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2일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마음놓침과 기름

<2023년 11월 12일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마음놓침과 기름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루가 12,34 공동번역) 사람이 쓸 수 있는 ‘마음’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 듯하다. 우리가 ‘마음을 쓰다.’ 또는 ‘신경을 쓰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의 ‘에너지’로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실수라는 것도 걱정이 많을 때 실수가 생기고 신경 쓸 일이 많을 때 자주 발생한다. 생각이 많으면 쉬이 피곤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력이 쇠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한정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느님’께 드릴 마음이 적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으면 당신이 쉴 곳 없어지는 것과 같다. 많은 일에 신경을 쓰면 정작 중요한 하느님 말씀에 덜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루카 10,38 이하, 마르타와 마리아)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쉼’을 갖고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쉼이 인간적(세속적)이어도 괜찮고 영적(하느님과의 친교)이어도 괜찮다. 어떻게든 마음을 충전할 수 있다면 미래의 선을 향한 우리 열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소비와 충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좋을 텐데 ‘지나치게 소비’되거나 ‘충전이 잘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의 일상은 위기를 맞게 되고 마음은 피폐해지며 우리의 영혼까지도 위태롭게 될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충전’하는 방법을 몰라 타인들 주변을 헤매며 소진에 소진을 거듭하는데 이때 성격의 손상은 심화된다. 다행히 종교적 귀의나 은혜로운 타인을 만나게 되면 손상된 성격에 치유가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과잉 자아’로 혼자서 찾아 헤매거나, 또는 ‘과소 자아’로 포기해버리면 ‘말라 비뚤어진 마음’이 되고 만다. 그 마음에서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열 처녀의 이야기는 매우 안타까우면서도 우리 자신의 이야기 같아 씁쓸함을 피할 길 없다. 평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랑’(하늘나라)이 왔는데 ‘기름’이 부족하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다른 처녀들은 ‘충분한 기름’을 가지고 있건만 다른 다섯 처녀는 어찌 부족하단 말인가? 그리고 ‘문은 닫혔다.’(마태 25,10b) 말씀은 “그러니 깨어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라고 맺는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그 특정한 날’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닥치거나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준비된 때’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날은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순간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러한 일상의 순간들을 ‘놓치고’ 산다면 우리는 결코 하늘나라의 문이 열렸을 때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닫힌 문’ 앞에서 울부짖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놓치며’ 사는가? 세상의 아름다움도 놓치고, 타인의 사랑과 소중함도 놓치고, 자신의 행복과 귀함도 놓치며 살고 있다. 어린 시절에 생긴 상처 때문에 ‘놓치고’ 이런저런 이유로 ‘놓치고’ 또 언제 내 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놓치며’ 산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세상 처음부터 온갖 만물에 당신의 얼을 심으셨고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a) 하시어 우리에게도 당신의 모습을 담으셨다. 우리가 언제든지 하느님을 찾으면 어디서든지 하느님을 찾을 수 있고 심지어는 만나는 경험도 가능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에 간섭하지는 않으시나 언제나 우리와 만날 수 있으신 분이다. 그러나 ‘마음을 놓치면’ 결코 만날 수 없는 분이기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보고 우리를 알아보시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마태 25,12) 사실 우리도 ‘마음’을 보고, 서로를 알아본다.    어쩌면 어떤 거창한 의미나 가치를 추구하며 살지는 못해도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만 찾아서 누구에게나 주어진 은총의 ‘본전치기?’만 해도 우리 삶은 그렇게 공허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해주지 않으셨던가?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세 1,26b) 이러한 축복을 받은 피조물이 인간 말고 또 있었던가? 그 많은 축복과 특별함을 받고서도 우리가 ‘놓치며’ 산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누가 나를 도울 수 있을까? 1독서 지혜서 6장 12절 이하에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지혜는 ‘깨어있고자 하는 사람-지혜를 찾는 사람’에게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감추어진 것을 애써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롭게 살고자 ‘마음을 쓰는’, ‘신경을 쓰는’ 수고로움이 조금만 있어도 우리는 ‘지혜’를 쉽게 배울 수 있고 찾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쉬이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지혜를 만나는데 거창한 지식도 대단한 능력도 필요 없다. 지금 내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챙겨’보자.    혼인 잔치에서 쫓겨난 예복을 갖추지 않은 사람(마태 22,11)을 생각해보자. 혼인 잔치가 하늘나라를 의미한다면 예복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옛날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가져왔던 선물처럼 우리에게도 하느님께 드릴 특별한 선물꾸러미가 필요할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려져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 3,10; 7,19; 루카 13,6; 요한 15,2)고 하였으니 우리 삶에는 어떤 열매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결실은 ‘지금-여기’에서 매 순간 우리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세례 때의 결심으로 이루어진 하느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일상이라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면 더더욱 우리는 ‘마음챙김’을 일상화해야 한다.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놓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몇 가지만 찾아내어도 우리의 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