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를 버리며
최원현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떴다.
“열쇠 바뀜 비밀번호 * xxooxx * 하면 열려요.” 아내에게서 온 것이었다.
오늘 아침, 아무래도 자물통을 바꿔야겠다고 하더니 바로 해치운 모양이다. 이왕 할일이면 바로 해버리지 왜 미루느냐고 내 편에서 늘 성화를 하곤 했었는데 오늘 일은 어찌 이리도 빨리 해치워버렸는지 놀랍기만 하다.
퇴근해서 집에 이르니 낯선 모습이 나를 맞는다. 모양부터 아주 세련된 모습이다. 아내의 메시지대로 숫자를 누르니 철써서석 하며 자물통이 풀리고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닫힌 문이 취르르 취르르 쉬익식 하며 잠겨버린다. 이제 열쇠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출근을 하느라 정신없이 나갔다 퇴근을 하면서 주머니를 만지니 열쇠뭉치가 손에 잡힌다. 자동차 열쇠, 사무실 책상열쇠 그리고 집 현관 열쇠 두개까지 한 줌이 손에 잡힌다.
“아, 열쇠도 버려야겠구나 “생각하며 열쇠뭉치를 꺼내 바라봤다.
위아래 잠금을 풀던 열쇠 두개, 벌써 나와 함께한지가 10년도 훨씬 넘었다. 이른 새벽시간부터 제각기 집을 나서는 우리 집 네 식구 대신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우리 집을 잘 지켜온 수문장이다. 그런데 너무 오래 쓰다보니 헐거워지고 잘 잠겨지지도 않아 얼마 전부터 바꿔야겠다고 하면서도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얼마 안 있으면 재건축으로 집을 헐어야 한다는 것들이 자꾸만 마음을 다잡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데 근래 심심찮게 우리 아파트 아래층과 옆 동에서 집이 털렸다는 소식을 접하며 뭐 특별히 값나가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도둑이 들어 물건 몇 가지라도 들고 가면 아깝기 그지없을 테고, 그보다 혹여 도둑이 든다면 도둑 든 집이라는 것에 더 많이 기분이 상할 것 같아 예방차원에서라도 바꾸자는 얘기를 했었다.
거기다 밖에 나갈 때 열쇠를 갖고 가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애를 먹던 경험을 우리식구 모두가 한두 번씩은 갖고 있었기에 이왕 바꾸려면 열쇠 없이 열 수 있는 디지털식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엔 그래도 열쇠를 꽂고 문을 열고 닫는 맛은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남아 있었다.
좋은 것으로 바뀐다고 해도 지금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데엔 여간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니 거기까지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더 어렵다. 변화란 그래서 힘든 것인가 보다
사실 오늘 아침엔 출근을 할 때 버튼만 살짝 눌렀는데도 스르르 자물쇠가 열렸다. 하루사이인데 이 얼마나 많이 달라지고 좋아진 것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한구석에선 무언가에 자꾸 미안하다는 생각이 밀려오곤 했다.
글 쓰는 것을 컴퓨터로 하게 된 것에도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에 직접 글을 쓰는 것으로 바꿨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작품을 쓰는 것은 원고지가 제 격이라며 고집을 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컴퓨터를 이용하게 되면서 지금은 대부분을 컴퓨터에 의지하고 있다.
집에 원고지가 쌓여있어도 쓸 일이 없다. 작품은 원고지에 펜으로 써야 쓰면서도 생각이 살아나고 씌어진 글씨들이 역시 살아서 글을 생명력 있게 한다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남이 만들어놓은 것들을 얻어다 짜깁기하는 것과 같다 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언제 그랬느냐 하고 있다
열쇠뭉치를 손에 들고 고리를 벌려 두개의 열쇠를 빼낸다. 하나는 손잡이에 까만 플라스틱 몰딩이 되어있는 것이고, 하나는 그냥 은색의 쇠이다. 무게도 제법 된다. 이제 다시는 쓸 일이 없을 테니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련만 난 그렇게 버리지 못하고 만지작대다 결국 양복주머니에 다시 넣고 만다. 집에 가서 버려도 마찬가지일 것이건만 왠지 그냥 버려지지가 않는다. 필요할 때는 애지중지하고, 소용이 없다싶으면 미련 없이 버려버리는 요즘 우리 이런 삶의 모습이 나이 들어가는 내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 열쇠를 보며 오싹 소름을 느낀다.
집을 나서려면 언제나 열쇠부터 챙겼었다. 잠그고 나가야하기 때문에 필요하고, 잠긴 것을 열고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또 필요한 것, 그래서 열쇠는 늘 나와 같이 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필요 없게 되었단다. 잘 가라는 말도, 미안해 고맙다는 말도 할 것 없이 그냥 모르는 척 버리면 될 것이다. 열쇠꾸러미의 무게도 삼분지일은 줄어들었다. 손안에 쥐어도 차지하는 게 별로 없다. 그런데 많이 허전하다. 뭔가 끼워 넣어야 할 것을 빠뜨린 것처럼 자꾸만 무언가 놔두고 온 것 같은 아쉬움과 허전함이다.
더욱이 사오정이니 오류도니 하여 삶의 정년까지 단축하는 요즘인데 쓰기 좋다고 안전하고 편하다고, 최고로 알며 애지중지 해 오던 것을 이렇게도 쉽게 버리는구나 생각하니 퇴직을 앞두고 있는 내 모습과 같아 더욱 마음이 애잔해 진다.
하지만 어쩌랴. 벌써 아이들은 자기 스타일이니 취향이니 하며 아무 스스럼없이 변화를 반기고 있으니 그것이 비단 열쇠 바꾸기 한 가지 만이랴.
사람이건 물건이건 오래 되면 소용에서 멀어지는 건 자연의 이치가 아니랴. 못 쓰는 열쇠를 더 오래 갖고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인가. 그런데도 그깢 열쇠 하나 버리지 못 하니 참 모를 일이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는 벌써 버렸단다. 헌데 큰 딸애는 아직 갖고 있단다. 아무래도 딸애가 그나마 내 성정을 많이 닮았나 보다. 그러나 그게 위로가 되면 뭐하랴. 어차피 버려질 것은 버려야 할 것이고 새 것의 시대는 벌써 이렇게 와 있지 않은가.
좀 더 가지고 있다 새 것에 정이 들어 버려지는 것보다 아쉬움 속에 버려지는 것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열쇠를 버리는 것이 지나간 날들을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 지는 걸 보면 역시 나는 변화에 둔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손에 쥔 열쇠 두개가 자꾸만 몇 날 앞에 다가올 내 모습만 같이 생각된다.
에세이문학/2004.가을호/essay21@unitel.co.kr/747-3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