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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여행 10배로 즐기는 특급정보 |
골프 치며 산호초 스노클링, 雪山 꼭대기 송어 낚시, 늑대 울음 속 바비큐 파티… |
세계 1위의 관광도시 시드니는 벗겨도 벗겨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 같다. 옥빛 바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풍광은 시드니 관광의 시작일 뿐. 로드하우 아일랜드의 농촌체험, 포트 스테판의 샌드 사파리, 스노위 마운틴의 승마 산행…. ‘바다를 가슴에 안은 도시’ 시드니의 진면목은 이렇듯 은밀한 비경 속에 꼭꼭 숨어 있다. 최고의 호주通 윤필립 시인이 전하는 시드니 알짜 ‘차별여행’ 가이드. |
동경 127도에 위치한 인천공항을 떠나 동경 151도에 위치한 시드니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거의 직선으로 남행(南行)한다. 10시간 남짓한 여정이다. 호주의 별명이 ‘다운 언더(Down Under)’인데 말 그대로 아래쪽 동네를 향해서 곧장 내려오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미주나 유럽과는 달리 시차적응이 전혀 필요 없는 도시가 시드니다. 하늘바다에 돛을 올린 밤배를 타고 지구 남반부에서만 보이는 남십자성을 등대 삼아 야간항해를 하다 보면, 문득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웰컴 투 시드니! 10여년간 세계 1위 관광도시 그 아침에 닻을 내리면 바닷가 노천카페에선 커피향기가 흐르고, 귀밑머리 허연 시인 하나가 부둣가를 거닐면서 밤새워 쓴 시를 낭송하고 있을 것이다.
시드니 물港에 오시거든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천문대
당신은 녹색바다에 핀
자꾸 뒤돌아보지 마세요, 오늘은
그래요, 시드니에 오시거든
미국 뉴욕에서 발행되는 세계적 여행잡지 ‘트래블’은 매년 독자투표로 ‘올해의 관광도시’를 선정한다. 2004년 선정 ‘올해의 관광도시’는 시드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줄곧 그래왔듯이. 바다가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서 도시를 감싸안은 천혜의 항구 도시. 시드니를 대표하는 두 개의 아이콘인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바다풍경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물항. 그런데 시드니를 보고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시드니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컸기에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관광불감증(?) 환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아마도 사람마다 관광취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시드니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소문만 요란했지 시드니도 별 것 아니다”라는 식의 낮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그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20년 가까이 시드니에 살면서 틈만 나면 시드니 안팎의 관광명소와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들을 섭렵했다. 필자는 지금도 시드니 하버에 나갈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더러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페리에 걸터앉아 ‘바다를 가슴에 안은 도시’ 시드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순간 황홀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 잘 알지 못하면 제대로 즐길 수가 없는 법이다. 적지 않은 경비를 들여 큰맘 먹고 찾아오는 한국 관광객을 위하여 이참에 시드니 여행 10배로 즐기는 비법을 공개하자. 매년 20만명이 넘는 한국관광객이 시드니를 찾는다고 하지 않는가. 밤새워 야간비행을 하던 비행기 안에 불이 켜지면 커튼을 열어제치자. 창밖엔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아래쪽으론 호주 섬대륙과 녹색바다가 어른거릴 것이다. 그 순간이 시드니관광의 스타트 라인이다. 호주 동부를 가로질러 내려오던 비행기가 한동안 바다 위를 선회하다가 천천히 시드니로 진입하는 동안,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드니 풍경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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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대지에 점점이 박힌 빨간 지붕의 주택들이 보일 것이다. 시드니의 주택들은 대부분 빨간 모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도회지이지, 사철 푸른 숲 속에 장식품 같은 주택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필자가 “시드니에 오시면 빨간 모자를 쓰세요”라고 당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 위에 떠있는 도시, 시드니에서 빨간 모자를 쓴 당신은 녹색바다에 핀 한 송이 꽃이다. 한 송이 빨간 꽃이 된 당신. 잠시 여행의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호주식 플랫 화이트 커피(Flat White Coffee· 밋밋하게 우유를 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여행 일정을 점검해보자. 소문난 관광명소인 오페라하우스와 블루마운틴, 시내관광 등은 누가 뭐래도 호주관광의 필수코스다. 그런 다음의 일정은 각자의 선택사항. 관광취향과 형편에 따라서 ‘기성품 일정’이 아닌 ‘맞춤형 일정’을 만들어보자. 필자는 그런 ‘맞춤형 일정’의 길라잡이를 만들기 위해 NSW(New South Wales) 관광청의 안내를 받아 여러 곳을 답사했다. 기존 호주 패키지관광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애쓰는 동포들도 만나보았다. 거기에다 필자가 그간 시드니에 살며 기록해둔 여행파일을 꼼꼼하게 검색했다. 필자와 함께 여행했던 한국과 호주의 명사들이 시쳇말로 ‘감동 먹은’ 장소들과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함께 정리해보았다. 테마가 있는 여행 ‘시드니 플러스’ NSW 관광청 공보관 알렉스 맥그리거는 필자의 오랜 문학지기(文學知己)라서 따로 약속시간을 정하지 않고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또한 그의 사무실에 들를 때마다 실속 있는 여행정보들을 얻을 수가 있어 즐겨 찾는다. 호주가 본격적인 여행시즌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그의 책상은 마치 전쟁터 같았다. 그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필자에게 책 한 권을 건네주면서 “지금 막 출판사에서 도착한 책이다. 한번 훑어보고 평가 좀 해달라”고 했다. 내용을 대충 살펴보니, 새로운 것을 찾는 신세대의 까탈스런 감각에 맞추기 위해 작심하고 기획한 새로운 패키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시드니를 기점으로 한 당일치기 혹은 1박2일 코스의 알찬 패키지들. 아이템마다 특별하게 설정된 테마가 있는 여행이라서, 좀 색다른 호주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이름하여 ‘시드니 플러스(Sydney+)’인데, 시드니를 기본적으로 구경한 다음 자동차로 2∼4시간 거리 에 있는 지역을 골라 색다른 호주체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호주체험 중엔 말 타고 관광하기, 낚시, 스킨스쿠버, 산악자전거 타기, 래프팅, 그룹 캠핑 등과 호주민속음식 요리하기 등이 들어 있다. 특히 농장체험엔 가축 돌보기, 유기농법 농사, 과일 따기 등 요즘 유행하는 웰빙형의 환경친화적 일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들이 6만여년 전 바위에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는 오지여행, 키가 87m나 되는 400년 수령의 유칼립투스나무를 구경할 수 있는 마이욜 호수 여행 등이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 이게 바로 내가 찾았던 아이템들인데….” 필자의 칭찬 몇 마디에 책자를 기획하고 직접 집필까지 한 알렉스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그가 “딱 한 군데만 주말을 이용해서 함께 답사하자”고 즉석제안을 했다. “오케이, 그런데 누구 차로 가나?” 여행경비는 단 1달러도 차이나지 않게 반반씩 부담하면 되지만, 늘 누구의 차를 이용하느냐가 문제였다. 둘 중에 한 사람은 책임지고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드니 근교에는 어딜 가나 포도주 제조농가(winery)들이 있다. 그곳엔 십중팔구 무료 와인 시음장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공짜 와인을 맘껏 마시고 싶었던 것. 운전을 하면 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하는 수 없이 동전을 던졌다. 그야말로 호주식 ‘정당한 방법(Fair go)’이다. 알렉스가 “이런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자랑하는, NSW 관광청에서 기획한 20여개의 시드니 플러스 중 몇 군데를 선별해 소개한다. 황제 부럽지 않은 식탁 시드니 북동쪽의 태평양 망망대해에 인간계(人間界)의 먼지가 거의 묻지 않은 작은 화산섬 하나가 떠 있다.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그야말로 ‘새들의 고향’이다. 로드하우 아일랜드(Lord Howe Island)는 호주대륙에 백인이 처음 이주해온 1788년에 발견된 섬이지만, 주민이라곤 20명밖에 되지 않는 한가한 곳이다. 당연히 범죄도 없고 경찰관도 없는 사건사고 청정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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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많이 몰려오는 여름 한철(11∼2월)에만 시드니에서 파견된 경찰관 한 명이 관광객을 위한 치안을 담당한다. 그 일조차도 한가로운 경찰관은 주로 관광객을 위한 아기자기한 이벤트를 열면서 여름 한철을 보내다가 시드니로 돌아간다. 주민이 20명밖에 살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텅 빈 섬은 아니다. 거기엔 9홀짜리 골프코스도 있고 잔디볼링장도 있다. 밤마다 별빛이 내려앉는 야외카페도 있다. 로드하우 골프코스는 파3 다섯 개에 파4 네 개로 구성된 아담한 코스이지만, 바다를 끼고 돌아가는 풍광은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황홀할 정도다. 특히 8번 홀 그린은 산호초 근처에 있어 골프공이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스노클링을 해서 찾아내는 재미가 그만이다. 로드하우 아일랜드의 최고 절경은 섬 근처에 솟아 있는 ‘볼스 피라미드’라는 이름의 뾰족바위(sea stack)다. 산호초 위에 떠 있는 볼스 피라미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상 화산바위다. 로드하우 아일랜드 관광은 눈으로 즐기는 맛도 있지만, 귀찮을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낚이는 바다낚시와 875m 높이의 가우어산 등반, 전천후 스노클링 등 레포츠가 주를 이룬다. 그뿐인가. 막 낚아 올린 생선과 청정지역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를 곁들인 즉석생선요리, 거기에다 섬에서 재래식 방식으로 생산한 맥주를 곁들이면 황제의 식탁이 부럽지 않다. 특히 섬에서는 가축이나 닭을 키울 수가 없기에 섬 곳곳에 지천으로 널린 새알을 주워다 치즈를 곁들여 요리한 토속음식은 관광객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로드하우 아일랜드에선 하루에 일곱 번이나 크고 작은 식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그만큼 체력소모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바다 속에서의 활동은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아침7시 - 빵 한 조각과 차 한 잔, 8시30분 - 뜨거운 아침식사, 10시30분 - 옥수수 빵과 차 한 잔, 12시30분 - 점심식사, 오후 4시 - 스폰지 케익과 차 한 잔, 6시 - 만찬(dinner), 밤 9시 - 야식의 일곱 차례 식사가 당연하게 여겨진다. 관광시즌엔 골프대회, 잔디볼링대회,요트대회, 재즈공연 등이 열리고, 관광시즌이 아닐 때는 낚시, 스노클링, 뱃놀이 등을 주로 하게 된다. ‘홀리데이 파라다이스’ 포트 스테판 아침 일찍 시드니를 출발, 아름다운 해변마을들이 줄지어 있는 센트럴 코스트 지역을 달리다 보면 호주 최대의 철강도시 뉴캐슬이 나오고 곧이어 해변관광지 포트 스테판에 도착하게 된다. 자동차로 약 2시간30분 거리니 그다지 멀지 않다. 포트 스테판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배를 타고 야생 돌고래를 구경하는 ‘돌핀 크루즈’와 바닷가에 접한 2500ha의 사막에서 4륜구동 자동차를 타거나 말을 타고 신나게 달려보는 ‘샌드 사파리(sands safaris)’다. 앞에서 언급한 키가 87m나 되는 400년 수령의 유칼립투스나무를 구경할 수 있는 마이욜 호수도 포트 스테판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이 빠져나간 모래사장에서 디글디글한 조개들을 건져 올리는 재미도 아주 쏠쏠하다. ‘홀리데이 파라다이스’라는 별명으로 짐작할 수 있듯 포트 스테판은 볼 것, 즐길 것, 먹을 것이 많은 곳이라 당일치기하기엔 정말 아쉬운 관광지다. 골프라도 한 라운드 하려면 적어도 1박2일 정도의 일정이 필요하다. 골프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도 포트 스테판에선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치기’를 하듯이 골프공을 굴리고 다녀도 되는 퍼블릭 코스가 두 개나 있기 때문이다. 그중 더 팜스 골프코스는 평지 위에다 좀처럼 보기 드문 10홀짜리 골프코스를 만들어놓았는데, 몸만 가면 언제나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장비 일체를 빌려준다. 또 한 군데, 데이비드 그레함 골프 콤플렉스는 그야말로 골프 오락장이다. 퍼팅만 하는 9홀이 있는가 하면, 파3 9홀을 만들어놓아 어린 자녀들과 함께 골프를 즐길 수도 있다. 골프를 본격적으로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국제대회가 열리는 호라이즌 골프코스와 27홀짜리 넬슨베이 골프코스로 가면 된다. 호라이즌 골프코스는 특급 골프장이 많기로 소문난 호주에서도 베스트 20 안에 드는 명문 골프장으로 ‘백상어’ 그레그 노먼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곳이다. 넬슨베이 골프코스는 산 중턱의 숲 속에 들어앉아 있는데 라운드를 하다 보면 야생 캥거루들이 한가롭게 풀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풍경 또한 일품이다. 포트 스테판의 상징물인 야생 돌고래들이 자유로이 헤엄치다 지나가는 뱃머리에 부딪칠 듯이 줄지어 튀어 올랐다간 쏜살같이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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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관광지 포트 스테판엔 또 하나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끝이 안 보이는 모래사막 구릉에서 4륜구동 자동차나 모래사장용 특수 오토바이, 또는 말을 타고 달리는 샌드 사파리다. 이건 또 어떤가. 마치 눈썰매를 타듯이 조그만 샌드보드(나무판자나 플라스틱 판)를 하나씩 들고 구릉 꼭대기로 올라가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 언제 하루 해가 저무는지 모를 정도로 동심에 젖게 된다. ‘호주의 알프스’라 불리는 스노위 마운틴(Snowy Mountains)은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호주 사람들의 강인한 정신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관광지다. 호주 개척시대의 역사가 곳곳에 서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주의 수도 캔버라를 덤으로 관광할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 특히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의 경우와, 시드니와 멜버른이 서로 수도유치를 위해 경쟁하다가 두 도시의 딱 중간지점에 행정수도를 건설한 호주의 사례를 비교할 수 있다. ‘호주의 알프스’는 레포츠 천국 연중 5∼6개월 동안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스키장을 여러 개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설산(雪山) 스노위 마운틴. 그곳을 눈이 없는 계절에 찾아갔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계곡 물줄기를 따라서 말을 타고 거닐다가 곳곳에 숨은 산꼭대기 호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맛 또한 스키 못지 않게 짜릿하기 때문이다. 어디 낚시뿐인가? 말 타고 산에 오르기, 카누 타기, 산악자전거 타기 등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레포츠가 부지기수로 많다. 특히 정상 근처 호숫가에서 야영이라도 하게 된다면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호주에서 제일 높은 산인 코시우스코산(2228m) 정상을 말을 타고 등반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일행을 안내하는 리더가 있을 뿐더러, 산이 가파르지 않아 정상 500m 아래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0달러짜리 지폐에는 호주의 전설적인 시인 벤조 페터슨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호주조폐공사에 의하면 시인의 초상이 지폐에 그려진 나라는 다섯 나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벤조 페터슨은 호주의 민속시가(bush ballad)를 수집하기 위해 스노위 마운틴을 여행하던 중 야생마를 잡아서 가축용 말로 훈련시키는 남자들을 만나게 됐다.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서 산악지대를 누비고 다니던 남자들을 만났을 때 그는 커다란 충격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에서 호주 사람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떠올리게 됐고, 그들을 소재로 그의 대표작 ‘스노위 강에서 온 남자(The man from Snowy River)’를 썼다. 스노위 마운틴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산꼭대기 호수의 차디찬 물 속에서 무지개송어를 낚는 일이다. 별빛 쏟아지는 호숫가에 둘러앉아 호주식 무지개송어 바비큐를 즐기다 보면 언덕 저쪽에서 을씨년스러운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와인기행 + 문학기행 미국 초기의 역사를 ‘서부 개척사’라고 부른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1788년 죄수선단을 이끌고 온 아서 필립 선장은 호주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시드니에 정착했다. 시드니에 영국 식민지의 기초를 세운 이들 영국의 후예들은 미국에서처럼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그런데 서쪽으로 나아가는 입구에 블루마운틴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 산을 넘는데 자그마치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천신만고 끝에 블루마운틴을 넘어가 보니 끝이 안 보이는 대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땅은 비옥했고 곳곳에 강이 흘렀다. 그들은 거기에다 양과 소를 방목하고 각종 과일나무를 심었다. 영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규모 농장이 조성됐다. 그러던 1851년, 배서스트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온 세계의 노다지꾼들이 몰려들었다. 마침내 호주의 서부 개척사가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노다지꾼 중에는 노르웨이에서 온 파나빅 로슨이라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그는 결국 실패한 노다지꾼으로 삶을 마쳤지만, 광산촌 천막에서 장차 호주의 국민시인이 될 아들 헨리 로슨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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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로슨은 그동안 영국 식민지풍의 문학이 풍미하던 호주 문학계에 호주의 정신이 깃들인 문학작품을 선보여 호주 국민주의(Australian nationalism)를 일깨웠다. 그는 ‘남십자성’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식민지 국가의 신민으로 머물러 있던 죄수의 후예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말년의 헨리 로슨은 걸인처럼 떠돌면서 감옥까지 드나들다가 지금의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서 객사했다. 호주 정부는 로슨의 누추한 말년이 몹시 안타까웠지만,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호주 민중의 애환을 문학작품 속에 생생하게 담아낸 그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산(辛酸)한 삶 속에 그의 문학사상이 깃들여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찌그러진 양은 맥주컵을 오른손에 꼭 쥔 채 길가에 죽어 있는 헨리 로슨을 발견한 날, 호주당국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장례는 호주 최초의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수만 군중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바로 그 헨리 로슨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다 보면 식민지시대 호주 서부 개척사를 엿볼 수 있다. 광활한 목장풍경과 지금은 폐광이 된 황량한 광산촌에서 ‘호주정신’을 만나게 된다. 헨리 로슨이 떠돌던 배서스트, 머지, 그렌펠, 오랜지, 카우라 등 유서 깊은 관광지엔 약속이나 한 듯이 포도주 제조공장들이 있다. 특히 그가 성장했던 머지에서는 ‘시인의 코너(Poet Coner)’라는 상표의 유명한 포도주가 생산된다. 물론 거기에도 포도주 시음장이 있다. 술주정뱅이 시인 헨리 로슨의 낭만적인 시편들을 천천히 읽으며 포도주를 한 잔씩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곤드레만드레! 시드니로 돌아오는 길에서 ‘마셔라! 잊혀질 것이다’ 같은 감상적인 내용의 시 한 수 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태곳적 적막강산’ 속으로 필자는 1991년 말부터 1년 동안 호주 동아일보에 ‘호주 작가들의 고향’을 연재했다. 호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20명을 선정해 그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부터 문학활동을 하다가 죽어서 묻힌 곳까지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면서 문학기행을 썼다. 대부분의 탐방은 호주 작가들과 동행했지만, 일정이 많이 소요되는 오지(outback)로 취재를 갈 때는 부득이 혼자 가야 했다.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한나절을 달려도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텅 빈 세상 속으로 혼자 길을 떠났다. 1992년 여름, 필자는 평생의 대부분을 오지로 떠돌며 호주 문학의 신기원을 이룩했던 헨리 로슨의 일생을 정리하면서,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브로큰 힐 지역을 여행했다. 다음은 그 당시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다.
[ 붉은 땅 끝으로 열려서 붉은 땅 끝으로 닫혀버리는 하루하루가 일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사륜구동 자동차가 아니면 애당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거친 대륙에 나 혼자 있었다. 문득 누군가 부르는 듯하여 뒤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메마른 풀포기들이 바짝 엎드려 난데없는 이방인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 호주 내륙의 풀포기들은 아예 하늘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땅이 건조하면 자연도 함께 건조해지는 것일까. 까칠까칠한 풀잎 사이로 푸른 혀를 가진 도마뱀들이 바람보다 빨리 사라져버리는 태곳적 적막강산에서 문득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동화(同化)하지 않으면 무슨 일인가를 당하고 말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 혼자만 문명의 옷가지를 걸치고 있다는 민망함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훌훌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사위(四圍)의 끝닿은 데를 가는 붓으로 그어놓은 듯한 아스라한 선 하나가 이어져 있을 뿐, 바람마저 잦아들어버린 호주 내륙의 사막지대, 천지간에는 벌거벗은 남자 하나뿐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빛들이 모여서 이글거리는 땅, 그 가운데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절반쯤 미쳐버렸던 헨리 로슨도 1882년 어느 날, 벌거숭이인 채로 이곳에 앉아 있었으리라. 그를 만나고 싶다. 소금에 절인 고기 몇 조각에 미지근한 물 한 통으로 사막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헨리 로슨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버크 쪽으로 소떼를 몰고 가던 사람들이 “당신 죽고 싶어 환장했느냐?”는 목동다운 인사말과 함께 따뜻한 실론티를 끓여주었다. 수백 마리의 소떼들은 선 채로 잠이 들었고, 우리는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서로가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이었다. 목동들은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금방 친근해질 수 있는 ‘순둥이’들이었다. 뜨뜻미지근한 흑맥주가 몇 순배 돌았다. 역한 냄새가 나는 진한 맥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난생 처음 듣는 오지의 전설 같은 얘기들에 홀려버렸던 것일까. 내가 새벽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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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오지여행은 아주 위험하다. 얼마 전엔 영국인 커플이 비슷한 형태의 여행을 하다가 희생되기도 했다. 노상강도를 만나거나 길을 잃어서 물이라도 떨어지면 끝장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수많은 오지여행 패키지가 준비되어 있어 아주 안전하게 호주의 태곳적 적막강산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네댓 명이 함께하는 사륜구동 자동차 오지여행은 더 없이 좋은 추억 만들기가 될 수 있다. 팀워크만 잘 이뤄지진다면. 한국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0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관광가이드를 한 호주 동포가 있다. ‘1일 관광 전도사’ 김예환씨(호주대한관광여행사). 그는 관광가이드가 체질적으로도 맞고 보람도 느낄 수 있어서 평생의 업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눈길 끄는 1일 관광 패키지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일본 방식을 답습한 한국의 단체관광 시스템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폐단을 개선하려 애썼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막힌 길은 돌아서 가야 하는 법.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1일 관광 시스템이다. 그는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던 관광가이드를 그만두고 ‘1일 관광 전도사’로 변신했다. 1일 관광은 시드니에서 2∼3시간 거리에 있는 관광명소로 출발해 하루 일정을 보내는 여행상품. 호주의 여행사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운용하고 있는 상품을 한국인의 체질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1일 관광의 주요 고객은 시드니에 사는 친지를 방문한 방문객과 유학생 가족들, 바쁜 이민생활 때문에 여행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호주 동포들이다. 물론 비즈니스를 위해서 시드니에 들른 비즈니스맨이나 단독으로 움직이는 배낭여행객도 대상이다. 김예환씨는 한정된 코스를 반복해서 다녀오는 1일 관광이 언젠가는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또 하나의 아이디어 상품인 계절상품을 개발했다. 그중 하나가 10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꽃길여행이다. 꽃길여행은 기존의 ‘캔버라 봄꽃축제’를 보고 생각해낸 것이다. 캔버라 봄꽃축제는 호주를 대표하는 계절축제 중 하나로 아주 인기가 높다. 그러나 매년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는 캔버라 봄꽃축제로는 고객유치에 한계가 있었다. 고민하던 김씨는 봄꽃축제 기간 동안 시드니-캔버라 간 우회도로에 끝간 데 없이 넓은 유채꽃밭과 각종 야생화가 피는 꽃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캔버라-영-카우라-배서스트-리스고우를 연결하는 유채꽃밭과 야생화 관광을 패키지 상품으로 개발, ‘유채꽃 관광’이라고 이름 붙였다. 호주에는 ‘유채꽃 관광’말고도 10여 종류의 1일 관광 패키지가 운용되고 있다. 호주에 와서 1일 관광을 이용하고 싶으면, 서울-시드니 왕복 비행기 티켓만 준비해 오면 된다. 시드니 공항엔 호주사람들이 운영하는 여행사와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1일 관광 여행사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 감동이 있는 밤의 블루마운틴 김예환씨가 소개하는 1일 관광이 계절상품이라면 사진작가 김형씨가 추천하는 ‘밤의 블루마운틴’은 시간상품이다. 블루마운틴을 가장 감동적으로 관광할 수 있는 시간대가 따로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낮에 보는 블루마운틴과 세 자매봉(Th ree sisters)도 무척 아름답지만, 석양 무렵의 블루마운틴은 환상 그 자체다. 더욱이 밤에 특수조명을 받은 세 자매봉은 정말 놓치기 아까운 절경이다. 물론 석양의 블루마운틴이나 세 자매봉의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블루마운틴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사실 블루마운틴 주변에는 값싸고 운치 있는 숙소들이 아주 많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세 자매봉을 다시 한번 감상한 뒤 그 아래로 난 산책길을 따라 2시간 정도 부시워킹(bush walking)을 하다 보면, 상쾌한 아침공기 덕분에 정신이 더욱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김형씨는 석양을 즐기는 취향이다. 부시워킹을 마치고 시드니로 돌아와서 오페라하우스 맞은편의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 근처에서 차를 마시며 오페라하우스 지붕에 석양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오페라하우스 지붕의 색깔은 시시각각 변한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대체로 오전 10∼11시쯤 오페라하우스를 관광하는데, 그 때가 지붕 색깔이 가장 볼품이 없을 때다. 그러다 마침내 석양이 깔리면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은 황금빛 돛대로 변한다. 그뿐인가. 시드니 하버에 붉은 색조가 섞인 보랏빛 노을이 깔리면 더할 나위없이 멋진 풍경이 된다.
시간대에 따라 경치가 바뀐다는 김씨의 주장은 과연 맞는 말이다. 하긴 인상파 화가들도 시간대에 따라 변화하는 색깔을 화폭에 담지 않았던가. 각자의 취향에 따라 관광의 시간대를 조정하는 것도 시드니를 더 감동적으로 관광하는 비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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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이 욕한 까닭
고은 시인은 메모광이다. 그는 여행할 때나 누구와 대화를 나눌 때 대학노트에다 열심히 받아적는다. 아침에 꺼낸 새 노트가 저녁 무렵이면 맨 뒷장까지 간다. 1996년 1월, 고은 시인은 호주 정부의 초청으로 시드니작가축제(Sydney Writers’ Festival)에 주빈으로 참가해서 한국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의 신들린 듯한 시낭송이라니…. 당시 호주의 페이퍼 바크 출판사에서 출간한 영문 선(選)시집 ‘아침 이슬(Morning Dew)’은 출간되자마자 매진됐고 아주 이례적으로 1년여 동안 4판까지 출판됐다. 시드니대 영문학부 마이클 와일딩 교수는 한 문학지에 쓴 평론에서 “고은과의 만남이 호주 시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고은의 불교시가 역설적으로 막연하기만 했던 동양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썼다. 그는 이어서 “섬뜩할 정도의 1980년대 저항시편들이 투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시적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랫동안 선시(禪詩) 같은 서정시를 써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축제가 끝나고 고은 시인은 필자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영국 출신 작가 D.H. 로렌스가 머물렀던 캥거루밸리를 찾아 1박2일의 여행을 떠났다. 로렌스는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돼 유죄판결을 받자 호주로 도피해 와서 캥거루밸리에 은거하며 ‘캥거루’라는 유명한 소설을 썼다. 그날도 고은 시인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풍경을 보면서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문득 그의 대학노트가 궁금해졌다. “선생님, 뭘 그렇게 계속 쓰세요?” “음, 저 해변의 나무들이랑 새들이 자꾸만 말을 건네오잖아. 난 그냥 받아쓰기만 하는 거야. 자넨 시인이면서도 저놈들의 얘기가 안 들리나? 그런데 저 나무가 내 오줌을 먹고 싶다고 하네. 차 좀 세워라.” 호주에선 숲속에서 방뇨하는 것을 ‘부시 요-요(bush yo-yo)’라고 한다. 오래 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호주에 와서 그레그 노먼과 함께 골프를 하면서 몇 차례 부시 요-요를 하다가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다. 다음날 호주의 한 신문에 “클린턴은 지퍼를 너무 자주 내린다”는 기사가 실렸다. 르윈스키와의 추문(일명 ‘지퍼게이트’)이 한창일 때였다. 참고로 호주에선 부시 요-요가 불법이 아니다. 소변을 보고 나서 한참동안 바다를 응시하던 고은 시인이 일갈했다. “시펄, 억하심정 생기누먼. 저렇게 아름다운 바다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 필요 없으면 우리한테나 주지.” 고은 시인은 그 뒤로도 두어 차례 더 그곳을 여행했다. 고은 시인을 욕하게 만든 곳은 젤링공과 카이야먀의 중간지점인데 시드니에서 자동차로 2시간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웰빙 신드롬의 본고장 맨리 비치 한국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생명의 기적’을 필두로 ‘잘먹고 잘사는 법’ ‘환경의 역습’ 등의 환경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한국에 웰빙 신드롬을 일으킨 SBS 박정훈 PD는 호주와 인연이 깊다. 그는 1997년 가족과 함께 호주로 와서 명문 UTS대 대학원에서 수학해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특집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마다 시드니로 와서 작품을 구상하고 호주 현지에서 취재했다. 작품을 구상하고 리서치할 때마다 찾던 맨리 비치에 대해 그는 자신의 저서 ‘잘먹고 잘사는 법’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맨리 비치를 아주 적절하게 묘사한 글이라서 그대로 옮겨본다.
[ 시드니 동북쪽 해변의 맨리 비치에 큰 수건을 깔고 누워 파도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때면 그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본의 아니게 토플리스 차림의 아름다운 여성들도 감상하게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이다. 나는 따끈따끈한 백사장에 누워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가끔 물에 발을 담근다. 끼니때면 해변의 음식점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거나 눕다 자다를 반복하다 보면, 지난날의 복잡했던 상념은 어느덧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이 몰려온다. 파도가 적당히 높아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맨리 비치에서 선탠을 즐기려면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갖추어야 한다. 물병 하나, 과일 한두 개, 그리고 책 한 권. 그 중에서도 책은 만인의 필수품이다. 사람들은 물은 안 마셔도 책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젊은 대학생 여럿이 몰려와도 백사장에 들어서면 가방에서 수건 하나를 꺼내 깔고 자기가 벗고 싶은 만큼 옷을 벗고 약간의 로션을 몸에 바른 후 조용히 담소를 나누다가 결국은 각자 누워 책을 보는 문화. 파도 소리만 없다면 이곳의 한여름 바닷가 백사장이 우리나라 웬만한 도서관보다 더 조용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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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 하버와 ‘無心’
지난 8월초, 시드니한인바둑협회 창립 20주년 축하사절로 조훈현 국수가 시드니를 방문했다(신동아 10월호 324쪽 참조). 그가 공식일정을 마치고 시드니를 관광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10명 정도가 동행했는데, 그가 늘 붓으로 쓰는 ‘無心’이라는 말이 화제에 올랐다. 전날 그와 대국한 호주동포 신명길 아마7단이 “아무리 생각해도 조 국수의 바둑 스타일은 ‘無心’과 거리가 먼데…”라고 했기 때문. 조 국수는 웃으면서 “無心은 불교의 종교적 영향과 내가 일본에서 제자로 들어갔던 세고에 선생한테 받은 영향으로 언젠가는 그런 경지에 들고 싶다는 소망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 대화가 오가던 중 그날 운전을 담당한 최해택 화가가 길을 잃었다. 맨리 비치 근처였는데 아무리 가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언덕 하나를 넘어서는 순간, 전에 보지 못했던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시드니’가 저 멀리 보이면서, 언덕 아래에 자리한 작은 포구엔 하얀 돛을 단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뿐인가. 해변에 늘어선 불꽃나무(frame tree)가 잎사귀도 매달지 않은 채 제 몸에 활활 불을 지르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구먼….” 눈앞에 펼쳐진 시드니의 바다풍경에 홀린 조훈현 국수가 신음을 토해내듯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무 생각이 없다고요? 조 국수님이 드디어 無心의 경지에 드셨구먼. 그런데,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그곳이 바로 미들 하버(Middle Harbour)였다.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시드니 시내에서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곳. 필자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정확하게는 ‘발모랄 하이츠’다. 시드니가 숨겨놓은 비경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박철 시인이 홀로 울던 파라마타 강 1980년대의 시대적 상처를 온몸으로 아파한 박철 시인이 홀연히 시드니에 나타난 게 1990년대 초다. 그는 시드니에 2년 가까이 살면서 호주를 소재로 한 시를 쓰고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가끔씩 외국생활이 갑갑해지면 그는 문학수첩과 기타를 들고 시드니 서부를 가로지르는 파라마타 강으로 나갔다. 가끔씩 페리가 지나갈 뿐 파라마타 강의 풍경은 늘 고요했다. 강가엔 나이 많은 나무들이 서 있어 한국에서 온 시인에게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박철 시인은 그 나무 아래에서 그의 대표시 중 하나인 ‘나무, 파라마타 가는 길’을 썼다. 그리고 ‘별, 고향의 강 그리고 낙엽’이라는 가슴 아린 제목의 시를 썼다. 두 시가 수록돼 있는 박철의 시집 ‘새의 전부’에서 ‘별, 고향의…’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시인이 길을 나설 때에는 항상 길 위에 별들이 반짝인다 / 들어보라 / 별들이 발끝에 묻어나 제 몸끼리 바삭거린다 (중략)
거대담론의 시대인 1980년대가 스러지고, 참을 수 없이 가벼웠던 ‘환멸의 시대’ 1990년대 초반을 시드니에서 지낸 박철 시인은 파라마타 강변을 혼자 거닐면서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왜소한 체구에다 외로움을 덕지덕지 묻히고 다녔던 시인. 그런 그에게 집 근처로 흐르는 파라마타 강은 ‘고향의 강’이었으리라. 그런데 가끔은 그 강물조차 그를 위로하지 못했나 보다. 새벽 3∼4시면 필자를 찾아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했으니. 파라마타 강 자락에는 시드니올림픽이 열렸던 홈부시 올림픽경기장이 있고, 경기장 바로 아래쪽 늪지대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맹그로브 숲이 숨어 있다. 박철 시인이 살고 있는 김포, 강화 근처에서 날아온 도요새는 파라마타 강 맹그로브 숲에서 겨울 한철을 나고 돌아간다. 박철 시인도 도요새처럼 시드니에 머물다가 돌아갔다. 벌써 4년 전의 일인데도 호주 시인들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필자를 만나면, 정호승의 시 ‘수선화’의 한 대목을 읊조린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Don’t Cry! To be lonely is to be human)’. 2000년 10월, 호주작가센터에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타이틀로 열린 정호승 시인 초청 봄 문학축제(Spring Festival)에 참가했던 호주 시인들이 ‘수선화’에 크게 감명을 받은 결과다. 행사를 마치고 정호승 시인과 함께 비를 맞으며 시드니대학 옆 골목에 있는 글리브로 갔다. 그곳엔 대학교 주변답게 서점들과 소극장, 작은 카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문득 정호승 시인이 “그래, 모름지기 대학교 주변은 이런 풍경이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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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이 ‘감동 먹은’ 숨은 명소들
한편 소설가 이문열은 2002년 시드니작가축제에 초청되어 한국 정치계와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보수와 진보의 대립관계를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불우한 성장기와 작가로서의 이념적 갈등을 주로 언급했다. 그의 문학행사는 하버브리지 아래에 있는 부두극장(wharf theater)에서 열렸는데, 그곳은 100년도 넘은 양모 보관용 부두창고를 내부만 현대식으로 개조해 연극전용극장과 현대무용전용극장으로 사용하는 글자 그대로 창고극장이다. 문학강연이 끝난 후 그는 몇몇 호주 한인 문인들과 어울려 주로 이념에 관한 논쟁을 벌였다. 그의 이념은 딱딱하게 굳어진 고체 같았다. 열띤 논쟁을 벌이던 그가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했다. “호주에 와보니 보수가 존경을 받고 있더라. 기존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보수주의자라고 대접해줘 부러웠다”면서 “한국이라면 벌써 허물었을 것 같은 허름한 창고를 수리해서 소극장 등으로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문득 보수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고도 말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부두극장과 부두카페는 시드니 지식인들이 주로 찾는 숨은 명소다. 특히 부두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나서 부두카페에 들러 시드니 야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포도주 맛은 그야말로 ‘죽여준다’. 끝으로 도올 김용옥이 “바로 이거야!”라고 외친 일라와라 옛길을 소개한다. 도올 역시 초청강연을 위해서 시드니에 왔다. 동서고금을 종횡으로 누비면서 뜨겁게 진행된 강연이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도올과 함께 최해택 화가가 일라와라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일행은 조금이라도 빨리 바닷가에 도착할 요량으로 프린세스 하이웨이를 달려서 울릉공 근처까지 갔다.
문득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최해택 화가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일라와라 옛길로 들어섰다. 그때 도올이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하더니 길가에 피어 있는 야생화 쪽으로 다가갔다. 오랫동안 들꽃을 바라보던 도올은 “그래, 여행은 이런 꽃들을 보기 위해서 떠나는 거야.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여행도 아니야”라고 했다. 그러면서 독백하듯이 이렇게 덧붙였다. “고속도로가 아닌 잡초가 무성한 옛길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가 있는 거야. 그럼, 모름지기 목적지가 아닌 길 위에서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하지.” (끝) |
첫댓글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