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있어야 할 성물들에 대한 규례
출애굽기 27장 1-21절
1-8.『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출애굽기 25장에서는 증거궤, 진설병상, 등잔대와 같은 성물들을 제작하는 방법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26장에서는 이러한 성물들이 있어야 할 곳이 성소와 지성소인데 이를 제작하는 방법에 관하여 말씀했다. 27장에는 성막 있어야 할 성물들 중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단을 제작하는 방법, 성막의 경계이자 담장의 역할을 하는 휘장을 제작하는 방법, 그리고 성소 내 등불 관리 규례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제단은 제물을 드리는 장소가 되었다. 짐승이 희생제물로서 역할보다, 죄인이 희생제물과 하나가 되어 드림으로 자신이 제물로서 태워져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게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제단(미즈베아흐)의 규격은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각 2.28미터(5규빗, 1규빗=45.6cm), 높이가 1.37미터(3규빗)이었으며 재료는 아카시아종인 조각목과 구리가 주성분인 놋이다. 기본 골격은 나무로 만들고 그 나무 표면에 놋으로 덮어서 제작하도록 하셨다.
제단을 나무 골격에 놋으로 표면처리 해서 만들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가운데 이동을 자주해야 하기에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제단의 기본 모양은 직육면체 사각모양이다. 위에서 볼 때는 가로 세로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이며 그 내부가 텅 비어 있는데 바닥이 뚫려 있지 않고 절반 높이에 놋으로 만든 망을 두도록 하셨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궁창 아래 물(흙탕물)에서 흙을 걸러 뭍이라고 하신 땅을 의미한다. 뭍은 땅이고, 나머지 물은 바다가 되었다. 이 땅(지구)은 먼 하늘에서 바라보면 둥글게 보이지만,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는 정사각형으로 땅을 평평하게 지으신 것이다. 사각형인 네모는 세상을 상징한다. 제단에서 태우는 것은 세상의 탐욕을 다 태우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세상에 와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모든 것을 태우라는 것이다.
구멍이 뚫린 형태의 망이 제단의 중간높이 위치에 면을 이루게 하신 이유는 짐승의 제물을 번제로 드릴 때에 짐승이 완전히 연소된 후 재가 되어 아래로 떨어지게 하여 재가 쉽게 수집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외부 모양의 특징으로는 각 모서리에 뿔이 있고 양쪽 면에 고리를 두 개씩 두고 그 고리에 원형 막대인 채를 끼워서 이동시 어깨에 멜 수 있도록 하셨다.
제단의 뿔은 구원을 상징한다. 구원을 상징하는 예가 성경에 여러 곳에 있다. 시편 18편 2절에 다윗이 하나님을 가리켜『나의 구원의 뿔이시요』라고 찬송하고 있다. 열왕기상 1장 50절에는『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제단 뿔을 잡았으며』, 열왕기상 2장 28절에 요압 역시 솔로몬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제단 뿔을 잡았다. 제단의 뿔이 구원을 상징하게 된 것은 제단 위에 속죄의 희생이 드려질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드리는 죄인의 죄를 사함으로써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구원의 뿔은 다윗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로 성막 내 지성소를 두게 하셨다.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머물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함부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허락된 자만이 정결의 과정을 거쳐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경배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또한 짐승의 피로 속죄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는 짐승의 제물을 바칠 제단이 필요했다. 제사장이 범죄한 자를 위하여 제단에 제물을 시시때때로 드려야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제단에 대제사장이자 친히 희생 제물이 되시어 자신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죄인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사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감히 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뿔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이 자신에게 나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하셨다. 이스라엘 족속이 자기의 방식과 생각대로 성막의 뜰 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방법대로 나오도록 하셨다. 그 방식은 희생제물이 피 흘려 죽고 완전히 불타서 재만 남게 하는 제단이라는 대체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한 것이다. 그 방법이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내신 길이다. 그래서 성도는 또한 완전한 희생제물로 바쳐진 예수님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길 앞에 항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놓여 있어서, 그 길을 거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히브리서 9장 13절에서는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증거한다.
9-19.『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쪽을 향하여 뜰 남쪽에 너비가 백 규빗의 세마포 휘장을 쳐서 그 한 쪽을 당하게 할지니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그 북쪽에도 너비가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뜰의 옆 곧 서쪽에 너비 쉰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동쪽을 향하여 뜰 동쪽의 너비도 쉰 규빗이 될지며 문 이쪽을 위하여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문 저쪽을 위하여도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뜰 주위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뜰의 길이는 백 규빗이요 너비는 쉰 규빗이요 세마포 휘장의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할지니라』
성막의 뜰은 성소의 밖이자 성막의 내부의 장소다. 9절부터 19절은 성막의 경계를 이루는 일종의 담벼락과 같은 휘장을 제작하는 방법에 관한 말씀이다. 성막 경계선의 모양은 직사각형이다. 남쪽과 북쪽의 길이가 각 45.6미터(100규빗)이고 동쪽과 서쪽의 길이가 각 22.8미터(50규빗)입니다. 동쪽에는 출입문을 만들도록 하셨으며 그 문의 좌우 총길이는 9.12미터(20규빗)가 되도록 하셨다.
이렇게 동서남북의 휘장으로 경계선으로 이루어진 뜰의 내부는 면적이 넓지 않는 장소이며 제단에 바쳐질 짐승들이 대기하는 장소이자 짐승들이 피를 흘리고 소리를 내고 피비린내와 고기타는 냄새를 발산하는 장소로써 울음과 고통의 장소다. 그러므로 성막의 뜰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짐승들의 장소였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이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십자가와도 같은 곳이다.
죽은 동물이 죄인이 되며, 죽은 동물이 흘린 피가 죄인이 흘린 피가 되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이며, 예수의 흘리신 피는 나의 죄를 대속하는 피라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만 대속의 죽음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이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실 때도 동물을 죽게해서 반을 갈라놓고 하나님의 불이 지나가셨다.
성막의 뜰은 높은 휘장으로 인해 외부와 구별된 곳으로,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다. 문으로 들어가 제단에서 희생제사를 드려야만 들어가도록 허용된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 성막의 뜰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을 대신해 죽을 흠 없는 희생제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남김없이 그 재물을 불태운 것처럼, 자신 또한 남김없이 태워져 그렇게 이스라엘 족속은 그 뜰에서 자기를 대신해 불태워진 희생제물과 같이 대속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
이제 다윗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을 사모했다는 그 성막의 뜰은, 자신을 단번에 희생제물로 드려 영원한 성전이 되시고, 성도의 성전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성막의 뜰은, 이제 대속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의 모든 곳이 될 수 있다.
20-21.『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하나님께서 성막 안의 등잔대에 등불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켜도록 하셨다. 이 등불을 위해서 순수한 감람유를 가지고 오게 하셨는데, 잎이나 열매꼭지 등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한 감람유는 무색으로 탈 때 연기가 나지 않고 밝은 빛을 낸다. 이 감람유로 회막의 등잔대에 등불을 붙여 저녁부터 아침까지 끊이지 않도록 보살피라고 하시며,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라고 하셨다.
시편 121편 4절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고 노래하는 것처럼, 성막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하시며 그들이 잘 때도 주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항상 깨어 그들 가운데 계시기에 이스라엘 족속이 잠든 밤에도 등불이 끊이지 않게 아론과 제사장들은 순수한 감람유를 공급해야 했다.
등불의 기름은 올리브유인 감람유로 하되 순수한 기름으로 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소를 밝히는 등불의 기름은 불순물이 없는 정제된 순수한 기름이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소를 밝히는 등불의 기름이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기름이어야 하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순수한 기름이 된다. 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내가 무엇인가 노력해서 순수한 기름이 되도록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자기의 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믿는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심도 믿는 것이다. 등불의 기름은 성령세례와 성도의 부활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