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1인칭)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1인칭)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깨어있지 못하면 이 번역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원문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그 내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날로’로 번역한 ‘헤메라~카이~헤메라’는 원래의 그 의미와 거리가 멀다. ‘헤메라’는 창 1장에 등장하는 ‘욤’과 그 의미가 같다. 창 1장에 ‘한 욤’부터 ‘일곱 욤’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여준다.
마음을 넘어서 있는 지성소 안에서의 욤은 모두 근본 하나님 자신으로 그리스도 예수다. 곧 깨달음으로 아버지와 하나 되는 온전한 깨달음(일곱 욤)까지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헤메라~카이~헤메라’는 번역이 안 된다. 번역된 ‘날로’의 뜻은 생각하기에 매일 매일 또는 날마다의 뜻으로 인생들이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이 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크다.
‘헤메라~카이~헤메라’는 현재 깨달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됨이다. 속사람은 언제나 아버지와 하나 되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된 ‘헤메라~카이~헤메라’로 생명의 빛이다.
이와 같은 오역된 문장이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그 중 요 12:46에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이 번역 역시 오해의 소지가 크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로 번역한 원문은 ‘에고 포스 에이스 톤 코스몬 엘렐뤼다’로 기록하고 있다.
‘나는 빛으로’라고 번역한 ‘에고 포스’는 ‘나는 빛이므로’다. 그러므로 재 해석해보면 ‘나는 (원래부터) 빛이므로 코스모스(몸과 마음, 물질과 정신) 안으로 들어왔다’가 된다.
‘나는 빛으로’ 이렇게 이해를 하면 다른 것으로 있다가 ‘빛으로 뒤 바뀌어’의 뜻을 가질 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부터 생명의 빛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언제나 ‘에고 에이미(나는 나다)’로 말씀하신다. 곧 언제나 아버지와 하나 됨을 말씀하신다. 이것이 빛(포스)이다. 아버지와 하나 되지 아니하면 빛(포스)이 아니다.
이 빛(포스)은 언제나 코스모스(몸과 마음, 물질과 정신)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오신다. 왜냐하면 생명의 빛(포스)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빛은 항상 몸과 마음의 그 실상을 해체하여 들여다보고 깨닫게 하시고 몸과 마음(코스모스) 그 너머 곧 지성소 안으로 이끄신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