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시의 정의 1. 시창작 교육은 가능한가 2. 시란 무엇인가 3. 서정시의 장르적 특성 가. 동일화의 원리 나. 순간과 압축성
1.시창작 교육은 가능한가
글쓰기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ㄱ 시 지식은 고등학교 때 배운 게 전부인 학생에게 매주 2 ~ 3편의 작품 제출
몇 달은 단 한 줄도 건질 것이 없는 붉은 줄 투성이 1 년이 지나도 ㅠ ㅠ 부려 쓰는 어휘량이 적어 국어사전을 베껴 쓰게 상당한 효과 2년이 지나자 붉은 줄이 줄어들고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소품들도 써
5년이 지났고 5~6백 편의 작품을 썼다.
2~30편을 골라 신춘문예에 투고
최종심에서 떨어지는 수준
월간 시 전문지를 통해 2000년에 화려하게 데뷔
ㄴ 고등학교 때 백일장 나가 더러 상
상당한 창작을 해온 오히려 그것이 문제
시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고정관념이 강 ㅡ 대게 5,6년 정도 시 창작 공부를 해온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
비유라고 쓰는 것들이 완전히 낡아 있고 고정화되어서 요지부동
대학교 1학년 때 30여권의 정선 시집을 읽혔다. ㅡ 상당히 괄목할만한 성과
좋은 시집을 끊임없이 정독하는 것이 시창작의 첫걸음
정독하면서 좋은 시를 베끼고 암기하도록
2학년 1학기가 지나자 급속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5,60대의 죽은 비유가 아니라 20대의 발랄한 비유를 건져 올림
2학년말 중앙일보 최종심 3학년에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통과
결론 ㅡ 가능하다
제 2강 시적 사유의 힘 1. 왜 세계관이 중요한가 2. 세계를 보는 몇 가지 방법 3. 모방론(mimetic theories)적인 관점 4. 표현론(expressive theories)적인 관점 5. 실용론(pragmatic theories)적인 관점 6. 형식론(obajecitve theories)적인 관점 7. 균형 잡힌 사고의 힘
1.왜 세계관이 중요한가
한편의 시를 통하여 시인은 자신의 세계관을 담아 낸다. 편협하거나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세계관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어도 자신이 쓰고 있는 시나 창작 작품이 어떤 사유와 어떤 목적으로 창작되고 있는지를 그 작품을 쓰는 시인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정신으로 어떤 문학적 지향점을 가지고 작품을 창작하고 있는가. 나의 시는 나에게 어느 정도 정직한가.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理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는 박목월 (1916~1978)의 대표작이다. 박목월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1946년 엮은 공동시집 『청록집(靑鹿集)』에 실린 이 작품은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답시다.
문학 평론가 이남호 교수는 「나그네」에 대해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보다 언어를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성이 더 강한 시"라며 시에서의 언어 선택과 배치, 언어적 조형을 극찬 했으며,문학평론가 권영민 교수는 『한국현대문학사』에서 박목월의 시 세계를 "삶의 애환을 포괄하면서도 현실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내세우는 법 없이 천품의 가락을 노래, 일상의 한가운데 서 있다"고 평하였다. 사실 이 작품은 2행씩 5연으로 되어 전체가 10행에 불과한 단시이지만 한국적인 시정(詩情)을 간결하고 경쾌하게 나타내었다. 구름이 갈라진 틈서리로 건너가는 달 (실은 구름이 흘러가는 것이지만 )은 씻은 듯이 맑고 아름답다. 달이나 구름, 그것들은 모두 무엇에 집념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有情이 넘쳐나고 있다. 달리 보면 세속적인 구속이나 집념에서 벗어난 해발의 경지인 동양적인 높은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중요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이를 다음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명료하게 나타난다.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이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 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 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모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재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도 붙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그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밤 저릎둥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충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쫒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 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 이용악,「낡은집」전문
이용악의 「낡은집」은 털보의 가족의 고단한 삶을 통하여 파괴된 우리 농촌 공동체의 황폐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서사적 얼개는 물론 털보 일개인으로 국한도지 않고 동시대 우리 민족이 처한 일반적 상황이었다. 이 작품은 박목월의 「나그네」와는 다으므이 대목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① 술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②"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도 붙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그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밤
동시대의 작품이면서 이렇듯 다른 환경이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사고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그 애정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차이가 날수 있는 문제다. 더 보편적인 한국적 정서를 잘 살리고 리듬감을 잘 살렸다 할지라도 그것이 실제의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작품 자체의 근본적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관이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그 근본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능력을 먼저 가져야한다. 역사가 이긴 자의 편이라면 문학은 진자의 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긴 경우라도 그 승리는 많은 사람들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고통을 예술의 힘으로 치유하지 않는다면 문학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당대의 현실을 철저히 반영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이 말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당대의 현실을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시인이 어떤 세계관으로 시적 대상을 이야기할 것인가는 시 창작의 모든 문제에 앞엇느 인생관의 문제이다.
2. 세계를 보는 몇 가지 인식
가. 형식주의와 역사주의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뱉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박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김광규의 「어린게의 죽음 」전문
이 시의 배경은 시장통이다. 바닥이 오폐수로 질척거리는 시장, 바닥은 거무튀튀해서 게의 색깔과 얼른 구분이 되지 않는다. 잡혀온 게 중에서 작은 게 한 마리가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바다에서 누리던 자유를 찾고 싶어 한다. 누구도 게가 죽어갔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시인은 그것을 똑똑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 시의 주제는 그러므로 어린 게의 자유 추구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작품을 보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고 작품만을 성실하게 읽은 결과이다.
외부적인 요인을 고려해서 읽을 때 키워드는 "군용트럭'이 된다. 자전거 바퀴여도 감당하기 힘들텐데 시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군용 트럭을 하고 있다. 그 저의의 복선이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군용트럭'은 실제의 트럭이라기 보다 어떤 상징을 내포하게 되는데 가장 근사치로 생각 할 수 있는 것이 '군부 독재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하나의 바뀜으로 인해 이 시의 모든 문맥이 달라지게 된다. 새끼줄에 묶여온 '게'들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온 반독재 투쟁가들이라고 할 수 있고 '어린게'는 어떤 확고한 신념도 없이 시위에 참석했던 나이 어린 청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에게는 생래적으로 추구하는 자유 정신이 있다. 이 자유의 막힘에 대해 멋모르고 대항했다가 죽음을 당한 것이 이 시의 뼈대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이 시에서 '군용트럭'을 '장갑차'로 바꾸면 그것은 미 제국주의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시인이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이렇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품만을 생각하여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역사와 삶의 부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쓰는 경우가 해당된다. 전자를 형식주의, 후자를 역사주의의 방법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관점을 다른 누가 아닌 창작자인 시인이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시인이 시대에 방관자이고 관심이 없다면 역사주의 방법으로 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작품에 어떤 특정한 의도와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시가 삶이나 역사 위에 확고히 서야 한다는 역사주의 방법이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양자를 균형적으로 아우르는 것이 가장 이분법화 하는 것은 점점 다양화 되고 있는 현실을 단선화 시키고 있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에이브럼즈는 『The Mirror and the Lamp 』(Oxford Univ.press, 1971)에서 문학에 대한 세계인식 방법을 네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②artist ① nature(universe) ⇒④work⇒③audience nature(universe)와 work가 관계된다. ①은 모방론(mimetic theorise), work 와 artist가 연계된 ②는 표현론(expressive theorise),work와 audience와 관련된 ③은 실용론(pragmatic theorise),work 그 자체가 논의의 주안이 되는 ④는 형식론(objective theorise)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분류법은 다소 전통적이긴 해도 우리 사유의 체계를 설명하는데 상당히 유효한 수단을 제공한다. 여기에서는 이 방법의 골격을 원용하여 시적 사유 체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 2강 -시적 사유의 힘
3.모방론적인 관점
현실적인 상황을 문학의 제 1차인 관심으로 가져오는 것
삶의 부분들을 중심 문제로 다루는 것
역사적인 상황들과 만나게 된다. 역사와 동시에 경제나 사회의 제 상황들에도 문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모방론 詩論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현상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孔子가 『논어』에서 시 속에는 草木 의 미미한 것에서부터 5` ` 인간 현상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모방론의 입장
플라톤이 『공화국』 10장에서 시인 추방론을 주장한 배경도 모방의 이론에 입각한 것
탁자(卓子)의 이데아를 가진 자 - 제 1단계 탁자(卓子)를 실제로 만든 자 - 제 2단계 탁자(卓子)를 그리거나 노래한 자 - 제 3단계
제 1단계는 신의 영역이고, 제 2단계는 목수의 영역이며 제 3단계는 화가나 시인의 예술가 영역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가의 창작이란 진리에서 3단계나 떨어진 위치에 있는 것이어서 당연히 시인은 추방되어야 할 존재
모순 시 자체가 갖는 독자적 의의나 미학적 측면을 모두 무시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모방의 개념에 대해서도 단순히 있는 상황을 그대로 모사 해 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보완 그는 개연성과 보편성의 이론을 활용하여 역사의 시를 구분한다. 역사는 사실의 세계를 그리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족하지만 시는 있을 수 있는 세계, 있음직한 것들의 보편성과 개연성을 가진 세계임을 역설한다. 이 모방론은 후대에 그 논의가 계속되면서 리얼리즘이론의 토대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진눈깨비 속을 웅크려 헤쳐나가며 작업시간에 가끔 이렇게 일보러 나오면 참말 좋겠다고 웃음 나누며 우리는 동회로 들어선다
초라한 스물아홉 사내의 사진 껍질을 벗기며 가리봉동 공단에 묻힌지가 어언 육 년, 세월은 밤낮으로 흘러 뜻도 없이 죽음처럼 노동 속에 흘러 한 번쯤은 똑같은 국민임을 확인한다 주민등록 갱신을 한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버렸어 임석경찰은 화를 내도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봐
몇 번이고 찍어보다 끝내 지문이 나오지 않는 화공약품 공장 아가씨들은 끝내 울음이 북받치고 줄지어 나오는 ,지문 나오지 않는 사람들끼리 우리는 존재조차 없어 강도질해도 흔적도 남지 않을 거라며 정형이 농지껄여도 더 이상 아무도 웃지 않는다
지문 없는 우리들은 얼어붙은 침묵으로 똑같은 국민임을 되뇌이며 파편으로 내리꽂히는 진눈깨비 속을 헤쳐 공단 속으로 묻혀져 간다 선명하게 되살아날 지문을 부르며 노동자의 푸르른 생명을 부르며 되살아날 너와 나의 존재 노동자의 새봄을 부르며 부르며 진눈깨비 속으로 타오르는 갈망으로 간다
- 박노해「지문을 부른다」전문
주민등록 갱신을 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삶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대부분의 시는 사회에서 홀대받고 있는 계급들의 분노와 절규가 사실적으로 채색되고 있다.
시인은 시가 존재해야하는 당위성을 노동 현실을 그대로 증언해 내는 것에 두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그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시인이 어떠한 관점으로 현실을 인식하느냐는 다시 말해 어떤 인생관을 택하느냐의 선택과 결부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70년대의 유신 압제는 시인과 소설가의 입을 막았고 언론의 눈을 가져가 버렸다. 80년대에 많은 민중시인들이 감연히 일어섰다. 그 선두에 박노해 시인이 있었다. 몇 십 년의 피흘림이나 고통으로도 이루지 못할 이 땅 민주화와 노동계습의 권리 옹호와 자유정신을 『노동의 새벽』 한 권의 시집으로 이룩해 냈다. 지문이 노동 속에 문드러져 평범한 사람들의 대열에서도 제외되어 버린 이들의 얼어붙은 침묵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이 시는 80년대를 이끌고 가기에 충분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당신과 당신의 아내인 저와 당신의 아이들 우리들이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오늘뿐 내일이란 없겠지요 적군이란 피의 값으로 여자와 살육과 재물을 원하는 것이라죠 그래서 당신은 당신 숨 끊기시고 난 이후의 우리의 운명을 걱정하신 건가요? 제 옷깃 안에 오도도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세요 어쩌다 사람 손아귀에 든 작은 새처럼 쿵쿵 울리는 그 아이들의 심장 뛰는 소리를 느끼시지요 당신은 검을 빼어 드시는 군요 목이 떨어진 후 얼마까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눈이 금방 흐려질까요? 여보 아이들의 눈을 가려주세요 아니면 제 치마끈을 떼어 드릴테니 그것으로 목을 얽으시면 어떻겠어요 칼날에 동강나는 것은 너무나 무서워요 패장의 가솔은 노비가 된다지만 노비로라도 살아가다 보면 자식, 자식, 그 자식의 때라도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여보 죽는 게 꼭 용기 있는 걸까요? 나라 위해 죽는다지만 그 나랏님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나요 당신이 병사들과 진흙 속에서 피 흘리고 있을 적에 아첨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쾌락에 빠져 있지 않았나요 여보 그러니 여보 우리 죽지말고 살도록 해요 그게 안된다면 여보 저와 아이들이라도 살려 주세요 여보 살려주세요 잘려나간 제 목에 붙은 눈이 잘려나간 아이들의 목에 붙은 눈과 마주쳐요 아이들의눈은 휘둥그레졌어요 믿어지지 않 .....아 ......
1950년대의 서울, 식솔 벌어먹이기 벅찼던 가장이 방에서 목을 맸다. 아이들 엄마는 그 비겁한 가장의 시체를 두들겨 팼다.
1990년대의 서울 , 가출한 아내에 대해 분노한 가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리에 나가 강물에 떼밀었다.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지 않겠다고 빌던 아이는, 경찰이 아버지를 끌고 가자, 아버지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 양애경 「계백의 아내」전문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양애경의 이 작품은 과거의 역사적 상황에 대하여 현재적 상황이 클로즈업 되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다층적으로 연결해 주고 있다. 아무리 거대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위장된다하더라도 가정 하나를 이끌지 못하는 위선적이며 강압적인 가부장적 남성들의 세계를 있는 사실들의 스크랩을 통해서 비판 하고 있는 것이다. 박노해 시인과 마찬가지로 양애경의 현실 인식의 시각은 물론 더 여성적인 입장에 서 있긴 하지만 소시민의 고단한 일면들과 늘 만나고 있다. 아주 분명한 사실은 이들 시인들은 적어도 모방론적인 입장에서 시를 창작하고 있는 시인들이라는 점이다. 고은 신경림 김준태 문병란 김용택 안도현 고재종 정일근등 많은 시인들은 이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시인들이다.
앞의 두 인용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모방론적인 입장에서 시를 창작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부분은 사실의 기록들인 여러 상황들을 재현할 때 그 여러 상황 가운데 가장 적합한 부분을 선취해 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끝내 지문이 나오지 않은 화공약품 공장 아가씨들의 설정과 '계백'이라는 인물과 50년대와 90년대의 가장을 설정하는데 시인이 고심하는 부분을 이해하면 이 점은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다. 90년대에 한 가장을 설정하면서 하필이면 '가출한 아내에 대한 분노'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다리에 나가 강물에 떼미는 아버지'를 설정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를 항상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즘 시의 창작 원리
소설에 관한 얘기 엥겔스가 허크네즈한테 보낸 편지 리얼리즘 실현의 조건은 세 가지
전형적인 환경과 전형적인 인물과 세밀한 묘사가 그것이다.
전형이란 계급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특정 계급의 구체적인 한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평균적이며 보편적인 (우리가 쓰는 통상 '전형'이라고 쓰는 말에는 이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한
현실적 공간과 현실적 인물의 설정이 당대의 현실을 왜곡시키지 않고 그려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라는 점이다.
제 2강 -시적 사유의 힘-
4. 표현론적인 관점 . 표현론적 관점은 시인 자신의 생애에 중심을 두는 것
워즈워스와 J S밀이 이 입장을 지지
워즈워스는 1798년 「서정민요시집」서문에서 '감정을 전제로 한 자발성의 시론'을 편다. 그는 시의 성패가 시인이 가진 감정을 어떻게 구성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구성'은 모방론적 관점을 완전히 배제한다, 어떤 사상이나 현실적 효용가치를 떠나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J S 밀은 시란 외로운 감정의 양식이며 그것은 불가피하게 독백의 측면을 강하게 지닌다고 본다. 시인이란 사회적인 것이나 역사적인 사실들과 떨어져 단독자로서 관조해야 한다는 것
J S 밀의 견해는 시인 역시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로부터 유리 될 수 없는 존재임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극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정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 내리고 들에는 비로다 오늘은 비 맞아시니 얼어질까 하노라
임제의 이 작품에서 ' 비'는 그가 사랑하는 한우라는 기생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표현론적인 입장을 감안하지 않고 이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시를 오독하는 것이 된다. 표현론적인 관점에서 창작되어진 두편의 시를 인용해 본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을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 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 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숟가락 국물을 떠 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 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햇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를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의 투가리를 툭, 부딪혔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을 안느끼게 조심 ,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눈물은 왜 짠가」전문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씨앗가게 앞에 서면 무 숭숭 구멍 뚫린 황당한 家系사이로 좌르르 쏟아지는 어머니의 12월, 왜 들여다보고 싶은지
어머니는 기집애가 참아야지 구신거리면 누나는, 왜 엄만 왜 애먼 나만 갖고 그러냐고 앙당거리고 너도 애비같이 속창시 없는 것이라고 구신구신 거리고 중학 보내줄 때도 그러더니 또 그런다고 앙당앙당거리고 장지 덧문 사이로 더러 내리는 눈발도 한 번 기웃거리다가 참견하면서 그렇게 한 겨울 밤이 스르렁 넘을라다가도 구신구신 앙당앙당 어떻게 넘을까 싶은데
나는 건넌방에 누워 그 대화를 엿듣다가 말다가 눈 내리는 사정이 더 궁금해져 기어코 토방까지 기어 나오곤 했다. 눈은, 웃뜸 영심이 고애 눈썰미처럼 참 곱게도 오는 것이어서 그 소리들은 오싹거리며 이부자리에 파고 든 이후에도 스멀스멀 내 꿈 사이를 기어다녔다
그 꿈의 웃시렁에 대롱대롱 매달린 씨 오쟁이에서는 까맣고 또르또글한 씨앗들의 소리가 밤새 튀밥 튀며 날아오르기도 했는데
오늘 씨앗가게 앞에 서니 천안으로 시집 간 누나, 식당 주방에서 애들 학비는 거뜬히 번다며 웃던 누나, 보고 싶다 이땅 여자들이 끌고 가는 단단한 삶의 알갱이들 단호한 응집력이 구신구신 앙당앙당 내 종아리를 푸르게 때리고 지나간다
- 이지엽의 ㅡ씨앗의 힘-가벼워짐에 대하여. 10 ㅡ전문
표현론의 입장에서 시 쓸 때 주의점
시인 자신의 얘기로 함몰되어 시가 너무 사변적으로 가버려서는 안된다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에서 마지막 행
필자의 작품 또한 실제 중학교를 진학 못한 누이의 얘기를 다루면서 구태여 '이땅의 여자들이 끌고 가는 삶의 알갱이들 '이라는 대목을 삽입한 것도 사변적인 것으로 함몰된느 것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
5. 실용론적 관점
시에 있어서 시적 감동의 문제는 어느 것보다 중요한 문제
실용론적 관점은 시를 '전달'의 한 방편으로 보아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어떤 '효과'에 주목하는 입장
경제적인 효과를 지칭한다고 해서 '효용론적이 관점'으로도 이해하면 쉽다.
독자에게 불러 일으키는 효용은
로마의 시인 호라스가 "시인의 소원은 가르치는 일, 또는 쾌락을 주는 일, 또는 그들을 아울러 하는일" 이라고 얘기 했듯이 크게 교훈적인 효과와 심리적인 효과 를 나눌 수 있다.
교훈적인 효과는 우리의 전통적인 문학 양식들과 밀접한 관계
조선 초기 희대의 사건인 부모를 육시 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의 위정자들은 설순으로 하여금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게 그림까지 그려 민간에 유포
민간에 유포 구전 우리의 고전소설이 탄생 심청전, 조웅전, 춘향전은 이런 저간의 연유 속에서 비롯된 것
우리의 전래동화 또한 대부분 여기서 그 내용을 얻은 것들
조선시대의 시조 창작원리나 고시가 대부분의 창작원리의 실천에 있었고 이 원리는 모든 글이 도에 합치해야함을 여실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 교훈적인 효과는 아동 대상 문학에서는 아직도 유효한 창작목표
심리적인 효과 ㅡ드라이든
극을 중심으로 이론을 전개 표현과 형식의 문제를 강조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면 그 작품이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감동이 사라진 시대에 감동이 있는 뭉클한 시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아빠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에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 김남주 「추석무렵」전문
군부독재에 맞서 '조국은 하나다' 라고 부르짖었던 민족시인 김남주, 그는 천상천하의 서정시인이었다.
「옛마을을 지나며」에서
까치밥으로 남은 홍시 한 알의 미세함에서 '조선의 마음'이라는 거시적 상상력을 일거에 획득해내는 시인은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많은 시편과 함께 서정성이 뛰어난 작품들도 많이 남겼다. 「추석무렵」은 그 중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서정자아와 자식 간의 도타운 정도 정이지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레 뒤를 보고 있는 시골 아낙들과 이에 질세라 화답하는 자연의 조융성이 절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되똥되똥 걸어와 후다닥 헛간 볏짚 위에 오른다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미주알께를 오믈락거리며 다시 일나간다
- 이시영 「당숙모」전문
이 시는 암탉의 생동감 넘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당숙모의 일상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아주 잠깐 사이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것은 밭일을 하고서 돌아온 당숙모가 아주 빠른 솜씨로 따뜻한 점심을 준비하는 것으로 읽힌다 세상살이에 대한 푸념이나 아이들을 나무라는 것을 빼놓지 않고 구시렁구시렁 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주 열악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억척스러움과 건강함이 그 팔뚝의 힘줄을 보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휘익 귓가에서 무엇이 툭 떨어졌다. 좁은 골목길 밖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작고 검고 희었다. 한참 뒤 그것이 그것임을 알았다 찬바람 부는 겨울 속 파랗게 얼음 꽃 핀 하늘 아래 설악 쪽을 보았다 나는 커다란 물음표가 되었다 세상에, 저 사람이 아직도 가지 않고 , 가슴 서늘한 겨울 응달을 간다
정말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제비가 있는 걸까? 그때 잘못 본 것이 아닐까? 분명히 찢어진 연미와 목 아래 흰 가슴을 보았다.
- 고형렬 「제비」전문
이 시에는 예기치 않은 것들로 얻은 경이로움이 있다 . 우리는 대로 전혀 믿기지 않는 현실을 보게 될 꼉우가 가끔 있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시의 소재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재나 사건 그 자체가 긴장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감동의 차원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또 한 번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인은 이를 어떻게 실현 시키고 있는지 유의해 보라. 겨울인데도 돌아가지 않는 제비 ......시인은 이를 '세상에, 저사람이 아직도 가지 않고'라고 말하면서 '가슴 서늘한 겨울 응달을 간다'고 적고 있다. 제비를 무엇에 연연해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일시에 환치시킨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슴 서늘한 그리움을 가진 존재로 격상시켜버린다. 이렇게 되면 '제비'는 더 이상 ' 제비'가 아닌 것이 되고 독자들은 시인이 읟도하고 있는 이 이상한 그리움의 그물을 하늘에 펼치게 된다. 시의 감동은 바로 그곳에 있다.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 보자 파랗다 ,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 맞아보자, 터뜨려보자,터뜨려보자!
-황인숙 「말의 힘」전문
말은 정말 거대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잘못 말한 한 마디가 독이 되고 화살이 되고 위로의 말 한 마디가 따뜻한 이부자리가 되고 길이 된다, 천 냥 빛도 갚을 수 있는게 말의 힘이고 보면 말을 잘 골라 쓰고 아껴 써야 하리라 .
여기까지는 상식인데 시인은 이런 상식적인 내용의 기술을 피하고 '기분 좋은 말'을 직접 열거하여 색다른 맛을 도출 시켰다. 형용사와 동사와 명사를 다양하게 변주시키면서 탄력과 긴장을 효과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6행까지는 장황하다 실제 가파르게 전개하더니 '비'라고 확 끊어 주면서 과감히 한 행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을 보라 . 느낌표를 핥아보고 터뜨려보자라고 하여 불일치에서 오는 묘미까지 즐기고 있으니 독자들은 시인이 부려놓은 언어의 공간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면서 각각의 다른 무늬들이 주는 쾌감을 체험하게 된다.
효용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시를 창작할 때 유의할 점 두가지
첫째는 감동을 주는 시적 대상은 결코 거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 .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는 아낙이나 구시렁구시렁 하는 비 맞은 닭 겨울인데도 떠나지 않는 제비들 아주 사소하거나 주변적이라는 것이다. 사소하거나 주적인 것 만큼 그것들은 사회를 바꿀만한 힘이 없다 .우리와 같은 서민들이며 약자들이다.
둘째 시의 대상을 직관의 힘으로 꿰뚫어보라
직관은 시적대상과의 틈새 없는 결합 물론 이것을 단기간에 성취하기는 힘들다. 쉽다면 모두가 다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발표되는 대부분의 시가 감동적이지 않는 것은 많은 시인들이 이것을 잘 운용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
6.형식론적인 관점
형식곤적인 관점은 시가 그 자체로 자족한 존재임을 전제로 하여 시인과 독자 그리고 현실의 모든 것들과는 유리되어 있는 독립된 영역으로 취급되는 것 이다. 일종의 유미주의적 입장
시인의 사상과 감정 즉 의도를 꿰뚫고자 하는 것이 표현론적인 관점이라면 이 관점에서는 그 의도가 똑같은 결과로서 작품 속에 나타났다고는 볼 수 없는 오류를 인정한다.
효용론에서의 독자 반응도 시가 자체의 도야를 이루어가는 역동적인 실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재단된 결과가 실제의 독자 감동과 다른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W.k wimsett은 이를 각각 '의도의 오류'와 '감동의 오류'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관점은 앞서의 여러 관점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시를 시 자체로만 놓고 이해 평가하려고 한다,
객관주의 구조론의 관점으로 이 방법을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된다. 객관주의 구조론은 영미계의 신비평가들에 의해 뉴크리티시즘을 낳았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들녘에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전문
이 작품은 완벽하게 잘 짜여진 작품이다. 물과 불의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변증법적으로 통일된 완전 세계를 희구하는 서정자아의 의도가 정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은 가뭄 ~ 강물 ~ 바다로의 수평 확산의 의미로 확대되어 나간다. 1연의 하강적 이미지가 4연의 상승적 이미지로 바뀌고 있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한시에서 보게 되는 기승전결이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작품 자체의 완벽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구태여 물의 세계가 자유세계를 대변하고 불의 세계가 전쟁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사회 현상학적인 부분으로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작품 그 자체로서 물의 생명적이고 원시적인 힘에 대해 이해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흰 말(馬)속에 들어 있는 古典的인 살결 흰 눈이 低音으로 내려 어두운 집 은빛 가구 위에 수녀들의 이름이 무명으로 남는다 화병마다 나는 꽃을 갈았다 얼음 속에 들은 엄격한 變奏曲 흰눈의 소리없는 저음 흰 살결 안에 람프를 켜고 나는 소금을 친 한잔의 식수를 마신다. 살빠진 빗으로 내리 훑으는 淡墨의머리칼 속에 나는 三冬의 활을 꽂는다
- 김영대「첼로」전문
이미지로 축조한 견고하면서도 부드러운 감각이 시는 시의 이미지와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흰 말'과 '흰 눈'은 '은빛'과 어울려 이 색감들이 지닌 순수함을 차분하고 단정하게 불러모은다. 이 색감들에 대응하는 것들은 古典的인 살결과 '어두운 집'과 '무명으로 남는 수녀들의 이름' 이다. 이는 시적 대상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 즉 현대적인 면과 고전적인 면 밝음과 어두운 면, 화려함과 수수한 측면의 이중성 때문이다. 화병마다 꽃을 갈 듯 시인은 늘상 해로움에 목말라 하고 '얼음 속에 든' '엄격함'을 지닌 정신이라 봐야 옳다. 선명함 뒤에는 정적과 고요가 스민다.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려 쌓이듯이 시인은 비로소 이 고요의 끝자락에 람프를 켜고 한 잔의 소금 식수로 찌꺼기들을 헹궈낸다. 그 경건함 위에 시인은 三冬의 잠과 꿈에서 깨어나 활을 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는 한 악기의 특성을 완전히 이미지화 시키고 그 이미지의 눈부신 축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주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 위에 누가 구태여 역사와 삶의 더께를 얹고자 할 것인가.
7. 균형 잡힌 사고의 힘
하나
새양철 지붕 위로 쏟아지는 쇠못이여 쇠못 같은 빗줄기여 내 어린날 지새우던 한밤이 아니래도 놀다 가거라
잔디 위에 흐느끼는 쇠못 같은 빗줄기여 니 맘 내 다 안다 니 맘 내 다 안다 내 어린날 첫사랑 몸져눕던 담요짝 잔디밭에 가서 잠시 놀다 오너라
집집의 어두운 문간에서 낙숫물 소리로 흐느끼는 니 맘 내 자알 안다 니 맘 내 자알 안다
다섯 한없이 어루만지는 부드러움이 되는 당신의 두 팔을 받으며 편안히 눕는 당신의 마음은 나의 옷, 포근한 온기를 온몸에 감고 잠이 든다. 당신의 애정은 푸른 밥, 나의 소화기관은 하루 종일 꽃망울을 벌어 일초일초 꽃피워 낸다. 태양이 한 아이의 손바닥에 가지런히 씨앗을 올려놓고 웃음 짓듯이 당신의 눈길이 내 눈을 묶을 때 나는 순한 물이 된다. 속삭이고 싶다 지나가는 바람에게 마음을 주고 싶다. 형태 없는 가을에 내 손에 와 닿는 것들은 순한 물이 되어 고인다. 나의 틀은 좁은 마당에서도 알맞다. 당신의 눈이 내 눈에 고이고, 나는 잘 길들여진 어린 나무, 친근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싶다. 오래오래 헤매고 싶다. 형태 없는 가을에서 사면이 하얗게 칠해진 마당에서 나는 순한 물이 되어 고인다. 당신의 살 위에 내 살을 댄 채.
여섯
비 내린 풀밭이 파아란 건 풀잎 속으로 몰려가는 푸른 힘이 있기 때문이다 풀밭에 힘을 주는 푸른 손목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풀밭이 노오랗게 시드는 건 힘을 주던 손목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을 그에게 보일 것이다 우리들의 몸 속에서도 힘을 주던 손목이 사나워져가고 있다고 말해줄 것이다
세명의 사나이가 풀밭에 서면 풀밭과 세 사나이는 하나다 세 명의 사나니가 풀밭을 지나가면 풀밭과 세 사나이는 둘로 격리된다
그것은 튼튼하고 확실한 형태였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속에서는 분질러진 마음이 오래오래 남아 있었다 그것은 튼튼하고 확실한 형태였다
나는 그대에게 보여줄 것이다 균열된 유리창을 통하여 풀밭을 바라보는 세 가지 마음들을 튼튼하고 확실한 형태들을 나는 그대에게 보여줄 것이다 비 내린 풀밭으로 걸어나가는 세 개의 발이 갇혀 가다가 도망쳐 나오는 시간의 궤적과 공간을 그 튼튼하고 확실한 형태들을
일곱
그믐밤 헛간에 빠졌을 때다. 나는 부러진 도끼처럼 완강한 어둠 속에서 흰 팔의 소리들이 나을 불러내고 있었다. 다 탄 심지처럼 겨울 나무들이 몰려오고 얼어붙은 땅바닥에서 바람소리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흰 팔의 소리들이 뼈를 쪼개고 있었다. 소리들은 찢어진 살을 만지고 있었다. 바늘을 삼킨 위독한 나를 부르며 잃어버린 나라에서도 불타오르던 암석들을 데려오고 있었다. 물이 엎질러진 마당 구석에서 아이들은 얼굴을 비춰보며 놀고, 나는 얼음이 갈라지는 헛간의 빙벽에 매달려 있었다. 이번에는 소리들이 뼈를 부딪히고 있었다. 소리들은 바다로 기울어져 가고 내 안에서는 하얗게 고함치며 갈라지는 뼈가 있었다. 그러자 바람이 메마른 나뭇가지의 살을 씻어 내리다 실신하는 바다에서 흰 팔의 소리들이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 조정권「비를 바라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부분(심상시)
우리는 지금까지 시적 사유의 힘이 어떤 사고관에서 비롯되는가를 살펴보았다. 조정권의 「비를 바라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라는 시에는 다양한 사고가 뒤섞여 혼재하고 있다.
리얼리즘적인 사고의 모방론적 관점이 있는 반면 아주 모더니티한 사유로 작품 자체에 빠져들게하는 힘도있다.비의 이미지를 통하여 '노오란 저녁해'와 '그대 무덤'과 바람의웃음 과 '바다 밑'과 '눈먼 이의 눈먼 가슴'과 '푸른밤' '잘 길들여진 어린 나무'를 건져 올린다. 또한 비의 부드러움 안에서조차 '쇠못'과 부러진 도끼'와 '하얗게 고함치며 갈라지는 뼈'의 소리들을 듣는다. 이 시는 우리가 어떤 사유를 갖더라도 한 곳에 집착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읽혀진다. 사실 모방론적인 관점, 표현론적인 관점, 실용론적인 관점, 형식론적인 관점은 각각의 장점도 있는 반면 단점 또한 자체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로 완벽한 시 쓰기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분단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것을 악용하는 세력들 때문에 문학의 본래 모습이 자주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사고를 가지고 시를 쓰느냐하는 것은 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 그렇지만 균형 있는 사고가 중요하다. 균형 있는 사고를 가진 시가 다양하게 창작되어질 때 우리 문학도 미래도 거기에서 찾아질 수 있다. 시인은 시로써 말하는 것이지 시론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지엽의 현대시 창작 강의 -2.. 시란 무엇인가
2. 시란 무엇인가
시는 감촉할 수있고 묵묵해야 한다 구형의 사과처럼 무언(無言)이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닿는 낡은 훈장처럼 조용해야 한다 이끼 자란 창턱의 소맷자락에 붙은 돌처럼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 새들의 비약처럼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마치 달이 어두에 얽힌 나뭇가지를 하나씩 하난씩 놓아주듯이 겨울잎사귀에 가린 달처럼 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 시는 시시각각 움직이지 앟아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를 때처럼 시는 비등해야 하며 진실을 나타내지 않는다 슬픔의 모든 역사를 표현암에 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 사랑엔 기운 풀과 바다 위의 등대불들 시는 의미해선 안 되며 존재해야 한다
- A.매클리시의 「시학 詩學」에서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 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에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 최두석의 「노래와 이야기」 전문
A. 매클리시의 「시학 詩學」은 시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시로써 잘 보여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는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하는 존재다. 이미지를 보다 강조한 셈이다. 시에 있어서 이미지를 만드는 묘사는 중요한 한 축이다. 그는 또 시를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기억을 하나하나 일깨우며 마음에서 떠나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일시적인 것에 좌우 되거나 어떤 마음을 강요하는 존재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슬픔의 모든 역사를 표현함에 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 사랑엔 기운 풀과 바다 위의 등대불들
시는 그러므로 거기 풍경처럼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의미를 집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듯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두석의 「노래와 이야기」는 좀 다른 관점에서 시를 이야기한다. 그는 '노래로서의 시'와 '이야기로서의 시'에 상당한 애착을 보여준다. 시인에 의하면 노래는 "베개의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다. 그래서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라고 한다. 노래는 흘러가지만 이야기는 유전해가리라 믿는 다 그는 사실상 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가열하고 궁핍한 현실을 이야기시로 보여준다. 닭똥으로 비료 만드는 공장에 나가 일당 서울에서 광주간 차비정도를 버는 아버지(「낡은집」에서)와 플라스틱에 밀려 시세도 없는 대바구니 옆에 쭈그려 앉아 멀거니 팔리기를 기다리느 허리 굽은 어머니(「담양장」에서)의 가족사적 얘기로부터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상경하여 작크 염색 기술을 배우다 지독한 염료 냄새에 후각이 마비된 고종사촌 「고재국」에 이르기까지 ... 이들의 삶은 하나같이 거대한 자본주의와 거대한 이념의 희생양들이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허물 좋은 이념의 덫에 걸려 빠져나오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굴종의 삶들을 파노라마처럼 엮어낸다.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증언하고 이야기로 전달하는 이야기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현대시는 잘 알고 있다시피 크게 서정시, 서사시, 극시의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서정시는 개인의 내적 감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근,현대시의 주류를이루고 있으며, 영어의 lyric poem은 lyre(七絃琴)에 맞추어 노래 불렀던 데서 온 호칭이다. 서사시(epic poem)는 민족, 국가의 역사나 영웅사적(事蹟)과 사건을 따라가며 소설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말한다. 극시(dramatic poem)는 극형식을 취한 운문내지 운문에의한 극을 말하는데 셰익스피어, 라신, 괴테등의 희곡이 이에 해당한다. 산문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 속에 시적 사유를 담은 산문시(prose poem)가 있으며 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시어를 배열 .구성하는 정형시(定型試)가 있다. 또한 그 내용에 따라 도시시, 생활시, 종교시, 풍자시, 전쟁시 등의 호칭도 쓰여지고 있다. 시장르의 하류 분류에도 불구하고 시를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여기 좀더 색다른 정의를 보기로 하자.
시의 주소는 여기에 있다. 지루하고 긴 회임(懷妊), 쉽사리 단 안을 못 내리는 사념의 발열, 심층심리 안의 문답, 외롭게 희귀 한 개성적 심상(心像), 선명하지도 밝지도 못한 사고의 교착(膠 着), 암시, 모든 잠재의식과 꼬리가 긴 여운. 시인이 버리면 영 유실되는 것, 시인이 명명하지 않으면 영 이름이 불리지 못하는 것. 원초의 작업 은 혼돈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그리고 눈물 나는 긴 방황. - 김남조의 「시의 주소는 어디인가」에서
가을 하늘은 어떤 불가사의 (不可思議)의 깊이에로 사라져가고, 있는 듯 없는 듯 무한(無限)은 무성하던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무화과나무를 나체(裸體)로 서게 하였는데,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닿을 듯 닿을 듯 하는 것이 시(詩)일까. 언어(言語)는 말을 잃고 무한은 미소하며 오는데 무성하던 잎과 열매는 역사의 사건으로 떨어져가고, 그 예민한 가지 끝에 명멸하는 그것이 시일까.
- 김춘수「나목(裸木)과 시(詩)」서장(序章)
위의 글과 시를 통해본 시는 여전히 그 존재의 명확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념의 발열' 이거나 '심층심리 안의 문답' '선명하지도 밝지도 못한 사고의 교착'이며 '원초으 작업 같은 혼돈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일 수밖에 존재다. 나목이 되어선 예민한 가지 끝에 닿을 듯 닿지 못하는 그것. 명멸하는 그것이 바로 시일까라는 질문을 시인은 자신 스스로에게 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시에 대한 생각을 한 마디씩 언급해놓았기 때문에 엘리어트는 "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동양권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詩'라는 한자의 구조를 보면 '言'과'寺;의 合字임을 알 수 있다.'言'은 모호한소리인 '음(音)'이나 말을 나타내는 '담(談)'이 아닌 '분명하고 음조가 고른 말'을 뜻한다. '寺'는 '持'와 '志'의 뜻을 가지고 있다.'持'란 손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말하며 '志'는 "우리 마음이 어떤 대상을 향해서 곧게 나감"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시라는 말 속에는 "손을 움직여 일한 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詩三白一言而蔽之曰思無邪(시 3백 수는 한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의 공자의 말이나 詩言志(시는 뜻을 말로 나타낸 것)의 서경(書經)의 말에는 교훈적인 입장의 시관이 깊게 베어 있다. 이것은 물론 당시의 시가집 편찬이 아름다운 서정시에 국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래된 것이긴 하지만 우리 시가사에 있어서도 효용론적 입장은 문학의 존재 이유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고 봐야 옳다.
서양의 시 정의들 ㅡ네 가지 입장이 주류
① 시는 律語에 의한 모방이다 (아리스도텔레스) ② 시는 강한 감정의 자연적 발로다 (워즈워드) ③ 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하는 그림이다 (시드니) ④ 시는 시인의 정서적 확신이 아니라 그러한 확신을 위협하는 모든 반대개념들과 충돌하는 존재다 (워렌)
①은 모방론적인 입장 ②는 표현론적인 입장 ,③은 효용론적인 입장, ④ 구조론적인 입장에서 각각 시를 정의한 것이다.
ㅡ시를 생각할 때 잊지 말아야할 것 우리 시는 시가(詩歌)에서 시작 고대가요나 신라의 향가, 고려의 속요, 조선의 시조와 가사 가요(歌謠), 가(歌), 요(謠), 조(調) 노래로 불려진 다는 것 길이나 가독성에 있어 읽는 것만을 전재한 작품과는 차이를 보인다 ㅡ우리 시가 갖고 있는 본래적 속성을 잊고 있다는 얘기 시에 리듬이 중요한 이유
.최초의 근대 자유시가 주요한의 「불노리」ㅡ 신체시의 영향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시가 신체시에서 왔으며 그것이 우리 전통장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국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어찌 수긍할 수 있겠는가,
과거 아주 오래 전부터도 있어왔고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기저장르의 존재인 '민요'를 통해 우리는 쉽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장르는 살아 있는 역동체다. 일시에 바꿔지지 않는다. 유기적인 생명체를 지닌 존재다.
주요한의 「불노리」라는 작품도 면면을 따져보면 딱히 신체시의 영향이라고 보기가 힘들지만
최초 근대자유시라고 밝혀진 작품들 「눈」이나 「샘물이 혼자서」는 분명 사설시조와 평시조의 무의식적 분출이 빚어낸 작품들
자유시의 창작원리에는 리듬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지엽의 현대시 창작 강의
3. 서정시의 장르적 특성
가.동일화의 원리
나무 속으로 들어가네. 거기 빽빽한 세월 속에 나를 묻어버리기 위해.
내가 사라진 빈 숲에 푸른 잎들의 울음 메아리 치고 그늘 없는 나의 죽음 나무 속에 있네.
- 채호기의 「나의 죽음」부분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고객일까. 몹시 추워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엿다. 온양에서 서울ㄹ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후로 나는 뽑아 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 박목월 「나무」
두 작품의 시적 대상은 '나무' 형상화하는 방법이 다르다.
채호기의「나의 죽음」 ㅡ서정 자아가 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것
박목월의 「나무」 ㅡ서정자아 속으로 시적대상이 들어오는 것.
어디로 어떤 것이 들어가든 그 둘은 하나가 된다. 세상이 내게로 걸어들어 오거나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여기에서 詩가 탄생된다.
서정시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화를 추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다.
동일화를 이루는 것은 자아가 세계로 나아가는 것ㅡ투사 세계가 자아 속으로 들어오는 것ㅡ동화'
채호기의 「나의 죽음」은 자아가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투사'의 기법을 보여주고, 박목월의 「나무」 는 자아 속으로 세게가 들어오는 '동화'의 기법을 잘 보여 주는 시에 해당된다.
간단치 않는 사유 ㅡ 구체적으로 "내가 사라진 빈 숲에/ 푸른 잎들의 울음 메아리치고/ 그늘 없는 나의 죽음 나무 속에 있네." 라는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표현에서 우리는 상당히 낯선 인식과 만나게 된다. 나의 죽음은 무엇이고 그늘이 없는 죽음이란 어떤 죽음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인식은 지극히 당연한 사유의 결과에 불과하다.
첫 행 "나무 속으로 들어가네 "에서 이미 예견되어진 것이 있다. 내가 나무 속으로 들어갔으므로 그 숲의 나무들만 보이는 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이미 없는 것이고 나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숲은 '빈 숲'이 되고 , 나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늘' 또한 없는 것이고, 나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나의 죽음'이 되는 것이다.
이 시가 다소 낯설어 보이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투사가 갖고 있는 속성과 관련이 있음
우리가 투사의 기법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이 부분의 시인들이나 창작자들은 "나무 속으로 들어가네"라는 인식까지는 쉽게 하면서도 그 다음의 인식을 하는 것에 인색하다. "나무 속으로 들어가네"해놓고서도 나는 정작 들어가지 않고 그 사물의 외연을 읊는데 급급하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서정시의 본질을 모르고 있는 셈이 된다.
내가 나무 속으로 들어가고 , 내가 벽 속을 들어가고, 내가 연필 속으로 들어가면 분명 다른 세계가 열린다
나무 속에서는 물관부와 수액들의 속삭임이 들리고, 벽 속에서는 빛과 어둠의 양쪽 세계와 끝없는 기다림이 보이고, 연필 속에서는 탄광 막장의 땀방울과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 그은 선들이 보인다.
투사는 우리 시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 줄 만한 매력적인 장치임에 틀림없다. 이를 잘 활용해 보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동화는 우리와 훨씬 친숙한 개념이다. 나 중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박목월의 「나무」 는 자아 속으로 시적대상이 들어오는 것이다 . 묵중한, 침울한, 고독한 나무의 모습은 서정자아가 여행지를 옮겨 다니면서 본 각각의 나무들 모습이었다. 이 나무들이 그냥 밖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 속으로 들어와 어떤 실체가 되었을 때 거기에서 詩가 태어난다.
동화는 투사에 비해 자기중심적 사고를 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시인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다.
자아가 세계와 분리되지 않고 동일화 된다 라는 점은 그만큼 단단한 인식을 만들기에 용이하다.
나무는 몰랐다. 자신이 나무인 줄을 더욱 자기가 하늘의 우주의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그러나 늦은 가을날 잎이 다 떨어지고 알몸으로 남은 어느날 그는 보았다. 고인 빗물에 비치는 제 모습을 떨고 있는 사람 하나 가지가 모두 현이 되어 온종일 그렇게 조용히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자신을.
-이성선의 「나무」
나무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나무는 그러나 실체의 나무로만 보여지지 않는다. 나무는 '그'이고 '떨고 있는 사람 하나'다. 더 나아가 "하늘의 우주의/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운용하는 시인일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인 자신일 수도 있다. "잎이 다 떨어지고/알몸으로 남은""가지가 모두 현이 도어 /온종일 그렇게 조용히/하늘 아래 울고 있는 "의 모습은 아름답게 노래한 시인의 생애와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 그렇다면 이 시는 투사의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빗방울 하나가 돌멩이 위에 떨어진다 가만히 돌 속으로 걸어가는 비의 혼. 보이지 않는 얼룩 하나, 햇볕 아래 마른 돌멩이 위에서 지워진다.
어디서 왔을까, 네 이름은 내 가슴속에 젖어 물빛 반짝이다가 얼룩처럼 지워져버린 네 이름은.
빗방울 하나가 돌멩이 위에 떨어진다 내 한 생도 세상 속으로 떨어진다. 마른 돌멩이 위에서 내 삶의 한 끝이 가만히 지워진다
-강인한의 「얼룩」
이 시 역시 자아와 세계의 동일화를 추구하고 있다. 어떠한 방향으로 동일화를 추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 작품은 크게 세- 구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빗방울과 돌멩이의 관계다. 빗방울이 돌멩이 위에 떨어진다. 떨어지고 난 뒤 빗방울은 어떻게 되는가. 시인은"가만히 돌 속으로 걸어가는 비의 혼"이라고 말한다. 빗방울이 돌멩이 안으로 동화되며 두 대상이 일체화되고 있는 것이다.)물론 빗방울의 입장에서 보면 투사에 해당된다) 빗방울이 말라 가는 현상을 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했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스며든 후 "보이지 않는 얼룩하나"는 내리쬐는 햇볕 아래의 돌멩이 위에서 가만 지워져 버린다 두 번째는 너와 나의 관계다. 빗방울과 돌멩이의 사물간의 간계가 사람들의 관계로 확대된다. 빗방울은 '너'로 대치되고 돌멩이는'나'로 대치된다. 빗방울이 지워지듯 '너'라는 존재도 내 가슴속에서 지워진다. 세 번째는 나와 세상의 관계다. 빗방울이나 '너'라는 존재가 돌멩이와 내 가슴속에서 지워지듯 결국 '나'라는 존재도 세상 속에서 지워지는 유한한 존재임을 역설 한다. 이 시의 묘미는 사물간의 관계가 인간과 생명의 관계로 자연스럽게 발전되고 있다는데 있다.이 작품은 세 개 서로 다른 관계 속에 설정된 자아와 세계화의 동일화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나. 순간과 압축성
서정시는 순간적인 장르다. 산문은 축적의 원리를 따르지만 시는 압축의 원리를 따른다. 탑을 쌓아가듯이 쓰는 것이 산문이라면 시는 다 사용한 캔을 프레스기로 압축한 것이 시다. 그러므로 시는 대단히 경제적인 장르다. 시가 짧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시는 점점 짧아지는 것을 선호하는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다. 장르사를 통해서도 이것은 쉽게 증명이 된다.
달이 빈방으로 넘어와
누추한 생애를 속속들이 비춥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속옷처럼
개켜서 횃대에 겁니다 가는 실밥도
역력히 보입니다 대쪽같은 임강빈 선생님이
죄 많다고 말씀하시고 누가 엿들었을라,
막 뒤로 숨는 모습도 보입니다 죄 많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얼굴이 겨울 바람처럼
우우우우 대숲으로 빠져나가는 정경이 보입니다
모든 진상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나는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최하림의 「달이 빈방으로」전문
여름 땡볕 맹렬하던 노래 늦은 홍수 지고 노랗게 야윈 상수리 잎 사이 맴 맴 맴 맴 맘 맘 맘 밈 밈 몸 믐 ㅁ - 사그라든다 땅속 십 년을 견디고 딱 보름쯤 암컷을 부르다가 아무 회답이 없자 아무 미련이 없자 툭 몸을 떨구는 수매미 한 마리
새야 바람아 찬 냇물아 지지솔솔 씽씽짹짹 이제 너희가 지저귈 차례다. - 최영철의 「매미」전문
「달이 빈방으로」에는 공간의 현재성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 있다. 달이 빈방으로 들어와 비추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이 선명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가는 실밥도 역력히 보"이고"누가 였들었을라, 막 뒤로 숨는 모습도 보"인다. 얼마나 선명하면 "고백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얼굴" 들이 "겨울바람처럼 우우우우우 대숲으로 빠져나가는 정경이 보"인다 라고 했을까. "모든 진상이 너무도 명백"하고 "눈을 감을 수도 없"는 현재성이 서정시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도 현재형으로 쓰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생생한 현장성은 시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워 과거형으로 시를 창작하다보면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아무 생각없이 과거형으로 시를 창작하는 많은 시인들이 있다. 되도록 현재형으로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최영철의 「매미」역시 서정시의 현재적 장르 속성을 잘 살려 쓴 작품이다. 1950년 한국전쟁에 참가한 이영순의 『연희고지(延禧高地)』는 현재성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 시집이다. 시집 연희고지(延禧高地)』는 전쟁 현장의 숨막히는 순간과 치열함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에는 장시 長詩 연희고지(延禧高地)』와 「지령 地靈」이 실려 있다. 『연희고지(延禧高地)』(1951 .9月作)는 서울 환전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서울 수복작전에 참가한 시인의 실제 경험이 생생하게 연희고지에서 이화고지를 거쳐 아현 터널 서대문지구에 이르기까지 묘사되고 있다. 삼형제가 전투에 참여했다가 혼자 살아 남은 시인의 눈을통해 머리 끝 하나 들먹일 수 없는 필사의 항전만이 숨 가쁘게 직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뒤를 연달아 진격한는 海兵들은 부상한 우리 둘은 볼틈도 없이 우리 둘의 머리 위를 뛰어 넘어서 2 .3미터 前方의 지금까지 敵兵이 있다 물러간 塹壕 속으로 거울에 부닥치는 햇살같이 뛰어든다 그럴적 마다 몇 개의 流彈이 그 작은 城壁에 콱콱 박히며 뽀얀 먼지를 연기처럼 피우므로 머리끝 하나 들먹일 수도 없다. 292高地로부터 내갈기는 敵 기관포의 무서운 集中彈은 塹壕斷面의 홍토를 갈 듯 쑤셔대고 바윗돌을 탁탁 깨뜨리고 소나무를 툭툭 동강내면서 무시무시한 죽음의 폭풍을 일으킨다.
-연희고지 부분
아차 또 어디서 殞命하는지 저 아래 언덕길을 분주히 달려가는 救急隊 서로 나는 彈丸들이 夜玉緞의 바단을 짜듯 火焰 光彩 爆音 暴風과 함께 콩콩, 우수수 땅을 덮치는 돌멩이 흙덩이 소리
- 연희고지 부분
마치 스치듯이 넘어가는 스냅 사진처럼 명료한 표현들이 박진감 있게 전개 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전쟁 상황에서 오게 되는 허무주의나 패배 의식등 전쟁의 존재 의미와 질문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적군은 단지 적군일 뿐이며 하나의 가치조차 부여할 수 없는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오직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만이 존재하게 된다. (사실 이 점은 현재적 장르의 단점과도 연계된다. 생각이 겹무늬를 가질 수 없고 단순한 직선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형을 쓰는 것 보다는 현재형을 씀으로써 얻는 장점이 많다고 우선 이해하면 좋겠다. 적어도 어떤 시제를 쓰더라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판단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서정시는 또한 압축의 장르다. 사건의 전말을 따져 그 원인과 결과를 밝히지 않고 단지 인상적인 한 부분만을 그려 낼 수도 있다. 회하림의 위 인용시도 달이 비치는 빈 방의 감각적인 인상의 한 부분만을 화폭에 담았다. 최영철의 매미 또한 마찬가지다. 매미가 땅 속에서 십 년 동안을 견디는 세월은 단 한줄로 가능하다. 그렇지만 매미가 우는 소리인 맴 맴 맴 맴 맘 맘 맘 밈 밈 몸 믐 ㅁ -"은 십년의 세월보다 더 길게 할애를 하고 있다. 시간의 길이와 시행의 길이는 같이 가지 않는다. 백 년이나 천 년을 한 단어로도 축약할 수 있고 아주 순간적인 부분을 수십 행으로도 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축적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압축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라는 점이다. 압축은 더 이상 줄여지지 않는 길이를 전제로 한다.
압축의 원리를 가장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던 시인이 이동주다 . 그의 시는 80%이상이 시의 한 연이 두행을 벗어나지 않고, 시의 한 행은 2음보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동주는 ⑴의도적인 언어의 절제를 통해 감성적인 욕구를 효과적으로 制御하고 모색하면서, ⑵시에 음악성을 부여하여 민족 고유 정서의 질박한 면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 그가 얼마만큼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는 행 배치와 축약된 시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여울에 몰린 은어떼
가아응 가아응 수우월래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白薔薇 밭에 孔雀이 醉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갈대가 스러진다. 旗幅이 찢어 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 강강술래 - 전문
이 작품이 改作을 거친 과정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용된 강강술래는 1979년 시집『散調』에서 옮겨 적은 것인데 1961년『한국전후문제시집』에는 1연과 2연 사이에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가 삽입되어 있고 8연이 "旗幅이 찢어진다/갈대가 스러진다"로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먼저 61년찬에 문제의 한 연을 삽입한 것과 8연이 앞뒤 行이 바뀌어 改作된 이유는 이렇게 설명 될 수 있다. '강강술래'라는 민족 고유의 풍속을 묘사할 때 삐비꽃의 연상은 그리 이상스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풀은 남부지방에서는 흔한 풀 중의 하나이고 시골에 살았다면 추억이 담길만한 풀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춤추는 모습이 삐비꽃이 무리 지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양을 강강 술래의 모습과 클로즈업 시켰다고 해도 좋고 그 삐비꽃을 꺾어 씹던 어린 시절을 한 번씩은 겪어온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춤을 춘다고 해도 좋다 .아무튼 유사한 의미를 강강술래와 연관시켜 1연 '여울에 몰린 은어 떼'가 너무 함축적인 표현이라는 생각 하에 좀더 이를 구체화시키고자 의도적으로 삽입했을 것이다. 8연이 앞 뒤 행이 바뀐 것은 그 춤동작과 분명 관련이 있다. 곧 강강술래는 노래와 춤이고 이 노래와 춤의 진행이 어떠한가에 더 중점을 두게 된 것이다. 본래의 작품의 시작은 '여우에 몰린 은어떼'로서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고 그래서 이들이 모인 느린 템포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물론 처음은 춤이 주가 되지 못한다. '목을 빼는 설움'이 섞인 노래가 먼저인 것이다 그렇다면 1연과 2연에다 삽입했던 한 연은 자연스러운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에서 그렇게 느리지 않는 듯한 춤이 먼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삐비꽃'에서 연상되는 적절한 소재의 적절한 표현이라도 그는 과감히 삭제한 것이다. 8연에도 거의 같은 이유에서이다. 시 '강강술래'에서 춤이 가장 절정에 달한 대목은 바로 8연이고 8연중에서도 뒤 행 "기폭이 찢어진다"에 있다. 그러기에 당연히 9행의 노래도 '가응강'이 아니라 빠른 템포의 '강강'인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의 개작과정을 유추해보면서 시에 있어서 한 단어 놓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얼마나 고도의 축약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는 축약된 언어가 갖는 무미 건조성을 극복하기 위해 율동적인 음악성까지를 주도 면밀하게 검토하였던 것이다. 시는 고도로 축약된 언어로 짜여져야 한다. 이동주가 주장한 다음의 시관을 보자.
모든 藝術이 다 그렇듯이 詩도 표현이 있고서야 성립된다. 표현 이전의 시는 놓쳐버린 구슬이요 아까운 生命의 遺産이다. 다만 詩의 特質은 짧은 형식에 있다. 지극히 制限된 規格에 있나니, 詩人의 苦行은 실로 이 제한된 格式에 있으리라.
그는 '짧은 형식' '제한된 규격'에 대해 일률적으로 고정된 형태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되도록이면 적어지기를 主張하면서 아주 없어지기를 두려워하는" 그 오묘함을 시의 특질로 보았던 것이다. 시가 길어진다는 것 자체를 본질에서 어긋나는 것이라 보았다. 그는 이를테면 아주 경제적인 시관을 가진 셈이다. 시'뜰'은 그의 경제적인 시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고이 쓸어 논 뜰 위에 꽃잎이 떴다.
당신의 신발 동정보다는 눈이 부신 미닫이 안에 나의 반달은 숨어...
앞 연과 뒤 연을 건너 뛰면서 '당신의 신발'이라는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써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독자의 시선을 집중 시키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짧게 처리해 한 연을 ㅗ배치해도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 것이다. 인용된 시에서 2연이 갖는 역할은 2연을 삭제하고 보면 확연해진다. 서정자아의 시선은 뜰 - 방안으로 가게 되며 무슨 내용을 얘기하자는 것인지가 분명하지못하게 된다. 2연으로 삽입됨으로써 뜰 - 신발 -신발의 주인 (나의 반달). 방안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된다. 그의 언어 절제에 대한 노력은 이렇듯 1行이라도 허술하게 배치하지 않고 관심을 집중시켜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 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다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 김지하,「생명」전문
김지하의 「생명」은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우는 것" 하나에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이 생명의 원행은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 어미가 왜 우는지 그 전후는 생략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마지막 자리"라는 점이다.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허용치 않는다.
시 창작에 있어서 이점은 매우 중요한 창작원리를 제공한다. 오늘날의 시가 난삽해지고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인 자신도 모르는 사유를 시속에 다 집어넣으려는 욕심에서 기인되고 있다. 한편의 시를 쓰고 나서 그 단어나 구절이나 혹은 행과 연이 이 시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인가를 점검해보자. 점검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단어나 구절, 행과 연을 건너뛰면서 율독 해 보면 된다. 자연스레 넘어간다면 열 중 아홉은 건너뛰어도 되는 부문을 삭제시켜야 한다. 끊어낸 자리의 빈 공간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의 몫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