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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31일 부활절 넷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22장입니다.
광고, 현금, 기도입니다.
찬송 518장입니다.
성경 롬15:14-19절(신260쪽)입니다.
제목: 복음과 선교의 소명
성도 여러분, 신약성경의 모든 복음서는 결론 부분에서 선교의 명령으로 끝나고 있습니다(마28:16-20; 막16:15-16; 눅24:25-48; 요20:21-23).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복음을 서술한 후에 그 복음을 전하도록 주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복음(1:1)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후에(1:1-15:13), 그 결론 부분(15:14-16:27)에서 자신의 선교 소명(사역)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로서 바울이 주님에 의하여 세상에 보냄을 받았기에, 교회에 속한 우리도 주님에 의하여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4대 속성 중의 하나인 ‘사도성’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선교사입니다. 이 선교적 소명이 교회와 우리 각자가 세상에 존재하는 첫째의 이유요, 목적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이것을 위한 수단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15:14-21)을 통하여 세상에 보냄을 받은 우리의 선교적 소명(사명)을 다시 확인하며, 그 소명에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서바나(스페인)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였습니다(20-21, 23). 그는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 교회를 방문하여 먼저 사귐을 갖고 그들이 자신을 스페인으로 보내주기를 원하였습니다(22-24). 바울은 로마 교회를 자신의 선교 사역의 동역자로 삼기를 원하였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그는 하나님의 복음(1:1)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로마서를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이는 진정한 선교의 동역은 하나님의 복음에 기초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미 로마서의 서론에서 이것을 설명하였습니다. 1:13-15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이처럼 바울은 로마 교회를 스페인 선교의 동역자(15:22-24)로 삼기 위하여 그들에게 로마서를 보냈고, 또한 방문하여 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기 원하였습니다.
이런 바울은 오늘 본문(15:14-19)에서 하나님의 복음에 근거한 자신(우리)의 선교적 소명(사명)을 서술합니다. (그는 자신의 선교적 사역을 로마 교인들(우리)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자기 자신과 로마 교회 교인들의 영적인 성숙에 대하여 확신하였다고 고백합니다. 14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나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바울은 로마 교회 교인들이 바울 자신과 같이 ‘선함이 가득하며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면할 정도로 영적으로 성숙하고 있다는 것’을 칭찬한 것입니다. 여기서 ‘선함’은 성령의 열매(갈5:22), 즉 복음의 열매이며, ‘지식’도 복음의 지식입니다. ‘권하는(누데테인)’의 헬라어 원형 ‘누데테오’은 ‘누우스(지각, 이해)’와 ‘티테미(두다)’의 합성어로 복음의 지식에 근거하여 서로 강하게 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바울의 아첨이나 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들에 대한 존중을 보여줍니다. 주 예수의 복음에 의한 그들의 영적 성숙을 존중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과 같이 주 예수의 복음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나타났고, 나타나고 있고, 나타날 하나님 은혜의 열매들을 인정하고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 복음의 새 언약에 따라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이 변화될 자라는 것을 아시고, 믿음으로 서로 존중하며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처럼 영적으로 성숙한 그들에게 왜 바울은 복음을 가장 체계적으로 설명한 로마서를 썼을까요? 그는 먼저 15절과 16절에서 설명합니다.
15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여기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로 번역된 ‘에파나미므네스코’는 전치사 ‘에피(위에, 넘어서)’와 동사 ‘아나미므네스코(상가시키다)’의 합성어로 ‘지나치게 상기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첫째 이유는 그들로 하나님의 복음(1:1)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입니다(15a).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을 복음을 지나치게 생각나게 하려고 로마서를 써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바울의 선교 사역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확실하게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위해서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을 반드시 바르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을 다시 생각나도록 항상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로마서를 자주 읽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잘 이해하시고, 하루에 세 번 이상 하나님의 복음을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울(우리)에게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15b).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자격 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즉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엡2:5). 그런데 여기서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역을 맡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로마서를 담대히 써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15)에 대하여 16절에서 설명합니다. 16절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되게 하사),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하심이라),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바울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16a). 즉 하나님께서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려고 자격이 전혀 없는 그 자신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1:5절과 12:3절에서 이 은혜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1:5절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 보냄을 받은 우리의 선교적 소명의 이유는 우리에게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과 같이 이것에 대한 감격과 감사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은 무엇입니까?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어 ‘레이투르곤’은 당시에 주인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여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던 관리인을 의미합니다(히8:2).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은 그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돕는 일꾼(종, 사역자)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에 대하여 구약의 성전에서 거룩한 직무를 사용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16b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여기서 우리말 성경에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하사(수행하는)’라고 번역된 ‘히에루르군타’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을 수식하는 1인칭 현재분사이며, 그 원형 ‘히에루르게오’가 ‘히에로(성전)’과 ‘에르곤(행위)’의 합성어이기에, ‘내가 성전의 일(거룩한 직무)을 수행하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성전의 일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직무였고, 레위인들이 보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이방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의 복음, 즉 그리스도 예수를 보조하는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과 같이 이것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조하는 제사장 직분으로 생각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란 표현이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에게 종속되어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해는 17-19절의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성전의 거룩한 직무(16b)를 ‘히나 목적절’을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16c절입니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거룩하게 되어(헤기아스메네)’는 ‘하기아조’의 완료 수동 분사형으로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거룩함(의롭다 함)이 이루어져 그 효과가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물로 드리게 하려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즉 그를 보조하는 하나님의 복음의 거룩한 직무를 ‘은혜’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방인을 위한, 즉 그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기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자신(우리)의 하나님의 복음의 거룩한 직무(16절)를 ‘하나님 은혜’의 관점에서 설명한 사도 바울은 이제 ‘자랑’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우리)의 선교적 사명(선교 신학)을 다시 설명합니다(17-19).
먼저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여기서 ‘그러므로’는 17절이 16절의 결과 또는 열매임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은 이방인을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바울의 사역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 즉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있는데, 18-19절에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여기서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16) 자신의 사역을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바울)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18)으로 다시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울(우리)의 선교 사역의 핵심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바울(우리)을 통하여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나(바울)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18)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19a절입니다.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서 ‘그 일’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나(바울)를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18)을 가리키며, ‘말과 행위’는 바울(18)의 말과 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선교를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말’과 ‘복음의 열매를 맺는 그의 삶’을 통하여 역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즉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선교 사역을 설명합니다. 19c절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여기서 ‘그리하여’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바울 자신과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역사하신 그리스도의 사역(18-19b)을 가리킵니다. 즉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과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역사하신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에 근거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의 선교는 ‘그리하여 선교’, 즉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선교 사역에 대하여 자신의 업적을 자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18)만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도 바울과 같이 은혜로 이방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소명(사명)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보냄을 받은 선교사입니다. 이 선교적 소명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아직 로마서가 설명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충분하게 알지 못한 것입니다. 로마서를 통하여 복음을 자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선교(목회)는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선교’, ‘하나님의 선교’에 근거한 선교(목회)입니다. 엡2:16-17절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명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십자가 복음과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말과 행위)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평안의 복음을 전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세요. 복음을 전하세요. 우리를 통한 주님의 선교적 열매를 소망하며 기도하세요. 선교의 열매에 대하여 주님만을 자랑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찬송 508장을 부르시고 다 같이 기도하신 후에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