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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눕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고백할까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우리 서로에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추석이 되면 늘 하는 말이 있죠.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이런 속담을 우리가 종종 이야기합니다. 이는 매일매일이 한가위 같았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죠. 왜냐하면 추석이 되면 오곡백과가 풍성하지요. 이날은 많은 음식을 장만해서 푸짐한 식탁을 나눕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죠.
뿐만 아니라 즐거운 놀이를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오손도손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갖기 때문에 늘 이날만 같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추석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행복, 즐거움, 웃음, 풍성함, 넉넉함, 풍요로움, 땅 귀성 이런 단어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 오시면서 주변을 이렇게 쫙 보시면서 오셨던 분들은 수많은 현수막에 적힌 비슷한 문구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미 연휴가 시작이 되었는데 저와 여러분들의 추석이 밝은 보름달처럼 행복하고 즐겁고 웃음 가득한 명절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풍성하고 넉넉하고 풍요로운 추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한가위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오늘 본문에 보니까 마치 한가위 같은 삶을 사는 자에 대해서 기록해 주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자세히 묵상하면 풍성함이 있고요. 이 구절 속에 넉넉함과 또한 기쁨과 행복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혹 세상이 주는 풍성함과 기쁨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풍성함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의 삶이 되실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포함한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죽기 직전에 이스라엘의 12지파들을 향해서 축복한 내용이 쭉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는 마치 명절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있는데 가장 큰 어른이 자자손들에게 덕담과 축복을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그러한 모습이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광야 생활 가운데 우여곡절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이제 드디어 가나안 문앞까지 경도하게 된 것이죠. 이제 요단강을 건너기만 하면 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시간이 펼쳐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리더였던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고 싶어도 밟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기 전 비스가산에 올라가서 죽게 되는데, 그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특별히 마음의 정성과 진심을 담아서 이 12 지파들에게 한없는 축복의 메시지를 남겨주게 되는 것이죠.
특별히 오늘 읽은 29절은 총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체를 향한 축복의 메시지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29절 서두를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해서 말하죠.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렇게 선포를 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때 그 시간에 행복한 자였는가? 외형적으로 볼 때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리기에는 그렇게 축복을 받았나 하는 의문점이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아직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한편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죠.
그리고 실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만 너무나 메마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에는 좁은 땅 와 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가나안 땅과 이 주변의 강대국의 땅을 비교해 보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방 민족들이 살던 땅, 즉 당시에 아수르라는 제국이 가졌던 땅, 아수르가 멸망하고 바벨론이 가졌던 그 땅 뿐만 아니라 저 아래 애굽 땅 여기 보면요. 훨씬 광활할 뿐만 아니라 수로들이 잘 돼 있어가지고 물이 넉넉해서 비옥한 땅으로 너무나 훌륭한 땅들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아주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는 행복한 자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
그렇게 선언을 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모세가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이 이유를 발견하시고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의 삶이 혹 세상을 비교할 때 조금 모자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먼저는 근본적인 이유가 한 가지 있고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해 주는데 이것이 시편 2편 3편과 너무나 일치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근본적인 이유는요. 세상 모든 민족 중에서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선택 한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는 것이죠.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택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는 거죠. 아무 힘도 없고 아무 능력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분이 아니라 모든 복의 근원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섬기는 자가 그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산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 되신 그분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그 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죠.
사실 이스라엘 기업 이들이 받은 땅, 앞서 이야기했듯이 메마른 땅이었고 젖과 꿀이 흐르기에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땅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 주사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너희의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 너희가 복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심으로 인해서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임을 선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때를 따라 적당한 비가 내려져야 된다. 그렇죠 어느 정도 일조량이 확보되어져야 된다는 어느 때에는 좀 선선한 바람이 불어줘야 된다. 이것은 농사짓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듣기도 해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시고 바람을 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여러분 아무리 거대한 나무 앞에 비를 달라고 구해보십시오. 그 나무가 비를 줄 수 있습니까? 아무리 멋진 돌을 가져다 놓고 거기에다가 비를 달라고 소원을 빌어보십시오. 그 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든 신, 아무 능력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또한 내가 농사짓는 실력이 있어요. 누구보다도 농사를 잘 짓는다 자신감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러한 사람일지라도 태풍 한번 불어닥치면 또한 때를 따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면 원하는 만큼 수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날씨를 주관하신다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결실들 더 풍성함으로 얻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시편 23편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내가 부족함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내 삶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풍성함을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두 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을 저와 여러분들의 목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 11절에 보면 예수님은 나의 선한 목자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다 그렇게 말씀하죠. 그리고 그 앞자리 10장 10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 같이 한번 큰소리로 읽어보실까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는 것이라
여기 보면 더 풍성이라는 말이 보입니까? 생명을 주셨는데 풍성함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여러분 한가위를 보내면서 풍성함과 넉넉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예수로 인하여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함이 저와 여러분 삶 가운데 부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근본적인 이유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 짧은 세 구절을 통해서 또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요. 구원이라는 거예요. 신명기 33장 29절 두 번째 문장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도대체 누가 너처럼 여호와께로부터 구원 백성이 있겠느냐
라는 이야기잖아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구원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모세라는 인물을 준비시켰죠.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고 있던 애굽에게 10가지 재앙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애굽으로부터 출애굽할 때에 은금 패물뿐만 아니라 가지고 가고 싶은 모든 것들을 가져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지날 때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구원의 여정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무엇일까요? 따라 합시다.
인도하심 인도하심
인도하심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죠. 왜 애굽이라는 종의 삶에서 벗어나 가난이라는 축복의 삶의 자리로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우리 시편 23편 2절 3절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한번 같이 크게 읽어보실까요?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여러분 목자가 없으면 양은 좋은 풀 그리고 독초가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쉴 수 있는 잔잔한 물가인지 아니면 빠져서 위험한 수렁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따라서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것은 평안과 안식의 자리로 인도해 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죠.
3절을 자세히 보시면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니까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봤더니 자기의 이를 위해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죠 하나님의 이 의로움이 우리를 의롭게 만드심을 통해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의로움을 선포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려서 의로운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죠.
사실 저와 여러분들은 아담의 원죄로 인해서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죠. 그런데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서 우리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 17절 아시는 분들은 큰 소리로 외울 수 있는 부분을 외우시면서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가 뭐라고 돼 있어요? 17절에 보니까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에요. 구원 예수님이 이를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죠.
여러분 십자가의 길의 끝은 무엇입니까? 무덤이 무덤은 어때요? 갇혀 있죠? 그런데 다친 것으로 끝나지 않은 것이 은혜죠. 하나님께서 그 무덤의 문을 열어주셔서 새로운 문, 새로운 길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죽음의 길 그것은 무덤의 끝이었는데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덤을 여는 축복. 그래서 여러분 그 문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좁은 문이긴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즉 예수님께서 의로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길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그 구원의 여정을 잘 걸어가는 성도의 삶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그 길로 인도받는 자 당연히 행복한 사람 아니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여정 가운데 인도하심을 받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다. 모세를 통해서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요. 보호하심이에요. 보호하심 신명기 33장 29절 세 번째 문장인데요.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여러분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 합한 사람마저도 수없는 위기와 고난 속에 살았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편을 통해서 종종 기록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기록해 주고 있어요. 그중에 핵심 단어가 방패라는 단어이죠.
그런데 하나님은요. 다윗만 도우신 게 아니에요. 성경에 보니까 이스라엘도 도우셨고요. 아론의 백성들도 도우셨고요. 하나님을 경유하는 모든 사람들을 도우셨다. 그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제 도우신 하나님에 대해서 시편 23편 4절과 함께 연결해 볼까요? 시편 23편 4절입니다. 우리 큰 소리로 읽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아니하시나이다.
여러분 양이 어디 있든지 목자는 항상 동행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즉 환경을 다스리는 거예요. 환경 가운데서 도우시는 손길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뭐라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고 대신 뭐 하라는 거예요? 아니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과 위로 가운데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시련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가끔은 주변을 돌아보게 되죠.
그런데 실상 나를 도와줄 사람 한 사람을 찾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내 낙심하고 절망의 늪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도우십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있다. 언제까지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구원의 완성이 있는 그날까지 우리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도우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 방패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행복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방패되어 주시니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행복한 자로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 번째는요. 승리 따라 합시다. 승리 우리 신명기 33장 29절 후반절 이 네 번째 문장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내 영광의 칼이시로다.
그리고 이제 뒤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 해석해 주고 있죠.
내 대적이 내게 복종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높은 곳을 가버린 무슨 이야기입니까? 결국 승리를 말하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셨다. 출애굽하여서 여러분 홍해 앞에 딱 막혔던 그들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순간 등 뒤에 턱밑까지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서 우리를 이같이 하느냐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라 하지 않았느냐 우리를 애굽 섬길 수 있도록 그냥 두라 했는데, 왜 이끌고 나와서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
그 말을 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외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 영원히 보지 아니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따라 합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담대하게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울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있도록 하여라.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을 위해서 싸우신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들은 홍해를 건넘과 동시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합니다. 그 노래의 긴 구절 가운데 우리 세 구절만 한번 읽어보시게. 뭐라고 고백하는지 출애굽기 15장 1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오 말과 그한 자를 바다에 던지셨으니라.
15장 6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시작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다.
15장 12절입니다. 시작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 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여러분 주의 오른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승리케 하셨다.
그렇게 고백한 것이죠. 신명기 31장에 보면 모세가 임종을 앞두고 여호수아라는 후계자를 세웁니다. 그러면 여러분 백성들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비순순하죠. 모세가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왜 모세가 함께하지 못하고 후계자를 세우는가 그런데요. 그때 백성들을 향해서 위로합니다. 뭐라고 위로하는지 신명기 31장 3절 4절. 우리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내 앞에서 멸하시고 내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와 수아는 내 앞에서 건너갈지라. 또는 여호와께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별하신 아모리 왕 시온과 오빠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 행하실 것이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모세가 중요한 게 아니고 여호수아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앞서서 싸우셨던 것처럼 너희들 이 강을 건너는데 너희가 건너기 전에 누가 여호와께서 앞서가셔서 싸워주실 것이니, 그러니 여호수아가 중요하고 모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봐야 된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여 성전 예배를 회복하는 모든 종교 계획을 실시하고 그것을 다 마친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동안 침공 기미를 보였던 아수르 왕 사네립이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기 시작합니다. 산헤립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도성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사르곤 2세의 아들로서 여러 원점을 통해서 거대한 아수르 제국을 읽은 아주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아수르 제국은 중중동 지역의 강력한 패권 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 지주의 연안의 작은 국가인 유다로서 이 아수르와 맞선다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상대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 히스기야 시대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 유다에 대해서 아수르가 두 번에 걸쳐서 침공을 하게 되죠. 1차 침공은 주전 701년경인데 히스기야 제국이 14년경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아수르 왕은 무엇을 받고 갔냐 하면 히스기야 왕을 통해서 항복 문서를 받습니다.
우리가 항복하겠습니다. 항복 문서를 받고요. 막대한 양의 조공을 받게 돼요. 그래서 그것을 들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히스기야 왕이 애굽과 군사동맹을 맺어요. 그리고 반 아수르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아수르에게 항복했던 이들이 아수르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밑에 애굽과 연합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당연히 격노할 수밖에 없죠. 이 격노한 왕이 2차 침공을 하기 위해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라이스 본진으로 침입하게 됩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은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기 시작해. 그래서 신하들과 군대 지휘관들 딱 불러모은 다음에 아수르가 저렇게 침공을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묘수를 좀 세워봐라.
그런데 여러분 어떤 묘수가 있겠어요? 실제 애굽을 의지하고 애굽이 도와주지 않는 이상은 가능성이 없었던 상황이죠. 결국 히스기야 왕은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예루살렘 성읍 바깥에 있는 생물을 모두 막아버릴까 사내리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할지라도 물을 얻지 못하면 물이 필요하지, 물이 얻지 못하면 그들이 어찌 해볼 도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 왕의 제안에 모두가 만장일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백성들을 동원해서 도성 밖의 의무를 또한 신혜를 전부 배우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이제 방비를 해야 되니까 예루살렘 성벽 무너진 부분들을 다 보수하고요. 성벽 바깥쪽에 한 겹의 성벽을 또 쌓습니다. 그래서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참가 방패를 열심히 만들었어요. 어찌 보면 2차 침공을 막기 위한 철저한 대비였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이 히스기야 왕의 위대함은 이 다음에 기록되 있어요. 왕은 군사 지휘관들을 제로 세우고 모든 군사들 그리고 예루살렘 성문 앞에 광장에 있는 이곳에 모두를 불러모으고 격려하면서 용기를 줍니다.
어떤 말을 했는가? 역대야 32장 7절 8절인데 우리가 왕이 격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번 읽어볼까요?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아수르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발이오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함에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히스기야 왕이 담대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 왜 우리와 함께 싸우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그 결과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리고요. 아수르 왕의 진영에 모든 큰 용사와 대장 지휘관들을 다 진열하기 시작해 아수르왕 산헤립은 야 이거 웬 망신이야 그래서 머리 쥐어 삶고 본국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의 권좌가 금방 무너졌다는 거예요. 그의 아들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신전에서 지 아들을 죽이게 됩니다. 비참한 처를 갖게 되죠.
그렇습니다. 세상은요. 이렇게 말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게 말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지피지기여도 질 때가 있어요. 내가 분명히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 같은데 져요. 그것은 세상에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 핫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출동하시면 지피지기가 아니어도 백전 백승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출동하시면 백전 백승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하나님께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면 우리는 승리의 잔치를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5절은 이렇게 기록해 줘요. 시편 23편 5절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차려주는 상은 무슨 상인지 아십니까? 승리의 상 원수가 목전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였다. 그러니 잔칫상 버리자. 그래서 상을 차려주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음으로 끝났다면 실패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심으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따라서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그렇게 말씀해요. 우리 한번 읽어봅시다.
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무엇이라고요?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거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승리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이상 세상 사탄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사탄과 마주치지 않을래 않을 수가 없어요. 특별히 우는 사자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을 삼키기 위해서 지금도 막 초롱초롱하게 쳐다보고 있잖아요.
이번 명절 때 누구를 넘어질까 내가 누구의 신앙을 빼앗을까? 이번 명절에 그렇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탄을 이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셔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단, 마귀를 이기는 존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번 명절 때 여러분 사단 마귀가 나를 넘어뜨리려 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한번 따라할까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왜 행복합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왜 행복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왜 행복합니까? 우리가 인생의 여정, 구원의 그날까지 우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왜 우리가 행복합니까?
끝내 승리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셔서 이번 명절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함을 누리고, 넉넉함과 즐거움과 행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 풍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