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복산이라도
새해 첫 주말을 맞았다. 방학이다 보니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이 산과 들로 누비고 있다. 주말 역시 자연 학교로 등교함이 당연함에도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미리 마음속 구상한 트레킹 코스는 구산 갯가 한적한 해안선을 따라 반나절이든 한나절이전 걸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엊그제부터 감기 기운을 못 이겨 동네 의원을 찾아 처방전 따라 약을 복용해도 별다른 차도가 없다.
주말 오후와 주일이면 병의원이 휴진인지라 토요일 아침나절이라도 상급 병원을 찾아가야 할 처지였다. 열이 나고 기침이 심하기에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사전 예약이 안 되어도 전화를 넣었더니 접수는 받아두어도 진료실 앞에서 마냥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진료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서둘러 종합병원을 찾아갔더니 호흡기내과 대기 환자도 그 수가 만만하지 않았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차례와 와 진료실에 들어갔다. 전문의는 대번에 환자 얼굴만 보고도 요즘 마산 창원에 유행하는 독감일 거라고 했다. 입안 타액 시료를 채취해 검사실로 보내 얼마간 시간이 경과한 결과는 B형 독감으로 판명되었다. 아내는 과거 암수술 병력에다 고혈압이라 면역력이 약해져 있는지라 신경이 쓰였다. 처방전 따라 약국에서 약을 타서 집으로 와 점심밥을 들었다.
일단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지 않음만도 다행이었다. 의사는 닷새 치 약을 먹으면서 안정을 취하면 나을 거라고 해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약을 복용하면서 상태가 악화되면 병원을 찾아오라고 했다. 요리에 별다른 재주가 없어도 비상시에는 어쩔 수 없다. 전날엔 콩나물국을 끓여보았고, 아침에는 국거리로 무와 두부만 넣은 맑은 소고기국을 끓여보기도 했다. 그저 그런 맛이었다.
내가 마냥 집에만 우두커니 있다고 해결 될 일 아니었다. 나는 시장을 봐 온다는 빌미로 산책을 나섰다. 집 근처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다. 나는 거기로 가지 않았다. 창원천변을 따라 걸었다. 1일과 6일은 지귀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천변 따라 더 걸어가면 지귀 장터로 닿게 된다. 징검다리 주변 웅덩이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오후 볕살을 쬐러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봉곡동에 이르러 지귀 장터로 향하지 않고 봉림동 주공 아파트단지로 갔다. 그곳서 태복산 들머리로 올랐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이들도 있었다. 길섶에서 오리나무 삭정이를 하나 주워 지팡이로 삼았다. 집 근처 반송공원은 더러 올라도 생활권과 제법 떨어진 태복산을 찾을 기회는 많지 않다. 일 년에 한두 번 될까 말까다. 20년 전 그 산 아래 살았고 어느 여고에도 근무도 했다.
예전보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등산로는 더 넓혀졌고 반질반질했다. 산 아래 낡고 낮은 아파트는 재개발이 되어 층수가 높아지고 평수가 넓어졌다. 산마루에 오르기까지 한때는 내가 자주 다녔던 산자락이라 태복산 일대 지형은 낯설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시가지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아카시나무를 비롯한 낙엽활엽수들도 전보다 더 무성해진 듯했다.
산허리 숲속 나들이 길로 가질 않고 정상까지 올랐다. 새해 첫날 해맞이 행사를 한 제단이 보였다. 정상부 운동기구에는 몇 사람이 체력을 단련하고 있었다. 태복산 북사면은 창원컨트리클럽 골프장이다. 서쪽 능선으로는 편백나무 조림지가 세월 따라 휴양림이 되어 있었다. 숲 사이 곳곳에 놓인 쉼터 평상에 앉아 환담을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약수터를 지나다가 샘물을 받아 마셨다.
북으로 뻗친 산등선 따라 가다가 도계 체육공원으로 내려섰다. 빌라 단지를 지나 시장으로 들어섰다. 산책과 산행을 나선 목적지가 장터였다. 들머리 과일가게는 구경만 하고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꽤 알려진 건어물 가게에서 어묵을 샀다. 맞은편 생선가게에선 굽기만 하도록 다듬은 도다리를 두 마리 샀다. 채소 가게에서 대파 한 단과 그 옆 과일가게에서 밀감을 샀다. 18.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