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곡, 분노의 세 가지 환상, 잘못된 사랑을 한 영혼들의 죄씻음
길잡이의 믿음직스러운 발길에 맞춰 걸으며 나는
그 구름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햇살은
저편 아래 해안에서 이미 사그라진 뒤였다.
길잡이의 안내로 연기구름(분노의 연기구름) 사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빛은 그 자체로 혹은 그분의 의지대로 내려와 분노의 실례 세 가지를 환상으로 보게 합니다.
분노의 첫 번째 환상입니다.
노래하며 즐겁게 사는 새로
변신한 여자의 잔인한 자취가
나의 상상 속에 나타났다.
트라키아 왕 테레우스는 프로크네와 결혼 했으나 그 여동생 필로멜라를 겁탈하여 이를 발설하지 못하게 혀를 잘랐습니다. 동생은 언니에게 천을 짜며 천에 수를 놓아 알려주었고 프로크네는 테레우스와 사이에서 난 아들을 죽여 복수를 합니다. 테레우스는 이를 알고 두 자매를 죽이려하나 두 자매가 신들께 간청하여 프로크네는 꾀꼬리로 필로멜라는 제비로 변하였습니다.
단테는 프로크네가 분노의 죄 값을 치르느라 새가 되었다고 봅니다.
분노의 두 번째 환상입니다.
그러고 나서 나의 까마득한 환상으로 비가 내렸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이었다. 그는(하만)
죽어 가면서도 원한과 분노를 드러냈다.
페르시아의 왕 아하스에로스의 신하인 하만은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은 것에 분노하여 나라의 모든 유대인을 죽이라고 왕을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조카이자 왕비인 에스터의 조언으로 하만의 간교함을 알게 된 왕은 모르드개에게 내리려던 벌을 하만에게 내렸습니다.
분노의 세 번째 환상입니다.
내 앞에 비통하게 우는
처녀가 나타나 말했다. “오, 어머니!
왜 분노로 모든 것을 파괴하셨습니까?
라티움의 왕 라티누스의 아내인 아마타는 딸인 라비니아의 약혼자인 트루누스가 아이네이아스를 죽이고 딸과 결혼하길 바랐으나 트루누스가 전사했다는 잘못된 전갈을 듣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자살합니다. 나중에 아이네이아스는 투루누스를 죽이고 라비니아와 결혼 합니다.
강렬한 빛에 단테의 상상들은 사라지고 맙니다.
단테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자비의 천사가 네 번째 둘레로 가는 계단을 알려주고 사라졌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느님의 천사다. 우리가 부탁하기도 전에 오를 길을 보여주러 오셨다.”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첫 번째 계단(3둘에에서 4둘레로)을 딛자마자 곧 날개 하나가 퍼덕이며 얼굴에 바람을 일으켜 얼굴의 P자가 제거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사악한 분노가 없는 자, 화평한 자는 복되도다!”하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더 오를 수 없는 마지막 계단까지 올라가서 나루터에 이른 배처럼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곳에 무슨 소리가 들려올까 잠시 기다렸다가 단테는 선생님께 ‘이 단지에서는 망령들이 무슨 죄를 씻는지요’라며 물었습니다.
선을 사랑했으나 태만하여 이행하지 못하고
여기서 다시 추구하는 거야. 한때
나태했던 노 젓기를 이제 열심히 하는 것이란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선의 사랑이 여기서 메꾸어 진다고 하였습니다.
나태, 곧 게으름의 죄를 회개하고 열심히 하느님의 뜻을 구한다고 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백과사전에서
교단에서 가르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내부 프레스코화(벽화 중에서)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내부
토르바부오니 예배당 주제단 오른쪽 스테인드글라스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
- 2012년 피렌체 여행에서
토르바부오니 예배당 주제단
주 제단이 있는 토르바부오니 예배당입니다.
토르바부오니 예배당의 왼쪽 벽화는 세례자 성 요한의 생애(프레스코화)이고 오른쪽 벽화는 마리아의 생애입니다. 이 주 제단 뒤 엡스의 천장과 좌우가 모두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습니다.
파사드는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녔는데 성당 내부는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들로 가득합니다.
이 예배당 외에 여러 예배당이 있습니다. 예배당마다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가득합니다.
2020년 평소에 공개되지 않던 많은 오래된 벽화와 유물들을 공개 했는데 그 중 하나로 '교단에서 가르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2018년에 발견된 그림입니다.
우리 여행때 예배당들의 프레스코화가 너무 아름다워 예배당 마다 찍어왔는데 다음 여행을 위해 기록해 놉니다. 이 그림은 중앙 복도 왼쪽 세 번째 예배당의 제단화랍니다.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파사드
- 2012년 피렌체 여행에서
알베르티가 기존의 성당 부분을 살리면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새롭게 설계한 파사드.
알베르티는 기하학적인 비례와 조화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피렌체 최초의 '르네상스 스타일' 파사드를 세웠습니다.
선생님은 잘 이해하고 싶다면 더 잘 새겨보아라 하시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랑에는 자연적인 사랑과 이성적인 사랑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연적인 사랑은 그르치는 일이 없지만
이성적인 사랑은 나쁜 목적을 지니거나
넘치거나 모자라서 잘못되는 경우가 있지.
이성적인 사랑은 그릇된 대상 때문에 또는 넘치거나 모자람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은 천병희 번역의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 2권 제 2장에서
“감정과 행위들은 정확히 규정할 수 없지만, 지나침과 모자람은 피해야한다.
우리의 도덕적인 자질들은 본성상 모자람과 지나침에 의해 손상됨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중략- 이와 같이 절제와 용기는 지나침과 모자람에 의해 손상되고 중용(그 상황에서 가장 황금 같은 것)에 의해 보존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단테의 연옥편 17곡 94~96행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랑이 첫째 선(하느님)을 똑바로 향하고
둘째의 선(지상의 행복)을 스스로 조절하면
사악한 쾌락을 일으키지 않는다.
사랑은 모두 선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잘못되면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첫째로 두고 지상의 행복을 중용의 덕으로 추구할 때 미덕이 될 수 있다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개념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악을 만드는 사랑의 세 가지 유형을 이야기합니다.
내 생각이 옳다면 이런 판단을 해 볼 수 있겠지.
사람들이 사랑하는 불행은 이웃의 불행이며,
이런 사랑은 진흙(사람)에서 세 가지(교만, 질투, 분노)로 솟아오른다.
사람에서 솟아오른 세 가지 잘 못된 사랑, 교만과 질투와 분노를 묘사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추락에서
자신의 성공을 바라다가 바로 그런 욕심 때문에
자신의 출중함을 잃기도 하고,
어진 사람은 남이 높아지면
자기의 명예와 명성, 힘과 은총을 잃을까
두려워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며,
어떤 사람은 잘못된 격정에 휘말려
모든 열정을 복수에 쏟아 부으면서
오로지 남에게 해를 입힐 궁리만 한다.
이 세 가지 교만, 질투, 분노의 잘못된 사랑을 한 망령들이 이곳에서 죄를 씻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잘못된 방식으로 선을 추구하는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라 하며 다른 선(지상의 선)은 지상의 낙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세 가지인 탐욕, 탐식, 애욕으로 우리 위의 세 단지에서 죄를 씻고 있다고 하면서 설명을 마쳤습니다.
17곡과 18곡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사랑에 대한 강론(단테의 사랑관)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스콜라 철학)을 그대로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하여 스콜라 철학을 대성한 중세 기독교 최대의 신학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독교 교리를 조화시켰으며 은총과 자연, 신앙과 이성 사이에 조화로운 통일을 부여하였습니다.
스콜라 철학은 9~16세기 중세 유럽에 성행한 기독교 신학에 중심을 둔 철학적 사상입니다. 일반적인 철학적 탐구와 인지와 인식의 문제를 신앙과 결부시켰으며 절대자의 아래서 인간의 이성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