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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류(七繆)
인사 사고를 일곱 가지 유형으로 나눠 경계한 말이다.
七 : 일곱 칠(一/1)
繆 : 틀릴 류(糹/11)
삼국지 영웅인 조조(曹操)의 인사참모 유소(劉邵)가 저술한 인사 교과서 인물지(人物志)의 첫 문장이다.
夫聖賢之所美 莫美於聰明, 聰明之所貴 莫貴於知人.
무릇 성현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까닭 가운데 총명함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총명이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에 인물을 잘 식별하는 능력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유소는 용인(用人)을 넘어 사람을 꿰뚫어 보는 지인(知人)을 주장했다. 유소는 인사 사고를 일곱 가지 유형으로 나눠 경계했다. 이른바 칠류(七繆)다.
첫째, 인물의 명성을 편파적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이다. 명성이 실력의 전부는 아니다. 평판을 좇다 보면 세력이 큰 당파의 인물만 등용하게 된다.
둘째, 자신의 호오(好惡)에 따라 사람을 오판하는 미혹이다. 인사권자의 개인 감정에 흔들리지 말라는 경계다.
셋째, 성정(性情)을 헤아림에 크기의 대소로만 판단하는 오류다. 뜻이 넓고 크면서도 겸손하고 세심한 사람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넷째, 사람의 자질을 평가하면서 성취의 빠르고 늦음으로만 판단하는 잘못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인재에 주목하란 의미다.
다섯째, 사람을 변별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부류만 좋아하고 다른 무리는 배척하는 오류다. '끼리끼리' 인사는 금기(禁忌) 1호다.
여섯째, 재질을 논함에 처지가 펴지거나(申) 쪼그라든(壓) 것에 따라 평판이 변하는 것을 고려하지 못하는 오류다. 사람에겐 시운이 있으니 현재의 빈부(貧富)로 오판하지 말라는 경계다.
일곱째, 기인(奇人)을 감정함에 허실을 구분 못하는 잘못이다. 탁월한 인재는 상식적인 기준으로 감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유소는 인물지의 말미에서 '인재 사이의 다툼을 해소하라'며 석쟁(釋爭)을 이야기한다. '맞설 항(抗)'이 여기 나온다.
보통 '항'으로 어진 이를 대하면 현자는 반드시 겸손함을 보이지만, '항'으로 사나운 이를 만나면 틀림없이 적대감과 힐난을 받게 된다. 서로 적대시하고 비난하게 되면 시비의 이치가 뒤섞여 밝히기 어려워진다.
장관이 항명(抗命)하고 사퇴했다. 인사 사고다. 시비곡직(是非曲直)은 차치하고 국정 기류가 흐트러졌다. 사람을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知人者智)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국운융성의 초석은 바른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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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류(七繆)
고전에서 보는 인재를 감별할 때 생기는 7가지 오류.
🔘 명성이 실력의 전부가 아니다.
🔘 감정에 좌우되지 마라.
🔘 사람의 마음가짐과 목표가 부합하는지 살펴라.
🔘 대기만성형 인재를 간과하지 마라.
🔘 동류의 사람들만 추숭하지 마라.
🔘 사람의 시운을 잘 보고 판단하라.
🔘 탁월한 인재는 상식의 도로써는 알아보기 어렵다.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사람을 쓴다는 말은 비단 인사 관련 업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누구나 다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원칙을 안다는 것이 곧 실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단 사람들의 서로 다른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어렵고, 여기에 인사권자 개인의 주관적인 애호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권자 자신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썼다고 생각하고 그에 맞는 결과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종종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인재 임용에 관한 오류는 비단 어리석은 군주뿐만이 아니라 비범한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삼국지의 영웅 제갈량도 마속을 잘못 써서 이전의 공을 다 날려 버렸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마속이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마속은 제갈량을 따라 촉에 들어간 이래 여러 차례 계책을 내어 촉군이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남만을 정벌할 때 마속은 다음과 같은 계책을 내놓는다. “남만은 스스로 땅이 멀고 산의 험준함을 믿고 늘 돌아서니, 이번은 평정해도 다음에 또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승상의 대군으로 반란을 평정하고 만약 철수하여 후에 북벌에 나서게 되었을 때 그들이 만약 우리의 허를 안다면 반드시 다시 돌아설 것입니다.
무릇 용병의 도는 ‘공심을 최고로 치고(攻心爲上), 공성을 아래로 칩니다(攻城爲下). 심전을 최고로 치고(心戰爲上), 병전을 아래로 칩니다(兵戰爲下).’ 바라건대 승상께서는 마음을 복종시키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맹획을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 생포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계책이다.
제갈량은 맹획의 마음을 복종시킨 후 맹획을 비롯한 현지의 모든 수령들을 지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로 인해 남쪽이 안정된 촉은 북벌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사서도 맹획의 남만은 제갈량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 이로 보건대 마속은 제갈량을 보좌하는 모사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뛰어난 인재였다.
하지만 마속의 장수로서의 능력은 문제가 있었다. 일단 그는 실전 경험이 없었고 장수로서 가져야 할 덕목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그를 선봉의 총대장으로 임명했다. 아마도 마속이 자신이 시킨 일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변수를 생각해서 경험 많은 왕평을 부장으로 붙여 주었다. 하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당부를 저버리고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여 결국 일을 그르친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면 뛰어난 인재도 잘못된 임무 배치로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제갈량 같은 천재도 마속의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잘못 썼으니 보통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사실 ‘지인의 어려움(知人難)’이라는 인식은 요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화두다. 춘추시대 이래로 많은 사상가들이 인재 선발의 잘못과 그 원인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왔지만 인물지(人物志) 만큼 체계적이지는 못했다.
인물지(人物志)의 열 번째 장 칠류(七繆)는 일곱 가지 오류라는 뜻으로 인재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럼 인물지(人物志)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 명성이 실력의 전부가 아니다.
첫째, 인물의 명성을 편파적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이 있다.
여기서 편파란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 주위의 평판만 듣고 그 사람을 평가할 때 생기는 오류를 말한다. 평판이 좋으면 인재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보기에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남이 그렇게 주장하면 자신의 생각에 의심을 품고 남의 말을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평판이라는 것이 항상 옳은가? 평판이란 윗사람의 평판도 있고, 동료의 평판도 있으며, 아랫사람의 평판도 있다.
그래서 윗사람의 편애를 받아도 아랫사람의 신임을 잃으면 명예가 훼손되고, 아랫사람의 존경을 받아도 윗사람의 신임을 잃으면 나아가도 출중하게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셋을 다 고려하지 않고 어느 한쪽만의 평판을 취했을 때 오류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유소는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해도 그 사람이 인재가 아닐 수 있고, 또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이 인재일 수 있다고 말한다.
왜일까? 바로 당파와 붕당 때문이다. 즉, 사사로운 이익으로 야합하여 칭찬하거나 비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정직하고 올바른 인재들이 이런 붕당의 폐해로 사라져 간 경우는 무척 많다.
강태공의 '육도'는 이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름만 가지고 사람을 쓰면 큰 붕당을 가진 사람들만 등용되게 되고, 허명만 취할 뿐 실질은 없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귀로 듣고 취합한 내용이 많다고 해서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명성만 살피는 데서 비롯되는 오류인 것이다.
공자도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를 칭찬하겠는가? 만일 칭찬할 것이 있으면 사실을 살펴본 연후에 한다.”라고 했다.
⏹ 감정에 좌우되지 마라
둘째, 사람들을 대하면서 자신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준에 따라 사람을 잘못 평가하는 미혹이 있다.
원래 사람이란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도 없고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다. 나쁜 사람도 좋은 점이 있기 마련인데, 만약 그 좋은 점을 내가 좋아한다면 그가 나쁜 사람임을 망각하게 된다.
마치 조폭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영화 속 조폭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일 것이다.
앞서 말한 제갈량과 마속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마속은 제갈량의 지모는 갖고 있었으나 제갈량의 신중함은 갖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제갈량은 기본적으로 마속과 같은 스타일이다.
그래서 마속의 참모로서의 능력을 높이 사고 그 장점만을 보다가 마속의 경솔한 성정은 보지 못한 실수를 범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도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단점으로 자신을 무시하면 그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사람을 감별하는 데 있어 객관성을 잃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미혹되어 잘못 판단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니 가끔 감정에 현혹되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최고 리더가 이런 감정에 휘둘리면 리더의 심리를 재빠르게 간파하는 능력을 가진 간신들이 판을 치거나, 요령 없는 우직한 신하는 불우한 결말을 맞게 된다.
인물지가 사람을 아는 일을 성인의 일로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것도 감정에 미혹되는 인간의 특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 사람의 마음가짐과 목표가 부합하는지 살펴라
셋째, 사람의 심지를 헤아리면서 그 크기의 대소로만 판단하는 오류가 있다.
여기서 마음(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사람이 마음속에 품은 뜻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일을 할 때의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마음에 품은 뜻이 넓고 크지만, 겸손하고 신중한 사람이 가장 훌륭한 인재이다.
유소는 마음에 품은 뜻과 심리적 상태라는 각도에서 다음 4가지 인재 유형을 제시한다.
마음이 신중하고 뜻이 큰 사람은 성현의 범주에 속하고, 마음도 크고 뜻도 큰 사람은 호걸이며, 마음은 크나 뜻이 작은 사람은 오만 방자한 자이고, 마음도 작고 뜻도 작은 사람은 구애되고 나약한 자이다.
즉, 유소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데 있어서 반드시 그 뜻의 크기와 더불어 심리적 상태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뭇사람들은 인재를 살핌에 있어 마음이 신중한 것을 작아서 볼품없다 여기고, 그 뜻이 크면 장하다고 여기는데, 이것이 심지의 크고 작음으로만 판단해서 생기는 오류다.”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런 오류를 은폐의 수법으로 역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뜻이 있으나 세력이 약할 때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상대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유비가 조조에게 의지하고 있을 때, 조조는 유비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영웅이란 모름지기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 큰 계획을 숨기고 하늘을 감쌀 듯한 기개와 땅을 삼킬 만한 기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야 하오. 지금 천하의 영웅이라고 하면 아무리 둘러보아도 영웅은 우리 둘뿐이오. 원소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지요.”라고 말한다.
유비 또한 이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때마침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크게 났다. 유비는 자신의 거동이 의심을 살까 얼른 둘러대며 말한다. “천둥소리 한 번에 젓가락을 떨어뜨렸습니다그려.”
이렇듯 짐짓 놀라는 척 꾸며 조조를 안심시킨다. 유비는 뜻은 크지만 마음 씀은 섬세한 면이 있었다.
초·한 쟁패의 시기 유방도 이런 은폐의 술로 항우의 의심에서 벗어난 경우가 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놓고 다툰 싸움에서 초반전은 항상 항우의 승리였다. 비록 유방이 관중에 먼저 진입하여 진나라를 멸망시켰지만 여전히 힘의 우위는 항우에게 있었다.
당시 항우에게 대적할 힘이 없었던 유방은 어떻게든 항우의 의심권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것이 급했다. 그래서 장량의 계책에 따라 항우에게 납작 엎드려 충성을 맹세한 후 겨우 항우의 칼날을 피한다.
하지만 항우에게 유방은 여전히 거슬리는 존재였다. 그래서 유방을 한왕(漢王)으로 삼아 중원과 떨어진 파촉과 한중으로 보내 버린다. 지도를 보면 잘 알겠지만 지금의 사천(四川)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곳이다.
술가의 고수 장량은 여기서 또 한 번 은폐의 술을 발휘한다. 유방이 자신의 봉국으로 갈 때 장량은 “대왕께서는 지나가는 곳의 잔도(棧道)를 불태워 끊어서 천하 사람들에게 동쪽으로 돌아올 뜻이 없음을 보여 주고, 그것으로써 항왕의 마음을 안정시키십시오.”라고 권유한다.
유방이 장량의 말대로 지나온 잔도를 모두 불태워 한중에서 나올 마음이 없음을 보이자 항우는 비로소 유방에 대한 의심을 풀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나? 유방은 한중에 들어가 한신을 등용하고 군사를 길러 방심한 항우를 공격하여 마침내 천하를 얻게 된다.
반면 뜻은 있으나 마음가짐이 세심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 '인물지'는 이들을 오만하다고 말한다.
후진의 경연광(景延廣)은 당시 북방의 최강자인 요의 태종 야율덕광에게 말한다. “우리는 10만의 횡마검을 준비해 두었다. 오랑캐 따위는 무섭지 않다.” 이에 태종이 분노해서 쳐들어 오니 10만은커녕 감히 적과 맞서지도 못하고 나라가 결딴이 났다.
인물지는 이런 것을 경계하고 있다. 뜻이 장대하니 듣기에는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세심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뜻만 내세우다가는 조직을 박살낼 수 있다.
⏹ 대기만성형 인재를 간과하지 마라
넷째, 사람의 자질을 평가하면서 성취의 빠르고 늦음으로만 판단하는 오류가 있다.
신동이라는 말도 있지만 대기만성이라는 말도 있다. 이는 사람의 재질에 따라 성취의 빠르고 느린 점이 있다는 말이다. 유소는 재질의 빠르고 느림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재지(才智)가 일찍 발휘되어 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늦게 발휘되어 늦게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어려서도 재지가 없고 늙어서도 끝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서부터 뛰어나다 결국 출중한 인물이 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사람의 재질을 평가할 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눈앞에 드러난 현상만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할 때 비롯되는 오류가 있다. 이런 경우는 특히 대기만성의 인재에게 많이 보인다.
다음은 삼국지 강표전(江表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나라 장수 여몽은 지략이 뛰어난 장수로 황조 토벌과 적벽대전 등의 일련의 싸움에서 전공을 올렸으나 교양은 전혀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손권이 “경이 요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으니 이제는 공부 좀 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그는 군대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고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권이 말했다. “내가 어찌 경이 경전을 연구하여 박사가 되기를 바라겠는가? 다만 폭넓게 책을 훑어보아, 지나간 일이라도 알게 하려 할 따름이다. 경이 많은 임무가 있다고 말하지만, 누가 나보다 더 일이 많겠는가? 내가 늘 책을 읽는 것은 크게 이로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네.”
그래서 여몽은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훗날 노숙이 여몽과 만나 이야기하다 깜짝 놀라 말한다. “경은 이제 재능과 지략을 갖추었으니 더 이상 현과 같은 작은 고을에 썩고 있을 여몽이 아닙니다.”
그러자 여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비는 3일만 떨어져 있어도 눈을 비비고 다시 상대한다는데(刮目相對), 노형께서는 사리를 이해하는 것이 어찌 이렇게 더디시오?”
이후 여몽은 노숙에 이어 대도독이 된다. 진수는 여몽을 평가하면서 용맹하면서도 지략에 능하였으니, 무장으로써 그만한 인물은 없었다고 평하였다.
여몽의 경우처럼 인재는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자칫 인재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 동류의 사람들만 추숭하지 마라
다섯째, 사람을 변별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부류를 좋아하고 다른 부류를 배척하는 오류가 있다.
사람이 명리를 구하고 손해는 피하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누구나 일 잘한다는 평판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재질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서로 장점을 추켜 세우고 다른 장점을 가진 사람들을 깎아내려 자신들의 재질이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니 같은 유형의 사람들끼리 칭찬하는 말은 항상 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영업 직종의 사람들은 영업이 최고라고 하고, 관리 직종의 사람들은 관리 직종이 가장 중요하다고 서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과 같은 재질을 갖고 있으면 서로 추켜세운다 하더라도, 막상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할 때 자신을 낮추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성향이 같고 재능에 차이가 있으면 서로 이끌어 주고 의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서로 경쟁하며 상대를 해칠 수도 있다. 방연이 손빈을 해친 것도 그렇고, 이사가 한비자를 해친 것도 이 때문이다.
후한서 양수전(楊修傳)의 ‘계륵(鷄肋)’의 고사로 잘 알려진 양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양수는 동한의 명문가 출신으로 조조 군대의 문서와 장부를 관할하는 주부(主簿)로 일했다. 그는 인물지가 말한 예리한 관찰로 사물의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는 달식지재(達識之材)였다.
한번은 조조가 집에 대문을 세우고는 그것을 돌아보고 그 대문에다 ‘활(活)’ 자를 하나 써 놓고 들어갔다. 그것을 본 양수는 즉시 그 대문을 줄여 다시 세우도록 했다. 문(門) 안에 활(活) 자가 있으니 이는 ‘넓을 활(闊)’ 자가 아닌가? 대문이 너무 크다고 조조가 나무랐기 때문이다.
또 조조가 유비와 한중 땅을 놓고 싸울 때, 조조는 진격이냐 후퇴냐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곤경에 빠져 있었다. 장군들도 계속 전진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한중을 그냥 지키는 것이 좋을지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영채를 나가다가 갑자기 ‘계륵’이라는 말을 했다. 다른 장군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양수만은 “닭의 갈비는 살이 적어 먹을 것은 없지만 그대로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이곳을 버리기는 아깝지만 대단한 땅은 아니라는 뜻이니 버리고 돌아갈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夫鷄肋 食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 公歸計決矣).”라고 하며, 군사들에게 남몰래 돌아갈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는 며칠 뒤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조조가 군심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양수를 죽였다고 하지만, 정사에서는 문벌 출신이었던 양수가 조조의 아들인 조비와 조식의 후계 싸움에서 조식 편에 있었기 때문에 조비의 미래를 위해 죽였다고 한다. 아무튼 조조가 자신의 마음이 들킨 이 사건을 결코 탐탁해 하지 않았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원소가 자신의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을 좋아했다면 조조는 그 반대였다. 그의 유명한 “차라리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겠다(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조조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특히 출신 배경이 자신보다 좋았을 때는 더욱 그랬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조조는'구현령'을 통해 자신이 인재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자기가 쓸 수 없는 인재나 자신의 통치나 이익에 위협을 주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제거했다.
풍몽룡은 '지낭'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양수는 자기 재능을 너무 뚜렷하게 드러냈기에 조조의 질투를 받아 살해 당했다. 진(晉)나라와 송나라 임금들은 대신들과 시를 짓는 내기를 좋아했는데, 포조(鮑照)나 승건(僧虔) 같은 사람들은 일부러 그답지 않은 시들을 써 내곤 했다. 그것은 양수의 교훈을 받아들여 화를 면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조 같은 인물도 재주를 경쟁하게 되면 상대를 해치기도 한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처음에는 이끌지만 나중에는 싸우게 되는 것은 참으로 흔히 있는 일이다.
⏹ 사람의 시운을 잘 보고 판단하라
여섯째, 재질을 논함에 있어 신세가 펴지거나 쪼그라드는 것에 따라 평판이 변하는 것을 고려하지 못하는 오류가 있다.
사람이란 잘 나갈 때와 못 나갈 때가 있다. 그런데 재질이 뛰어난 사람은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한결같이 겸손하게 노력하여 칭찬을 받거나 절개를 밝게 드러낸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 재질의 사람이다. 이들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영욕이 부침하는 사람들이다. 잘 나갈 때는 이리저리 베풀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당연히 추켜세울 것이다. 그래서 큰 재주가 없어도 그런대로 이름을 날릴 수가 있다.
하지만 못 나갈 때는 베풀고 싶어도 돈이 없고, 누군가를 이끌어 주고 싶어도 권세가 없다. 그러니 주변에 칭찬하는 사람보다는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이 많게 된다. 같은 재질을 갖고 있어도 이처럼 잘 나갈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유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재에 대한 평판을 고려할 때 개인의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경제적 상황과 사회관계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회 전체가 어려워 모두가 가난해지면 궁핍에 따른 걱정거리로 누구라도 베풂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주변에 지지해 주거나 도와주는 이가 있으면 잘나갈 수 있지만, 도와주는 이는 없고 오히려 누를 끼치는 사람만 있으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일을 이루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속된 말로 주위에 뒷배가 든든하면 출세가 쉽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리 지키기도 어려운 세태를 말한 것이다.
그래서 전체 상황을 보고 사람을 평가해야지 단순히 개인이 현재 처한 상황만을 보고 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진이 가난했을 때 형수가 그를 모욕했는데, 그가 금의환향하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는 고사가 있다. 소진은 일세의 외교가였지만 그가 가난했을 때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진나라 통일의 기틀을 다진 백리해는 시집가는 여자의 시종으로 따라가기도 했고, 진나라 목공이 그를 얻기 위해 지불한 몸값은 고작 양가죽 다섯 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인물이 얼마나 대단했던가?
하북의 원소 일가는 명문거족으로 화려할 때는 모두 영웅이라고 칭송했지만, 막상 끈 떨어진 갓이 되자 그들의 행동은 또 얼마나 하찮았던가? 깊은 심지를 가진 사람은 당장 처한 상황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 탁월한 인재는 상식의 도로써는 알아보기 어렵다
일곱째, 기발한 점을 관찰하는 데 있어 그 겉만 보고 진짜 출중한 인재인지 아니면 겉만 화려한 허탕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수가 있다.
사실 어느 정도 뛰어난 인재들은 형체와 기질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관찰할 때 비교적 실수가 적다.
하지만 특별히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인재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 중에는 진정으로 뛰어난 사람(尤妙之人)이 있는 반면에, 겉만 화려하고 내실은 없는 사람(尤虛之人)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겉모습이 초라하면 능력 없는 인물로 여기고, 있는 그대로를 다 내보여도 내실이 없다고 의심한다. 반면 겉모습이 수려하면 대단한 인물이라고 여기고, 정교하게 잘 꾸미면 진실하다고 여긴다.
한신이 평민 시절 빨래하는 아낙네한테 밥을 얻어 먹고 “내 언젠가는 이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소.”라고 했을 때, 아낙네는 “사내 대장부가 제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기에 내가 가엽게 여겨 밥을 주었을 뿐인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소?”라고 했고, 동내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갈 때 모두들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한신이 초왕(楚王)이 되어 빨래터의 아낙네에게 천금을 내리고, 자신을 욕보인 젊은이를 불러 초나라의 중위로 삼을 줄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진정 뛰어난 인재인 줄 알고 등용했는데 실은 허탕인 경우도 많다. 지상병담(紙上談兵)의 조괄이 그렇다. 이런 경우가 대부분 사이비 인재들이다.
그렇다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인재를 발탁할 때 시간을 갖고 순서를 밟아 차근차근 하면 어떤가?
이 경우에는 뛰어나게 허탕인 사람은 추려낼 수 있겠지만, 진정 걸출한 인물의 재능을 알아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재능이 월등하게 뛰어나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그 재능을 식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의 한신과 소하의 고사는 탁월한 인재란 진정으로 그 능력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인재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잘 말해 준다.
한신은 처음 항우 밑으로 들어가 낭중이 되어 수차례 계책을 올렸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아 항우를 떠난다. 그리고 유방이 촉으로 들어가자 한나라로 귀순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창고 관리라는 보잘것없는 직책을 맡는다.
하우영이 추천하자 유방은 그를 치속도위로 삼기는 했지만 비범한 인물로 여기지는 않았다. 단지 소하만이 그가 뛰어난 인물임을 알아본다. 소하가 여러 번 추천했으나 유방이 등용하지 않자 한신은 또 달아난다. 한신이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자 소하가 그를 뒤쫓는다.
그리고 며칠 뒤에 소하가 돌아와 유방을 찾으니, 유방은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노엽기도 하여 소하를 꾸짖는다. “그대는 어째서 도망갔소?” “신은 도망친 게 아니라 도망친 자를 쫓아갔던 것입니다.” “그대가 뒤쫓은 자가 누군가?” “한신입니다.”
그러자 유방은 “장수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수십 명이나 되는 데도 그대는 쫓아간 적이 없소. 한신을 뒤쫓았다는 것은 거짓이오.”
그러자 소하는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놓고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서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계속해서 한신과 같은 인재를 등용하지 않으면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할 수 없이 유방이 “그대를 보아 장수로 삼겠소.”라고 하자, 소하는 “장수로 삼을지라도 한신은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한다. 결국 유방은 “그러면 대장으로 삼겠소.”라고 말하고 한신을 예를 갖추어 대장으로 삼게 된다.
이처럼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그 재능을 알아줄 사람이 없으면 범용한 인재로 평가 받거나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질 수 있다. 소하가 한신이 그저 능력 있는 장수가 아닌 대장군감임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를 붙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한신도 자신의 포부와 능력에 걸맞은 자리가 없었다면 유방에게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 뛰어난 인재는 그 그릇에 맞는 곳에서 비로소 능력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진정 뛰어난 인재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인물지'는 오로지 성인만이 알 수 있다고 한다. ‘지인’의 일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의 7가지 오류는 인재를 감식하는 사람의 주관적 요인에 의한 오류와 피감식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해 생기는 오류가 있다. 즉, 인재가 처한 경제적 조건 및 사회경제 상황이 인재의 명성과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인재를 감식하는 사람의 수준 문제도 이런 어려움을 더한다. 나아가 그 사회의 일반적인 인재에 대한 인식의 기준도 정말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 七(일곱 칠)은 ❶지사문자로 柒(칠)과 통자(通字)이다. 다섯 손가락을 위로 펴고 나머지 손의 두 손가락을 옆으로 편 모양을 나타내어 일곱을 나타낸다. 아주 옛날 숫자는 하나에서 넷까지는 선(線)을 그 수만큼 한 줄로 늘어 놓고, 다섯 이상은 다른 기호를 사용했다. 그 중 五(오)와 七(칠)과 九(구)는 닮음꼴, 六(육)과 八(팔)과도 닮음꼴로 되어 있다. 일설에서는 七(칠)은 베다란 뜻의 글자를 빌어 쓴 것이며 후세의 切(절)이란 글자를 기원이라 한다. ❷상형문자로 七자는 ‘일곱’이나 ‘일곱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七자는 칼로 무언가를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과 금문에 나온 七자를 보면 十자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칼로 사물을 자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十(열 십)자가 막대기를 세운 그려졌었기 때문에 十자와 七자는 혼동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두 글자의 구분이 어려워지면서 끝을 구부리는 방식으로 지금의 七자를 만들게 되었다. 七자는 본래 ‘자르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후에 숫자 ‘일곱’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刀(칼 도)자를 더한 切(끊을 절)자가 ‘자르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七(칠)은 일곱의 뜻으로 ①일곱 ②일곱 번 ③칠재(七齋; 죽은 지 49일 되는 날에 지내는 재) ④문체(文體)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의 열두 달 가운데 일곱째 달을 칠월(七月), 사람의 일곱 가지 심리 작용을 칠정(七情), 바르지 못한 일곱 가지 견해를 칠견(七見), 그 수량이 일곱이나 여덟임을 나타내는 말을 칠팔(七八), 나이 70세로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옛날에는 드문 일이다는 뜻의 칠순(七旬), 일곱 걸음에 지은 시를 칠보시(七步詩), 한 줄이 일곱자로 된 한시를 칠언시(七言詩), 일곱 줄로 매어 만든 거문고를 칠현금(七絃琴),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칠전팔기(七顚八起), 유교에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조건을 이르는 말을 칠거지악(七去之惡), 사물이 서로 연락되지 못하고 고르지도 못함을 칠령팔락(七零八落) 등에 쓰인다.
▶ 繆(얽을 무, 사당치레 목, 틀릴 류/유, 목맬 규, 꿈틀거릴 료/요)는 형성문자로 缪(무)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실 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翏(료)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繆(무, 목, 류, 규, 료)는 얽을 무의 경우는 ①얽다(무) ②묶다(무) ③삼(蔘) 열 단(무), 사당치레 목의 경우는 ⓐ사당(祠堂)치레(목) ⓑ깊이 생각하는 모양(목) ⓒ성(姓)의 하나(목), 틀릴 류/유의 경우는 ㉠틀리다(류) ㉡어그러지다, 위배하다(류) ㉢어긋나다(류) ㉣속이다(류) ㉤잘못(류), 목맬 규의 경우는 ㉮목매다(규) ㉯졸라매다(규) ㉰맺다(규) ㉱엇걸리다(규) ㉲새끼 따위를 꼬다(규) ㉳두르다, 감기다(규), 꿈틀거릴 료/요의 경우는 ㊀꿈틀거리다(료) ㊁두르다, 감기다(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얽을 구(構), 얽을 박(縛), 얽을 주(綢), 얽을 전(纏)이다. 용례로는 육체서의 하나로 팔체八體의 모인摹印과 같이 도장의 크고 작음과 글자의 많고 적음을 맞추어 새기는 글자체를 무전(繆篆), 서로 차이가 나고 틀림을 차무(差繆), 미리미리 빈틈없이 자세하게 준비함을 주무(綢繆), 오류誤謬를 오무(誤繆), 비가 오기 전에 올빼미가 둥지의 문을 닫아 얽어맨다는 뜻으로 화가 싹트기 전에 미리 방지한다는 미우주무(未雨綢繆), 새는 폭풍우가 닥치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둥지의 구멍을 막는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하여 닥쳐 올 재앙을 막는다는 상토주무(桑土綢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