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말씀 자체가 하나님 자신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는 그 하나님의 임재를 여러분이 오늘 충분히 누려야 일주일을 승리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출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여호와의 명령대로...우리는 이런게 있어요. 내가 이전에 불순종했을때는 물이 없었어, 인생이 힘들었어, 근데 이제 순종하니까 물이 있겠지, 이러면서 순종을 합니다. 그런데 순종했는데 내 생각대로 안 이루어졌네, 그때가 하나님이 우리를 찐인가 아닌가 흔들어 보는 때 라는 겁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물을 주신 기억과 경험이 있는데도 다시 같은 상황이 닥치면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불평부터 합니다. 이런 죄악된 본성이 육의 모습이고 이것을 하나님은 다루시는 겁니다.
왜 육을 다루시나요? 우리는 영이니까. 두꺼운 육의 껍질이 파쇄되어야 그 안에 숨어있는 우리의 영이 흘러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환경을 주시고 금방금방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명령대로 행했는데도 물이 없을 수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 아십시오.
내 뜻대로 뭔가 이루어지기 위해 순종하는 것은 진짜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짜 순종인지 가짜 순종인지 다 아세요.
제가 11년 전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하나님께 모든 걸 내려놓고 신학하겠습니다, 순교하겠습니다, 기도했는데 그게 저의 진심이었어요. 진짜 포기한거였습니다. 근데 이렇게 잘살줄 몰랐어요. 여러분도 진짜 죽고자 해보세요. 그때 하나님이 살립니다.
출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보여지는 사역자한테 불평하는 거는요 하나님한테 불평하는 것과 똑같은 거에요.
목사님한테 막 도전하고 장로님들끼리 막 갈라지고 이런 교회들이 많죠.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맡기세요. 물론 잘못된 목사님들이 진짜로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세우는 권위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저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이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요.
출17: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애굽에서 그렇게 종살이할때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내보내준 것은 싹 잊어버리고 지금 당장 얽혀진 문제에 완전히 잡혀서 그것밖에 안 보이는 거죠.
근데 그것은 결국 먹고 마시는 문제에요. 이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왜? 하나님은 육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 신부들을 데리고 들어가겠다는 거거든요. 육이 처리 되어야 해요.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우리의 육의 사람, 옛사람이 같이 못 박혀 죽었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의 본질이 영이지 육이 아닌데도 계속 지금 육적인 문제 즉 먹고사는 문제로 죽겠다고 불평하는 거에요.
하나님은 너희의 진짜 본질은 영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계속 저울질하시는 거구요.
여러분 먹고 사는 문제 이게 끝나야 좋은 땅에 들어가고 누릴수 있어요.
육의 사람은 들어가봤자 누릴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서 육을 벗겨내는 작업을 해야만 되는 거에요.
저도 미국에 와서 그 시간을 다 거쳤는데 이게 꼭 통과되어야 하는 테마예요.
여러분 이거 없이 좋은 땅에 들어갈 생각을 마세요. 못 들어가요, 성경적으로.
하나님이 우릴 무슨 벌주려고 혹은 사랑하나 안하나 그런 치사한 시험을 하시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육이 아닌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거에요.
우리의 본질은 영이고 우리의 참 양식은 하늘에서 오는 신성한 음식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으신 겁니다.
출17: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히브리어로 보면 이 상황이 단순한 불평 이런거 아니고 모세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1절에서 르비딤에 장막을 쳤다고 했죠. 르비딤의 의미는 안식이라는 뜻이에요.
근데 7절에서 이곳이 맛사(=시험) 또는 므리바(=다툼,싸움)라고 불리게 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었어도 그전에 하나님이 물을 주셨던것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나갔다면
르비딤이 되는거였는데 믿지 않고 불평하여 므리바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물을 주셔야, 즉 재정이 터지고 은사가 오고 건강해지고 그래야 안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초가삼간에 살아도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것이고 대궐같은 데 살아도 싸우고 살면 지옥인 것입니다.
즉 안식은 내 마음 안에 있는것이지 환경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의해서 내 마음을 규정하지 말고 내 마음으로 환경을 규정하는 원리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도요 사실 육의 눈으로는 굉장히 메마르고 척박한 땅입니다.
때에 따라 비가 내려줘야 농사가 되는,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땅이에요.
근데 하나님 눈으로 볼 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그 땅이 좋은 땅인 것입니다.
내 믿음과 내 마음과 내 말로 척박한 가나안이 좋은 땅으로 만들어지는 거에요.
출17: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그 지팡이 자체가 무슨 요술방망이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되었던 임재가 있는 물건인데 하나님은 그냥 가지 말고 그걸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거기에 굉장한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도바울의 앞치마나 손수건을 만질때 치유가 일어나고 그랬었죠.
그 사람에게 있는 기름부음이 그 사람의 물건에도 전달이 되어 있는 겁니다.
이 자체가 하나님 없이 요술방망이 그런 의미는 아니죠. 저도 옛날에 아프리카 우간다에 갔을 때 치유의 말씀을 적은 카드로 치유 많이 했었어요. 그 카드 자체에 요술 뭐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기름부음이 거기에까지도 전달이 돼서, 그 에너지가 그 물건에 있는거에요. 제 물건이잖아요. 이것도 지금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요번에 낸시 선교사님 집회 오시는 분들한테 선물 드릴려고 카드를 아주 예쁘게 제작했습니다.
출17:6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반석위에 내가 너를 대하여 선다, 그니까 반석 뒤에 하나님이 서 계신건데 그 반석을 모세보고 치라는 거에요.
주님이 매를 맞는 상황을 지금 계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게 이 구절이에요.
그렇게 은혜를 베풀었는데도 잊어버리고 또 불평하고. 육의 사람은 길이 없는거야.
그러니까 하나님이 매를 맞는 거예요. 본인이 스스로 이 물을 줄려고.
왜? 맨날 목마르다고 난리 치니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진짜 생수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쳐라, 그게 바로 십자가 사건이에요. 하나님 매 맞는 거 성경에 있어요. 고린도전서 10장 1절부터 읽어봅시다.
고전10: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제가 오바하는 게 아니에요.
육은 아무리해도 고쳐지지 않고 율법갖고도 안되고 정말 이대로 가면 지옥 갈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니까 주님이 대신 맞아서 이 죄를 해결하고 생수를 주어 목마름을 해결하신거에요. 너는 반석을 치라, 너는 나를 치라.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분을 때리는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으로만 살길이 있고 하나님으로만 목마름이 채워질 수 있어요. 그렇게 우리의 DNA가 만들어졌어요.
사마리아 여인 같은 우리에게 생수로 오시기 위해서 매 맞아 죽으신 하나님을 여기서 계시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17: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불평하다보면 하나님이 계신데,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나오잖아요.
이것이 하나님 계시냐 안 계시냐를 가지고 논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보신다는 얘기죠.
이것이 하나님 시험하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 얘기입니다.
출17: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남자만 60만명이고 그 식구들까지 하면 120만명도 더 넘는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물을 마셨어요. 그 바위를 쳤을때 어마어마한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왔단 얘기에요.
여러분 주님이 십자가에서 매를 맞고 물과 피를 흘리셨죠. 그분의 사랑과 생수로 인류를 덮어버린 거에요.
십자가 사건 이후 2천년동안 어마어마한 생수가 터져 나와서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어마무시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살게 된것입니다.
맨날 불평만 하는 우리를 대신해 매 맞은 주님. 모든 게 은혜로다,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거죠.
여러분 오늘부터 불평이 여기까지 올라올 때, 그래 이거는 하나님 계신지 아닌지를 내가 지금 시험하는 거야, 입을 딱 다물고 주님 감사합니다, 그런 훈련을 해보세요. 아파도 지금 치유가 다 안 됐어도 재정이 생각보다 안 풀렸어도 그저 은혜입니다, 하면서 감사해봅시다.
이렇게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릴 때 천사들이 우리한테 오기 시작해요.
내가 불평하고 화 내고 그러면 마귀들이 와요. 같은 에너지끼리 끌어당기거든요. 이것은 양자역학적으로 증명된 과학입니다.
자 근데 광야에서 물은 진짜 귀한거잖아요. 물이 광야에 쏟아진것이 소문이 나서 아말렉이 몰려옵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죠. 에서는 육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이 에서의 자손들이 아말렉 이에요.
여러분 이 육의 사람은 계속해서 영의 사람을 괴롭힙니다. 같이 갈수 없는 원수에요.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종노릇만 했지. 그런데 아말렉은 사냥꾼 에서의 자손으로 싸움꾼들입니다.
붙으면 무조건 지는 게임이에요.
출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들던 자로서 이름도 없고 전쟁경험도 없는데 이 여호수아 보고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라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아무나 제자 삼지 않았어요. 택함을 받아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로써 이렇게 하나님이 훈련시키는 거 아세요? 이것이 축복입니다. 제대로 믿는 택해진 사람들이 아말렉과 싸운다는 얘기예요.
출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출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안테나와 하나님의 안테나가 접속되어 전류가 흐르고 그 능력이 모세에게 정렬되어 있는 여호수아에게로 흐르는 거에요. 셋이 공명을 하는 거죠. 전쟁을 한번도 해본적 없던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거에요. 이들이 싸운게 아니라 하나님이 싸운거에요. 전쟁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우린 육이기 때문에 영적존재인 마귀에게 무조건 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늘을 보고 손을 들고 접속이 돼야 싸움에서 이기는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러가라~! 해도 안 나가요. 우리가 하나님과 접속이 되어 있는지 아닌지 마귀는 귀신같이 압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 모세 여호수아 이렇게 셋이 같이 협력이 되고 있죠. 사역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렬이 된 분들과 연합하고 동역할때 사단을 쳐서 이길수 있는 원리를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박사님과 저도 정렬되어 남아있으면서 겸손하게 섬기시는 분들이 계셔서 사역을 계속 할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혼자하는게 아니라서 겸손해지고 감사할 수 밖에 없네요. 그럼 여기까지 하고 성찬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