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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왕조 실록(197편)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1.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을 가보면, 압구정의 어원에 대한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조선 전기 때의 권신이자 칠삭둥이들 중 가장 유명했던
한명회에 관한 일화가 적혀있는 그 비를 보면서 사람들은 압구정이
한명회 때문에 생긴 지명이란 걸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단순히 권신 한명회의 정자 덕분에 압구정이 생긴 거 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 압구정 때문에 지금 서울의 인구가 이렇게까지 폭발하게 되었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듯하다.
실제로 해방 이후부터는
모르겠지만, 조선이 끝날 때까지 서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팽창하게 된 원인은 바로 이 ‘압구정’ 때문이었다는 사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서울 인구 증가의 원인인 압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기 전하, 제가 지금 영의정인데. 한명회 대감이 좌의정 으로 밑에 있는 게 거시기 좀 껄적지근 합니다.
원래 한명회 대감이 이전에 영의정을 두 번이나 지냈는데,
지금 품계로 보면 제 아래에 계시니.
성종 5년 신숙주가 성종에게 주청한 내용이었다.아니, 신숙주 대감.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토킹 어바웃 입니까.원래 신대감이랑 한 대감은 친구 먹는 사이 아니였음까.
거.거시기 아무리 친구라도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 하는지라. 더구나, 예전에 세조 대왕 시절만 봐도 그렇죠.그때 보면 신대감이 왕 먹고, 그 밑에 꼬붕으로 들어간 게 한 대감 아니었음까.
한 대감이 기본적으로 신 대감보다 한단계 아래 벼슬을 많이 살았는데.한번 진행된 인사니까 이런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마시고, 걍 앉아 계세요. 가뜩이나 인사청문회니 뭐니해서 ㅇㅇ 하나 가는 게 녹록지 않은 판인데.
거시기. 그래도.그랬다. 신숙주와 한명회…분명 혁명동지이며, 똑같은 공신 레벨이었지만 성종시절에 이르자 그 레벨 차가 확 드러나게 되었으니.세조시절 에만 해도 신숙주는 정통파 엘리트였던 반면, 한명회는 재야파 모사꾼 정도의 평가를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공신만 4번이나 했고,
두 임금의 장인이 되었고, 결정적으로 성종의 장인으로 위세를 떨치게 되면서부터는 신숙주도 한수 접어두고 꼬리를 마는 처지에 이르렀다.
아 씨바, 신하들이 전부 장인 눈치만 보니.신숙주 정도가 저렇게 꼬리를 마는데, 다른 애들은 어쩐다는 소리야.
성종과 기타 신하들의 눈에 보이는 한명회는 대궐 밖의 임금이었던 것이다.
자, 문제는 말이다.정작 한명회 자신은 이런 평가를 좀 벗어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 쉬파.왜 사람들이 날 권신 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난 그냥 이 나라 조선의 안위와 왕실의 평안을 위해서 이 한 몸 불싸질렀을 뿐인데, 사람들이 이런 내 충심을 알아주지 않는다니 섭섭하군.
대감, 그거야 뭐 소인배들의 생각들이니,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누가 뭐래도 이 나라의 최고 실력가는 대감이지 않습니까.
이색희! 내가 그 소리 듣기싫다고 했어 안했어 난 그냥 조용히.
조용히 은퇴 하시려구요.너 이색희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냐.나도 인마 조용히 물러나고 싶지.그런데 나라가 나를 원하잖아.
당장 내가 자리를 비운다 치자, 개떼처럼 간신들이 덤벼들 테고, 그럼 아직 연치어린 전하가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시겠냐.
그.그렇죠.
나도 은퇴하고 싶지만.어쩌겠냐.나라가 원하고 전하가 원하시는데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소인배놈들 때문에.
그랬다.이때 당시 최고의 권신이었던 한명회는 자신이 권력에 뜻이 없는 고고한 학자처럼 보이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의 행보는 이런 그의 뜻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당장 그의 딸들의 혼처가 어디였던가.바로 왕실이 아니었던가.
아울러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을 제껴두고, 왕위 서열 3위인 자을산군(성종)이 왕위에 올라서게 된 이유가 다 한명회의 사위라는 뒷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그가 권력에 뜻이 없다는 소리를 누가 믿겠냐는 것이다.
안되겠어. 일단은 말야 내 호를 바꿔야 겠어.
권력에 뜻이 없다는 걸 대외적으로 알릴수 있는 호.기러기랑 노닐면서 한가롭게 지내겠다.뭐 그런 뜻으로 압구정 어떠냐.
음 거시기, 느낌이 참으로 판타스틱한데요 뭔가 좀 팜프파탈적이고.신세대 스러운 것이.마치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을 가야 하는 듯한.그런 느낌이랄까.
오케이 거기까지! 앞으로 내 호는 압구정이다!한명회의 눈 가리고 아웅식의 발언들.천하가 다 인정 하는 권신이 권신이 아니라고 뻗대는 모습이란.
과연 압구정은 어떤 식으로 서울의 인구를 늘렸던 것일까 초특급 대하 인구센서스 사극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은 다음회로
엽기 조선왕조 실록(198편)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2.
압구정 이란 호를 만든 한명회. 그러나 이 호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성종 6년 때의 일이었다.
이 당시 한명회는 조정 최고의 권신답게 중국과의 외교전선에 뛰어들었으니, 조정에서 손꼽아주는 소문난 중국통이 바로 한명회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본관이 바로 청주…청주 한씨였던 것이다.
이게 또 이야기가 복잡해 지는데, 조선초 청주 한씨의 경우에는 왕실에서도 한수 접어주었던 것이다.
바로 한확의 누이들이 명나라 황실에 후궁으로 들어가 명나라 황제의 후비가 되었다는 것이다.(한확에게는 두 명의 누이가 있었는데, 누나는 한비로 영락제의 후궁이 되었다.그냥 단순히 후궁인 것처럼 보이지만,
황후가 죽은 후 영락제는 황후를 들이지 않았기에, 후궁 서열 1위인 한비가 실질적인 황후였다.
영락제는 그의 손자인 선덕제에게 조선여인의 현숙함을 침이 마르게 설명했고 이 영향 덕분인지 선덕제 역시 한확의 누이동생을 후궁으로 맞이하게 된다)한확과 한명회는 친척간이었다.
더구나 조선 제1의 실력자가 아닌가.성종6년 한명회는 사신 으로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때 중국의 문사들과 필담을 하며 썼던 한명회의 호가 바로 압구정이었던 것이다.
공의 호가 무엇이다 해.
음음 압구정 이라고 볼 압자에 기러기 구자 머무를 정자를 써.
멈춰서서 기러기를 바라보는 것이라 해.뭐 뜻을 풀이하면 그렇지. 내가 워낙에 정치에 뜻이 없거덩 그냥 한가롭게 기러기가 날아가는 거나 보면서, 그냥저냥 살아가려고 하는데.
우리 전하랑 정치 쪽에서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니까.
이거 참.쉬고 싶은데도 말야.
날 잡으니.압구정 공의 마음은 그 호에서 잘 나타난다 해.
어쩌겠는가 해. 나라가 찾는데 응당 나서서 나라를 이끄는 나침반이 되야 한다 해.
역쉬! 떼놈이 아니고, 대국 사람들은 돌아가는 판을 볼줄 안다니까.
나도 뭐 하고싶어 하는거 아닌데 여하튼 뭐 원샷들 하고, 기분이다! 이거 내가 쏠테니까 부족한거 있음 어서 시키고.
어이 마담! 이쪽으로 아가씨 몇 명 더 보내고.이게 뭐냐? 밴드 불러 밴드!이렇게 중국에서 있는 기분 없는 기분을 다 낸 한명회는 조선으로 귀국한 후에도 이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그래, 그때의 기분을 정리 하는 차원으로 시축 시를 적은 두루마기)을 만드는 거야!
한명회는 결국 이 시축을 만들어 성종에게 올리는.어이 한 대감, 여기 나오는 압구정이란 게 뭐요.
아,그거요. 제가 이번에 호를 하나 장만 했걸랑요. 거시기, 당신 하고는 좀 안 어울리는 거 같지만.여하튼 뭐 잘 받겠소.한명회의 호 압구정이 공식화 되는 순간이었다.
뭐 여기까지 보면, 권신 한명회가 호를 하나 짓고 끝나는 건가 보다 하겠는데, 여기서 멈출 한명회가 아닌게 문제 였다.
이 참에 내 호를 딴 정자를 하나 짓는 게 어떨까 오케이 결정했어!이리 하여 한명회는 한강변에 자신의 호를 딴 압구정 이란 정자를 짓게 되는데…
문제는 이 정자가 너무 럭셔리하게 지어졌다는 것이다.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냐!백성들은 뼈골이 휘어지도록 일하는데, 누군 한강변에서 정자나 짓고 말야.
쉬파.가뜩이나 양극화 현상 땜에 살 의욕이 없는데 말야.누군 한강변 에서 놀고, 누군 평생가도 집 한 채 못 사고.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냐!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사람들은 밤에 몰래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 정자에 대한 테러를 가하기 시작하는데.
정자는 있으나 그곳에 돌아가 쉬는 자 없으니 누구라 갓 쓴 원승이라 일러 예이지 않으리요.
압구정 벽에 누가 써놓은 낙서였다.생육신인 김시습 역시 압구정을 비꼬는 시를 지을 정도로 압구정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압구정에 대한 비난의 결정판은 압구정의 현판 밑에 써놓은 한 글자였는데
익숙할 압자에 깨칠을 하고 그 위에 누를 압자를 적어 넣은 것이었다. 당시 백성들의 민심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성난 민심을 지켜본 한명회가 정신을 차렸으면 좋았겠지만, 한명회.절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아니 쉬파 내가 정자를 기증하던, 딸을 잡던 간에 네들이 뭔 상관이여. 이것들이 말야. 오냐오냐 해줬더니 권력 무서운 줄을 몰라.그렇다. 한명회 정신 못 차렸다.
이런 상황에서 압구정이 조선의 국내문제가 아니라, 국제 문제로 비화되려는 조짐을 보이려고 했으니.초특급 대하 울트라 펜션 사극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은 다음회로
엽기 조선왕조 실록(199편)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3,
한명회가 한강변에 지은 정자 압구정 이 외교문제로 비화된 계기는 아주 간단했다.
조선에 있는 한명회가 한강변에 끝내주는 정자를 지었다 해!
경치가 죽여준다는 소문이다 해!그런가 이번에 조선에 사신으로 가면 그 압구정이란 곳에 한번 가봐야겠다 해!
성종12년 6월…정동이 조선으로 사신으로 오게 되었다.
어이구, 오셨수 저번에는 내가 대접을 잘 받았는데 이번에 내가 압구정에서 한번 쏠께!.
한대감, 네 압구정이 그렇게 좋다면서 내 소문 듣고 찾아온 거 다 해!
좋기는.요즘 진짜는 청담동 쪽으로 다 넘어 갔지만.뭐, 그래도 압구정인데, 오케이 내가 거하게 한번 쏘지!
한껏 기분이 UP 된 한명회, 중국 사신이 와서까지 보고 싶다는 그 압구정.한명회는 여기에 자신의 권위도 같이 UP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거시기. 중국 사신이 말임다.
제가 부득불 말렸는데도, 압구정에서 한번 놀아보겠다고 해서요. 저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말임다.
이게 또 국가 외교가 걸린 일이라서 말임다.
어쩌라고.
그러니까 말임다.아무리 럭셔리한 정자라지만, 여기서 잔치를 하려면 좀 비좁아서.결론이 뭔데.거시기 그러니까, 궁에서 쓰는 차일(한마디로 파라솔이라고 보면 된다)을 좀 썼으면 좋겠는데요.
한명회의 요구.한마디로 왕이 쓰는 차일을 빌려 달라는 소리다.
왕도 자신 에게는 한수 접어둔다는 걸 사신에게 보여주고픈 한명회의 이 ‘건방진’ 요구 앞에 성종은 폭발하고 만다.
이런 개념을 바겐세일한 놈을 봤나! 야 이색희야!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보나.네가 왕이야 그래 그럼 네가 왕 해 이색희야!
아니, 거시기 그게.애초에 압구정 지을 때부터 알아 봤어 이색희! 뭐 내가 쓰는 차일을 빌려 달라고.너 간이 너무 답답해서 그런데,
배 밖으로 산책 나오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그렇지.
그.그런 게 아니구요.중국 사신이.
툭 까놓고 말해보자.나 그 압구정 이란 거 영 맘에 안 들거든? 네가 왕이야.강변에 정자 지어놓고 놀게 그리고 색희야! 네가 그렇게 해놓으니까 중국놈들이 한번 보겠다고 달려오는 거 아냐!
이참에 그거 확 밀어 버리자!
괜히 그거 놔뒀다가 두고두고 중국 사신들 행사코스로 자리잡으면 안되니까.에.그러면 지금 중국 사신은 어쩝니까.
이거 잘하면.아니 확실히 외교분쟁 거리가 됩니다!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압구정 자리가 비좁아서 못 논다면서? 말 다했네.중국놈한테는 거기 자리가 좁으니까.
대충 구경만 하고 내려오라고 그래! 그리고 중국 사신 연회는 제천정에서 하는 걸로 하고 됐지 그럼 그렇게 해!성종의 이 한마디에 한명회 꼭지가 돌아 버렸다.
쉬파,그래도 내가 네 장인인데.
궁 밖에서는 왕이란 소리도 듣는데.이렇게 개망신을 줄수 있어 이런 생각을 품은 한명회 그대로 들이댄다.
전하,울 마누라가 아파서.내일 중국 사신의 압구정 행차때는 제가 못갈거 같은데요.너 이색희 삐진거야.네가 언제부터 애처가였다고, 지 마누라 아픈 걸로 들이대.너 이색희 바른대로 말해봐!방금 전까지 압구정 에서 논다고 차일 빌려달라믄서 왜 갑자기 마누라 핑계야.
너 지금 임금 앞에서 장난질이냐.결국 성종은 분노 모드로 접어들게 되었고,오냐,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건가 본데, 잘걸렸다.
너 지금까지 공신이라고 올라간 거 다 빼고, 지금까지 먹은 거 다 토해내! 귀엽다고 봐주니까 아주 그냥 기어올라!
그랬다. 한명회는 압구정에서 한번 걸판지게 놀려다가 아주 쪽박을 차 버린 것이었다.아니, 그.그런것이 아니라.아니긴 뭐가 아냐! 당장 한명회 이눔자식 직첩 빼앗고, 쫓아내라.
저.전하!그러나 여기까지 였다. 아무리 성종이라지만, 세조 때부터 시작해 40여년간 조정을 주물락거렸던 한명회를 더 이상 몰아칠 수는 없었다.
몇 달 뒤 성종은 한명회의 직첩을 다시 돌려줄 수밖에 없었고, 압구정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있게 된다.썩어도 준치였고, 늙어도 한명회였던 것이다.
자, 한명회와 압구정의 운명은 여기까지였을까.초특급 대하 울트라 팬션 사극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은 다음 회에서 한명회와 압구정의 운명을 설명해 주는데…
이제 엽기조선 왕족실록이 마지막편 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읽어주신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흑표 감사 인사말씀 올립니다
엽기 조선왕조 실록(200)마지막회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4.
성종에게 제대로 닦인 한명회.
이미 성종의 입에서 압구정을 허물라는 말까지 들었으나.썩어도 준치, 늙어도 한명회란 말처럼 끝까지 버티고 무시해버려,
압구정이 허물어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자, 그런데 말이다.
이런 성종과의 힘겨루기도 막바지에 이르게 되었으니,
야야.너 인마, 계속 이렇게 삐딱하게 놀래.성종의 계속 된 신호…이제 어엿한 성년이 되어
친정 체제를 구축한 성종 앞에 구시대의 유물같은 한명회는 그야말로 눈에 박힌 가시와도 같은 존재 결국 한명회가 백기 투항하게 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압구정으로 갈뿐이다. 그랬다.한명회의 정계 은퇴였다
자, 이 대목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것이 하나 있는데.이때 당시까지 조선의 정객들 에게는 불문율과 같은 하나의 ‘정치 룰’이 있었다는 것이다.
야야, 이번에 좌의정 최○택 대감이 정계은퇴 선언을 했단다.
정말 그럼 어디로 가는 거야 최○택 대감 향리가 어디지.경상도 상주 땅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럼 상주로 내려가겠구만. 그렇겠지.이랬다는 것이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조정의 대신들은 그날로 주변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낙향 이었던 것이다.지금의 기준으로는 정치인 한명의 낙향은 한 식구의 낙향 정도로만 생각되어 지겠지만 이 당시의 낙향은 이미 가족 수준을 뛰어 넘었는데,
어디보자.당장에 정리해야 할게.노비들,식객들 정리하고, 그래.집도 넘겨야 하고. 어이구, 가솔들도 챙기고.챙겨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정신 똑바로 차려라!
중앙 정계에서 당상관 이상 급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최소한 수십명 단위의 사람들을 부리고 살았다는 것인데, 만약 이게 공신급이 되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공신 이라면 최소한 100명 이상의 노비들을 국가에서 받게 되고,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식객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같은 문중 사람들, 가솔들 까지 합치면 금세 수백명에 육박하는 인원들이 득시글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명회.공신만 4번 했던 인물이다.이번에 한명회 대감이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면서.
그럼 청주로 낙향하는 거야.
용빼는 재주 있겠어 내려가야지.
그러나 이런 일반의 예상과 달리 한명회는 그대로 서울에 눌러 앉았으니,압구정에서 한가롭게 풍류나 즐기겠다. 늙은이가 이제 무슨 힘이 있겠어.그저 압구정 에서 기러기가 노니는 거나 보면서 말년을 편안하게 보내려고 한다.
한명회의 서울잔류의 공식적인 이유였다.한명회 개인에게 있어서는 일개 개인의 서울잔류 였지만.이 한 번의 예외가 이후 조선의 정치판도와 서울의 판도 자체를 완전히 뒤바꾸게 되는데.
한명회 대감이 왜 저런데.보면 몰라 아직 권력 맛을 못 버린 거지. 정계은퇴는 했으나.막후에서 힘을 한번 쓰겠다는 거 아냐.
사람이 물러날때를 알아야지
그랬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압구정에서 기러기 노는 거나 보겠다고 했지만, 뒤로는 자신의 세력들을 조정해 조정을 원격조정 해 보겠다는 생각.권력과 함께 살아온 40여년 인생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한명회의 생각은 이후 조선의 정치판도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아니 뭐.굳이 내가 내려가야 할이유가 있나 옛날 한명회 대감도 서울에 남아서 한가롭게 남은 여생을 보냈는데.
뭐 굳이 향리로 돌아갈 이유가 있을까 오다가다 하는 길도 멀고. 그냥 편안하게 서울에서 남은여생을 보내야지.
정계의 실력자들이 은퇴이후
서울에 눌러앉기 시작했던 것이다.그들이 그냥 조용히 지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한명회의 전철을 밟아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별별 쌩쑈를 다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폐단도 문제였지만. 진짜 더 큰 문제는 바로 이들이 거느리는 사람들이었다.
중앙 정계에서 공신급, 당상관급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낙향을 해야지만, 인구가 조절이 될 터인데 낙향해야 할 이들이 그대로 서울에 눌러 앉게 되니 인구는 계속 불어나고, 그에 발맞춰 계속 집값은 폭등하게 된 것이다.
바로 서울 인구의 과밀화가 시작된 것이다.한명회 한명이 압구정에서 남은여생을 보내겠다고 내뱉은 한마디 덕분에 서울은 인구과밀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그 의미가 이만큼 와 닿기는 처음이다.
역시.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물러날 때를 알지 못하면 후세에 크나큰 짐을 떠넘기게 된다는 사실!
그저 로데오 거리로만 기억되는 압구정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바람부는 날에도 압구정 에는 별로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애독해주신 영남불교문화연구원 분들깨 늘~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