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설가의 탄생을 두고 까마득한 밤하늘에 새로운 별 하나가 반짝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게오르크 루카치의 통찰을 믿는다면, 밤하늘의 별과 소설가를 하나로 바라보는 일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삶이 풍요로웠던 시절,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던가! 게다가 그 별을 헤아려 삶의 지표로 삼고, 그 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던 우리의 가슴은 얼마나 서늘했던가! 그 별빛 아래 밤새워 소설을 읽던 날들이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지금, 새로운 소설가의 소설을 읽는다.
김만성의 소설에 등장하는 문제적 개인은 대체로 남자다. 이 경우 남자는 생물학적 존재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부유하는 욕망의 기호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소설에서 남자들은 한순간 뜨거운 심장처럼 자기 삶을 분출해낸다. 이렇게 말하면 김만성의 소설이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김만성의 소설은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충만해 있는 남자들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김만성의 소설은 여기에 한 겹의 서사를 덧붙여 놓고 있다. 그건 남자를 넘어서고 초과하고 초월한 세계, 다시 말해 남자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세계에 관한 작가 개인의 경험적 통찰이다. 그 통찰은 ‘남자에 관한’에서 ‘남자’를 괄호 안에 은폐해버리고 남은 세계이다. 그럴 때 ‘~에 관한’이 지시하는 세계는 남자가 소거된 공백의 세계다. 그러니까 김만성의 소설은 두 겹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는 남자의 이야기로, 다른 하나는 남자가 빠진 이야기로. 이렇게 김만성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의 소설이 남자를 다루면서도 남자를 제외한 자본주의적 세계에 대해 들려주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세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자 소설이 다루고 있는 세계 말이다. 별이 반짝이려면 캄캄한 어둠의 세계가 필요하듯, 김만성의 소설에서도 남자를 존재하게 하는 자본주의라는 세계가 있다. 그의 소설에서 자본주의는 욕망을 충동질하는 심장 박동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수혈한 피로 뜨거운 숨을 내쉰다. 김만성의 소설은 그러한 자본주의의 탐욕과 공포를 우리 시대의 욕망으로 표출해낸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이 어떻게 이 세계에 탐욕과 욕망이라는 자기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확인하게 해준다.
<작가소개>
김만성
고흥 거금도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 [소떼의 반란]이 대학신문에 당선되어 첫 당선소감을 썼으나 소설을 잊고 생업을 좇아 증권회사에서 29년째 근무 중이다. 번아웃을 겪고 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22년 전라매일, 2023년 전남매일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깜박거리는 한글워드의 커서를 보면 가슴이 뛴다. 번아웃은 치유중이다. 퇴직 후 작은 책방지기가 되어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는 꿈을 꾼다.
<이 책 본문 중에서>
<소설 「골드」 中에서>
그리고 강렬한 골드 색상! 화이트나 블랙, 기껏해야 실버톤이 전부였던 국산차에 비해 눈부시게 아우라를 내뿜는 골드빛 광택은 한순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1등의 색깔, 귀족의 색깔, 부와 명예의 상징인 줄만 알았던 골드색이 내면으로 파고드니 다른 색으로 변했다.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응축되었던 것이 발산하고, 무한정 퍼져나갔다.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싶었고, 다른 색의 가치를 높이고 싶었다. 골드색이 그렇게 나를 유혹했다. 질주하는 S자동차의 황금빛 세단이 TV광고에 자주 나왔다. 나는 광고를 볼 때마다 내 육체에서 영혼이 이탈하여 TV광고 속의 번쩍거리는 세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환상에 빠졌다. 내가 운전하는 차는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며 빠른 속도로 질주해 태양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무수한 빛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것이 광고의 힘이라면 나는 포로가 된 셈이었다.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구매를 결정했다.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된 7월에 내 인생의 첫 차인 골드 색상의 세단을 인도받았다.
<소설 「보스를 아십니까」 中에서>
그동안 스물다섯 명이 면접을 치렀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40억 원의 잔고가 찍힌 통장을 내걸고 구둣방의 후계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낸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장난전화가 걸려오다가 신문에 기사가 나가자 면접자가 몰려들었다. 후계자 면접과는 별개로 40억 원을 어떻게 벌었냐며 비결을 묻는 이도 많았다. 지원자 중에서는 40억 원으로 빌딩 임대업을 해서 자산을 늘리겠다는 치들이 다수였다. 구둣방에서 구두를 직접 닦는다는 한 사내는 동종업계의 경험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자기를 후계자로 뽑아달라고 말했다. 그 사이 내 호칭은 고 씨나 아저씨에서 사장님으로 바뀌더니 어느 사이엔가 회장으로 승격이 돼 있었다. 회장님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지만 그만큼 씁쓸했다.
<소설 「NLL」 中에서>
리 선장은 서서히 해방호의 속도를 줄이면서 그물이 천천히 바다 속으로 펼쳐지게 했다. 그물이 슬슬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리 선장은 그저 퍼덕이는 꽃게가 낭창낭창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만을 상상했다. 위대한 장군님의 공훈패와 으뜸어선으로 뽑혀 영웅으로 환대받는 모습을 그렸다. 그때였다. 무선에서 예기치 않는 주파수가 잡히면서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어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수복은 애써 외면한 채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민족이 하나 되는 쪽에 서라던 아버지의 권고가 무슨 뜻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참았던 눈물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고 오르더니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소설 「물어라 쉭」 中에서>
나는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자꾸 뜨거운 기운이 명치끝에서 솟구쳐 올라와 목소리가 높아졌다. 소장이 일순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소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형을 찾아보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지만 처음부터 휴가를 낼 작정은 아니었다. 주말에 형의 행적을 찾아도 충분했다. 하지만 한번 우습게 보이면 영원히 만만하게 본다는 아버지의 말이 소장의 붉어진 얼굴을 보면서 떠올랐다. 어쩌면 만년대리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은 아내의 말처럼 내가 소장에게 살갑게 굴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지 못해서인 것 같았다. 나는 모바일로 휴가원을 내겠다고 말하고 급히 연구소장의 앞을 벗어났다.
<추천사>
소설이 무엇인지 알고 쓰는 작가는 인생을 보는 통찰력이 깊다. 김만성이 그렇다. 더욱이 그는 오랜 기간 끝내 좌절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으로 작가수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만큼 작가로서 내공이 깊다. 우선 그의 소설은 문장이 밀도가 높고 서사가 풍부한 것에 비해 주제도 뚜렷하다. 기실 서사가 다양하고 풍부한 작품에서 주제를 비중 있게 드러내기란 쉽지가 않다. 이야기에 비중을 두다 보면 주제에 소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김만성의 소설은 이야기가 풍부하면서도 결코 주제를 섣불리 다루지 않는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저한 이야기 중심의 리얼리스트이면서 주제 중심의 관념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이제 김만성은 첫 창작집을 통해 빛나는 작가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다. 시작이 늦은 만큼 앞으로 그의 작가정신은 중단 없이 치열하게 불타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김만성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근면성실한 직장인이고 가장이며 소설 쓰는 자세 또한 매우 성실하고 투철하다. 소설을 대하는 태도가 엄숙하고 경건하며 삶의 문법이나 행동이 분명한 작가인 것이다. 좌절할 줄 모를 만큼 견고하게 다져진 뚝심의 작가이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 소설가 문순태
김만성은 소설을 통해 인간의 물질성을 말한다. 자본주의 시대 물질을 좇는 인간은 여지없이 추락한다는 ‘추락 서사’인데 이들은 하나같이 가족이나 타인을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단지 자신만을 위한 욕망을 채우다가 추락한다. 인간 본성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의 의식이 존경스럽다. 이는 묘한 이끌림으로 작용한다. 우리 안의 선한 천사를 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인공이 추락 후에야 자신의 욕망을 후회하듯 독자도 그의 추락 서사를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책장을 덮으면서 후회할 것이다. 여지껏 김만성이라는 소설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음으로. 인간이 위대한 것은 성찰이므로 이제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로 한다. 작가에게 문운이 함께 하기를 나 또한 기원한다.
- 소설가 장마리
(김만성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220쪽 / 국판형(148*210mm) /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