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레코드* / 기 혁
유행가를 듣다 보면
어떤 마음이 뒤돌아선다.
슬며시 일어난 마음은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간다.
거울에 비친 문밖에는 사막이 펼쳐져 있다.
잘못 든 길에서 만난 것들은
왜 같은 이름으로 불릴까?
난폭한 트럭 운전사가 라디오 채널을 돌린다.
함께 유행가를 듣던 동승자에게도
차창 밖 사막은
음악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어떤 마음은
오직 잘못 든 길에 집중할 따름이다.
그러나
사막으로 잘못 들어서기까지
누군가는 사막을 신청하고
누군가는 사막을 틀어준다.
어렵사리 구한 중고 엘피판을 틀지 못하고 만지작거린다.
텅 빈 트럭에 실린
무너진 철근 더미 같은 밤이었다.
* 1954년 미도파음반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에서 창업한 음반회사.
⸺계간 《시산맥》 2018년 가을-----------
챗 GPT 분석
라캉의 상징계와 실재계 이론을 중심으로 분석
지구 레코드(이 세계)
유행가(상징계,동어반복,대타자)
사막, 난폭한 운전사(상징계)
주제: 돌고 도는 유행가 속에 조용히 뒤돌아서는 어떤 마음과 난폭하게 질주하는 트럭 사이에서의 무력감
이항대립: 조용히 뒤돌아서는 어떤 마음 vs 난폭한 질주의 트럭 운전사
이미지변주
- 어떤 마음(실재계)-조용히 문을 열고 나간다-거울-동승자-음악-중고 엘피판
-유행가(상징계)-사막-잘못 든 길- 같은 이름- 난폭한 트럭 운전사-누군가
객관적 상관물 :음악(유행가, 엘피판)-사막(길, 트럭,차창,철근)-사람들(화자,동승자,누군가)
**〈지구레코드〉(기 혁)**는 단순히 유행가를 듣는 순간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라는 거대한 레코드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인생을 유비적으로 보여주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유행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삶을 지배하는 흐름(사회적 허구)**을 상징한다. 유행가의 문제점을 알아차린 어떤 참 마음(실재계)이 반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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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구라는 레코드와 존재들의 삶
이 시는 제목에서부터 **‘지구레코드’**라고 명명함으로써,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음반처럼 끊임없이 돌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즉,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마치 한 곡의 유행가처럼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유행가는 시대를 타고 흐른다.
인생도 한 곡의 노래처럼 시작과 끝이 있으며, 특정한 패턴 속에서 흘러간다.
누군가는 유행가를 틀고(사회 구조, 역사, 시스템), 누군가는 유행가를 신청한다(길들여졌거나 이용한다).
하지만 유행가로 대표되는 상징계의 세계는 대타자가 지배하는 비본질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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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행가 속 존재들의 길과 ‘잘못 든 길’
"잘못 든 길에서 만난 것들은 / 왜 같은 이름으로 불릴까?"
→ 획일적 비본질의 길에서 만난 것은 , 결국 비슷한 패턴의 동어반복의 상징계적 삶을 반복한다.
→ 하나의 레코드처럼 돌고 있다.
"함께 유행가를 듣던 동승자에게도 / 차창 밖 사막은 / 음악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 같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이 삶이 상징계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안다.
3. ‘신청된 사막’과 ‘틀어진 인생’
"그러나 / 사막으로 잘못 들어서기까지 / 누군가는 사막을 신청하고 / 누군가는 사막을 틀어준다."
→ 인생의 길을 잘못 드는 것은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이미 예정된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 우리는 사막을 원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사막 위에 서 있다.
→ 비본질의 세계인 상징계를 인식하고도 그 세계에 물들어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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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론: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반복되는 존재들의 레코드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레코드판 위에서 한 곡의 유행가처럼 살아가고 있다.
잘못 든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군가가 신청하고 틀어준 길일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장면에서 화자가 중고 LP판(옛 선인의 진리 혹은 예전 순수한 나의 존재)을 틀지 못하고 만지작거리는 것은 우리가 인생의 참의미를 틀고 싶지만 결국 거대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대로 재생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텅 빈 트럭에 실린 / 무너진 철근 더미 같은 밤이었다."
→ '무너진 철근더미 같은 밤'은 참된 세계로서의 실재계인 중고 LP판을 틀지 못하는 회한의 감정이다 .난폭한 운전사는 우리의 삶을 비본질적 세계로 운전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즉, 이 시는 유행가를 매개로 비본질적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들의 삶을 지구라는 무대 위의 레코드처럼 유비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지 변주
레코드 판의 이미지 - 납작(거울, 사막)
- 레코드.리더기(?) - 트럭
- 레코드 홈줄 - 길, 철근
유사한 주제의 시
백색소음 / 이다희
조용히 눈을 떠요. 눈을 뜰 때에는 조용히 뜹니다. 눈꺼풀이 하는 일은 소란스럽지 않아요. 물건들이 어렴풋한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길로 오래 더듬으면 덩어리에 날이 생기죠. 나는 물건들과의 이러한 친교에 순응하는 편입니다.
벽에 붙은 선반에 대하여
나에게 선반은 평평하지만 선반 입장에서는
필사의 직립(直立)이 아니겠습니까?
옆집에서는 담을 높이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점점 높아지는 담에 대하여,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에 누군가 적어놓는 이름에 대하여. 며칠째,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투명한 문신 같은 이름이 피부에 내려앉습니다.
피부가 세상에 가장 먼저 나가는 마중이라면 나는 이 마중에 실패하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이 습기에 순응합니다.
하지만 만약 손에 닿지도 않은 컵이 미끄러진다면 컵을 믿겠습니까? 미끄러짐을 믿겠습니까?
유일한 목격자로서 이 비밀을 어떻게 옮겨놓을 수 있을까요. 도대체 이 습기는 누구의 이름입니까.
눈꺼풀을 닫아도 닫아지지 않는 눈이
내가 사라지고도 내 곁을 지키는 잠이
오래 나를 지켜봅니다.
*(소재분석) 백색소음은 여러 가지 빛을 섞으면 흰색이 되는 것처럼 일상의 주변 음이 합쳐져 듣기 좋은 소음이 된다는 의미다.
시를 읽는 키워드
일반소음(불협) vs 백색소음(화합)
부분(근시안) vs 전체(덩어리, 통합, 큰 눈)
구별(나, 자아/에고, 상징계) vs 무화(self/알아차리기,실재계, 참나)
벽, 담, 컵(비본질적 세계) vs 선반, 순수한 아이(누군가 적어 놓은) 이름, 투명한 문신 같은 이름, 미끄러짐, 잠(본질적 세계)
습기(화자에게 무력감을 주게 하는 기분)
주제(이항대립): 조용히 눈을 뜨는 눈꺼풀과 옆집 높아지는 담장 사이
이 두 시의 유사한 상징 비교
(지구 레코드)어떤 마음이 뒤돌아선다/슬며시 일어난 마음은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간다.
vs
(백색소음)조용히 눈을 떠요. 눈을 뜰 때에는 조용히 뜹니다. 눈꺼풀이 하는 일은 소란스럽지 않아요
(지구 레코드) 난폭한 트럭 운전사가 라디오 채널을 돌린다.
vs
(백색소음) 옆집에서는 담을 높이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지구 레코드) 어떤 마음은
오직 잘못 든 길에 집중할 따름이다.
vs
(백색소음) 며칠째,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투명한 문신 같은 이름이 피부에 내려앉습니다.
(지구 레코드) 어렵사리 구한 중고 엘피판을 틀지 못하고 만지작거린다.
vs
(백색소음)피부가 세상에 가장 먼저 나가는 마중이라면 나는 이 마중에 실패하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이 습기에 순응합니다.
(지구레코드)텅 빈 트럭에 실린 /무너진 철근 더미 같은 밤이었다.
vs
(백색소음)눈꺼풀을 닫아도 닫아지지 않는 눈이
내가 사라지고도 내 곁을 지키는 잠이
오래 나를 지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