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38세에 당시 7개로 분할됐던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가 통일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표준화. 크기와 성능이 천차만별이던 활 대신 모든 무사들에게 똑같은 크기와 강도로 만들어진 석궁을 지급했으며, 마차 바퀴간격을 6척으로 통일하고 모든 도로에 바퀴간격에 맞춰 레일 역할을 하는 바퀴자국을 만들어 적의 침입을 막았다.
중국 통일 이후에는 무게·길이·넓이와 같은 도량형 뿐 아니라 문자와 글씨체도 표준화하므로써 현재 중국인들에게 진시황을 통일국가의 기초를 삼은 인물로 꼽고 있다.
2천여년이 지난 오늘날 표준화는 세계대전에 빚대어 ‘총성없는 3차대전’으로 불리울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표준화 성공과 실패사례 10가지를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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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우유팩 표준화의 시초는 한국이다? 우유팩 개발은 1934년 미국 엑셀오(EX-Cell-O) 社가 시초다. 그러나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삼각지붕 모양의 게이블 탑(Gable Top) 타입의 디자인은 1953년 우리나라 신석균 박사가 개발했다. 당시는 전쟁중이라 특허에 대한 개념도 없이, 미군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달돼 양산에 들어갔으며 현재 사실상 국제표준으로 자리잡았다.
② 지하철 4호선 남태령-선바위 66m 死구간 지하철 4호선 남태령역과 선바위역 사이에는 노선이 X자로 교차하고, 전원공급이 중단되는 66m의 사(死)구간이 존재한다. 이 구간은 정전이 되면서 무동력으로 관성에 의해 이동한다.
지하철공사가 관할하는 남태령 상단구간은 우측통행과 직류 1,500V를, 철도공사가 관할하는 남태령 하단구간은 좌측통행과 교류 25,000V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1995년 개통 이후 10여일 동안 22건의 사고가 발생한 최악의 표준화 실패 사례가 됐다. 현재 지하철 1호선 서울역~남영역 사이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며, 앞으로 남․북간 철도연결시 유사한 문제 발생이 예상된다.
③ 지역마다 제각각인 버스 교통카드 현재 서울 교통카드는 지방에서 사용할 수 없다. 교통카드에 내장된 보안응용모듈(SAM) 표준이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교통카드도 서로 호환이 안된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 지난해 2월 ‘비접촉식 전자화폐 단말기용 지불 SAM 규격’을 KS로 제정하였으나 여전히 혼란이 존재한다.
④ 휴대폰 충전기 구입비용만 연간 3,500억원 휴대폰 사용인구가 3,800만명을 넘는 우리나라에서, 휴대폰 단말기의 배터리팩과 충전기의 접속단자가 제품별로 달라 연간 3,500억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2002.8월부터 충전구조를 표준화하고 휴대폰과 충전기를 분리 판매토록 함으로써, 이러한 비용낭비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최근에는 디지털카메라, MP3 등 다른 휴대용 디지털 기기들을 휴대전화 충전기로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⑤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도 표준화 탓? 지난 2003년 2월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는 범인이 의자에 신나를 뿌린 후 라이터로 불을 붙인데서 비롯됐다. 이후 지하철 안전관리체계, 비상시 출입문 수동개폐 방법, 비상안내등 설치 위치 등 많은 표준화 문제가 제기되었고, 심지어 시트의 방화성, 방연성 문제까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⑥ 시장에서 사라진 삼성 신발명품 4mm 캠코더 1980년대 삼성은 극비리에 세계 최초의 초소형 4mm 캠코더를 개발했다. 그러나 국제표준은 소니의 8mm로 채택되었고, 삼성의 신 발명품은 결국 시장에서 사라졌다.
표준화전쟁의 성패는 해외사례에서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⑦ 소니 베타(β-MAX) 방식과 마쓰시타 VHS 방식 1970년대에 VTR 재생방식을 둘러싸고 소니의 베타(β-MAX) 방식과 마쓰시타의 VHS 방식간에 10년간의 표준전쟁이 있었다. 화면 선명도, 용량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소니가 우위였으나, 마쓰시타는 기술공개 등을 통한 호환성 확보 전략을 구사했다. 결국 세계표준은 VHS 방식의 승리로 종결되었고, 마쓰시타는 연 2조원 이상의 로열티 수입을 거둔 반면, β-MAX 방식의 VTR은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⑧ 고화질 TV(HDTV), 아날로그 對 디지털 1984년 일본은 세계최초로 아날로그 방식을 HDTV 표준으로 확정하고 사업화를 시작했다. 후발주자인 미국은 1990년대초 디지털 방식의 HDTV를 개발하고 사업화와 더불어 표준화에 주력했다. 결국 시장은 미국의 디지털 방식을 선택했고, 국제표준화에서 밀린 일본의 아날로그 HDTV는 판매감소와 더불어 내년부터 방송 종료가 예정돼 일본 국내시장에서마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⑨ IBM PC와 애플 매킨토시 1980~90년대 PC시장에서는 독자적 표준전략을 구사한 애플과 공개 표준전략을 구사한 IBM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애플은 사용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킨토시로 1980년대 PC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부상한 반면, IBM은 1990년대 이후 공개표준전략을 통해 쉬운 시장진입과 경쟁을 활용, 가격인하와 성능개선, 호환성 확보를 추구하였다.
결국 윈도우의 성공과 함께 애플의 차별화된 우위가 사라지면서 IBM이 시장을 장악했고, 애플은 PC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처했다.
⑩ 인터넷 브라우저 : 네비게이터와 익스플로러 1995년 넷스케이프社의 인터넷 브라우저 네비게이터(Navigator) 시장점유율은 80%를 넘었다. 그러나 MS社가 윈도우즈에 자사의 익스플로러 끼워팔기 전략을 시도하면서 시장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국 법무부는 MS사를 독점방지법(Anti-Trust법) 위반으로 고소했으나, 이미 익스플로러는 시장의 사실상 표준이 된 이후였다.
이같은 표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도 올해 국가표준정책을 혁신할 계획이다.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은 지난 14일 ‘올해 산자부 업무계획’ 발표에서 “국가표준체제를 선진화하고 올해 우리 기술이 ISO/IEC 국제표준에 150여건 이상 반영될 수 있도록 국제표준화 활동 지원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산자부 표준품질과 김대자 사무관은 “일본은 2000년 이후 11종의 국가표준을 국제표준으로 채택시키는데 86억원을 투입, 총 8조2천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둬 비용 대비 수익 경제성이 약 950배에 이른다”며 “표준화에 국가 뿐 아니라 기업, 국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자부 홍보관리관실 윤덕찬 (tommyoon@moci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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