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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가지 원칙은 전체 12장에 걸쳐 이어지는 제1~3부의 세부 주제를 이룬다.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도덕성의 원천은 어디일까.
하이트에 따르면 도덕성은 도덕적 추론이 아니라 선천성(진화한 직관의 형태)과 사회적 학습(직관을 특정 문화 속에 적용하는 법 배우기)의 조합을 통해 형성된다. 하이트는 자신의 도덕성 이론에 ‘도덕적 판단의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요컨대 다른 사람의 논변을 논박하는 것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면 그들 안의 코끼리에게 말을 걸어야만 한다.
인간의 마음은 동물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인식하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직관적으로 반응하며, 또 그 반응을 기반으로 응답을 내보낸다. 무엇을 처음 보고, 처음 듣고, 다른 이를 처음 만나는 그 1초 동안 코끼리는 벌써부터 몸을 어느 한쪽으로 틀기 시작하고, 이는 나의 사고와 곧 이어질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 125쪽
코끼리는 반대자처럼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몸을 틀고, 기수(이성)가 정신없이 달려들어 반대자의 비난을 반박할 근거를 찾는다! 그러나 이성은 통치자로 적합하지 않다(그러므로 『국가』의 플라톤은 틀렸다). 이성은 진실보다 정당화의 근거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며, 윤리적 사회를 건설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든 사람이 항상 자신의 평판을 목숨 걸고 관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따라서 플라톤에 대적하는 글라우콘이 옳다).
바른 마음은 하나가 아니다. 도덕성은 그 내용이 너무나 풍성하고 복잡하며, 다층적이고 내적으로 모순도 있다. 그래서 하이트는 도덕성을 합리적인 이성에 기반하여 연역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무론자(칸트)나 공리주의자(벤담)가 아니라 미각이나 감성 차원에 있는 것으로 분류하는 감성주의자(흄)을 따른다.
이들의 대비는, 자폐증 연구의 일환으로 사람들의 성향이나 인지 양식의 두 차원을 ‘공감 능력’과 ‘체계화 능력’으로 나누어 살핀 사이먼 베런코언에 따른 것이다. 이에 의하면 공리주의자 벤담의 철학은 고도의 체계화를 보여주는데, 그는 공감 능력이 매우 낮은 사람이었다.
벤담은 주변 사람들을 한여름 날리는 파리떼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의무론자 칸트 역시 플라톤처럼 변치 않는 선(善)의 형상을 찾아 그것을 영원불변한 도덕률로 세우는 데 평생을 매진했다. 그 역시 높은 체계화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공감 능력은 높지 않았다.
하이트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강하게 논박하는 대상은 오직 하나의 합리적인 도덕률만 있다고 여기는 도덕 일신론자들, 정의 이분법주의자들이다. 나와 당신의 도덕이 그들을 악덕으로 똘똘 뭉친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울 때 그들 역시 고개를 저으며 우리를 악덕에 찌든 사람으로 낙인찍을 것임을 기억하라. 그래서 700쪽에 가까운 거작의 결론은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도덕성에 관한 한 조급하고 성마른 우리가 따르기 쉽지 않은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도덕은 사람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도덕이 우리를 뭉치게 한다는 것은 결국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내걸고 편을 갈라 싸우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편이 나뉘면 우리는 매 싸움에 이 세상의 운명이라도 걸린 듯이 서로 이를 악물고 싸운다. 도덕이 우리를 눈멀게 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각 편에는 저마다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이야기 중에는 뭔가 귀담아들을 것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554쪽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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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난 일이년간 저 역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 중입니다.
나와는 확연히 다르고 원수같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러려니 하겠으나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니 "왜 그러한가? 뭐가 문제인걸까?".....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듯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내 보호자께선 내가 어떤 판단과 결정을 하시길 원하는걸까?... 하는 등등..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걸까?"는 진정 최근에 가장 큰 화두였던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