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휘(姜晉暉)
[요약정보]
UCI G002+AKS-KHF_13AC15C9C4D718U9999X0
자 자서(子舒)
호 호계(壺溪)
생년 ?(미상)
졸년 ?(미상)
시대 조선 중기
본관 진주(晉州)
활동분야 문신 > 문신
부 강종경(姜宗慶)
[상세내용]
강진휘(姜晉暉)에 대하여
생졸년 미상. 조선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서(子舒),
호는 호계(壺溪). 부친은 학유(學諭) 강종경(姜宗慶)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총명하여 문장을 잘하고 시에 능하여 권필(權韠)‧구용(具容) 등과도 교유하였다. 정원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그를 따르는 자가 그 대를 얻으면 여러 사람에게 그를 만났음을 은근히 자랑할 정도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시골 원로들이 모집한 향병(鄕兵)을 지휘하여 왜적들과 싸웠는데, 주위에서 그를 의병장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나이가 어림을 이유로 사양하였다.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참봉‧선전관 등을 역임하였다.
1620년(광해군12) 선전관으로 있을 때, 과거시험장에서 낙방한 강무생(姜戊生)을 급제한 것으로 기록한 것이 발각되어 관직에서 쫓겨났다.
나이 30세로 요절하자, 그의 스승 성혼은 천지의 맑은 기운을 지니고 태어났으나 난세의 기한(飢寒)에 시달려 죽었다하여 슬퍼하였다.
[참고문헌]光海君日記, 國朝人物考, 李朝名人列傳(李家源, 乙酉文化社,1965)
[집필자]조성도(趙成都)
2005-11-30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광해 155권, 12년(1620 경신/명만력(萬曆) 48년) 8월 5일(경술) 2번째기사
사헌부와 사간원에게서 과거시험 부정응시생의 처벌을 건의받다
사헌부와 사간원이 아뢰었다.
“선전관 강진휘(姜晉暉)는 전시(殿試)를 보는 지극히 엄한 곳에서 낙방한 응시생 강무생(姜戊生)을 몰래 합격자명단에 기록하다가 현장에서 시관에게 붙잡혔습니다. 〈그의 마음씀이〉매우 간사하고 음흉하니 강진휘〈및〉강무생을 모두 사목대로 죄를 매겨서 〈과거시험의 법을 엄하게 하소서.〉”
○司憲府、司諫院啓曰: “宣傳官姜晉暉, 殿試至嚴之地, 落榜擧子姜戊生, 暗錄於草榜(之際), 現捉於試官。 (其用心)極爲奸譎, 請姜晉暉(及)姜戊生, 竝依事目科罪, (以嚴科擧之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