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도 오늘은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촛불 켜진 제단을 향하여 숙연한 자세로 아버님 추도 미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벌써40주년 기일이 옵니다. 새삼 세월의 두께를 느끼며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아버님 모습이 생시인양 떠오릅니다. 아버님, 어쩜 그렇게도 일생을 짧게 끝맺음 하셨습니까. 49세의 단명한 운명이 아직껏 지워지지 않는 저의 아픔입니다. 그러기에 생존시 다른 사람들의 몇 배나 되는 사랑을 여식인 저에게 그렇게 많이 쏟으셨던가요. 그 사랑 지금도 기억에 총총합니다. 추억으로 가득한 잔상이 알알이 피어나는 성스러운 제단 앞 아버님. 지금 천상에서 아버님을 뵙는 듯한 성가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기도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들이 간구와 구원의 기도는 영으로 통하는 이심전신이 아니옵니까. 조용한 마음으로 두 손 모으고 헛되지 않도록 정성껏 기도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베풀어 주셨던 추모의 정을 되새기면서 뜻깊은 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버님. 세월이 유수라 하던가요. 여의고 40년이나 층층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 긴 세월을 보내고도 막상 생각하면 눈 깜박거리는 순간처럼 짧게 여겨집니다. 그건 그만큼 다사다망했다는 의미겠지요.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일도 허다했고 삶의 영광도 있었습니다. 아버님. 운명하시기 며칠 전 병상에서 저에게 물으셨죠.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이 되겠느냐고요. 아마 저의 장래가 가장 궁금하셨겠지요. 그간 저는 교사로 봉직해왔습니다. 1970년에 인연을 만나 결혼도 했구요. 아들도 하나 얻었습니다. 그가 벌써 대학원을 나와 미국 유학생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생존해 계신다면 무한한 사랑을 받을 손자일 텐데요.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도 지난해 회갑을 넘기고 같은 해 36년의 정든 교직을 물러났습니다. 아버님 하나에서 마흔까지 세려면 한참 걸리는 긴 세월이 아닌가요. 그사이 엄청나게 변해 있는 저입니다. 아마 이 순간 지상에 오신다면 전연 알아보지 못하실 만큼 변해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여기까지 세월의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요. 세월의 두께를 느끼는 동안 미사도 끝났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성당문을 나와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별빛을 온몸에 받으면서 밤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화려한 불빛이 세월의 두께를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밤이 가면 내일이 오기 때문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