니다.
그들과 같이 양의 탈을 쓴 이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속지 말아야합니다. (마7:15)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 속이는 자들도 나쁘지만 속는 자들도 나쁩니다. 성경에는 속지 말라 란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 (갈 6:7)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주님은 속이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고후 11:13-14)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보이스피싱으로 속이는 자들만 나쁩니까? 속는 자들의 손해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속아서 금전적인 손실을 입으면 가정이 파탄 날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면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다시 본문 말씀으로 여러분들에게 강조합니다.
(마 23:6-9) 『잔치의 맨 윗자리와 회당의 으뜸가는 자리와 7)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과 사람들로부터, 랍비여, 랍비여, 하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손 전화기에 여러분들의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반려견들에게 여러분들의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의 현대판 우상숭배란 사실을 잊지 마시고 그런 것들에게 지배당하지 말고 정복하고 다스리시는 진실된 크리스천들이 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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