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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이야기/ 정희 6
https://youtu.be/3JWTaaS7LdU
이곳에 오기전 나는 정희를 설득해야했다.
예상처럼 그녀는 완강하게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 정현씨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 아니예요.
이건 현실이예요 . 병원에서도 포기한 암덩어리를 안고 있는 환자를,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나를, 살아 있는동안 괴로움만 주게 될, 산송장같은 나같은 사람에게 동정도 아닌 사랑이란게 말이나 되요. 사랑도 싫어요. 동정도 싫어요 !
난 진실로 말하지만 정현씨 당신이 내곁을 떠나줬으면 해요 . 당신은 당신의 길을 새로 찾아가기를 바래요 . 나 같은 여자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이예요.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예요 .
원망도 아쉬움도 미련없이 나도 당신을 잊을께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
내가 당신을 만난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어요. 그것이 아프고 쓰라린 슬픔으로 남을지라도 그건 내 몫일 뿐이예요."
정희는 나와 함께 가는 것을 일언지하에 거부하였다 .
" 정희야. 지금 네가 어떤 심경인지 너무 잘 알아.
너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음도 잘 알아 . 그렇게해서 나를 보내면 너는 행복하겠니 ? 나는 지금 너에게 사랑타령이나 하고 있을때가 아니라는 것도 말해주고 싶어.
현실은 나한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정희 바로 당신에게 필요한 거야 ."
나는 그녀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병의 진행과 주위의 식구들과 겪어야 할 정신적 경제적 압박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
" 설령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해도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변치않을거야 . 보잘것 없이 살아온 내게 당신은 희망이었어 . 너를 알고난 후부터 내 삶이 어떻게 바꼈는지 당신이 더 잘 알잖아 . 지금부터 앞으로의 일은 내 의견에 따라주길 바래. 오직 나의 사랑만 받아주면 되. 난 당신이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길 바랄뿐이야 ."
" 미친 새끼 . 그런다고 잘라 버린 내 유방이 다시 솟아나길 하겠어 . 내 몸안에서 매일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구석에서 암덩어리가 자라고 있는지 모르는데 "
" 정희야 흥분하지마 "
" 싫어 . 난 네가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 . "
" 나는 너만 있으면 되 .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할 고통과 두려움을 함께 나눌거야.
이런말을 한다한들 도움이 되겠냐만 <니나 라그스>라는 작가도 유방암으로 자신의 삶이 몽땅 헝클어졌어. 하지만 그 사람은 그 고통속에서도 또 다른 내일을 삶의 길을 찾았지.
정희 당신이 암이라는 병마 앞에서도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삶은 예전과 다를것이 없어.
정희, 당신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선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이 살다가는 인생에 불과해. "
나의 긴시간을 진지하고 진실어린 설득 탓인지 차분히 들어 주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어요 .당신이 아직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제 당신과 내가 하나씩 찾아 봅시다. 나는 당신이 어떤 몸을 갖고 있다한들 사랑할 수 밖에 없어요. 당신도 이제는 내 사랑을 받아줘야 해요 . 그동안 숨기고 감추고 살았던 나에 대한 사랑을 이제는 남김없이 보여주길 바래요.
당신은 곧 내 행복이예요 . "
여인의 어깨는 흔들리고 있었다.
" 이제 두번 다시 당신을 놓치지 않을 거예요"
남자는 바람에 나부끼는 촛불을 품에 안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숨어 듣고 있던 수연이 제 엄마에게 울며 하소연을 하였다
" 엄마 . 지금 여기 계시면 그냥 돌아가실 거예요 . 난 아직 엄마와 더 오래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도 이제 아저씨 말 들어요.
엄마가 매일 아저씨 생각하면서 우는 모습 지켜 봤어요 . 이젠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정말 좋겠어요 "
수연은 나를 붙잡고 매달렸다
" 아저씨 . 저의 엄마 꼭 살려주세요. 아저씨라면 하실수 있으실거예요 "
창백한 손이 나의 옷깃을 놓지 않고 있었다
병실 창밖에는 어둠이 내리고 밤바람이 나뭇닢을 흔들고 있었다 .
나는 무너질것만 같은 몸으로 차에 올랐다.
" 바보같은 여자 . 지금 지가 내 생각할 때야
모르겠어 . 나도 왜 이래야하는지 "
그런 시간이 지난후 며칠 뒤 정희는 나를 불렀다 .
수연이 그녀의 화장을 도와 주었는지 얼굴에는 봄햇살 같은 화장기가 여린 꽃닢처럼 번져있었다.
" 나 당신 따라갈게 "
" 고마워 "
" 대신 당신 나 버리면 안되 "
우리에게 더이상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꽃향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향기에 실려 그녀가 내게로 들어왔다
향기처럼 내품에 안겼다.
산속의 집은 아늑하였다
낮은 지붕을 이고 진흙담으로 둘러 싸인 벽이
정겨워 보였다 .
넓직한 돌이 현관으로 향하게 깔린 마당은 새주인인 우리를 반겨주었다
거실에서 보면 마당에는 향나무와 헐벗은 목련. 벚나무와 대추나무 . 살구나무가 늦가을 첫추위를 담담히 이겨내고 있었다 .
마른 이파리 몇개가 대롱거리는 붉은단풍은 문짝도 없는 대문을 지키고 있었고 화단에는 지난 가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화초들이 말라 버린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남자는 낮은 벽난로에 장작을 피워 거실 안에 따듯한 훈기가 돌게 하였다.
" 여기가 당신 방이예요 "
정현은 햇살이 저녁까지 걸려있을 것 같은 창이 커다란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 당신 마음에 들까 몰라 .벽에는 편백나무로 두르고 바닥은 황토로 깔았어요. 우중충할 것 같아서 천장이랑 위에 벽은 하얀색 실크벽지로 도배를 했어요"
" 또 . 저기를 보세요"
그가 가르키는 벽에는 칸딘스키의 푸른 하늘이 걸려 있었다 .
" 어머 !"
나는 탄성을 질렀다
어릴적 희망이 화가였지만 철들며 그 꿈을 접어야 했던 나에게, 푸른하늘은 나의 꿈이며 희망의 상징이었다 .
그는 침대에 나를 앉히며 그림을 가르켰다.
" 보세요 . 여기서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푸른 하늘이 보일거예요. 또 잠잘때면 은하수처럼 화려하게 정희씨를 지켜줄거예요 "
방안에는 내가 좋아하거나 필요로 하는것들이 꼼꼼하게 채워져 있었다.
남자는 섬세하게 나의 작은 취향과 숨겼던 습관과 심리 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 이건 내가 필요할 때 누르면 되는거예요 .일종의 호출기지만 이제부터는 ' 알라딘의 램프' 로 불러요 . 주문은 정현아 하고 불러도 괜찮아요 "
그는 침대곁에 있던 리모콘 하나를 보여주었다
남자는 마치 배우처럼 시종의 모습을 흉내내었다.
" 이방이 우리방이예요 ?"
" 아니. 내 방은 바로 옆에 있어요.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올거예요."
나는 그이 방문을 열어 보았다.
북쪽으로 난 작은 창 너머로 오두커니 앉은 뒷뜰에는 늦가을의 햇살에 장독 몇개가 앉아 있었다. 방안에는 일인용 침대와 작은 옷장.책상. 그리고 책장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
벽에는 언젠가 그의 집에서 보았던 오래된 십자고상이 우뚝 걸려 빛나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방이었다
" 뭐야 . 그런데 춥지 않겠어요 ?"
" 춥지는 않어요 . 당신방 온돌이 이리 연결되어 있거든요 . "
정현은 기름보일러와 장작을 겸용으로 쓸 수 있는 방에 언제나 저녁과 새벽이면 장작불로 방을 알맞게 덥혀 주었다 .
그후 남자는 여름에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가져온 나의 짐을 풀었다 .
오래된 그리고 아끼던 소녀 시절의 노트와
사진 . 몇가지 책과 악세사리 . 수연이 챙겨준 화장품 . 그리고 당장 입어야 할 옷들 등이었다.
만일 내가 이곳에서 세상을 뜨게 되면 저이에게 이것들을 태워 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남자는 잘 훈련된 사병처럼 나의 뜻에 따라 물건들을 일일히 자리에 놓아 두었다
" 아냐 아냐 저 책은 내 침대 옆에 ..... "
" 응 "
침대에 붙어있는 자주색 가죽이 덧쒸워진 작은 의자는 나의 몸에 딱 붙듯이 편안했다.
나는 마치 이집의 여주인. 아니 여왕이라도 된듯 그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했다 .
산등성이에 눈부신 황금햇살이 어둠에 잠겨 들어 가고 있었다 .
방안은 따듯하게 그 어둠마저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 산돌님 계신가 ? "
" 네 . 어서 오세요. 형님 "
저녁에 산골선배와 제이가 방문을 하였다 .
약간의 먹을것과 큰통에 김장김치를 담아 왔다 .
" 김치는 산돌. 자네 올줄 알고 많이 담궈놨어
김치독이 없으니 필요할 때 가져다 먹게 "
나는 두 사람 관계를 적잖이 알고 있다.
문학카페의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자유분방하지만 남의 연애사에 대해 모르는 척 해주는 탓에 정현과의 일년의 그 화끈했던 연애기간도 무덤덤하게 보아주었던 것이었다
우리의 연애사를 알고있던 사람중에 한 사람이 산골선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산골선배야 문학클럽에서 워낙 필명을 날리던 분이었고 . 향토색 짙은 시를 쓰는 제이씨의 글도 종종 접했던 기억이 났다 .
우리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듣고 배우며 문학클럽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차려온 음식으로 이사 첫날의 저녁을 먹었다 .
나는 제이씨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대체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두려움도 서서히 씻겨 나갈 것같은 자신감도 . 또한 죽음과 병에 대한 공포도 이겨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첫인상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우리의 첫날밤이 시작 되었다.
밖에서 타닥타닥 장작불이 튀는 소리가 어둠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이가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넣고 있었다.
나는 두툼한 파카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장작타는 불빛에 비친 그이의 얼굴이 붉게 빛났다.
나는 그이의 곁으로 다가가 옆에 나란히 앉았다.
" 추운데 왜 나왔어요 ?"
" 당신 심심할까봐 "
남자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랫만에 보는 남자의 티없는 미소였다
" 고마워요. 정희씨 "
" 뭐가 ? 이젠 속이 시원해 ? "
나는 눈을 홀기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궁이에 타오르는 장작불이 낼름거렸다
" 나의 뜻을 받아줘서 고맙고 , 살려는 의지를 보여줘서 고마워요 . 이젠 당신이 이겨내는 일만 남았어요 . 나는 그런 정희씨 곁에서 늘 지켜야 할거구요
우리 같이 이 거칠고 험한 시간들을 함께 이겨나가요 .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
그의 팔이 나를 감싸안았다
나는 그의 말이, 그의 진심이 얼마나 뜨겁고 강한지 알 수 있었다 .
" 첫날밤이예요 . 당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 기도하는 밤이 되었으면 해요.
오래전부터 서로를 윈하면서 다가가지 못했던
아픔은 이제 잊었으면 좋겠어요 ,
당신의 바램대로 우리의 사랑을 , 어떤 병마라고 해도 절대 가로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
아궁이의 장작불이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신을 믿지 않는 내게, 나를 감싸주는 크나큰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
알수없는 힘이 나를 붙들어 주는 기분이었다.
이루어지지 않는 간청이라 하여도 그 안에는 분명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거라 생각했다 .
11월의 밤하늘에는 서울에서 볼 수없는 별들이 수없이 깔려 있었다.
" 어머 ~ 저기 저기 별 좀 봐요 "
정희의 눈속으로 . 가슴속으로 별들이 우루르 웅장한 관현악을 연주하며 쏟아지고 있었다 .
나의 방은 알맞게 따듯하였다
불을 끄고 창가로 다가가 커텐을 열어보았다
늦게 떠오른 달빛이 환하게 내려 앉아 마당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슴이 조용히 뛰기 시작했다
지난 날 정신없이 지냈던 때에는 하늘에 달이 뜨는지 해가 기울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무엇에 그리 바쁘고 쫏기며 살았는지 기억도 할 수 없지만 지금 마당을 가득 채운 저 달빛은
나를 잔잔한 평온의 세계로 인도하는것 같았다
달빛이 내 얼굴에 물들었다.
잘디잔 피로의 찌거기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에 몸을 뉘였다.
침대는 넓었지만 한없이 포근하였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마음 편안한 밤이 있었을까 ?
삶을 포기한 자의 체념이 주는 편안함일까 ?
그러나 오늘밤은 어떤 생각도 하고 샆지 않았다.
주어진 평온함을 느끼고 즐기고 싶었다.
처음 만나고 어울려 다닐때는 느끼지 못했던
믿음이 슬금슬금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호출 벨을 눌렀다 .
갑자기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그런데 정말 약 이 삼초나 걸렸을까 ?
노크소리와 동시에 남자는 내 방을 잰 걸음으로 들어왔다
마치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달려와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다
" 무슨 일이야 ?"
" 응 . 오늘 무슨 날이랬지 ? "
" 어 ? 무슨 날이지 ? "
" 호호호. 바보같으니 . 자기가 한말도 잊어버렸어요 ! "
남자는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픽하고 웃고 있었다
" 정현씨 . 나 키스해줘 . 첫날밤인데 "
" 어헛 . 새색시가 너무 밝히는거 아니야 ?"
그는 미소를 띤채 다가와 무릎을 꿇고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
나는 남자의 목을 잡고 한참동안 풀어주지 않았다.
은은한 달콤함이 혀에 배어왔다
남자는 나의 머릿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 잘자요 . 첫날이니까 좋은 꿈 꾸어요 "
그가 불을 끄고 나가자 커텐 틈 사이로 달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던 세월이란 거친 풍파에 갈가리 찢겼던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여지껏 상상조차 못했던 삶의 시작이었고 끝을 향해 가는 가장 거룩한 길에 첫걸음을 찍고 있었다
새벽이었다
밖에서 남자의 발소리가 조심스레 들렸다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고 있는 모양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불을 켰다 .
어느새 다녀 갔는지
작은 테이블 위에 약봉지가 물컵과 함께 놓여 있었다 .
나는 일부러 불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 정희씨 . 일어났어요 ?"
그는 벌써 아침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어제 보았던 집안과 창밖의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첫날밤을 지냈다.
잠자리가 바뀌면 어색해서 잠들기에 어렵고 힘들어 하던 내가 그런 어려움없이 숙면을 취하고 일어났다 .
지난 세월 .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 속에서 평화롭게 눈 감고 잠든적이 몇번이나 있었나.
내일 아침에는 눈 뜨지말고 그대로 영원히 잠들기를 바랬던 숱한 날들이 있었다
바보같이 살아왔다는 후회와 증오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좌절. 희망이라는 가느다란 빛을 찾으려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삶을 버텨왔는지 . 그 모든 혼란의 날들이 하룻밤 사이 기억 저편으로 지나가버렸다
하얀 병실에서의 죽음의 두려움과 좌절 앞에서 잠들지 못했던 날들이 씻기듯 사라지다니 이유를 알수 없었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있었다.
남자는 손을 씻고 식탁에 차려둔 음식의 뚜껑을 열었다
식탁에는 된장국과 산골선배가 가져다 준 산나물들이 차려져 있었다.
많지 않아도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이었다
된장국에서는 김이 서리고 있었다.
" 이거 당신이 한거야 ?"
" 음. 정희씨. 입맛에 맞을거야. 당신이 나랑 만났을때 까탈스러워 하던 그 입맛을 찾아 내느라 애 좀 먹었어요. 어서 맛이라도 봐요 "
모락모락 오르는 식탁의 음식을 보며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된장국이나 나물볶음의 간이 입맛에 딱 붙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남자가 차려주는 아침 밥상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음식에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식탁에 깔린 반찬들이 아주 귀엽고 착한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 있는것 같았다.
때묻지 않은 아이들처럼 나는 성스러운 성찬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수저를 뜨면 체할 곳 같은 울컥한 슬픔과 기쁨이 솟구쳐 올라왔다
" 뒷뜰에 암탉이 아직 알을 안 낳았나봐요 .
정희씨 좋아하던 계란찜은 그 아이들이 도와줘야 할텐데 정희씨가 중신을 서봐요. 하하 "
내가 밥 먹는게 시원치 않았는지 시시한 말솜씨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 으~ 응 . 그럼 빨랑 애기 낳으라고 그래요"
나는 그말을 하고나서 깜짝 놀랐다.
예전에도 이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었는데, 그걸 꾹꾹 참았었는데, 오늘 순간 터뜨리고 말았다.
내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왜 감추고 있었던 마음이 삐죽 솟았는지 몰랐다
남자는 나를 보고 빙긋 웃고만 있었다.
아직 운동을 할 만큼의 체력이 안되어서 우리는 조심조심 산길을 걸어서 그 선배집으로 갔다
나뭇닢은 다 떨어지고 침엽수만 검푸른 잎을 남아 겨울을 맞고 있었다.
길섶과 개울 둑에는 늦게까지 쑥부쟁이 덤불에 연보라색 꽃들이 간간이 피어있었다.
멀지 않은 언덕길인데 숨이 가빴다.
남자는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털장갑을 끼고도 그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걸음에 갈만한 거리를 몇번이고 쉬어서 갔다
이름을 모르는 산새 한마리가 숲속에서 울고 있었다 .
" 저 새이름이 뭐야 ?"
" 아마 산비둘기 같은데...."
나는 어느새 남자의 팔에 내 온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
" 어서와 . 첫날밤은 잘 지냈어 ?"
선배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집안은 의외로 훈훈했다
두꺼운 흙벽돌로 둘러 쌓인 실내는 남향의 햇살이 들어와 따듯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집엔 산중 생활에 필요할 것 같은 모든 것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책장과 책상을 뺀 나머지 공간은 갖가지 약초봉투와 약초술들로 채워져 있었다
실내는 그 약초들의 향긋한 향으로 분위기를 더 그윽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릴적 보았던 한의원의 천장을 연상케 하였다 .
제이는 깊은 향이 부드럽게 퍼지는 차를 내왔다.
" 산삼과 영지버섯을 다린 차예요. 산 속에는 약이되는 식물들이 아주 많아요 . 민들레님한테 도움이 될거예요 "
투박한 머그잔에 가득 담긴 차는 황금빛으로 맑고 투명하였다.
나는 지금껏 이런 보약같은 것을 먹어 본적이 없었다
" 제수씨 . 그 차는 이것과 같이 먹어봐요 "
산골선배가 꺼내 놓은것은 지난 여름에 거두어 놓은 꿀이었다 .그리고 구워놓은 절편과 마른 산대추 한 접시를 내왔다
한 모금을 마시고 나니 화끈하게 열기가 온몸에 퍼지고 있었다
쌉살한 맛이 강했지만 그 향은 오랫동안 입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 이 산속은 생명을 살리는 약초의 금고야. 자네도 내일부터라도 날 따라 다니면서 배워두는게 좋아. "
" 이 겨울에요 ?"
" 암 ~ , 겨울이면 약초들이 그 좋은 성분을 모두고 있어 . 여름엔 왕성하게 성장활동을 하느라 약효가 덜하지 "
" 그런데 어떻게 잎이지고 가지만 있는데 알수가 있나요 ?"
" 그러길레 보고 배워야지 . 나도 처음 왔을땐 산삼을 발밑에 두고도 못 알아 봤지 "
산골선배는 약초며 버섯 그리고 몇가지 열매며 풀들을 일일히 그명칭과 효능 .그리고 음용법까지 적어 자루에 담아 주었다.
" 이 약초들이 제수씨 병을 낫게 해 주려면은 먼저 제수씨가 살려는 의지가 필요해요. 정신은 육체를 다스린다고 하지요 .
두사람이 모두 친동생같아서 나도 열심히 도울게요 . 기운내서 우리 오래오래 살아 봅시다 "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햇볕이 안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광에다 약초들을 하나하나 매달았다
그것도 일이라고 무리를 했는지 은근히 피곤이 몰려왔다
그이는 나를 안락의자에 눕히고 포근한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즐겨듣던 음악을 들려 주었다.
피아노 음율이 내 주위를 떠다녔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 번 .
어젯밤 달빛이 가득 머물던 마당의 밤풍경이 떠올랐다
" 정희야. 이거 괜찮치 ?"
나는 대답하기도 귀찮을만큼 피곤했다.
이내 꿀같은 잠속에 빠져들었다
초겨울 산골을 비추는 햇살은 짧기만 했다.
그이는 저녁준비를 하고 온돌을 덥히려 장작을 나르고 분주하였다 .
이곳에 이사온지도 벌써 보름여가 지나갔다
그이는 이른 새벽이면 일어나 내 방의 장작을 지펴주고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가 어떤 기도를 하는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이의 곁에서 나를 위한 기도를 같이 하기에는 뻔뻔스러워 도저히 같이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새벽 시간이면 그의 그림자를 따라 수도승의 향기가 피어났다.
아침을 지어주고 식탁에 마주 앉아 조촐한 식사를 하고 남자는 언제나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한다 .
이곳 일상의 이야기가 매일 새롭게 들려온다.
오늘은 산딸기의 향기가 . 찔레꽃 향기가 산철쭉향기가 . 똘배꽃 향기가 어느땐 산도라지의 더덕의 향기로 바뀌어 밀려온다
" 이건 그저께 캔 산더덕이야 . 먹어 봐요 "
남자는 산더덕 몇뿌리를 곱게 두드려 고추장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 참기름을 뿌려 하얀 접시에 내 놓았다 .
나는 감탄섞인 웃음이 튀어 나왔다 .
어느 날인가 작은 뚝배기에 겨울엔 귀한 채소 몇가지와 새우젓으로 간을 한 계란찜을 올려 놓았다
" 이거 당신이 중매선 암탉이 어제 처음 낳은 알로 만든거야 . 초란이라고 하지 . 어서 맛좀 봐요 .사람같으면 옷 한벌 얻어 입는데 이거면 만족해야지 . 안그래 ?"
남자는 개구장이처럼 웃음을 보였다.
이제는 남자의 그런 행동에 나도 서서히 길이 들어 가는것 같았다 .
남자는 낮이면 산골선배를 따라 다니며 겨울산에서 약초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끔 나어린 산삼을 캐오면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면서 꿀에 찍어 나에게 먹여주거나 희귀한 약초들은 달여서 따듯하게 마실 수 있도록 벽난로옆에 놓아 두었다
남자들이 산에를 가면 제이와 나는 서로 오고 가면서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며 문학과 취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제이는 나보다 두살 어리지만 조용하고 사려깊은 성격으로 나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감싸며 동기처럼 대해 주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잔잔한 호수위를 한가로이 떠가는 곱게 꾸민 배 한척 같았다 .
내 몸은 더 이상의 아픈 증세를 느끼지 못할 만큼 변하고 있었다 .
비록 몸 안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불안감 조차도 잊게 만들었다 .
정현씨는 내 몸종처럼 더 가까이에서 나를 돌보아 주었다. 그럴수록 미안한 마음만 쌓였다
무언가 가슴에 얹혀 있어서 풀어야하는 밀린 숙제처럼 답답함이 숨어있다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받아 들이는 행복에 비례해서 그런 마음은 다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에 이곳에 올때는 삶의 미련을 모두 떨쳐버리고 죽음을 맞이하려는 마음이었는데 이곳 생활에 젖어들면서 모든 것에서 평온해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헌신적이랄 수 있는 사랑과 비례해서 한쪽에서는 감당치 못할 거부감도 깊어지고 있었다.
철딱서니 없는 아이처럼 낼름 받기만 하는 나는 누구이고 그런 내가 초라하게만 보였다
나의 처지가 무력하기만 하고 여지껏 살면서 이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나는 어떻게 그 사랑을 되돌려 주어야 할지 몰랐다.
" 정희씨 . 검사 다시 받아 볼 마음 있어요 ?"
그이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병원 측에서는 이미 나를 치료불가의 환자로 취급해버린 상황에서 그이는 내게 희망을 갖도록 하려는 줄 알았다.
" 여기 온지 벌써 석 달이 넘었어요 .
그동안 당신 모르게 닥터최와 몇번 통화를 했어요. 한번만 더 검사를 받고 싶다고 . "
" 그러다 이번에도 절망적이 결과가 나온다면 어떻게 하려구요 "
다시 같은 판정이 나온다면 나는 절망의 끝에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벼랑끝에 서있다가 아예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나를 떨게했다.
간신히 잡고 있는 지금의 평화마저도 누릴 수 없을 것같은 공포가 더욱 두려웠다.
" 지금도 의학적인 소견은 비관적이예요. 이 보다 더 나빠질 것은 없어요 . "
" 싫어요 . 이젠 죽는것이 두렵지 않아요 . 내 몸에 암세포가 자란다면 그대로 놔두고 싶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나를 사랑하고 싶어요. 지금 이대로도 너무 좋아요 "
창밖에는 황금빛 햇살이 무겁게 멈춰 서 있었고 남자는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쏟고 있었다.
" 그래요 , 당신의 생각을 존중해요 .그렇지만 더 건강할수만 있다면 어떤것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뿐이예요.
정희씨 생각이 그렇다면 저도 그대로 따를께요. 하지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줘요. 알았지요 "
나는 안다 .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잘나지고 못하고
성질조차 못되먹은 게다가 병들어 죽음을 눈앞에 둔 여자. 자신에게 무엇하나 주지 못하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것을 .....
그런데도 나는 그를 벗어나려 하고 있는 진짜 이유가 무얼까 ?
뻔뻔스러운 여자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무서리가 한번 더 산골을 덮고 지나갔다
그 사이 사연 많았단 한 해가 지나가고, 꼭 기대할만한 희망을 품게해 주는 새해가 또한 지나고 있었다
" 정희씨 . 오늘은 하우스 작업이나 할거예요"
군데군데 비닐이 찢겨진 온실을 수리한다고 한다.
산중의 겨울이지만 날이 따듯했다.
잡초들은 누렇게 시들고 먹을만한 채소들은 꼬투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군데군데 햇살을 받는 곳엔 아직 호박잎 몇 장이 파랗게 생명의 빛을 밝히고 있었다 .
" 어머 . 이것 좀 보세요 "
남자는 쇠스랑으로 잡초를 걷워 내다가 달려왔다
" 신기해 . 이 추운 겨울에 아직 파란 잎이 살아 있다니 "
" 아 가만 ."
남자는 조심히 마른 호박덩굴을 걷어냈다
그곳엔 노란 호박이 보물처럼 숨어 있었다.
작지만 단단하고 반짝이며 있었다
남자는 작은 호박을 따서 나 품에 안겨 주었다
" 신기해요 . 이 추위에도 얼지않고 썩지도 않았어요.
큰 보물을 얻은 기분이었다.
점심 시간에 맞춰 일을 끝냈다
" 저 녀석들이 잘 썩어서 퇴비가 될거예요 . 올해는 기대가 커요 "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에 잔주름이 가득했다
그날 저녁에는 마른 호박을 불려서 감자를 넣고 수제비를 끓였다 .
물론 남자가 끓였지만 나는 양념간장을 정성껏 만들었다 .
남자가 좋아하게 얼큰한 매운고추를 듬뿍 넣었다
하늘이 매울만큼 파랗게 솟아오른 날이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내일이라도 봄이 올 것만 같았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다
남자는 나의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
예순 한번째 생일 .
이른 첫새벽에 눈길을 헤치고 속초를 다녀왔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 생선과 횟감. 그리고 입덧난 여자처럼 쫑알거렸던 오징어 순대도 몇마리를 담아 왔다
마른 산나물을 볶고 직접 만든 약밥과 잡채. 모두 그의 손으로 그의 정성으로 만든 회갑상이었다.
" 작년에 나 혼자 차려먹던 아침상을 보면서 그때 당신 생각을 했지요 "
" 아이들은 안 왔어요 ? "
" 웬걸 그전에 다녀갔었어요. 점심 한끼 같이 먹고 용돈이라고 챙겨주더군요. 지들도 바쁜데 말이예요 "
" 수연이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 온다고 하는 걸 말렸어요 . 이런데 무슨 생일상이냐고"
" 당신 몸이 좋아지면 서울에 다녀 옵시다. 그때 어머니도 뵙고 수연이도 보고 .... "
그날은 이곳에 와서 사귄 이웃들과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을 나누며 처음으로 우리의 보금자리가 떠들썩 한 날이었다.
이웃들은 나의 예순 한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고 진심으로 나의 쾌차를 빌어 주었다.
나의 지나온 삶 중에서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아보았던 날이 있었나 모르겠다.
" 피곤하지요 ?"
손님들이 떠난 집안은 어지럽혀 있었고 식기들은 쌓여 있었다
남자는 나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방으로 들여 보냈다 .
혼자 설겆이를 하고 거실을 정돈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안락의자에 몸을 싣고 있었다.
새벽부터 쉬지 않았던 그이를 두고 먼저 잘 수는 없었다 .
"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디로 가는가 "
남자는 조용필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싱크대를 가득 채웠던 그릇들을 잰손길로 씻어내고 있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울컥 치솟아 올라왔다
나는 소리없이 남자의 등뒤로 다가갔다
팔을 뻗어 남자의 몸을 껴안았다 .
늘 그렇듯이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
남자는 뒤돌아 보지않고 그대로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 내 가슴이 있었다면 이 남자에게 더 은밀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있었는데 .....'
나는 눈물이 나는것을 멈추지 안았다.
남자가 나를 껴안았다
나의 젖은 얼굴을 감싸주었다
바라보는 눈빛에서 애절함이 쏟아졌다
" 정희씨 . 사랑해 "
넓은 가슴에 나를 던졌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
" 정현씨, 나 오늘 부탁이있어요."
" 응? "
" 오늘 밤만은 나와 같이 자요 "
남자는 눈빛으로 답을 했다
그이는 나를 번쩍 안아들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 당신은 새처럼 가벼워졌어 .심장이 뛰는 소리도 쌔근거리고 "
" 아무말 하지 말아요 "
넓은 침대는 우리 둘이 누워도 넓기만 했다
태초의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는 따듯한 온기를 나누었다
" 미안해요 "
그이가 나의 온몸을 어루만져 줄때 나는 마냥 움추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들판같은 가슴.
손길이 닿을때 나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남자는 나를 억세게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뜨거운 숨결이 나의 가슴에 닿았다
평평해진 가슴으로 수치심이 몰려왔다
" 정희. 사랑해 ."
" 미안해요 ."
" 그런 말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예요.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 부족함이 없어요 "
남자는 야윌대로 야윈 여자의 온몸을 쓰다듬었다
불과 몇해 전의 건강하고 통통했던 몸은 사라지고 탄력잃은 근육이 겨우 붙어있었다
만일 그녀가 항암치료를 계속 받았다면 그 모습은 얼마나 더 초라하고 피폐해 있었을까 ?
밋밋한 가슴에 손이 갈 때마다 여자는 움찔거렸다.
가슴이 아팠다.
남자는 여자를 그저 끌어 안고만 있었다
" 당신은 나한테 선물 없어요 ?"
" 응 ? "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다 보았다
" 어떤 선물을 바래요 ?"
" 나 당신을 갖고 싶어요 "
그이의 사랑에 내가 해줄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내가 곁에 있어만 주어도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지만 그말은 그이의 말일 뿐이었다 .
" 그냥 가만히 있어요 "
여자의 작은 몸이 이불 깊숙히 들어갔다
남자는 가만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눈 뜨거웠던 기억.
동해안 바닷가에서의 마지막 이별의 밤의 기억을 하나하나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남자는 그녀가 얼마나 뜨거운 마음의 소유자인줄 잘 안다
얼마나 참으며 살았나 ?
지나간 삶의 고통 때문에 다시 사랑하지 못한다는 질곡으로 자신을 가둬두고 살았던 여자.
남자는 그녀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여자의 가녀린 숨결 속에 깊숙히 몸을 던졌다 .
겨울의 게으른 새벽이 밝았다.
여자는 그의 품에 잠들어 있었다
살며시 그녀를 내려놓고 이불을 끌어 주었다
새벽 달이 창밖에서 웃고 있었다
남자는 변함없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 정현씨. "
" 왜요 ?"
" 이상하지 않아요 ?"
" 뭐가요 ?"
식탁에는 시래기 된장국에서 김이 모락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
" 우리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던것 같은데 "
" 뭐가요 ?"
" 전에는 그냥 반말로 이야기하고 그랬잖아요 ,?"
" 어 . 그랬었지요 "
" 전처럼 다시 편하게 말하면 안될까 ?"
" 그러고 싶어 ?"
" 응 ."
나는 그이 앞에서 오랫만에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떡거렸다
" 그래요 . "
이곳에 오면서부터 두 사람의 대화는 이상하게 처음 만났을때 처럼 존대어를 쓰기 시작했었다
아마도 나의 몸과 정신 상태가 가장 어려웠을때 일것 같았다 .
그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최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었던 남자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그이의 체취를 맡으며 잠자리에 들면서 그동안 잠그고 싶었던 마음의 빗장도 서서히 헐거워지고 있었다 .
남자의 품에 안기면 당장 이세상 끝나도 좋을 것 같았다.
그이의 뛰는 맥박처럼 나의 갸날프고 느린 맥박도 영원히 함께 뛰었으면 좋겠다.
그의 품은 파고 파고 들어도 숨차지 않았고
매끌거리는 해초 사이를 천천히 헤엄치듯 평화스럽기만 하였다
" 산돌 . 요즘 민들레님 병세는 좀 어떤가?"
" 네 겉으로는 좋아지지만 늘 노심초사하는 심정이지요 . 암이란게 언제 어느때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잖아요 "
" 그래 . 늘 걱정이지만 사람의 정성이 하늘에 닿는다면 그쯤이야 이길 수도 있을걸세 "
" 네 . 저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어디 부족하기만 하게 느껴져요 .
" 내가 보기에도 민들레님의 상태가 처음보다 많이 호전되 보이시는 하네만 "
" 모든 분들의 염려 덕분이지요 "
" 그래 . 자네 정성이면 하늘도 응답해 줄걸세 "
아직 봄은 멀었지만 두 남자는 겨울산을 올랐다
군데군데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지는 곳도 있었다.
" 앗. 저것봐 "
산골선배가 지팡이로 가르키는 나무 끝에 동충하초 덩어리가 뭉쳐있었다 .
두 사람은 힘을 다해서 동충하초의 잔가지까지 걷어 내었다 .
어깨에 맨 배낭에 울러 담아도 넘칠만큼 컸다
" 올해는 웬지 느낌이 좋아.이유는 모르지만 산에서 몇 년을 사다보니 어떤 예감이랄까 "
산골선배는 나의 배낭 가득히 동충하초 둥치를 담아 주었다
" 알지 ? 상황에 당귀 두어 뿌리 . 그리고 감초 한 쪽 "
" 네 . 선배님 "
해는 아직도 중천에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은 산길을 내려오는 길에 서리가 붙어있는 고염 한 바구니를 따 가지고 내려왔다.
너와집 한 채 < 전문 >
김 명인 시
길이 있다면 ,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마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베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 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 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재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 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위에 별처럼 띄어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서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1992 년 / 세계사 刊
시집 : 물건너는 사람 中에서
첫댓글 휘스턴 보디가드 노래
올만들으니 좋네요
이글 주인공 남자가 아닐련지요
애잔하고 가슴저린 러브스토리
글 잘읽었어요
보디가드 ..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였어요
살면서 느낀 것 .
남자의 의무는 여자를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
제 모친께서 하시던 말씀이지요
" 얘 ! 절대로 애들 엄마 울리지 마라 " ㅎㅎ🍀
역시 시골은 불때는 아궁이가 있어야 해요
엄마가 물 덥히려고 아궁이에 불때면 쪼그리고 앉아 엄마냄새 맡다가 가마솥에서 뜨거운 물한바가지 대야에 부어 찬물 섞어 세수하고 학교갈 준비하곤 했지요. 환자 간호를 낭만적으로 표현 하셨어요. 환자 간호는 마치 내 심장을 독수리가 조금씩 파 먹는것처럼 아픈 일인데요.
장작을 태우고 남은 벌건 숯불의 빛 속에 빠지고 싶은 유혹.... 불멍이 끝날때쯤 .. 발갛게 익은 뺨에 그 따사로운 기분을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뺨에 전해주고 싶은...ㅎ
병원에서 환자복입고 있으니 정희심정이 어떨까 좀 이해되면서 너무나 안타깝네요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지켜주니 행복이죠~~
두사람 행복이 길었으면~~
🪔
수술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무 걱정없이
물 흐르듯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 오는 .....
어쩌면 쫌 싱거운 입원이 되셨으면 바랍니다 .^^*
모두 응원의 마음 보내고 있습니다
" 데드라님 ! 화이팅 🌹🌹🌹🌹🌹🌹🌹
@오분전 (경기.남양주) 감사합니다 오분전님~
긴글 읽는 재미가 솔솔 합니다 가슴시린 사랑이 눈물 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