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어떤 사람 좋아 보이는 신사가 핸드폰으로 열심히 떠들면서 차를 세웠다. 차에 타서 ... "시티 - " 하고는 계속해서 열을 내서 싸움을 했다. 세상에 싸움 구경처럼 재미있는 것은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공짜 아닌가? 먼 길 가며 심심한데 잘된 셈이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열심히 들어 보았다. 그 런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내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사내는 경찰로부터 아내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아 찾아갈 수도 없고 이렇게 전화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였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겨 일단 여자 쪽에서 '폭력우려신청'을 하면 상황이 단번에 심각해진다. 폭력우려경고 명령의 13개 조항 중에 하나인 100M '접근 금지'처분을 받으면 남자는 꼼짝 없이 집에서 알몸으로 쫓겨나야 한다. 기간이 최대 1년인데 1년을 별거하게 되면 자동이혼이 되어 버린다. 재산은 50/50으로 나누어지고 16세 이하의 자녀가 있으면 재산의 3/4이 여성에게 돌아온다. 이혼을 한 후에도 자녀가 1명이면 18%, 2명이면 27%가 남편의 수입에서 떨어져 나간다. 술 먹고 땡강 부리면 술 먹고 12 시간 안에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일단 '접근금지' 처분을 받으면 자기 집이 몇 백 만 불짜리 집이라도 들어 갈 수 없고 거리에서 살아야 한다. 실제로 100만 불짜리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최고로 허름한 여인숙에서 사는 남자도 보았다. 더욱이 남자 쪽에서 분통 터지는 일은 집을 살 때 받은 은행 융자는 자기가 갚으면서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집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택시 승객 가운데 남자들이 호주의 법이 잘못되었다고 울분을 토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이상한 일은 프라이버스를 금쪽 같이 지키기를 좋아하는 백인들이 이혼한 신세 한탄은 아주 쉽게 하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일 것이다.
또 재미있는 일은 여자들한테는 그런 이야기 못 들었다. 구시렁대는 것은 모두 남자들이다. 그만큼 법이 여권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차에 탄 남자는 150만 불짜리 비즈니스를 팔았는데 빚을 갚고 나서보니 돈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 돈 어디다 모두 썼느냐고 아내에게 추궁을 당하는 모양이었다.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화가 나서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면서 전화를 하는데 옆에서 보는 내가 '저러다가 심장마비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통화 내용을 들어 보니 여자가 남자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악만 박박 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남자가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만 지를 뿐이지 그 흔한 욕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나 같으면 벌써 욕이 튀어 나왔을 것 같은데 참 성질 좋은 사람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더니 나중에는 힘이 떨어졌는지 전화를 끊었다. 목이 마를 것 같아 물 한잔 주고 싶은데 다른 물은 없어서 내가 먹던 물이라도 마시겠냐고 했더니 괜찮단다. 정력도 좋으시다. 나보고 미안하다기에 " 그런 소릴 하덜 말어, 당신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한 참을 멍하니 있더니 갑자기 목적지를 바꾸어 바닷가로 가자고 했다. 또 다시 한참을 말이 없기에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했더니 바다가 잘 보이는 낭떠러지 옆에서 세워 달란다. 거기는 영화 빠비옹에 나오는 절벽처럼 생긴 곳이어서 가끔 사람이 떨어져 죽는 곳이었다. 은근히 걱정이 돼서 "당신 괜찮나?"고 물었더니 힘없이 웃으면서 괜찮단다.
신경이 무지하게 쓰여서 그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그 자리에 갔더니 멀리 바닷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던 남자가 택시로 다가왔다. 나인 줄 알아보고 ... “어? 너 안 갔냐?” 하길레 “ 동네에서 한 사람 태워주고 지나가는 길이다”라고 둘러 댔다.
다시 택시를 타더니 이번에는 가까운 주택가로 가잔다. 주택가 근처 상가에서 내려주고 신호등에 걸린 동안 '저 인간이 무얼 하나?'하고 주시를 해보았더니 어느 상점의 쇼인 도우를 맥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락없이 갈 곳 없는 사람의 형편이었다.
[2]
어느 젊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하루는 초등학교 2년생인 아들이 "엄마 아빠는 언제 이혼 할 거야? "하더란다. 깜짝 놀라서 "너 왜 그런 소리를 하니?"하니까
어깨를 으쓱 하며 "그냥."하더니, 혼잣말로 "엄마 아빠가 이혼 하면 나는 누구를 따라갈까? 엄마는 쿠킹을 하고 청소를 할 줄 알지? 아빠는 돈을 벌어오지? 누구를 따라 가는 게 좋을지 형에게 이따 물어봐야지." 하더란다.
호주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이혼에 대해서 가르친다. 왜냐하면 어느 날 부모가 갑자기 이혼을 하는 경우에 아이가 당할 충격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주변에 이혼한 가정의 친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이 살다가 싫으면 이혼 할 수도 있는 법'이라는 인생철학을 아주 일찍부터 가르친단다.
어느날 TV에서 동성커플이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는 것을 재미있게 보았다. 반대하는 입장에서 동성 부부가 아이를 키우면 교육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공격을 하자, 찬성하는 입장에서 "통계에 지금 1/3이 혼자 자식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혼자 키우는 것보다 둘이 키우는 것이 더 났지 않겠느냐?"는 반론을 폈다. 말이 되지 않나?
서구 사회에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섹스 산업도 발달하게 되어 있다. 참 편리한 사회다. 남자는 혼자 살자니 여자를 사야하고 여자는 혼자 사니 몸을 팔 수 있고. 호주는 여자 혼자 신문에 광고를 내서 몸을 파는 행위에는 아무 제한이 없다. 단 두 사람 이상일 경우는 사업신고를 해야 한다. 세금 내야 하니까.
요즈음 한국도 이혼율이 장난이 아니란다. 가만히 계산을 하고 보니까 내 개인적으로도 결혼에 관여 했던 것보다 이혼에 관여 했던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굳이 경험을 들추지 않더라도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혼 문제전문가가 될 팔자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가 40년대 말, 이혼이 오늘 같이 흔하지 않던 때에 내가 태어나자마자 헤어져서 피똥을 싸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관여했던 이혼이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이야기지만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불행하게도 내 어머니 아버지는 두 분 모두 팔자가 드센 탓이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형제들이 모두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정상적인 삶을 사신 분들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아버지가 내가 6개월 때 생모와 헤어졌는데 호적정리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재혼해서 출생한 동생들이 내가 20살 때까지도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호적등본 같은 것 없이도 학교에 다니는 것은 가능했던 것 같다.
동생들의 호적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20년간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와 생모를 만나도록 주선을 해서 이혼서류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게 했었다.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 장면의 어색함이란 도저히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지켜본 이혼에는 지저분한 이혼, 화끈한 이혼, 칼부림 나는 이혼, 소송으로 지루하게 끌려가는 이혼 등등 종류도 가지 가지였다. 심지어는 이혼을 위한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 나가서 양쪽 모두에게 공평한 증언을 했다가 자기편을 들어준다고 양쪽으로부터 모두 공공의 적으로 몰려 버린 일도 있었다. 이런 사례를 겪다 보니 자랑스럽지는 못하지만 이혼 전문 주례(?)가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업무의 성격이 될 수 있으면 이혼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잘 안 되도록(?) 거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지금까지는 실제로 이혼 주례를 집행한 적은 없었다.
"아니? 이혼 주례라고 것도 있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왜? 이혼도 중요한 삶의 과정인데 있으면 안 되나? 키스 대신 따귀를 한 대씩 때리는 것으로 대신하면 그럴 듯 하지 않을까?
[3]
이혼을 한 이후의 관계도 생각해 볼 부분이 많았다. 서구사회에서는 이혼 후에도 여전히 친구처럼 지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사회는 대부분의 경우가 이혼을 하고 나면 어색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 경우까지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건설적인 이혼이 아니라 파괴적인 이혼이기 때문일 것이다.
건설적인 이혼도 있을 수 있을까? 아마도 애초에 잘못 맺어진 부부라서 혹은 상황이 나쁘게 변해서 서로가 더 편하기 위해서 헤어졌다면 굳이 파괴적인 이혼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전 법무부 장관이었던 강금실의 경우 같이 한 쪽이 빚을 져서 다른 한 쪽이 그 빚을 피하기 위해서 부득이 이혼 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하여간에 부부간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과 더불어 씨름을 하는 회수가 늘어갈수록 ‘참으로 인간처럼 복잡 미묘한 동물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게 된다. 부부 싸움이란 마치 심판 없는 경기와 같아서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부부 갈등은 대강 두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이혼을 하지 못하고 ?雍? 싸우면서 사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이혼까지는 갈 것이 없는 사람들이 이혼을 향하여 줄달음치는 경우인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인간성에 관한 문제였을 경우다. 실수나 결점, 혹은 미숙에서 오는 문제는 피차간에 참고 노력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인간성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계속해서 참고 산다고 해서 꼭 좋아질 일만은 아닌 것이다.
마치 돼지고기가 소고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갈등의 원인이 인간성의 문제라면 위기만 잘 넘긴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경우는 양쪽 모두가 상대방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래가 상대방을 잘 알기는커녕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헤매게 되어 있다. 오죽하면 소크라테스가 ‘네 꼬락서니를 알아라(부드러운 말로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까?
종교나 교육, 혹은 상담 등을 통하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단순한 자기성찰 노력도 하지 못해 가정이 파탄 나고 인생을 불행하게 종치고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인간은 워낙 어리석어서 상대방에게 속는 것이 아니라 종종 자기감정에 스스로 속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단 냉정하게 자기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일일 것이다.
혹시 이혼할 계획이 있으면, 자녀가 말 못하는 갓난아이라도 자는 얼굴에다 대고 물어보라. "아빠 엄마가 결혼 한 것 물리려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왜? 이혼은 2 자간의 문제가 아니고 3 자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큰 애가 아주 심각한 얼굴로 "어머니 아버지가 지금까지 이혼을 안 하시고 살아 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낍니다."라고 했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일을 가지고 뜬금없이 이 녀석이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우리 부부가 살아온 인생 역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녀석의 말이기 때문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인가 싶었다. 내용을 알고 보니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의 부모가 십대 때 이혼을 해서 그 영향이 크더라는 것이다.
하기야 우리 부부도 세상의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여러 번 심각하게 이혼할 뻔 했던 위기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이혼을 안 한 이유도 가장 큰 것이 자식 때문인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데로 그냥 사니까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역시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4]
오늘의 부모들은 자녀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에 앞서 ‘끝까지 잘 살 수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들들이 잘못돼서 이혼을 하게 될 경우까지 고려해서 도상연습을 하고 있다. 결혼 직전에 아들, 며느리 안쳐놓고 만일에 이혼을 하게 될 경우 피차간에 민사상 형사상 전혀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을 계획이다. 그래서 각서를 구호와 함께 액자에 걸어 놓고 아침 마다 복창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도록 할 방침이다.
구호는 "이혼 하면 쪽박 찬다. 뭉쳐서 잘 해보자! 잘 해보자! "로 정했다.
어떤 부부가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하는 상황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바꾸어 말하면 가정이 깨질랑 말랑 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깨? 말아?'하고 고민한다는 말이다.
가정이 깨져서 지금도 내 마음에 늘 부담이 되고 있는 사건이 있다. 내가 주례를 섰던 결혼 중에 유일하게 이혼을 한 사례이니 만큼 더욱 그렇다. 한국에 있을 때 모임 식구 중에 (우리 부부까지 합해서 20명도 안 되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니 교인이라고 하지 않고 식구라고 한다.) 매우 어려운 성격을 가진 K라는 청년이 J라는 애인과 커플로 모임에 나오고 있었다.
몇 년을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K가 여자를 대하는 것이 남들 같지가 않았다. 시골에서 어제 저녁 기차 타고 올라온 것 같은 순박한 모습의 J가 늘 피해를 보고 있었다. 내가 K에게 '그러지 말라'고 좋게 타이르면 언제나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안 그러겠다.'고 했지만 얼마 지나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그렇다고 K의 성격이 변할 것 같지는 않고 J가 정신 차리고 K 곁을 어서 떠나기만 바랬다.
어느 날 K의 파트너가 바뀌었다. 나는 J에게 오히려 더 잘 된 일이니 상처 받을 것 없다고 위로를 했다. 불안함 속에 K와 새 파트너 S의 관계가 지속되었다. 더욱이 S가 내가 운영하던 지역 도서관의 상근 간사가 되어 나와 함께 생활하게 되니 더욱 그들의 생활이 나와 밀접해졌다.
1년쯤 지나자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난 이 결혼은 말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S의 어머니를 만나 '무 슨 일이 있더라도 결혼을 시키지 말라'고 당부 했다. 제 형제도 아닌 남의 결혼에 목사가 그럴 것까지 있겠는가 싶겠지만 당시 우리들 관계에는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이 존재했었다. 이런 것이 소그룹의 특징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K가 도끼 들고 면회 왔을 것이다.
그러나 애정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결혼을 고집했다. 난 앞날이 훤한 결혼식에 비장한 마음으로 주례를 서야 했다. 결혼식에 참석 했던 어떤 모임 식구가 주례사가 마치 '출정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결과는 염려 했던 대로였다.
S는 고통과 시련의 세월을 보냈지만 '혹시나' 가 '역시나' 이었다. K는 애를 둘이나 낳고 가정이라는 경기에서 제 성질에 못 이겨서 제멋대로 퇴장을 해버렸다. S는 그 후 애들을 데리고 혼자서 험한 세월 살아가느라고 몸부림치고 있어서 늘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재혼 시켜서 S의 팔자를 고쳐 볼까 하고 고민을 하는 중이다. 남의 인생에 손을 댈 때는 AS까지 책임지는 것이 내 인생관이기 때문이다.
[5]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혼의 결과는 여자에게 더 힘든 것이다. 가정을 이루는 것에는 물질적 환경과 정신적 환경이 있다. 어렵게 말 할 것 없고 깨놓고 이야기해서 돈과 Sex 다. 애정도 Sex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까. 자녀교육. 가정화목 등등이 있지만 모두 그 다음이다.
초혼과 재혼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는가? 새 물건을 장만 할 때는 다자인도 보고 색깔도 보고 실내 환경에 어울릴까도 보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신경을 쓰는 법이다. 그러나 중고품을 살 때는 용도에 맞는가 하는 것만 본다.
재혼이란 이미 있는 가정에 부족한 부분만 채우는 중고품 부품 구입과 같은 것이다. 중고품! 그것도 완제품이 아닌 부속품 구입 하는데 용도만 맞으며 되지 딴 것 볼 것 없는 거다.
돈과 Sex! 바로 이것들이 필요한 부속품인 거다. 점잖지 못한 이야기니 쌍 것들 쓰는 말로 하자. Men's sexual instinct has an impulsive and transient temperament.
이러니 혼자 사는 경우 웬만한 독종이 아닌 경우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를 더 필요로 하게 된다. 논리를 단순화 시켜서 남자는 Sex가 필요하고 여자는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고, 돈보다 Sex가 필요한 여자도 있고, Sex가 필요 없고 돈이 필요한 남자도 있다.
명 짧고 돈 많은 과부 구하는 것이 전 세계 모든 독신남성들의 기도 제목이 아니던가? 나는 Sex에 대해서는 슬슬 졸업을 할 나이가 된 것 같다.(완전히 졸업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부분에서는 아내가 난리 안친다. 그러나 돈에 대해서 졸업하려면 지랄난리 부리신다. 왜냐? 당장 생활이 안 되거든?
자! 그럼 어쩔 거냐? 먹고는 살아야 하고. 위자료 왕창 뜯어서 정기적금 들어 놓고 이자로 살 처지가 아닐 바에야 애가 딸린 이혼녀의 처지는 선택의 폭이 무지하게 좁을 수밖에 없다. 상품의 교환가치가 현저히 하락한다는 것이다.
혼자 사시겠다고? 외국에선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한국사회에서 여자 혼자 살기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면 우짤거냐? 결론은 계산 꼼꼼히 해보고 웬만큼 남는 장사 아니면 그대로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 대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끝임 없는 협상, 타협, 사기, 공갈, 협박, 읍소, 애교, 내숭, 명상, 단전호흡, 기도 등등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아야 할 것이다.
경험을 하고 보니 그래도 그 중에 기도가 최고의 방법이더라. 항상 문제는 상대방에 있기 보다는 내 안에 있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다. 문제는 피차간에 변할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훨씬 경쟁력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신앙은 신의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니까.
90년대 초반에 운동권 동지로 만나서 결혼 했다가 깨진 커플이 있었다. 이혼 후 몇 년이 지나 서로 간에 외롭게 지내는 것 같아 다시 합칠 것을 권유했었다. 여자 님 말씀이 '그 남자에게 고마운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나와 헤어져 준 것'이랬다. 그 말 듣고 느낀 바가 많았다. 참 잘못 만난 부부였다.
이 글 읽고서 비위가 약한 이혼녀들 중에 열 받는 분들 계시겠다. 이혼한 것도 서러운데 이렇게 냉정하게 깎아 내리느냐고?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이혼한' 사람 보라고 쓴 것이 아니고 '이혼할' 사람 보라고 밤잠 못 자고 고민해서 쓴 것이다. 아무쪼록 옛날 남편 이해 못하고 저축했던 마음까지 동원해서 너그러운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라.
첫댓글결론은 계산 꼼꼼히 해보고 웬만큼 남는 장사 아니면 그대로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 대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끝임 없는 협상, 타협, 사기, 공갈, 협박, 읍소, 애교, 내숭, 명상, 단전호흡, 기도 등등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아야 할 것이다. 경험을 하고 보니 그래도 그 중에 기도가 최고의 방법이더라 / ^^ 정답이며 명언입니다.
첫댓글 결론은 계산 꼼꼼히 해보고 웬만큼 남는 장사 아니면 그대로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 대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끝임 없는 협상, 타협, 사기, 공갈, 협박, 읍소, 애교, 내숭, 명상, 단전호흡, 기도 등등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아야 할 것이다. 경험을 하고 보니 그래도 그 중에 기도가 최고의 방법이더라 / ^^ 정답이며 명언입니다.
글을 재밌게 잘 쓰셨네요.. 이혼! 어떻게든 하지않는것이 최선책이겠지요... 그런데 인간성부실.이것은 쪼께 답이 안나와부러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