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극복한 기도의 능력
사도행정 12: 1 -10/
“불가능은 없다”고 기염을 토하던 나폴레온은 “불가는은 있다”는 교훈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온의 그 장담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신앙고백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응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태초에서 세말까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로 성경을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의 이성과 판단을 동원하여 가로막는다든지 안된다고 부정하는 것을 죄라고 가르쳐 주도 있습니다.
이사야 45장 9절을 살펴보면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룰진대 화있을찐져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느뇨“ 라고 햇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지켜야할 신앙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거나 안된다고 가로막거나 못한다고 머리를 흔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 즉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신 본문 속에서 그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한 헤롯왕은 야고보 사도를 죽이므로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베드로 사도를 체포해 투옥시켰습니다. 그러나 능력의 하나님은 기적을 이르켜 베드로를 출옥시켰다는 것이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문의 줄거인 것입니다.
1. 위기 전날 밤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4절을 살펴보면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고 했고 6절을 살펴보면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라고 했습니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헤롯왕은 베드로를 끌어내 처형할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그 전날 밤 하나님이 사건을 일르키신 것입니다.
인생 삶이란 때로 벼랑 끝에 매달리는 듯한 위기를 격을 때가 있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설 때도 있고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갈림길에 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운명은 거기서부터 달라지고 바뀌게 됩니다. 절박한 그 위기에서 건져주시는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그 위기에서 침몰해 버리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거기가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위기, 실패, 절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히 하는 사람은 그 위기와 실패와 절망이 기적과 성공과 희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내일이면 야고보의 뒤를 이어 초대교회 지도자 베드로가 유대 인민재판에 회부될 위기 바로 전날 밤
하나님은 기적사건을 일르켜 베드로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을 가까히 하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베드로의 위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기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위기 바로 직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벼랑 끝에 매달렸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기일보 전이라고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위기 직전에 일어납니다. 홍해를 건 낼 때도 앞에는 홍해,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 위기일보 직전에 일어나습니다.
위기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읍시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 명예. 권위. 모든 생각을 동원하여도 위기에서 탈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것을 주님께 마낍시다.
그런 믿응을 소유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를 투옥시킨 해롯은 군사 넷씩으로 구성된 4개 조가 지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두 명의 군사가 베드로와 쇠사슬로 묶인 채 밤을 지새며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힘있고 강한 것 같은 사람들의 허약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혁명군 사령관도 아닙니다. 독립운동가도 아니고 정치지도자도 아닙니다.
지극히 가난한 전도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가 두려웠으면 정규군인 18명을 동원하여 옥 안 밖을 지키게 햇겠습니까?.
세상 권세는 가질수록 불안합니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불안합니다. 그래서 경호원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헤롯이 지켰습니다. 그것은 헤롯이 불안하고 초조했기 때문입니다. 16명의 군사가 옥문을 지키고 두 명의 군인이 베드로 양쪽에 함께 누워 손에 수갑을 채운 그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탈옥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불가능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막힌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불가능이 곧 하나님의 불가능은 아닙니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절망은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내가 하기 싫다고 하나님도 하기 싫은 것이라고 건너짚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나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나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능합니다. 내가 싫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해야 합니다.
저는 나이 많아서 신학을 ?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매우 어려웠으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심으로 어렵지 않게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회 개척도 졸업하고 할려고 계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서둘러 주시니 참 편하게 일들을 처리 했습니다 (설립예배에 관하여 설명).
3. 갑자기 일어난 사건입니다.
본문 7절을 살펴보면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체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라고 했습니다.
예고도 없었고 통보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주의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깨웠습니다. 옥중에는 하나님의 광체가 비쳤습니다. 중국이 대만 해협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며 군사훈련을 핑계로 위협시위를 하자 미국 항공모함이 대만 해협으로 이동하면서 무력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음속 전투기나 항공모함도 위기 현장으로 홀련히 출동하지는 못했습니다. 더욱이 U N 에 가입된 나라들이 군대를 파병하려면 안보이사회를 열어야 되고 거기서 결의를 하려면 속전속결을 전쟁필수로 삼는 현대전은 이미 승부가 끝나 버리고 맙니다. 내일이면 베드로는 재판에 회부됩니다. 지금처럼 변호인단이 구성되는 것도 아니고 어용증인을 내세워 사형을 확정하고 죽일 걔획이었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회의 모이고 로비하고 요로를 찾아까 탄원을 할 수 있었겠습까?.
하나님의 사자는 그날 밤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기동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은 신속성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지며 “주여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 소리치자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건져주셧습니다. 생각해보시고 연구해 보시고 난 후 행동하신 것이 아닙니다.
항공모함 한 대의 규모는 어마어마 합니다. 백대의 공격용 비행기를 탑재할 수 있는 십만톤 규모의 함대입니다. 항공모함은 하늘에서 바다에서 육지에서 공격 할 수 있는 모든 신무기를 가춘 무서운 병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는 항공모함 수 만대를 합해도 그 규모나 기동성이나 힘에 있어서 당할 수 가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나를 홀연히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내가 예기치 않는 곳에서 일어나니다. 우리 모두 믿고 기다립시다,
4. 그 사건은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본문 5절을 살펴보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고 했습니다 (간단한 간증).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능력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고보의 순교로 ?픔에 빠진 초대교회로서는 베드로의 투옥사건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악마의도전에 멍청이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도령을 선포하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 기도의 능력이 불가능을 극복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했습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아 위크지 3월 11일자 보도에 의하면 아시아의 부자들이 즐겨 타는 자동차와 입는 옷과 먹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이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국의 백만장자들은 주로 “메르세데스 벤츠”몰고 다니고 남자는 “지오르지오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여자는 “이광희 투피스”를 즐겨 입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가 여행지로는 “스위스”를 가장 선호하며 외식장소로는 신라호텔의 “팔선”을 즐겨 찾는다는 것입니다. 일년중 가장 비중을 두는 사교행사로는 “청와대 만찬‘이고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최고로 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동안의 영화일 뿐입니다.
영혼의 부자들은 교회에 모여서 기도합니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부르게 먹고, 기도로 영생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찬치에 초대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깁니다.
우연한 기회에 저는 서울시내 모 인류호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화장실이 너무나도 깨끗하고 화려했기 때문입니다. 바닥과 벽이 모두 수입대리석과 외제벽지였고 화장실 출입문도 모두 수입목으로 만든 것 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벽에 건 거울. 세면기, 변기 모두가 외제였고 물만 국산이였습니다. 우리 서민들이 사는 안방보다 훨씬 깨끗하고 넓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살까?.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꿀수 있었습니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의 도움으로 말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화려하고 풍요로운 것 같아도 그 곳은 결국 배설하는 화장실에 불과 한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기도합시다. 주의 전에 나와 기도 합시다. 기도는 위기를 극복합니다. 기도는 난국을 해결합니다. 기도는 얼킨 문제를 해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만 응답받는 사람은 적습니다. 끝까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계전쟁사를 살펴보면 영국은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1940년 5월 26일을 기도일로 정하고 전 국민이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전세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해 9월 8일은 영,미 양국이 함께 기도하고 독일군을 이겼습니다. 영국은 기도로 2500척의 적함을 거센파도로 후퇴하게 했습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역전시킴니다.
우리는 기도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 기도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는데 왜 의심하고 염려하십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시다.
말씀을 간단히 요약합니다.
기도함으로 위기 전날 밤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능으로 변했습니다. 오늘에 사건은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또 그 사건은 기도의 응답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를 위하여 기도 합시다. 하나님께로 나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