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얼굴 없는 화가, 거리의 화가 등이다
그렇다면 뱅크시는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애써 피하는 사람일 게다
오직 거리 어디에선가 작업한 작품 만으로 그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지구 곳곳이 뱅크시의 캔버스인셈이다
모두가 뱅크시를 본 적도 없고, 그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도 없을 텐데
대한민국에서 그의 작품전이 열린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뱅크시가 공식적으로 인증한 전시가 있다
뱅크시가 직접 설립한 회사인 패스트컨트롤에서 정식 승인한 작품의 전시 여부가 핵심이다
이번 전시 역시 패스트컨트롤의 정식 승인작품 29점과 영상작품을 포함한 약 13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유명한 감옥의 담장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멀리서 보고
이제 막 감옥의 높은 담장을 타고 탈옥하는 죄수인 줄 알고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신고를 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자신의 SNS를 핫하게 달구어줄 멋진 동영상을 촬영하려고 했을 수도.
뱅크시의 위트가 담긴 작품들을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검색창에 뱅크시만 입력해도 주르륵 그의 작품이 뜨지만
PC창이나 폰이 주는 한계를 벗어나 감상하는 멋을 주는 곳이 미술관 아니겠는가
4층에 해당하는 전시장을 뱅크시에 어울리는 기획으로 흥미를 주었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종교를 비판하는 작품으로 기독교인들의 비판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유독물질을 그저 종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의 관계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된 환경에 대한 메시지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시무시한 감시탑을 어린이들의 놀이기구로 변신시킨 발랄한 그림
총으로 무장한 군인의 얼굴을 보시라
곧 날아갈 듯 날개도 달렸다
뱅크시의 평화의 메시지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네이팜>
AP기자 닉 우트가 찍어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전 사진이다
미군의 폭격으로 화상을 입고 도망쳐 나오는 아홉 살 소녀 판티 킴 푹
전쟁의 비참함을 알린 사진이라고는 하지만
난 이 사진을 어디선가 처음 봤을 때 미군의 폭력성에도 치를 떨었지만
한 인간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다룰 수가 있을까 하며 더 치를 떨었었다
아홉 살 소녀가 발가벗고 절규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다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에서 생각했었다
뱅크시는 이 사진을 또 이렇게 패러디했다
네이팜의 소녀는
맥도널드와 월트디즈니 사이에 서 있다
가련한 소녀의 손을 한쪽씩 붙잡고 서 있는 두 거대기업은
화상을 입은 소녀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함박웃음을 띠고 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지만 전쟁과 잔혹한 일들을 지지하고 포옹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 소녀는 뱅크시에 의해 또 한 번의 폭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천안문 사태를 기록한 제프 와이드너의 사진 <탱크맨>
학생들의 민주주의 시위를 무력진압하려는 탱크 앞에 비무장상태로 서 있는 학생의 모습은
비폭력주의의 상징이자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 사진을 <골프 세일>이란 제목으로 패러디했다
뱅크시가 주려는 메시지는
"우리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기 전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쇼핑이나 가서 자신을 위로하는 수밖에"
풍선과 소녀, 워털루다리, 런던
워털루 다리 위에 그려진 이 그림이
소더비경매장에서 낙찰 직후 액자 속에 감추어진 파쇄기가 작동한 퍼포먼스로 더욱 유명해졌다
출구도 파쇄된 작품을 지나야 한다
굿즈샵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풍선과 소녀
핫하고 힙하고 아주 좋네요
이 옷을 입을 용기 있는 자에게 그냥 달라고요
나 입을 용기 있음
액자대신 걸어도 멋진 작품이잖아요
실제처럼 재연한 계단 벽에서 이런 놀이도 해보는데
멀리서 뱅크시가 내려다보곤 흐뭇해하고 있다
천정과 맞닿은 창으로 뱅크시가 내랴다보고 있다
음 내가 깔아준 판 위에서 다들 잘 놀고 있군 하면서 말이다
판화의 고유번호가 있는 걸 보니 리얼뱅크시전 맞네 하며 끄덕이며 감상했다
생각보다 뱅크시의 작품이 많았고
건물의 특징을 잘 살려 작품을 배치하고 곳곳에 벽화로 뱅크시의 효과를 잘 보여줬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액자에 들어있는 뱅크시 작품에 원래 있던 곳의 사진을 같이 첨부해서 보여줬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뱅크시가 그렸던 그 장소가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