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군 부산면 자미 선비마을 수리봉~벼슬바위~병풍바위.
벼슬바위는 풍광이 수려하다. 실제로 벼슬바위 옆에는 당대 지역에서 부호였던 회은 위원량 소유의 별채가 있었다. 이 건물은 1964년 기동마을에 이건되어 경호정으로 변모한다. 현재 경호정은 장흥위씨 운암종중이 소유하고 있다. 수리봉에는 회은 위원량의 망곡서가 새겨져 있다.
자미마을 찬미가
수인산 줄기에 우뚝 솟은 수리봉은 날카로운 눈매로 사방을 경계하네 좌청룡에 벼슬바위와 병풍바위가 우백호에 노적봉과 차일봉이 마을을 아늑하게 안아주니 참혹한 6.25 전쟁에도 마을의 인명을 지켜주었다네
마을 앞의 형제 은행나무는 들판에서 땀흘린 농부들의 쉼터가 되고 수리봉 및 금박골과 서당골 물은 한 여름 주민들의 목욕탕이었다네 들판 넘어 예양강 맑은 물은 오곡백과 젖줄 되어 풍요를 안겨주니 태평성대 길지가 자미마을이로구나
2017년 10월 일 전 서원대학교 교수 교육학박사 김기정 짓고 세움
금계포란(金鷄抱卵)의 아늑한 삶터 자미마을
기암절벽의 수려한 산세는 마치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이니 마을의 진산(鎭山)인 수리봉은 좌청룡에 벼슬바위와 병풍바위가, 우백호에는 노적봉과 차일 봉이 감싸고 있는 금계 포란이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이다.
조선중엽 명사(名師)인 일지승(一指僧)의 유산록(遊山錄)에 입자미동(入子美洞)하니 유두공부지풍(有杜工部之風)하고 반반어석흔(班班於石痕)에 유고인지적 (有故人之跡)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글을 풀이하면 자미마을에 들어서니 옛 두공부의 풍습이 있고 바위에 새겨진 뚜렷한 흔적은 고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두공부는 옛 중국 당나라 문걸(文傑)의 풍습을 이어가고 있고 고인(故人)이라함은 고려 명승(名僧) 원감국사 위원개(魏元凱)를 말함이니 이 두분은 신라말 고려초의 인물이므로 이 전에 마을이 개촌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자미(杜子美)의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마을명을 두자미로 불렀으며 그 후에 강부자(康富者)가 살았다 해서 강자미(康子美)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개편 이후 자미(子美)라 부르고 있다. 자미마을은 갑오란 (甲午亂)과 6.25의 치열한 전쟁에도 좌(左)와 우(右)익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희생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서로 돕고 협조하는 마을로 부러움을 받는 인심 좋은 마을이다.
고대(古代)에는 강씨(康氏)가 전대(前代)에는 장씨(張氏)가 살았다고 전해 오고 후대(後代)에는 영광김씨. 함양박씨 • 순천박씨 · 강릉유씨 · 김해김씨 • 남평문씨 여타의 성씨들이 입촌하여 상호 협력하며 화목하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7년 10월 일
자미마을 주민일동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