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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23일 토요일 말씀묵상 ♣
성경:요한복음19:38-42(신180P)
제목:니고데모의 변화
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2)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1리트라는 약 327그램임
40.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할렐루야!오늘은 말씀을 묵상하시고 내일 주일예배를 위하여 기도하며 준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니고데모의 변화 ”
우리는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로 죄씻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 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 피로 우리가 용서받은 것입니다. 이 피로 우리가 의로다 칭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 피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이 피로 우리가 원죄로부터 구원된 것입니다. 이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기 위해서 네 번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죄 없으신 분의 피흘림을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모든 피를 쏟아내셨습니다.
나를 위해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합시다. 우리가 모두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 구원받은 하늘의 백성인 것을 다시 한번 눈물과 감사와 감격 속에서 받아드리십시다.
네 번씩이나 붉은 피를 쏟으셔서 그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신 주님의 고난에 우리도 동참합시다.
여러분의 생활에 눈물과 감사로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니고데모의 변화”(요한복음19:38-42)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니고데모의 변화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행복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임을 깨달아 이 시대의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소원 합니다.
1.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
요한복음 3장 2절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의 종교 지도자 72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세상적인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니고데모가 왜 굳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갔을까요? 예수님이 공공장소에서 가르침을 펴실 때 뵙기를 청하면 편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니고데모 정도의 인물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알아서 예수님께로 안내 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 갔다고 하였습니다. 밤에 찾아가면 남들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야밤을 틈타면 다른 종교 지도자들의 거북한 질문을 피할 수 있습니다.
밤에는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보는 눈이 없을 때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삶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불이익의 위험 없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친구와 가족에게 굳이 알릴 까닭이 없습니다. 밤에 조용히 예수님을 만나 믿기만 하면 됩니다.
형식적으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런 저런 말을 듣기도 싫고 삶의 손해나 불이익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의 3학년 이야기 시간에 한 장난꾸러기 어린이가 친구들 앞에서 “악어에게 쫓기는 거북이”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었습니다.
“악어가 거북이를 쫓아 왔어요. 느린 거북이는 힘을 다해 빨리 도망갔어요. 악어는 점점 가까이 쫓아 왔어요. 다급해진 거북이는 있는 힘을 다해 커다란 바위를 훌쩍 뛰어넘어 달아났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끼어들었습니다. “애야, 거북이는 뛰어넘지 못한단다”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합니다.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지금 이 거북이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어린 아이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내 힘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문제를 만납니다.
질병의 문제, 재정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등. 이때 우리가 살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지만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허물 많고 문제를 많은 우리를 사랑으로 만나 주시고 손 내밀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만나러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의 “밤”을 뛰어 넘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언제까지 숨어서 무엇도 손해 보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실 겁니까? 밤이 아니라 대낮과 같이 드러내 놓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 시대의 진정한 제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 예수님 편에 선 니고데모.
요한복음 7장 51-52절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종교 지도자들은 질투에 사로잡혔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입을 다물게 만들 구실을 찾기 위해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다고 말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역할 중 하나는 거짓 선지자들 색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짓 선지자로 고소할 빌미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음해하기 위해 공모하는 그 자리에 니고데모도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공회의 종교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변호해 줄까요? 그의 믿음이 행동으로 이어질까요? 예수님을 위해 공회원직을 걸 수 있을까요?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변해 주길 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지 않은가?
꼭 내가 어려운 때에 나서야 하고 내가 희생을 해야 하는가? 여러 생각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공개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행동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결국 용기를 내어 예수님 편에 굳게 서서 옹호를 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비록 믿는 바를 과감하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밥줄과 평판을 걸고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변호하였습니다.
더 이상 믿음을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직장과 관계, 재정적인 미래가 위험에 빠질 줄 뻔히 알면서도 믿음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니고데모는 단순한 형식적인 신앙의 길을 떠나 제자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산헤드린 총회의 다른 일원들은 니고데모를 향하여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니고데모를 무시하며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제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매나헴 베긴 총리가 미국의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테이블에 있는 세 개의 전화를 발견했습니다.
“이 전화기들은 각각 무엇에 쓰는 거요?” “흰색은 행정부로 통하는 것으로 주로 공무에 쓰고, 빨간색은 구소련과 직결되어 있는 비상전화이고, 황금색은 하나님과 통화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과의 통화료가 얼마요?”
레이건은 웃으면서 “만 달러요. 하나님과의 통화는 만 달러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레이건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베긴 총리의 집무실을 방문했습니다.
거기 역시 세 대의 전화가 있었는데, 레이건이 물었습니다.
“이 전화기들은 어디에 쓰는 거요?” 그러자 베긴 총리는 대답했습니다.
“흰색 전화는 국회 의사당하고 연결된 공무용이고, 빨간 것은 이집트하고 연결된 비상전화고, 노란 것은 하나님과 통화하는 것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물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통화료가 얼마요?” “15센트입니다” “왜 그렇게 싼거요?” 베긴 총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통화할 때 국내 통화료를 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합니다. 거저는 없습니다. 그래도 제자는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야 하고 어떤 값이라도 지불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섬기고 어떤 희생이 있어도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 편에 서는 니고데모와 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 최상의 것을 드리는 니고데모.
요한복음 19장 40-41절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준비가 한창입니다. 모두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니고데모는 발을 벗고 나섰습니다.
무엇도 두렵거나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공회일로, 체면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 것이 후회될 뿐입니다.
대단하거나 엄청난 일을 하거나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닌데..... 허황된 것 때문에 마땅히 믿고 충성해야 할 일을 못 했다는 죄책감으로는 가득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옵니다. 몰약과 침향은 보통 비싼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단순히 돈 이상의 것을 드렸습니다.
자신으로서는 최상의 것을 드렸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거나 두려워 숨었을 때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향한 놀라운 사랑과 헌신을 드렸습니다.
어두운 밤에 말로만 표현 되었던 믿음이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더 이상 숨은 형식적인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제 제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으로 니고데모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끝이 납니다. 어둠 속에서만 예수님을 믿어 왔습니까?
이제 예수님은 여러분을 빛 가운데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당당히 드러내고서 예수님을 제자로서 따라야 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30대에 노르트담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쳤고 39세의 나이에 예일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49세의 나이에 학자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하버드 신학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한 순간에 하버드를 떠나 캐나다 토론토의 정신지체 장애자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로 가게 됩니다.
이는 어느 날 그가 만났던 한 정신박약의 남자를 만난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한 청년을 만남으로 인해 소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눈을 뜨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소명을 감당할 새 힘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올라가는 길만 추구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 칭찬을 받으며 자랐고 하버드의 교수가 되기까지 줄곧 올라가기만 했습니다.
오직 성공만을 위하여..... 하지만 사람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받는 삶에서 누군가를 위해, 예수님을 위해 가장 귀한 그것을 드려야 합니다.
제자는 드리고 헌신합니다. 아낌없이 예수님을 위해 드립시다. 목숨까지 드립시다. 예수님께 드리는 것은 최고의 가치이며 영원한 가치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이 시대의 니고데모와 같은 진정한 제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결론}***
여러분!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니고데모의 변화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행복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임을 깨달아 이 시대의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소원 합니다.
1.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
2. 예수님 편에 선 니고데모.
3. 최상의 것을 드리는 니고데모.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변화와 헌신을 일으킵니다.변화와 헌신을 빼 버린 영적 축복은 십자가 없는 영광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소심한 제자로 숨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담대히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제자로 살아갈 때,우리 안에는 주님으로 인한 거룩한 변화와 온전한 헌신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여러분!밤에 찾아 온 니고데모가 예수님 편이 되고 자기의 최상의 것을 드리는 제자가 되었던 것처럼 더 이상 소심한 숨어 있는 구경꾼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요한복음19:38-42절입니다.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니고데모의 변화와 헌신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행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