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과 나신
해가 바뀐 지 일 주일이 지난다. 한 달 간 겨울방학에 들면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어디로 산행 산책을 다녀올지 미리 메모를 해 두었다. 장소만 적어두었지 순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일요일 새벽 집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짓고 길을 나섰다. 대개 배낭에 보온도시락을 챙겼다만 그렇지 않았다. 반나절 산책으로 예정하여 점심때 즈음 집으로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창원대학 앞으로 갔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대학가는 적막에 쌓여 있었다. 그곳 종점에서 진해로 넘나드는 150번을 기다렸다. 배차 간격이 뜸해 시간을 좀 기다려야 했다.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는 종점에서 곧바로 출발했으나 김해와 진해에서 온 버스는 달랐다. 김해 시내까지는 97번과 98번, 그리고 58번과 59번이었다. 170번은 장유까지 운행했다.
김해로 가는 버스는 종점에서 한동안 대기했는데 내가 타려는 150번도 마찬가지였다. 버스가 이미 도착해 있었으나 배차 시각을 지키느라 시동을 끈 채 정차해 있었다. 바람이 차갑지 않았지만 추위가 느껴져 대학 정문 일대를 거닐며 그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시내로 운행하는 다른 버스들은 여러 차례 지났으나 내가 타려는 버스는 하염없이 기다렸더니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에서 정류소로 다가온 버스를 탔더니 환승 시간 초과로 요금이 새로 부과되었다. 추운 바깥에 지내기보다 차를 타니 훈기가 느껴졌다. 건너편 계절 지난여름 경험한 바다. 뙤약볕 정류소에서 정한 행선지로 갈 버스를 언제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오는 버스를 타면 좌석이 텅 빈 냉방이었다. 겨울 시내버스도 마찬가지였다. 발품을 팔다보면 절로 터득하는 지혜였다.
150번은 창원대학과 진해 인의동으로 오가는 노선이었다. 도청 앞 관공서 거리를 관통해 남산동 터미널에서 공단 배후 도로를 달렸다. 일요일이라 그곳으로 드나드는 이용객은 없어 거의 논스톱으로 달렸다. 신촌 삼거리에서 양곡으로 들어 오봉사 입구에서 내렸다. 오봉사는 목장마을과 장복터널을 앞둔 지점이다. 나는 거기서부터 예전에 진해로 넘던 마진터널 옛길을 걸을 셈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건너편으로 가려니 횡단보도를 보행자 조작 신호등을 따랐다. 승용차 운전자는 그런 신호 체계가 있는지 몰라도 나는 어디에서 그런 조작 신호등이 있는지 훤히 꿰차고 있다. 목장마을 오봉사는 두 차례 들려 본 바 있다. 수도도량이기 보다 알음아름으로 다녀가는 불자들인 듯했다. 양곡에서 진해를 넘는 옴팍한 골짜기가 목장마을이다. 글쎄, 그 주변이 다섯 봉우리인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이른 아침 길을 나선 본색을 드러냈다. 아무도 걷지 않는 마진터널로 오르는 옛길이었다. 어쩌다 아주 드물게 초보 운전자가 S코스 시험주행을 해보거나 아베크족이 지나는지 모르겠다. 건너편 장복터널로는 수많은 차량들이 쏜살같이 미끄러져 달렸다. 얼마큼 거리가 떨어졌기에 소음이나 매연으로부터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훠이훠이 쉬엄쉬엄 걸어 올랐다.
진해는 봄 한철 벚꽃 명소가 많다. 여좌천변, 경화역, 통제사령부, 제황산, 안민고갯길 등이다. 이런 곳만큼 고목 벚나무가 화사한 꽃을 피우는 데가 마진터널 옛길이다. 삼십여 년 전 그 아래 장복터널이 뚫렸고, 이제는 그보다 더 아래 새로 뚫는 장복터널도 개통을 앞두었다. 나는 정초 일요일 겨울 나그네가 되어 아무도 찾지 않는 마진터널로 오르는 진해 옛길을 걷는 호사를 누렸다.
어느새 마진터널에 이르렀다. 통영 해저터널을 걸어서 지나본 사람은 마진터널을 지나면 천정 등불이 켜진 지하구간이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더 기대하시라. 저만치 호수 같은 속천항도 보였다만 장복산 조각공원이 나타났다. 오래 전 개장한 야외 설치물이었다. 그 가운데 내 눈길을 끈 작품 둘은 ‘퓨어 맨’과. ‘중력, 무중력’이었다. 공교롭게도 나신으로 이제껏 봐온 나목과 … 18.01.07